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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의 비유풀이 2
이인규  |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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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2월 14일 (토) 19:43:40
최종편집 : 2015년 02월 25일 (수) 22:50:03 [조회수 : 4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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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3. 이단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경구절

1) 성경에는 짝이 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사34:16)

이제는 이사야서 34장 짝풀이의 문제점은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어서, 몇몇 이단들은 이러한 주장을 가르치는 것을 취소하였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본문의 16절만을 얼핏 보면 여호와의 책이 짝이 있다는 내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뒤의 전체적인 구절을 함께 읽어보면 그 뜻이 아님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소위 문맥을 무시하는 해석의 대표적인 예로서, 조금만 주의하여 성경을 읽는다면 곧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이사야 34:16의 본문을 보기 전에 앞뒤의 전체 문맥을 살펴 보자...

“부엉이가 거기에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these)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these)을 모으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것들(them)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them)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 (사 34:15-17)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자. 본문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라고 한 말에서 ‘이것들’(these)이라는 지시대명사는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14-15절에 나오는 짐승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성경이 짝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짐승들이 다 짝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들의 주장대로 본문의 지시대명사 ‘이것들’이 여호와의 책이라고 한다면, 16절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의 ‘이것들’(these)도 여호와의 책이 되어야만 할 것이며, 또한 17절의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 수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17절)는 말씀에서 ‘그것들이’라는 대명사도 모두 여호와의 책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에게 땅을 나눠주시고 거하게 하셨다는 말이 된다.

히브리어 원문의 용법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본문의 ‘이것들이’ 는 한 지시대명사가 15절의 짐승들을 가리키는 것이냐,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냐? 를 따지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이만희, 정명석, 하나님의교회, 김풍일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것들’이 16절에 ‘여호와의 책’인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위 짝풀이를 하기 때문이다.

본문 16절의 "여호와의 책"은 히브리어의 “쎄페르”로서 남성 단수 명사로 되어 있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 16절의 "이것들“(헤나)가 여호와의 책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라면 "이것들" 역시 남성 복수명사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16절의 "이것들이"는 히브리어의 [헤나]로서 여성 복수명사로 되어 있다. 반면에 본문에서 부엉이(키포즈)는 여성단수명사이고, 솔개(다야)는 여성복수명사이다. 이렇게 원어의 용법으로 보아도 본문 16절의 짝은 짐승들의 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본문의 다른 번역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개역 성경의 본문을 잘 읽어보아도 말씀의 짝이 아님을 알 수 있지만 다른 번역문을 비교해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공동번역: 야훼의 기록을 찾아내어 읽어보아라. 이런 모든 짐승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리라. 그것들은 직접 야훼의 입에서 떨어진 분부를 받아 그의 입김으로 몰려 온 것들이다.

표준새번역: 주의 책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이 짐승들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빠진 것 없겠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짐승이 없을 것이다. 주께서 친히 입을 열어 그렇게 되라고 명하셨고 주의 영이 친히 그 짐승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어번역: 여기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 에돔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독자들은 그 책을 자세히 읽어보아라. 여기에 기록된 짐승 가운데에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 짝이 빠져 있는 것도 하나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주님의 신이 직접 그 짐승들을 불러다 놓으셨다.

현대인의 성경: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아라. 이 동물들 중에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되도록 명령하셨고 성령께서 그것들을 함께 모으셨기 때문이다.

확인한 바와 같이 어느 성경의 번역문을 보아도 여호와의 책을 짝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모든 번역자들은 본문의 짝이 짐승들의 짝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왜 성경은 짐승의 짝에 대해서 언급하였을까? 왜 하나님은 본문에 짐승들이 다 짝이 있다고 강조하셨을까?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짐승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 기록된 짐승들이 다 짝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이사야 본문의 “여호와의 책을 찾아 보라”는 구절에서 여호와의 책은 모세오경을 말하며, 특히 레위기 11장 14-17을 말하는 것이다. 레위기에서 부엉이와 솔개등은 모두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에돔의 멸망을 예언한 내용이다(사34:5). 에돔 땅이 재앙으로 황폐하게 되고 그곳에 사람이 살지 못하고 부정한 짐승들이 몰려와 짝을 지며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2) 예수님은 언제나 비유로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13:34-35)

비유풀이를 하는 이단들은 거의 모두가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인용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부분적인 구절만을 분리시켜 읽어 본다면 마치 예수님은 항상 비유로만 말씀하신 것 같다. 이러한 점이 이단들이 노리는 해석방법이 된다.

성경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수님의 말씀이 다 비유라는 뜻이 아니며, 본문이 말하는 ‘이 모든 것’(All these thing)은 마태복음 13장의 34절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4가지 비유를 뜻한다. 즉 ‘이 모든 것’(All these things)는 성경 전체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또 마태복음 13장 전체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마태복음 13장 34절 본문 앞에서 언급된 4가지의 비유를 말하며, "무리들에게"(to the crowd)라는 구절은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던 유대인들을 뜻한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일곱가지 비유가 나오며, 마태복음 13장의 뒷부분에는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마 13:53)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53절이 말하는 ‘이 모든 비유’(these parable)는 성경전체나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마13장의 7가지 모든 비유 전체를 뜻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마태복음 13장 34절의 앞 구절에서 예수님은 그날 모인 유대인 군중들에게 4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4가지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서 다음 구절로 시작된다.

마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 13: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즉 예수님은 마13장에서 기록된 것과 같이, 그날 모인 유대인들의 군중들에게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마태복음 13장의 내용 전체도 모두 비유라고 말할 수 없다. 마 13장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제자들에게 직접 해석하여 풀어주신 내용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직접 비유를 풀어주신 것은 다음 구절로부터 시작된다.

마 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마 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이 풀어주시는 내용도 비유란 말인가? 예수님은 그날 모인 유대인 군중들에게는 4가지의 천국에 대한 것을 비유로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그 비유를 자세하게 풀어 주셨으며, 그 풀어주신 것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즉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가 아닌 것이며, 당연히 모든 예수님의 말씀도 비유가 아니다.

많은 이단들이 성경에 비밀이 비유로 감추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성경을 비유라고 주장하며, 성경이 비밀이 감추어진 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을 기록된 내용과 달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교주나 목사만이 유일하게 성경의 비밀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으며, 혹은 그들만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목적이다. 아울러 기독교에서 그동안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3) 알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3-16)

본문을 이용하여 몇몇 이단들은 성경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비유로 기록되었다고 하면서, 그래서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은 구약 이사야서를 인용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9-10)

본문만 부분적으로 읽어보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기록한 것처럼 이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마태 13:15절 바로 뒤 16절에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18절부터 예수님은 비유를 제자들에게 직접 풀어서 해석하여 주신다. 즉 성경은 비유로서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기 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비유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비유를 직접 풀어주신 것도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본문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성경의 독자들에게 깨닫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이사야 본문은 타락하고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비판하는 내용이며,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구원의 멧세지를 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하여도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며,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하셨던 분이시고, 암탉이 새끼를 날개 밑으로 모으려고 하는 것으로 비유한 적(마 23:37, 눅 13:34)도 있듯이,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에게 선지자와 사사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사 6:9절 본문 앞 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받는 것을 정말로 원하지 않았다면,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을 숯불로 정결하게 하면서 그를 파송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 즉 완악한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은 오랫동안 반복하여 그 선지자와 사사들에게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패역함을 주지시켜 왔다. 이사야서 본문이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에게도 인용되는데, 그 본문의 내용은 성경에 있는 비유가 비밀로 감추려고 하였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비판하면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개와 돌아옴을 촉구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천지는 ‘저희’는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고, ‘너희’는 신천지 자신들에게 해당된다고 주장을 하며, 비유로 감추인 것이 마치 성경인 것처럼 설명을 한다. 그러나 본문은 이사야서를 인용한 것으로서 ‘저희’는 유대인들을 말하며, ‘너희’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예수의 제자들을 말하며, 즉 기독교인들을 말한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너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 즉 주님께 돌아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행 28:25-28)

즉 본문은 구원의 대상이 유대인에서부터 예수의 제자들, 즉 그리스도인에게로 전환되어짐을 뜻하며, 복음은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 즉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으로서 성경은 비유풀이를 직접 풀어주신 것도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기록된 책(딤후 3:15)이라고 말한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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