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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헌금 & 서신1,2 & 김수국 장로님 조사1995년 1월 발행된, 박흥규목사의 푸른언덕 제62호 <생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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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6월 04일 (일) 00:00:00 [조회수 : 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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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헌금


                                          김정옥(선장교회)


<이 글은 지난 10월3일 암으로 4년동안 고생하시다가 주님의 품으로 가신 푸른언덕 가족 故 김점현 집사님을 회고하는 막내따님 김정옥 권사의 글입니다>


이별헌금!

이별헌금이란 소리를 들어보신 분이 계실까? 아마 목사님들도 이별헌금이란 봉투는 보시지 못하셨으리라.

‘돌아가신다. 얼마 못 사신다.’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얼마 있으면 나는 죽겠지….’

인간이라 죽음앞에서의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신앙인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늘나라의 잔치 속에서 있을 먼저 가신 분들의 환영과 기뻐하실 주님의 품으로 가는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자녀, 손주 구석구석 닿았던 모든 물건들을 생각하시면 기뻐하기 보다는 서글퍼지셨을 것이다.

암 선고를 받으시고 4년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여러 곳에 가셔서 간증도 하셨고, 집에 오시는 분마다 심지어 전기세 받으러 오시는 분까지 아버지만 뵈었다하면 한 시간 이상 전도를 받고 가야만 했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 전기세 받으러 오시는 분이 할아버님 하고 들어오시다 돌아가신 것을 알고 말없이 한동안 아버님이 누워계시던 곳을 바라만 보고 계셨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시더니…” 말끝을 흐리시며 “저도 교회에 다닐 겁니다”. 아쉬워 하면서 돌아가셨다.

박흥규 목사님이 계신 선장교회와 강호실 목사님 교회 두 곳에 가서 간증하고 싶다던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은 끝내 이루지 못하고 가셨다. 돌아가시기 10일전 목사님을 모셔와야 한다고 웬지 급하게 서두르셨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나는 서둘러 목사님께 전화를 해놓고 안절부절 했다. 겁이 났다. 돌아가시려나… 눈물이 앞을 가려 찬송을 부를 수가 없었다. 평소 괴로워 하실 때는 어서 편안히 가셨으면 했는데 막상 일이 닥치니 가슴이 두근두근 진정할 수가 없다. 핏기가 전혀 없는 아버지를 보니 불쌍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평생을 성질 하나로 사시던 아버지 그 성질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하고 외롭게 사신 아버지, 평소 아들 아들 하시며 명절만 되면 다른 이웃들 부자 간의 모습을 보고 우시던 아버지, 그러나 매사에 자신이 있고 불의에는 참지 못하고 약자편에서 서서 사시던 아버지. 평생을 정직하게 사신 아버지가 쓸쓸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배를 다 드린 후 힘이 없고 삭아지는 듯한 목소리로 목사님께 말씀드린다. “내가 아주 말을 못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하며 4년 전에 일을 우리 식구도, 아니 함께 방을 쓰시던 어머니도 처음 듣는 소리를 하신다.

당신이 아들이 없어서 막내 사위한테 와서 사셨는데, 처음 맞는 명절날 사위 둘째형 되시는 분이 금방 은행에서 찾은 빳빳한 만원짜리 10장을 넣어서 주셨는데 너무 감격하여 그 자리에서 그 돈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동생의 장인을, 그것도 인간적으로 보면 동생이 더 힘들고 어려운데, 이런 귀한 돈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저는 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세상 이별하는 날 하나님께 이별헌금으로 바치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한 후 4년을 갖고 다니셨다는 말씀이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그리고는 봉투를 목사님 손에 쥐어 드리는 것이다. 그 봉투에는 “세상 이별하는 날 이별헌금 -죄인 김점현”이라고 쓰여 있었다. 늦게야 주님을 영접하셨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더 열심이셨고 예배시작 20분전에는 정확하게 교회에 당도하셨던 아버지의 모습, 새벽기도 한 번 빠짐없이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되셨던 아버지, 많은 열매 맺고 가셨으리라 믿는다.

장암, 폐암, 간암 이제는 위암까지 전이가 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면서도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라” 찬송을 부르며 힘없는 팔로 박자를 맞추시며 부르시던 아버지를 뵐 때 마다 안타까웠다. 주님 품에 안기울 것을 기뻐하시면서 어서 가야지 하다가도 사랑하는 모든 것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소리없이 주루룩 돌아누워 눈물 닦는 모습에 마음이 메이도록 아팠다. 아마 사랑하는 식구와 헤어지는 것만이 서글픈 것이 아니고 당신이 바라시는대로 전도를 더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찾아 온 친척, 성도들에게 “나 먼저 가니 전도 많이 하고 오세요.” 하셨단다. 하나님께서 소망을 갖게 하시느라 꿈에 천국의 아버지 집을 보여주셨단다.

고통 때문에 10분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데 유복숙 전도사님 기도 받으신 후에 몇 시간을 주무셨는데 그때 천국에서 고통없이 한참 주무셨단다. “여러 문이 있는데 꽃장식을 아름답게 꾸민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가운데 넓고 반들반들한 큰 마루가 있고 작으나마 색색의 꽃으로 장식한 이불을 덮고 여기서 누워서 쉬어라 하는 소리를 듣고 아무 고통없이 실컷 잤노라”고 말씀하신다. 죽음 앞에 두려움을 물리치시도록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타하신 목사님께서 오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찬송을 불렀는지,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드리고 축복기도 하시고 찬송 부르는 중에 주무시듯 가셨다.

아직도 돌아가셨다고 인정할 수 없는 나는 어디 전도하러 가셔서 오시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보고싶고 또 보고싶어질 수가 없다. 좋은 곳에 가셨는데 왜 자꾸만 눈물이 날까 한번만이라도 다시 뵐수 있다면….

우리 교회에서 간증하실 때 비디오로 찍어 둔 것을 다시 제작하여 언니는 전도용으로 쓴다고 한다. 그 비디오를 보니 더욱 더 안돌아가신것 같고 전도하러 다니시는 것같이 착각이 든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으리.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천국에서 세상에서 이렇게 그리워했노라고 만나뵐 것을 소망 삼을 수밖에 없는 것, 보고싶어요 아버지.


서신 1


박흥규 목사님.

온양, 선장 다녀온 지 벌써 보름이 넘었군요. 궁금하던 목사님 댁과 교회, 홀아비 사는 생활, 그리고 선장이라는 마을을 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뭉실뭉실하게 세운듯 엎어놓은듯한 구름의 산지와 평지가 강원도 사람이면 탐낼만한 곡식 갈아 심을 땅들이 무척이나 생소했습니다. 한편 답답하기도 하고요. 계곡 넘어 맑은 물을 기대할 만한 이쪽 땅에 익숙해서 일겁니다. 큰듯 하지만 있을 곳에 놓인듯한 교회 정경과 잘 안어울리는 마당 자갈돌이지만 언제 와본 듯한 교회였습니다. 얼마나 세게 묶어 놓았는지(아마 바람때문이겠죠?) 본당 입구 문 때문에 결국 들어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한번 조용 조용히 뒷꿈치를 들고 본당에 들어가게 될 거라고 기대하면서 왔습니다. 너무 묶어 칼로 자르려고 하다가, 그런 행위로는 불경스러울 것 같아, 그만두고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혼자 사시기에는 깨끗한 집이고 호젓하게 넓은데, 지금쯤 ‘이놈의 파리들’ 하면서 현관에서 파리채를 들고 서성거릴 것 같은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큰 목사님과 작은 파리들’ 때문에 교회 정경이 더 조용합니다.

아내와 하룻밤 어찌 잤는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온양에서의 온천욕도 욕탕의 안개같이 어스름합니다. 1박2일의 온양, 선장여행이 꿈만 같습니다. 신나게 일주일쯤 막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 헤메고 싶지만 마음뿐인 건강이 속상합니다. 참 오랜만에 여행이었지요. 또 그곳이 목사님 댁이었니….

가끔 (그동안 2번 가보았지만) 대대교회, 원주 아이들보러 2번, 진료차 서울 1번 그리고 큰 마음먹고 이 지역 생활권인 강릉에 몇번 간 것 또 그리고 그것도 쉽지 않은 걸음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아, 내가 정말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세삽 듭니다.

그 연세 되셔서 아직 새로 시작하려는 듯한 목사님의 상황, 그리고 신 목사님을 전화로 불러내어 어울리려는 30대의 천진, 아들과 식사당번을 나눈 하숙생 같은 목사님은 정말 목사님 다우십니다.

저희 부부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룻밤이었지만 따뜻한 배려 고맙습니다.

고기넣고 끓였다는 생일날 아침 손수 만드신 미역국,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생일날. 그냥 찾아 뵌 것으로 잔치가 되었겠지 하며 자족하며 떠나왔습니다. 언제 생신을 저희 부부가 한번 차려드리겠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그럼 이만 마칩니다.


           1994. 11. 6.

           최경철․박은숙 올림



서신 2


박흥규 목사님.

이제 菊花의 향기마저 사라지는 때에 정말 겨울을 단단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왠지 생활 모습을 보면 빈자리가 너무도 많습니다. 어서 주님의 돌보심으로 안옥한 생활의 중심을 되찾으시길 기원합니다. 덕분에 과분한 후대를 받고 일신원까지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박목사님의 하실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아 가시고서 호세아에게 사랑의 예언을 선포하게 하신 그 역설적인 처사가 무엇인가를 조금은 알듯 합니다. 제발 굳건하게 믿음으로 이기시고 좋은 가정도 새로이 회복하시기 비오며 후의를 거듭 감사합니다. 여러분께도 문안 올립니다.


                 1994. 11. 28.

                 주옥로 올림



김수국 장로님 조사 

 

난 12월 2일 선장교회 김수국 장로님(푸른언덕 58호, 우리동네 이야기에 ‘작은실천’이라는 제목으로 소개)이 소천하셨습니다. 김선기 속장님께서 조사를 하셨는데 그 내용을 여기에 옮깁니다.


아! 장로님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아무리 인생길이 허무하고 한번가는 길이라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우리의 곁을 떠나시다니요. 너무나도 뜻밖이고 놀라운 일이라 어이가 없습니다.

장로님!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같은 인생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힘겨운 농촌생활 속에 허리띠 졸라매고 9남매 키우시며 여우살이 시키시느라 기지개 크게 한번 켜지도 못하시고 동물농장 주인이란 별명까지 얻으셨죠. 소, 돼지, 개, 염소, 토끼, 오리, 오골계 등등 을 키우시느라 정말 동물농장 주인이셨습니다.

그 누두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이웃은 물론 말 못하는 동물에게까지도 흠뻑 나누어 주셨지요.

어린 청년시절부터 남다른 뜻이 있어 주님을 사랑하며 40여년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교회의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좋은 일 궂은 일 홀로 지고 오셨습니다. 그동안 장로님은 선교부장, 재정부장, 남선교회 회장 등 여러 부서에서 봉사하셨습니다. 인정이 많으신 장로님은 노약자나 심신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쑥뜸이나 부황으로 아픈 곳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웃 중풍병자 아주머니에겐 안방에 수세식 화장실을 손수 만들어 주셔서 저희들 마음을 감동시키셨지요. 또 제가 독감으로 며칠동안 앓고 있을 때 커다란 수탉을 잡아서 밤 중에 가지고 오셨잖습니까? 여자에겐 수탉이 좋다고 하시며 푹 삶아서 입맛 돗우라고 하시던 사랑이 많으셨던 장로님.

지난 여름엔 오토바이 사고로 우리들을 놀라게 하시고 곧 회복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저희들을 다시 기쁘게 하셨습니다. 그리곤 많은 것 깨닫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겠다며 웃으셔서 역시 우리 장로님이야 라고 좋아들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 웬말입니까? 홀연히 우리들의 곁을 떠나시다니…. 사랑하는 강권사님은 어떻게 하라구요? 사랑하는 9남매는 또 어찌 두고 가십니까? 그렇게도 따님들을 이뻐하시고 아버지한테 애들이 잘한다고 자랑하시며 대견해 하셨는데….

장로님! 진한 커피맛은 어떻게 잊으시렵니까? 그렇게도 커피를 좋아 하셨는데 지난 주일 오후 천안 병실에서 야위셨지만 반짝이는 눈빛으로 수술결과가 좋다고 말씀하셨지요. 제가 장로님 손을 두 손을 꼭 잡고 “장로님, 왜 누워계셔요, 빨리 일어나셔야 돼요” 하고 투정 아닌 투정으로 말씀드렸더니 “음, 알았어 빨리 일어나야지” 하시면서 바쁜데 왜 왔느냐고 하셨죠? 이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뜨거운 커피 한잔 뽑아 드리는건데….

아! 장로님 아무리 둘러봐도 그 어느 곳에도 안계시는군요…. 불편한 것, 어려운 점을 이야기 하면 다정하신 목소리로 내가 할께, 다 내가 해줄께 하시고 늘 자신을 희생하시던 우리 장로님. 아마 강권사님보다 제가 더 불편할 것입니다.

저희가 갑자기 이사하게 되어 장로님께 말씀드렸더니 “걱정말고 돈이나 많이 모아. 내가 자주 드나들면서 돌봐줄테니” 하시면서 이삿짐까지 모두 날라 주셨지요? 남편과 제가 직장생활로 집둘레의 잡초가 무성하면 낫으로 베시고 제초제를 뿌려 말끔히 해 놓으셔서 저녁에 퇴근하는 저를 그렇게 기쁜게 해 주시던 우리 장로님. 어느 해는 꽃 잔디까지 말끔히 제거하셔서 남편과 저를 웃음짓게 하셨죠? 그런데 장로님이 죽였던 꽃잔디는 더 많은 새싹이 나와 분홍빛으로 온통 뒤덮여 그해 봄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장로님! 지난 날만을 이야기 하기엔 너무나 아픈 현실입니다. 목사님을 비롯하여 온 교인들은 슬픔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소천하시다니…, 소천하신 날 첫눈이 왔지요. 전엔 첫눈을 보면 소녀처럼 설레이며 좋아했지만 이번 첫눈은 슬프기만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창밖엔 하얀 눈이 아주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착하신 장로님을 닮은 하얀 눈이 더럽게 오염된 세상을 깨끗한 순백으로 뒤덮으려나 봅니다. 근심, 걱정 없는 곳, 기쁨과 평화만 있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잔잔한 미소로 웃고 계실 장로님을 생각하면 위안이 됩니다.

장로님! 부디 평안히 가십시오.


             1994. 12. 5.

             집사 김선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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