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을 만났습니다. 작가는 <수도원기행2>에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를 공개했습니다. 작가는 ‘구원은 강도와도 같이, 납치범과도 같이 왔다’고 말합니다. 이런 그의 영적 체험이 일어난 곳이 수도원 공간이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수도원 공간은 작가의 일상적 삶에 균열을 내는 장소이며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기꺼이 점령당하는 거룩한 제단이 되었습니다. 그의 기행은 수도원을 아주 특별한 곳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오랜 기독교 영성의 깊은 전통이 숨 쉬는 곳이라는 의미부여 말입니다. 그리고 꿈꾸게 합니다. ‘나도 수도원순례를 떠나고 싶다!’

또 하나. 우연히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손꼽히는 알렉산더 6세의 생애를 만났습니다.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는 로드리고 보르지아라는 이름을 가진 스페인 사람으로 1492년에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 체사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실제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탐욕입니다. 개인적인 탐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제국주의 종교, 가톨릭의 탐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인간의 탐욕이 갖고 있는 끔찍한 맨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는 25살에 교황청의 돈을 관리하는 부상서관이란 고위직에 오릅니다. 본격적인 치부가 시작되었지요. 그의 치부는 교황청의 재산을 착복하는 것에서부터 흉악한 살인범의 죄를 돈을 받고 사면해 주는 것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습니다.

그의 탐욕은 여성 편력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여자들을 정부로 거느렸고 이들로부터 여러 명의 아들과 딸을 두었습니다. 심지어 알렉산더 6세는 교황이 된 이후에도 교황궁에 정부를 데리고 들어와 함께 살기까지 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탐욕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 비밀회의’에 참석한 추기경들을 엄청난 돈으로 매수하여 교황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6세는 교황에 선출되자마자 아들 하나는 교황청 근위대장으로, 또 다른 아들은 추기경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이들은 갓 20살을 넘긴 풋내기들이었습니다. 또 미모를 자랑하던 자신의 딸을 세 번씩이나 정략 결혼시켰습니다. 교황은 이탈리아를 놓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딸을 이용한 것입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나폴리,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의 여러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1494년, 나폴리의 왕위를 요구하면서 프랑스 샤를8세가 침공해왔습니다. 기나긴 이탈리아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입니다. 1차 이탈리아 전쟁은 로마 교황령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면서 교황의 영향력을 가늠할 잣대였습니다. 그러니 교황 알렉산더6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겠습니까. 세속 권력자들의 권모와 술수는 교황 앞에서는 새발의 피였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르네상스를 후원한 교황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가톨릭의 악한 교황 목록에서 항상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개신교 입장에서 그의 공헌을 꼽는다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단단히 일조했다는 점입니다. 문득 알렉산더 6세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더듬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문명의 대전환을 불러일으킨 종교개혁의 수많은 원인 가운데 단 하나의 현장만이라도 꼼꼼히 살피고 경험할 그런 진짜 여행에 대한 흥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이 코앞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