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죽어서 말하는가?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며칠 전 매일경제 인터넷에  신문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2004년엔 박정희 2014년엔 노무현” 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놀랍게도 10년만에 일위 순위가  한국의 보수를 상징하는
박정희 대통령에서 진보를 상징하는 노무현 대통령으로 바뀌어 있었다.

삼위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개인적으로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을 대충 훑어 보니 노무현 대통령은
10-40대 연령층에서 압도적인  선호도가 나왔고, 박정희 대통령은
50대 이상에서 인기가 높았다.

몇 년 전 대통령 선거 결과을 두고
“한국은 선배님같은 꼴통 연령층들  때문에 요모양 요꼴로
보수가 항상 득세를 하고 있는 겁니다” 는 후배의  힐난에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한국의 진보세력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의기 충천해 맞장구를 치고,
반면 보수세력은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 좌파 언론의
조작이다’ 하며 발을 둥동 구르며  분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 측  다 그렇게 심각하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국민 여론이 십년은 고사하고 며칠 후에 어떻게 요동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는 일이다.

주한 미국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 같은 한 개인의 범죄 행위를
종북몰이 구실로 여론이 요동치는 것이 한국사회가 아닌가.
가끔은 한국의 여론은 남한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북한의
입이 요리한다는 생각이 들어 실망하기도 한다.

암튼, 여론이라는 것은 본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들 보다 간사하고
의리가 없어 크게 신뢰할 존재가 못 된다. 눈앞에 놓인 개인적 실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는 것이 여론의 속성이다.

나폴레온이 엘바 섬에서 빠져나와 백일천하를 향하던 길에
꽃송이들을 던지며 열렬히 환영하던  바로 그 군중들이 나폴레온이
월터루 전쟁에 패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가는 길에 돌을 던지며
침을 뱉지 않았던가.

역사에는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와 같은 만년 철통의
명제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학자 이에이 치 카의 주장처럼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 이 이하 그 이상도 아니다.
한 시대의 영웅과 천사가 다른 시대에서는 역적과 사탄으로,
또 한 시대의 역적과 사탄이  다른 시대에서는 영웅과 천사로 변신하고
병신당하는 것이 인류의 지난  역사가 보여 준 교훈이었다.  
 

박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공통점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 볼수 없는 정말로 대조적인 정치인들었다. 타고난 성격, 환경, 교육,
성장 문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놀던 물도 다르고 즐겨 불렀던
유행가들도 판이하게  달랐다.
 

박 대통령은 엄격한 일본의 권위주의, 전체주의 문화 속에서 성장 한 분이었고,
노 대통령은 그나마 해방 후 미국식 자유주의, 개인주의 물을 마시며 성장한
소위 신세대 분이었다.

박 대통령이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가엾다 이내 몸은 / 그 무엇 찾으려고 /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고 있노라’ 하는
유행가  <황성 옛 터>를 젓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며 엄숙한 회고조로 부르셨다면
노 대통령은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가던 길 돌아서면 /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너의 목소리” 하는
<작은 연인들>를 청바지를 걸치고 통키타를 치며 불렀던 분이었다.
 

그러니 추구하는 정치철학이 어찌 서로 같을 수가 있었겠는가?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체험적, 지적 한계를 벗어 날 수 없는 동물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자유의 유보와 구속이 필요하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은 그 분의 체험과 지식에서 나온 철학이고,
경제평등을 위해서 자유와 인권을 주장했던 노 대통령의 주장 또한
그 분의 체험과 지식에서 나온 신념이 아니었겠는가.

이념 논쟁만 해도 그렇다.
6.25를 직접 전투 장교로 참여한 박 대통령은 머릿 속에 북한은 항상
정복해야 할 적으로 남아있을 테고,  전쟁 경험이 없이 평화시대를
살아 온 노 대통령은 북한은 대화와 공영이 가능한 한 민족이었을 것이다.
 

다만 진보든 보수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정부의 선택은 국민들이 투표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현재를 살고 있는 후세 사람들의 몫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의 원칙이다.
 

굳이 두분 사이에 공통점을 찾으라고 한다면,
두분 다  하늘이 준 천수를 누리고 못하시고 서거하신 점일 것이다.
한 분은 평소에 즐겨 찾으시던 궁정동 안가에서 신복 정보부장에 의해
射殺되셨고, 다른 한 분은 역시 즐겨 찿 던 동네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自殺하셨다. 앞 글자는 달라도 뒤에  殺이 붙은 비극적 죽음이었다.
 

하긴 미국인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는 링컨, 케네디 대통령도
정적들의 손에 의해서 暗殺당했고, 또 로마의 영웅 씨져 도
심복 부르터스의 칼에 “너마져…” 를 외치며 쓰러졌었다.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처럼 정치인들도 죽어서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이면 그렇게 비극적으로
최후를 마감하신 대통령들을 한국 국민들은
그토록 존경하고 그리워 하는 것일까?
그것도 시계추처럼 극과 극, 진보와 보수 사이를 오고가며
일위와  이위의 순위를 바꾸어 가면서.
역사의 아이러니 같기도 하고,
역사의 짖궂은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분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 두 분을 비극적 죽음으로 몰로 간 흑백논리의
망령이 아직도 한국의 정치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박 대통령의 군 퇴임사 “앞으로 한국 역사에
나같이 불행한 군인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 그런 비극의 역사를
다시는 국민들이 한국 땅 위에 허용해서는 안된다.
두 분들이 무덤 속에서 이렇게 한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시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외치고 계실지도 모른다.
 

“제발 한국 역사에 다시는 우리와 같이 불행한 대통령들이
탄생하지 말게 해 달라!” 고….
결국 지도자는 국민들이 선택하고 만드는 것이다.

여론 조사에 나타난 한국사회의 변화에 기대를 걸어 본다.

박평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