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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외로운 길을 가시다(요12:12-19)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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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3월 28일 (토) 21:19:04
최종편집 : 2015년 03월 28일 (토) 22:18:10 [조회수 : 5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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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12-19절

주님 외로운 길을 가시다

 

가. 주님은 참으로 외로운 길을 가셨다.

12절,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다. 세례 요한은 일찍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외친바 있다(요1:29).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것은 유월절에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시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 그 날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그 날에 사람들은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였다. 그리고 ‘호산나’를 외치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것은 가롯 유다를 비롯한 열심당원들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일리가 있다.

* 종려주일에 예수님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행사 속에 실상 예수님은 외로운 길을 가셨다. 아무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제자들마저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을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알 수 있다.

 

나.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문제다.

18절,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을 환영한데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증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17절 참조). 사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좋아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게 왕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병이어의 표적이 있은 후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왕이 되어주기를 간청한바 있다(요6장 참조).

* 여기서 유대인들의 오해는 시작되었다. 큰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저들의 욕구를 채워줄 정치적 메시야에 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오해가 예수님을 외롭게 하였다. 결국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환호하며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 가운데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자신의 욕구의 충족을 위해 주님을 따르는 동상이몽이 예수님을 외롭게 한다. “멸시 천대 십자가는 주님 지고 가셨으니, 존귀 영광 모든 권세 내가 홀로 받으리라”라고 찬송을 거꾸로 부르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은 외롭다.

 

다. 예수님의 길은 고난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14절,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며 작은 나귀새끼를 타셨다. 이는 스가랴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으니라”(15절 참조). 그런데 스가랴는 메시야가 나귀 새끼를 타시는 이유로 ‘겸손하여’를 덧붙였다.

* 여기서 작은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인 ‘겸손함’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스가랴서에서 ‘겸손’(아니)은 ‘아나’(힘쓰다, 고난을 당하다)에서 유래하였다. 즉 예수님의 겸손은 고난을 당하시되 자신을 비워 순종하시는 것이다. “그는 곤욕을 당하며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까지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다(빌2장 참조).

* 그리고 예수님을 태운 나귀 새끼는 마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예수님은 주님을 태우고 힘들어 하던 나귀 새끼처럼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셨다.

 

라. 고난 뒤에는 영광이 있다.

16절,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오해로 동상이몽을 꿈꾸며 다른 길로 따르고 있다. 성경에서 ‘따르다’는 ‘같은 길에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힘들어도 주님이 가신 길에 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를 따르는 길에 영광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고난 뒤에 영광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실상 주님의 길은 일견 어리석은 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평하며 만류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길을 가셨고, 영광을 얻으셨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하던 말대로 많은 사람을 얻으셨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19절 참조).

*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겸손함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높여 주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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