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1.     

화창한 부활절 아침이다. 자동차를 몰고 잠시 케롤과 함께
봄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봄은 역시 봄인가 보다.

샛노란 개나리 꽃들이 길가에서 해맑은 자태로 손짓을 하며 반긴다.
집 길목에 있는 공동묘지를 지나가며 케롤이
“Hi, Everybody ! Happy Easter!“ 하고 무덤을 향해
인사말을 건냈다. 그녀는 공동묘지를 지나 갈 때 마다
“Hi, Everybody!  하고 안부를 묻는  묘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죽음과 친숙해지기 위한 예행연습라고 한다.

공동묘지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삶에 지칠 때면 가끔씩 혼자서
찾아오는 내 사색의 요람이요, 영혼의  안식처다.
삶에는 죽음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언제 다녀갔는 지 유족들이 남기고 간  꽃송들이 처량하게 무덤 앞을
지키고 있다.  스치는 바람결에  수줍은 듯  살며시 꽃잎을 여민다.

천천히 무덤 사이를 걸으며 묘비에 적힌 비문들을 읽어갔다.
그들 중에는 바로 며칠  전에 묻힌 사람도 있었고,
100여년 전에 묻힌 사람들도 있었다.
갖 태어나서 죽은 어린이들도 있었고,
백수를 넘기고 죽은 노인들도 있었다.
죽음은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순서도 계급도 없다.

케롤은 예수 재림을 믿고 있는 근본주의 신앙인이다.
무덤 속 저들도 케롤처럼 예수가 재림할 날 만
학수고대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묘비에 두텁게  끼어가는 이끼들의 나이테를 세어가면서…..

“위대한 사람의 무덤을 바라볼 때
내 마음 속 시기심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미인들의 묘비를 읽을 때
무절제한 욕망은 덧없어진다,
아이들 비석에 새겨진 부모들의 슬픔을 읽을 때
내 마음은 연민으로로 가득 해 진다.
하지만 그 옆에 부모들의 무덤을 볼 때
곧 따라가 만나게 될 사람을 슬퍼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깨닫는다. 

쫒겨난 왕들이 그들을 쫒겨낸 사람들 옆에
묻혀있는 것을 볼 때
또 온갖 논리와 주장으로 세상을 갈라놓았던
학자와 논객들이 나란히 묻혀있는 것을 볼 때
인간의 하잘 것 없는 다툼, 싸움 논쟁에 대해서
나는 슬픔과 놀라움에 젖는다.”

-죠지프 에디슨-

내가 나에게 띄우는 올 부활절 멧시지다.

2.

부활절을 어려서 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기 중 하나다.
부활절 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명동 성당에 들려 엄숙히 예배를 보고,
촛대에 불을 켜 놓고 나의 부활을 기원하기도 하고, 성모상 앞에 놓여있는
아름다운 이스터 에그를 몇개 씩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만져보곤 했었다.
남들처럼 신앙심이 깊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에 읽었던 하디의  소설 ‘테스”, 
앙드리 지드의  소설  ‘좁은 문’”에 나오는 부활절 풍경,
그리고 톨스토이  소설  ‘부활” 의 영향이 컷었다.
암튼, 지금도 부활절만  되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일요일 오전,  거리는 한산했다. 평소에는 한가해 보였던
동네 교회 주차장이 자동차들로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 일년에 한 차례씩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찾아 온 방문객들의 차량들일 것이다.
이것이 신교의 종주국인 미국사회의 변화된 종교 풍속도다. 
많은 미국 교인들은 이스터,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이 세 절기만
교회를 찾고, 교회들은  이 세 날을 기념하는 종교 박물관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일년에  수백 개 이상의 교회들이 신도 부족, 목회자 부족,
재정란으로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신학대학들도
한국 유학생들 때문에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다.  

70년 대만 해도 이 세 날 만은 대부분 상가들이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았었다.  이 절기 중에 가족들과 여행길을 떠났다가
식사할 적당한  식당들을 찾지 못해서 7-11에 들려 핫도그 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즈음은 그 시절과는 정 반대다.
대부분 상가들이 이들 절기들을 기점으로 해서
빅 세일을 시작한다.  그런 탓으로 사핑센터들마다 바겐세일을 즐기는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예수 프렌차이스, 예수 이름을 팔아
미국 상인들은 일년 매출액의 60 % 이상을 거두어 들이고,
일년 수익의  80 % 이상을 챙긴다고 한다.  예수가 없는 미국경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런  미국사회의 변화에  옛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외로움과 서글픔을 느끼기도 한다.
미국사회의 전통적인 문화, 가치관, 여유와 멋,
낭만이 자본주의 게센 물결에 휩쓸려 역사의 뒤안길로
점점 매몰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기독교가 누엿누엿 석양을 향해 기울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이다.
어떤이들은 마국의 21세기는  탈기독교 시대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이 추세로 봐서는  그럴 날이 멀지 않은 장래에 현실화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 기독교  쇠퇴 원인에 대한 별별 이론들이 많다.
일차적인 책임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2천년  전 근본주의적 교리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미국교회들의 경직성을 지적하는 분들이 주종을 이룬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기독교 쇠락의 근본적인 책임은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금권만능적 
가치관에 있다고 본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에서 예수는 기업가들이
프렌차이스 피, 특허권도 지불하지 않고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돈버는
상품이고, 수단이고 도구다.  이에 덩달아 교회들마져 예수를 헌금을
긁어 모으는  씨이오 로 이용하고 있다.

예수는 이스라엘 시골 나사렛 출신 가난한 목수다. 
돈에 관심이 없을 정도가 아니라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 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로 돈을 경계했던 분이다. 미국 자본주의 사회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사람이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지만 그
런 예수를 돈을 버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라도 될 법 한 짓들인가. 
마음만 먹으면 해결책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닐것이다.

예수를 본래의 모습  가난한 목수로 돌아가게 해 두면 된다.
하긴  돈이 저절로 굴러 떨어지는 이권을 두고  무슨 신앙이고,
양심이고, 도덕이고를 가리겠는가.
돈이 만능인 사회에..   
나의 부질없는 넋두리일 뿐이지.
금권만능의  광풍을 타고 질주하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 호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제동기 마져 떼어버리고,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버지니아 숲 속에서
박평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