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신에 관한 학문이고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 두 가지 학문을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해 왔다. 따라서 인문학 지식은 신학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대를 소통의 시대, 대화의 시대, 열린 시대, 융합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면 신학과 인문학도 대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전통적으로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을 구분하고 여자보다는 남자가, 땅보다는 하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이 땅의 삶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천국의 삶을 소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여자들이 득세하게 되고, 땅 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중시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전에 별로 주목하지 않던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이것은 하늘과 땅을 구분해서 하늘을 중시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문학자들의 영향이다. 그들은 남자도 여자도, 하늘도 땅도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문학이 신학에 영향을 미치다니 이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인문학이 신학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악영향이지 좋은 영향은 아닐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신학의 기반인 성경이 인문학을 만나면 성경에 담긴 진리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면 성경이 인문학의 조명을 받을 때 어떤 바람직한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필자는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양면을 수용하는 인문학자들의 안경을 통해서 성경을 읽으면 전에 희미하게 보이던 것들이 분명하게 보이고,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나기도 한다고 『예수님과 통하라』(대한기독교서회)에서 말한 일이 있다. 이제 대화를 중시하는 인문학자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주장이 예수의 복음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밝혀 보고자 한다.

인문학자들과 이분법적 사고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에서 이데아를 영원하고 본질적인 원형으로, 감각세계를 이데아의 모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영혼과 육체를 대비시키면서 영혼은 육체와 결합하기 전에 이데아들과 친숙한 관계를 가졌던 영원한 것으로, 육체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대립되는 두 가지를 구분하면서 하나를 우월한 것으로 다른 하나를 열등한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을 이분법적 사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보통 하늘과 땅, 영혼과 육체, 성과 속, 선과 악, 서양과 동양, 남자와 여자, 왕과 백성, 선민과 이방인, 백인과 유색인 등을 구별하면서 앞선 것을 우월한 것으로 뒤의 것을 열등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플라톤의 시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그 잔재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데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점은 대립되는 두 가지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두 가지의 우열을 정해 놓는다는 점이다. 특히 대립되는 것이 남자와 여자, 선민과 이방인, 백인과 유색인 같이 인간인 경우에는 우월한 측이 열등한 측을 배제하거나, 적대시하거나, 지배한다.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앞서서 문제 삼은 사람들은 여성주의자들이다. 여성주의자들은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주의자들은 울스턴크라프트의 『여권의 옹호』(1792)에서 영향을 받아 1890년에서 1920년 사이 미국과 영국에서 참정권 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여성의 선거권뿐 아니라 교육권, 출산권, 노동권 등을 주장하며 남성과의 평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여성운동의 결과 오랫동안 인간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여성이 21세기에 와서 호주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여성주의자들 다음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문제 삼은 인문학자로 러시아의 바흐친을 들 수 있다. 바흐친은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제 문제』(1929)에서 대화주의를 제창했다. 그는 언어를 독백적 언어와 대화적 언어로 구별했는데, 스탈린 치하에서 박해를 받은 그는 전체주의적 국가의 언어를 대표적인 독백적 언어로 규정하고 언어 주체들 사이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가능한 언어를 대화적 언어라고 말했다. 대화적 언어에서는 상호 소통과 조정의 역동적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대화적 관계는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의 선택적 관계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 모두’(both/and)라는 양면수용의 관계다.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의 구별 없이 상호 포용하는 대화적 관계에서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가 와해된다.

20세기 중반부터 ‘열린 사회’라는 말이 일반화됐는데,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이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에서 사용한 이 말을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에서 재검토했다. 베르그송은 열린 사회란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개개인의 혼이 사랑의 비약에 의해 열려지는 사회라고 말했다. 포퍼는 열린 사회를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권위나 진리의 오류의 가능성을 자각하면서 보다 좋은 사회를 추구하고 제도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적인 수정을 가하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바흐친 식으로 말한다면, 열린 사회는 대화적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다.

이 두 철학자가 말한 ‘열린 사회’는 열린 시대를 열었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열린 마음, 열린 교육, 열린 마당, 열린 음악회 등의 말이 나왔다. 교회에서는 ‘열린 예배’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때 ‘열린’이라는 말은 금기시 되었던 것이 허용되거나 이것과 저것 사이에 닫혀 있던 문을 열 때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이 옛날의 차별을 벗어나서 대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상위 장르인 가곡과 하위 장르인 대중가요가 열린 음악회에서 같은 무대에 오르고 있다.

미국의 인문학자 엘리아데는 『성과 속』(1957)에서 성과 속의 변증법을 내세웠다. 여기서 변증법이라는 말은 그가 한편으로 성과 속의 상반성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엘리아데는 성스러움은 그 자체로 나타나지 않고, 항상 속된 세계와 더불어 나타나고, 성스러움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속의 세계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상반된 것 혹은 전혀 다른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를 그는 ‘상반성의 합일’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성과 속이 함께 나타난다고 볼 때, 성과 속 사이의 장벽은 무너진다. 엘리아데가 말하는 성과 속의 관계는 대화적 관계며 열린 관계다.

미국의 인문학자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1978)에서 서구인들이 동양을 측량하고 분류하며 기록한다는 것 차체가 하나의 권력이고 지배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서양을 남성적인, 이성적인, 능동적인, 강한 것으로, 동양을 여성적인, 감정적인, 수동적인, 나약한 것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면서 유색인종의 세계를 정복하고 탈취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아 식민지화했다. 사이드는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과 폭력, 강제적인 권력의 행사와 그것을 통한 지배적 사고의 형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여성주의자들로부터 사이드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자들은 오랫동안 서구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대립된 두 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우월한 것 다른 하나를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에 반대하면서 그 두 가지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여 그것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고 두 가지를 모두 택하는 양면수용의 자세를 중시했다. 이제 이러한 인문주의자들의 주장을 성경에 조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겠다.

예수의 복음과 양면수용의 자세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왔다는 사실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예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편에서는 예수는 신인데 인간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왔다는 사건은 많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난센스였다.

교회는 4세기 후반까지도 예수를 인간으로 보거나 신으로 보는 양편의 이단들과 싸웠다. 451년에 열린 칼케돈 공의회에 가서야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라는 정통신앙이 확정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양면을 모두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의 인성보다는 신성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신학자들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나타나는 공관복음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하는 요한복음을 중시한다.  성자로서의 예수, 하나님 우편에 있는 예수, 중보자로서의 예수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다 보면 육신을 입고 왔던 예수는 잊기 쉽다. 그런데 교회는 예수의 신성이나 인성 어느 한편에 치우치는 것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이렇게 양면을 모두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20세기 인문학자들의 양면수용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땅 위의 삶은 무가치한 것이고, 세상과 육체는 악한 것이라고 배우고, 우리가 죽은 후에 갈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당을 강조하는 그들의 눈에는 땅 위의 삶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하늘을 중시하고 땅을 외면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영향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이 무의미한 것이라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왔겠는가? 성경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왔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을 중시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세에서의 인간의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는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던 때와는 달리,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땅 위의 삶을 중시하게 된 것은 인문학자들의 양면수용과 맥을 같이 한다. 하늘과 땅을 모두 중시하는 인문학자들의 안경을 통해서 성경을 읽으면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주기도문의 말씀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전형적인 닫힌 사회의 산물이다. 베르그송은 닫힌 사회의 특성을 배타주의라고 말했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방인은 상종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고 적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군대가 가나안으로 나아갈 때 그들을 가로막는 부족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예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그런 선민의식을 가지고 사마리아인들을 개 취급했다. 열린 사회, 대화적 관계, 열린 마음을 중시하는 20세기 인문학자들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유대인들이 고수했던 선민의식의 맹점이 아주 분명해진다.

그런데 예수는 사마리아인들도 귀한, 선을 행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전도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했다. 이방인들도 구원받아야 하는, 구원받을 만한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예정론을 믿고 있다. 예정론은 어거스틴을 거쳐서 루터, 칼빈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강조되었다. 특히 칼빈은 이중 예정설을 내세워서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예정되었다고 주장했다. 선민의식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구원받을 사람으로 예정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목숨을 바쳐 충성하게 된다. 그러나 예정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는다.

지금은 절대 예정론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 원인은 닫힌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예정론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먼저 예정론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러면 전도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예정되지 않은 사람에게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한 태도는 이방인이 이웃이라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외면하게 만든다. 그것은 또한 대화적 관계와 열린 마음을 강조하는 인문학자들의 주장과도 맞지 않는다.

예수 당시 유대교인들은 인간에 대한 배려를 외면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었다. 그러한 신앙은 그들이 지키는 고르반 전통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부모에게 드릴 것까지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인간을 외면했다. 하나님에게 치중하는 그들의 신앙은 안식일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본 유대인들이 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느냐고 비난할 때, 예수는 안식일의 취지가 애당초 안식일에 쉬라는, 인간을 위한 계명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예수는 서기관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한 서기관이 예수에게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인지 물었다. 예수는 그 첫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서기관은 첫째만을 물었는데, 예수는 그 사람이 묻지 않은 둘째까지 말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예수는 그의 답변에서 하나님 사랑이 중요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가지 사랑을 모두 중시한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이후로 오랫동안 행함을 외면하고 믿음만을 강조해 왔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경배에 치중하면서 인간을 외면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루터는 ‘오직 믿음’이라는 모토를 강하게 밀고 나갔다. 그리고 행함을 강조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라고 말하면서 경전에서 제외시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의 타락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교회가 타락하게 된 것은 행함을 너무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터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야고보서와 마태복음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 나무의 열매를 언급하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을 인용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행함에 반대해서 믿음만을 강조한 루터가 한쪽에 편향되어 있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는 마태복음 7장에 명시되어 있는 행함이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보지 못했다.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타락하기 전이라도 인문학자들의 열린 마음, 대화적 언어, 양면수용에 관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었다면 마태복음의 행함에 대한 강조가 잘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성경이 인문학의 조명을 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 수 있다.

끝내면서

우리는 보통 인문학자들의 주장이 기독교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그들의 주장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인문학자들이 내세운 열린 마음을 염두에 두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보면, 왜 그가 선민의식을 지닌 유대인들의 신앙 행태를 비판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한 예수가 비천한 자들의 친구가 되었다는 일이 당대의 닫힌 사회에서 얼마나 파격적인 일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나아가서 종교 개혁자들이 내세운 ‘오직 믿음’의 교리가 예수의 양면 수용적 자세를 외면한 독백적인 언어였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대화적 관계를 중시하는 인문학자들의 빛으로 성경을 조명하면 2천 년 전의 닫힌 사회에 매이지 않았던 예수의 모습이 드러난다. 닫힌 사회에 살았던 예수가 그 시대의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지 않고 20세기의 인문학자들이 주장하는 대화적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는 분명히 2천 년을 앞서 가는 위대한 선각자였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문학을 외면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문학을 받아들임으로써 문학이 성경을 해석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심리학은 사탄적 행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기도 했다. 지질학과 천문학의 발달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역사의 길이와 우주의 규모에 대한 재해석을 유도했다. 우리는 그러한 과학의 발달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은 과학의 책이 아니고 믿음의 표현이라는 성경 이해에 관한 새로운 시각으로 성경을 보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학문연구의 결과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여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과학 연구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과학자들은 과학을 깊이 연구할수록 우주의 신비를 파악하면서 종교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말한다. 물리학의 경우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아원자적 불확정성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아주 난감한 문제를 제기했고, 빅뱅 우주론은 물리학을 그 자체를 넘어서 형이상학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해서 물리적 세계는 한 세기 전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욱더 신비스러운 것이 되었다. 우주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신비가 드러난다. 그래서 물리학은 신앙의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학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사물의 신비에 압도되어 신앙인이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는 오만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종교적 신앙을 공격해 오기도 한다. 전자 생물학을 연구하던 맥그라스는 기독교인이 되어서 신학을 공부하고 대표적인 개신교 신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분야를 연구한 도킨스는 무신론자가 되어서 『만들어진 신』을 써서 기독교에 도전했다.

맥그라스는 도킨스의 책이 외면한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도킨스의 망상』을 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도킨스의 허점이 무엇인지, 그의 도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맥그라스처럼 기독교 신앙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한 능력이 없다면,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책을 읽어서 그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우리가 인문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갈릴레오의 경우에 교황청에서 했던 것처럼,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무조건 거부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론을 파악하여 수용하거나 거기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주장을 극복할 수 없다면 그들의 책을 읽고 배우는 사람들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다.

무엇이든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신앙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사회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교회가 전근대적인 언어를 고수한다면, 그 교회는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다. 현대인을 인도해 나가기 위해서 교회는 현대인의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