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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라(창5:21-24)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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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1월 03일 (토) 21:02:16 [조회수 : 8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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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장 21-24절

하나님과 동행하라

 

가. 하나님은 동행을 기뻐하신다.

22절,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 에녹은 육십오 세에 ‘창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므두셀라를 낳았다. 그런데 고대사회에는 창 의 사람이 죽으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는 말이 있었다. 골리앗의 죽음으로 블레셋이 망한 경우 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므두셀라의 이름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예언적인 메 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노아시대 홍수심판이 있었다.

*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낳자마자)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가 아들 므두셀라 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동행하였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은 에녹의 동행을 기뻐하셨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그는 옮 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 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나. 동행은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것이다.

22절,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 에녹은 ‘봉헌하다’(하나크)에서 유래하였으며, 그의 이름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에녹의 이름은 그가 주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음을 암시한다. 동행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것이다.

*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동행이 아니다. 나를 위해 주님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올바른 동행이 아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만 찾는 것은 옳지 않다.

* 동행(함께 걷다)은 ‘걷다’(할라크)의 재귀형 동사로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므로 결국 하나님 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결과가 되는 것을 말한다(쌍방통행). 그러므로 우리가 동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동행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일방통행식 요구는 기복신앙).

*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는 하나님을 모시고 온전히 순종하였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창7:5).

 

다. 삶의 자리에서도 동행하여야 한다.

22절,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 여기서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는 에녹이 그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는 가정을 이끌었으며 그들을 위하여 생업에 충실하면서 동행하였다.

*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기 위하여 수도원 같은 곳에서 수련하는 것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더욱 아름답다(북부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다는 구두수선공 성자의 이야기를 참조하라).

*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를 기뻐하신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정결하고 더러움 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쳐서 세속에 물들지 아니 하는 것이라(약1:27). 성도는 교회의 예배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듯이, 세상에서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한다.

 

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24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 하였더라.”

*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 가셨다. 그는 죽음을 뛰어 넘는 승천의 은총을 입었다. 그는 엘리야와 더불어 큰 영광을 얻었다.

* 동행(함께 걷다)은 재귀형동사로서 에녹이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살았더니 결국은 하나님이 에녹과 동행하시며 돌보아주신 결과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구약에서 주로 사용된 ‘예배하 다’(샤하’의 재귀형동사)와 같은 용법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예배의 결과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신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복을 받으려고 간구하는 것은 기복신앙으로서 잘못된 신앙이다.

* 에녹의 신앙생활 ‘동행하다’에는 ‘행한 대로 받는다’는 암시가 들어있다. 깡패를 모시고 따라 다 니면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깡패로 살다가 망하는 것이다. 좋으 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진정 복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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