몇 해 전에 불경기로 미국의 빈익빈 부익부 형상에 분노한 일부 젊은들에 의해서 “우리가  99%다. 월스트리를 점령하자”는 데모가 뉴욕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된 적이 있었다.

그 후에  미국 경제 불균형 구조가 조금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 된 것 같지는 않다. 당연하다.  자본과 기술력의 집중으로 유지되어 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생리상 혁명이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 되었으면 되었지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무리 노래를 부르고 데모를 해도 세계 경제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1%의 자리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다.

하필 99 % 대 1% 인가? 누가복음에 나오는 양 99마리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에피소드 에서 얻은 영감은 아닐 것 같은 데. 참 아이러니컬 한 우연의 일치다.

옛 이스라엘 땅에 평생 양을치며 먹고사는 한 나이 먹은 목자가 있었다. 그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사실밖에 모르는 살아 온 우직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석양이 저물어 가는 한 여름 저녁이었다. 초원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목자는 양들을 몰고 서둘러 축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 편 어둠 속에서 축사의 모습이 히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목자는 평소의 습관대로 양들의 머릿수를 한 마리 한 마리 씩 점검해 나갔다. 100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부족했다.  두 차례를 다시 세어 보았다. 결과는 역시 99 마리였다. 도중에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날은 곧 지척을 잘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 질 것이다. 뱃속에서는 벌써부터 허기를 알리는  ‘꾸르륵 꾸르륵’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를 어쩌나…. .’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목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금 찾아 나선다고 해도 잃어버린 양을 꼭 찾는다는 보장은 없을 듯 했다. 이미 늑대나 산 짐승들의 먹이감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99 마리 양들을 어둠 속에 이대로 남겨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한 마리 양을 구하려다가  자칫 잘 못 하면 99 마리 양들을 몽땅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고 잃어버인 양 한마리를 나 몰라라 하고 도저히  발걸음이 떼일 것 같지도  않았다.

“99마리을 택할 것인가 ? 잃어버린 한 마리를 택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갔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목자는 “열 손가락 중에 한 손가락을 깨물어도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는 신념으로 평생 양들을 정성껏 길러 온 사람이다.  그 중 한마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100마리를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 라는 생각에 가슴이 쓰라렸다.

며칠 전에 가까운 초원 언덕에서 이상한  군중 집회가 벌어졌다. 검게 탄 깡마른 얼굴, 불뚝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덥수룩한 긴 머리에 굴레수염까지 기른  30 쯤 되어 보이는 한 젊은이가 바위 위에서 연설을 하고, 수백명 넘어 보이는 군중들이 그 주위에 둘러 앉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개중에는 연신 “아멘 ! 아멘!”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옷을 걸치고 있는 행색들로 보아 거지들, 병자들, 무직자들, 가난한 농부들이 청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 했다.

‘이 뙤약볕 아래서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이 고생을 사서하며 저렇게 열심히 듣고 있을까?” 호기심이 머리끝까지 올라 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안성 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다는 심사로 양들을 초원에 방목해 둔 채 뒷켠에  자리를 잡고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애통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는 말들이 젊은이의 입에서 물처럼 술술 흘러나왔다. 그는 여짓껏 야훼가 산다는 성전을 단 한번도 구경 해 본적이 없었다. 먹고 사는 일에 쫒겨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성전은 자기들같은 천민들에게 개방된 곳이 아니라 경건한 복장을 갖춘 돈 많은 사람들이나 사회적 신분이 높은 고관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믿고 있었다.

성전을 출입한다는 랍비들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들의 위엄있고 엄숙한 모습에 압도되어 말을 건내기는  고사하고 감히 눈을 들고 쳐다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깨들 너머로 젊은이의  자태를 자세히 훔쳐보았다. 두눈에서  강렬하게 쏟아져 나오는 안광, 선하고 인자해 보이는 인상, 그리고  청중들을 압도하는  카르스마 적인 낭낭한 목소리….

첫 인상에 범상치 않는 젊은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남루한 옷을 차림에  청중들과 아무런 격의도 없이 자유롭게 말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견건한 랍비나 제사장같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오랜만에 만난 어린시절 친구같은 친밀감마져 들었다.

‘내킨 김에 더 들어보자.’  양들이 걱정도 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뒤를 돌아보며 점검을 해 보았다. 모두들 평온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중들의 분위가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들 처럼 숙연해져 갔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갔다.

자신의 눈가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 방울이 소롱소롱 맺혀 있었다. 도데체 왜 그런지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석양 빛으로 서편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 막 자리를 뜨려고 하는 순간 “인간은 빵으로 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는  젊은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를 따갑게 스쳐갔다. 군중들이 갑자기 침묵을 깨고 여기 저기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고?  목자는 솔직히 하나님 말씀을 들어 본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 지성소 안에서 제사장들이나 들을 수 있는 것이지 자기와 같이 비천한 목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야.’

양들은 목초를 먹고 살고 인간들은 빵을 먹고 산다는 것은 어린이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망을 했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고 끼니도 거르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 던 자신의 우매함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낮잠이나 잘 걸 그랬어’  목자는 투덜거리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 는 그 젊은이의 헛소리 같은 말이 며칠 동안 밤낮으로 머릿속에서 맴돌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나님 말씀이라 곤 들어 본 적이 없는 나인데 왜 그 말이 자꾸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영문을 가름할 수가 없었다.

양 99마리냐 잃버린 양 한마리 냐의 선택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에 다시 그 말이 머릿 속에 더 강렬하게 메아리쳐 왔다. 목자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애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고 하지 뭐.”

목자는 하늘 보고 덥썩 풀밭에 드러누웠다. 축축한 한기가 등을 적셨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총총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느님, 당신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미쳐 생각치도 못한 기도가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때 마침 어두운 밤하늘에 별 하나가 긴 대각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두눈을 지긋이 감았다.

순간 “ 이놈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 말씀이야!” 하는 그 젊은이 의 목소리가 섬광처럼 뇌리를 후려쳤다.  “뭐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맞는 말이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양으로 계산할 수 있는 빵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보다 귀한 한 생명이었다.

“이것이냐, 저것이나?” 하는 고민은 드디어 끝났다. 목자는 벌떡 일어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어두운 숲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그 동안 늑대들의 먹이는 되지 않았겠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지는 않았겠지?  다리가 부러졌어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얼마 동안 어두움 숲길을 넔을 잃고 헤매이고 다녔을까? 새벽 이슬이 촉촉히 옷자락을 적셔갔다. 저쪽 어둠 속에서  힛긋히긋한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 두 손으로 껴안아 가슴에 품었다.

“얼마나 고생을 했니?  이, 멍청한 자식아!”

양의 머리를 빰에 마구 비볐다.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 양의 머리를 적셔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99 %가 잃어버린 양들일까? 1 %가 잃어버린 양들일까?
그 진실은 하나님만 알고 계실 것이다.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