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사 리퍼트를 해친 김기종도 백범 김구도 민족주의자

30년도 더 오래 전 필자가 우리 정부의 파견으로 일본에 가 체류하던 때였다. 그때 필자는 일본사람들로부터 ‘한국에는 아직도 간통죄라는 것이 있다는데, 사실이냐?’는 의미의 질문을 몇 번인가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 한 말을 들은 그들의 표정에는 한결같이 말로 직접 표현이야 하지 않았지만 간통죄라는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니 미개한 것이 아니냐는 빈정거림 같은 게 묻어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간통죄가 이제야 폐지된 것은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필자로서는 관심조차 별반 없다. 필자뿐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은 거의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믿는 우리에게 있어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이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간통죄를 성립시키는 세상의 법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격하다. 그러니 간통죄에 대한 법이 있든 없든 우리에게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그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성이 없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건장한 젊은 남자가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도 어떻게 성적인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게 아니다. 이에 대해 성서신학자 바클레이는 “간음하고자 하는 고의적인 의도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리 엄격하고 좋은 법이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수없이 많은 문제가 있다. 봐라. 신도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입장에 있는 지도자직의 목사들을! 이 땅의 교회들이, 목사들이 오죽했으면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다큐영화가 <쿼바디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겠는가. 이제 그들이 저지른 비리를 열거하는 것조차 지겨울 지경이 됐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는 평신도들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는가. 아니다. 단언컨대 있다. 목사들만큼은 아닐지라도 평신도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여기에서 평신도보다 목사에게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말한 것은 평신도가 목사들에 비해 행실 면에서 더 낫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야 목사의 문제가 더 크지만, 밖에서는 피장파장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목사들이 짓는 죄를 평신도도 목사 못지않게 짓는다.

이런 말을 접하면, 목사의 비리에 대한 비난에 평신도의 비리까지 끌어들여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의 시선을 보낼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런 게 아니다. 목사가 됐건 평신도가 됐건 크리스천들이 세상으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면하려면, 아니 비난의 화살을 따스한 애정과 경의어린 눈길로 바꾸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일 뿐이다.

간혹 간통죄의 폐지처럼 있던 법이 사라지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 같은 것은 정말이지 어쩌다 이고, 더 심하고 엄격한 법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가, 범죄들이 줄어들고 있는가? 아니지 않은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갈 뿐 아니라 더 극악해지고 있다. 그 잔학상은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만큼 끔직하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쉽지 않은 방법이겠지만 방법이 있긴 하다. 쉽다면 문제될 게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그 방법이 무엇일까. 말할 테니 웃지 말기 바란다. 그건, 그건 말이다. 망가져 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왜 웃는가. 그러기에 웃지 말라 했지 않은가.

망가져 버린 인간성의 회복이 사람다운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은 마치 소금이 짜다고 하는 것 같은 진리이다. 그런데 음식의 소금은 적당량을 넣는 것으로 맛을 내는데, 인간성의 회복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간단하지 않은 게 아니라 지극히 어렵다. 어렵고 또 어렵다. 봐라. 그 인간성이라는 게 갈수록 엉망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지난 목요일(3월 5일) 김기종이라는 사람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얼굴을 흉기로 그어 11cm 길이의 상처를 내는 놀랍고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흉기가 경동맥을 비켜갔기에 망정이지 자칫 생명을 앗아갈 뻔한 일이었다.

김기종 씨, 그는 민족주의자라고 한다. 그런데 민족주의자만으로 끝났다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극단적 민족주의자라고 한다. ‘민족주의자’ 앞에 ‘극단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인데, 그 ‘극단적’이란 생각이나 행동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몹시 치우친 경우에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왜 그처럼 ‘극단적’이 되었을까. 이유는 극명하다. 인간성이 망가지거나 비뚤어진 것이다.

‘민족주의’가 무엇인가. 독립이나 통일을 위하여 민족의 독자성이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상이 아닌가. 그러니 ‘민족주의자’는 국민들의 칭송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김기종 씨는 인간성에 탈이 나 ‘극단적’이 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국익에 심대한 손상을 입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도 민족주의자였다. 그냥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한때 불교의 승려였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뒤로는 기독교 정신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여 위대한 민족주의자가 되었다.

정말 입에 담기조차 망설여지나, 인간성의 파괴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해 보자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니 용서하고 들어 주었으면 한다. 토막살인, 총기에 의한 살인, 방화 살인 등,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하여 숨이 막힐 것 같은 일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사흘이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다.

요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보육원의 아동학대를 보면 마치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어떻게 그 연약한 새순 같은 아이의 살을 바늘로 찌르고, 그 여린 몸을 집어던질 수 있다는 말인지…… 할 말을 잃게 한다.

2012년 12월에 인도에서는 한 여대생이 남자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다가 그 차 안에서 운전기사를 포함한 여섯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들은 그러고도 모자라 쇠막대기로 장기를 훼손하여 알몸으로 길가에 버렸고, 그녀는 결국 한 시간여 만에 죽고 말았다. 남자친구도 폭행을 당해 어쩌지도 못한 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범인 중 한 사람인 운전기사의 말을 들어 보면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몸서리가 다 쳐진다. “정숙한 여자라면 밤 아홉시까지 싸돌아다니지 않는다. 성폭행에서는 남자보다 여자의 책임이 훨씬 크다.” “성폭력을 당할 때, 그녀는 저항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저 조용히 성폭력을 받아들였어야 한다. 그랬다면 그들이 그녀를 범한 뒤 버스에서 내려 줬을 것이고, 남자도 그냥 때리기만 했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그들 사회의 한 현상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인간성이 전혀 기능할 수 없도록 망가진 결과이다.

스무 살이 된 나의 첫 피임약

이번 헌재에서 내린 간통죄의 위헌 결정은 세계적인 추세와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추세에 호응한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여성들이 지금처럼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니 그렇게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군사정권의 한때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의 미니스커트가 짧아 보이면 무릎 위 몇 센티미터인가를 자로 재서 허용치가 넘으면 과태료를 물렸고, 머리가 긴 남자들은 잡아다 도로변에 세워 놓고 가위로 자르기도 했다. 건전한 미풍양속을 해치고 퇴폐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초기에는 예배당을 기역자로 짓거나, 강대상 앞에서부터 뒤쪽으로 가운데에 커튼을 쳐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아 예배를 드렸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역시 유교사상의 영향 때문이었다. 필자의 청년시절까지도 그 영향이 완전히는 가시지 않아, 예배당이 남자 석과 여자 석으로 나뉘어 있어 가족일지라도 같이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교회가 많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옷차림도, 교회에서의 예배 모습도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간다. 교회당의 건축 양식도 바뀌어 가고, 교회에서의 활동 양상도 바뀌고 있다. 이 모두가 극히 자연스럽게 되어 가고 있고, 따라서 누구도 나무라지 않을 뿐 아니라 나무랄 수도 없다.

그러나 바뀌거나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우리 크리스천들의 태도가 그것이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말씀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예나 오늘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받쳐 주는 지주이다. 진리이다.

이와 같은 진리를 소유한 존재가 우리 크리스천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우리를 가리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이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신분이요 지위인가. 그게 누구도 아닌 나인데, 어떤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박차고, 환희가 온몸을 감싸오지 않는가?

우리의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셔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늘나라의 백성답게,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왕이 돼 가지고 거지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왕은 왕으로서의 긍지가 있어야 한다. 시정잡배처럼 사기치고, 횡령하고, 예쁜 여자들을 곁눈질로 흘깃거려서는 안 되고, 욕심이 배를 채우다 못해 넘쳐 입으로 질질 흘리고 다니는 추태를 부려서도 안 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슬렁슬렁하다가 보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종처럼 열심히 하는 척하는 것도 안 되고, 나의 득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그게 비록 작은 피라미일지라도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죽은 물고기는 아무리 커도 여린 물살에조차 떠내려간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살았는가. 죽었는가. 시류(時流)라는 탁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에 휩싸여 흘러가고 있는가.

헌재의 간통죄 위헌 판결 같은 거야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 아니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TV에 가끔 ‘나의 첫 피임약’이라는 광고가 나온다. 그 카피로 ‘스무살은 걱정이 많다.’ ‘이제, 사랑의 걱정이 줄어든다’가 쓰이고 있는데, ‘스무 살’의 우리 딸들로 하여금 성행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도록 기능을 하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상에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필자도 보통 사람이다 보니 자신의 손자손녀들이 공부를 잘하여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것을 많이 바란다. 그런데 필자는 자신의 자식들을 보고 제 아들딸들에게 공부에 우선하여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시키라고 강조한다. 필자는 제대로 된 기독교 신앙만 갖고 있으면 그게 누가 됐건 어떠한 풍파도 이겨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들딸에게 공부보다 신앙교육을 시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자신의 보호자로 만든다. 그런데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를 부인한다면 크리스천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바른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른 신앙이란 무엇일까? 방언하고, 입신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고, 온갖 능력을 받는 것? 아니다. 그것이 은사일지는 몰라도 그런 것을 가리켜 바른 신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바른 신앙, 그것은 자신을 성경이 말하는 인격체로 길러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그러니까 그런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인격으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그것이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요 산제사이다.

스무 살의 내 딸이, 아니면 내 손녀가 이 같은 신앙으로 자라 가고 있다면 그녀에게 있어 간통죄의 유무가 무슨 상관이 있고, 피임약이 왜 필요하겠는가.

▲ 임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