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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담아내는 성도가 되자(눅5:36-39)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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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1월 17일 (토) 21:59:31 [조회수 : 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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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36-39절

복음을 담아내는 성도가 되자

 

가. 성도는 복음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38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 여기서 ‘새 포도주’는 주님의 복음, 즉 구원의 진리와 가르침을 가리킨다. 그리고 ‘새 부대’는 복음을 담아내기에 합당한 성도를 가리킨다. 성도는 복음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 주님과 그의 복음의 진리를 담아내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다. 이 시대에 예수님의 주현은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고후3:3). 이 말씀들은 성도의 사명이 복음을 담아내는 것임을 보여준다.

* 성도가 복음의 진리를 담아내는 길을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있다. ‘부대’(아스코스)는 ‘실천하다’(아스케오)와 같은 말에서 유래하였다. 즉 포도주를 부대에 넣으라는 것은 단순히 복음을 담는 것이 아니라 말씀실천을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담아내라는 말씀이다.

 

나. 누더기 신앙으로는 아니 된다.

36절,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 그러나 누더기 신앙으로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누더기 신앙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주님과 복음에 어울리지 않는다. 즉 부분적인 성화는 아니 된다. 주님은 온전함을 원하신다. 주님을 왕으로 영접한 성도로서 호불호를 따지지 말고 모든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 주님의 뜻을 살펴보자. “너희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겨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복음의 진리를 담아내기 원하신다.

* 누더기 신앙은 아주 위험하다. 37절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은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낡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고 하였다. 실제로 누더기 신앙으로 인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복음까지 부끄럽게 하는 성도가 많다.

 

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39절,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 그러면 복음을 담아내는 새 부대가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성도는 이를 위하여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성도는 새 사람, 즉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 그런데 문제는 미련이다. “묵은 것이 좋다”는 말은 미련의 문제를 보여준다. 즉 옛 것에 미련을 두고 새 것을 거부하는 것이 문제다. 성도가 세례를 받는 것은 세상에 속한 옛 것에 대하여 죽고 영에 속한 새로운 것으로 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를 건넌 것이 세례의 모델이다. 이스라엘이 애급(옛것)을 버리고 약속의 땅(새것)을 취함으로 약속의 백성이 되듯이, 성도는 세속의 육적인 삶의 미련을 버리고 온전히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 복음을 담아내는 성도가 주님과 어울린다.

36절,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 이 말씀은 옛 사람은 주님과 그의 복음에 어울리지 아니함을 보여준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새 사람 즉 말씀실천을 통하여 복음을 담아내는 성도가 주님과 어울린다는 뜻이 된다.

* 여기서 ‘어울리다’(쉼포네오)는 ‘같은 소리를 내다’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주님과 어울리려면 모양과 더불어 소리까지 같아져야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야곱이 에서의 모습은 흉내를 냈으나 음성까지는 같게 할 수 없었음을 참조하라. 형식적인 신앙으로는 주님과 어울릴 수 없다.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해야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으며, 주님과 온전히 어울릴 수 있다.

* 그런데 주님과 어울리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과 어울리는(형용사) 사람이 주님과 온전히 어울릴(동사)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어울리다’는 동사다. 주님과 어울릴 때에 ‘주는 내 안에, 나는 주 안에’ 있게 되고, 주님과 온전한 성령의 교통하심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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