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禧年)

                                          조화자(푸른언덕교회)

일곱을 일곱번 지낸 안식년

사십구년이 지난 일년뒤 오십년

일곱째달 제 칠일로부터 일년동안은

죄벗고 땅에사는 모든 것에

해방을 알리는 희년의 나팔소리 들린다.

희년은 해방을 의미하며

구속적 의미의 종살이에서부터

국가적 의미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서로 압제하지 말며 반목과 갈등하지 말라며

거룩한 인간회복의 참 자유를 가르쳐 준다.

작은 내 마음의 흰년은

옛것에 대한 강한 사랑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잃어버리고, 때로는 스스로 가진 것을 버림으로써

깨닫게 되는 해탈의 의미로도 찾아오고

소유하지 못했던 열등에서, 소유하지 않는 만족의 의미로도 찾아든다.

한국농업

어디로 가야하나!

     신동신(아산, 쌍용교회)

한국농업이 지난 반세기 동안 얼마나 빠른 속도로 쇠퇴하였는가는 다음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전체 취업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농림어업 부문의 노동력 구성비가 1963년 63%에서 1992년에는 15.8% 수준으로 감소한 반면, 제조업 부문의 취업인구는 같은 기간중 9%에서 26.9%로 증가하고 있다. 농림어업 부문과 광공업 부문의 취업인구가 같아진 시점이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1985년께였다. 농림어업부문의 취업인구가 광공업부문의 취업인구에 비하여 7배 수준이던 60년대 초에 비하면 불과 23년만에 두부문 간의 인구수가 같아진 것이다.

같은 정도의 변화에 영국이 1750년대에서 1850년대까지 100여년이 걸렸고 일본이 1890년에서 1960년까지 70여년이 걸렸던데 비하면 한국은 매우 빠른,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변화속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농업인구 비중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는 것은 좋게 해석하면 한국의 공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는 것이 되고, 나쁘게 보면 한국 농업이 급속도로 쇠퇴하였다는 것이 된다. 한국농업이 쇠퇴한 것은 그 생산방식에서 나타난다. 공업부문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인데 비하여 농업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소상품 생산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 수입은 결코 어제와 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전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미국 잉여농산물이 차관도입으로 바뀌고, 그러다가 값비싼 농산물 수입으로 치달음으로써 우리의 농업생산 구조를 마침내 송두리째 뒤흔들어 식량의 자급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농업의 희생으로 이뤄진 경제성장이 그 대가를 농업에 되돌려 주기는 커녕 다시 한번 더 빈사상태의 농업을 새로운 축적의 밑천으로 삼는 격이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60-70년대의 고도성장과 자본축적은 저임금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저곡가에 기인하였었다. 이른바 미국 잉여농산물의 지원을 받는 정책적 저곡가는 임금가치의 하락과 농가경제 압박을 통한 상대적 과잉인구 창출을 통해 독점자본 형성에 주요한 물적 토대를 이루어 왔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 이르러 그들의 위기에 봉착한 종속적 독점자본은 스스로의 위기를 사회화하여 직접 생산자 농민에게 전가하기 위해 소위 개방농정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농업·농민의 발전이 독점자본의 축적기초인 저임금 유지와 값싼 노동력 공급에 배치된다는 것을 알아챈 독점자본이 만성적인 과잉문제에 직면한 미국의 농업개방 압력에 편승하여 이제 그들의 수출여건 타개란 명목으로 농업 포기적인 개방을 강제해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로서의 대외의존성, 신식민지성이 바로 농업문제에서 발단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도시의 제반 사회문제와 우리 문화에 대한 그 뿌리깊은 열등의식의 진원도 바로 농업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농업을 단순히 산업으로만 인식하여 단지 경제적 문제로 왜소화시키려는 주장들은 결국 주체성 상실에 기초한 해묵은 열등의식과 비열한 허구의식에 불과한 것이다. 농업생산을 위해 정부가 투자하는 금액으로 미국 농산물을 구입해 먹는 것이 오히려 값싸게 먹힌다는 주장이나, 그러고도 남는 돈이 있다면 공업으로 전용하고 농민은 공장에 취직시켜 소득만 올려 잘살게만 해 주면 된다는 소위 비교우위의 논리들이 그것이다.

농업문제가 단순한 범주를 넘어 심각한 위기의 상황으로까지 치달리고 있으며, 그러한 사정이 이미 민족경제의 생존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음은 국민 모두가 함께 느끼는 엄연한 사실이다. 국민경제 전체로 볼 때 식량의 자급도가 4%에도 미달하는 식량생산의 위기가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그 직접 생산자인 농민들은 모두 5조원이 넘는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30년에 걸친 저농산물가격정책이 초래한 농업기반의 정체는 마침내 농가경제의 파탄과 농촌의 공동화 현상을 빚고 말았던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80%를 상회하는 농산물 수입자유화율을 자랑하는 개방농정은 그러한 농업문제를 마침내 위기상황으로까지 내몰아 농민의 자살율, 농촌 노총각 증가율과 소득증가를 웃도는 농가부채 증가율까지도 자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농업위기는 농촌위기나 농민위기로만 귀결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이곳 저곳을 병들고 찌들게 하는데 더 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농업위기는 농업과 공업간, 도시와 농촌간 그리고 지역간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야기하는 주원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농업위기의 결과물인 이농은 이제 장소를 바꿔 노동문제와 도시빈민문제를 거듭 낳고 있는 실정이다. 쉽게 말해 도시 노점상 문제나 달동네 문제가 농업문제의 연장이며, 심지어 치솟는 전세금 앞에 망연자실해 하는 세입자들의 넋두리도 따지고 보면 그 발단이 이농현상이란 이 엄청난 농업위기는 우리에게 농촌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민속 및 민족문화를 모두 잃게 하였을 뿐 아니라 마침내는 우리의 전통적인 먹거리와 고유한 식생활마저 왜곡하고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결코 생산성이나 생산비 등의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취급될 수는 없는 산업이다. 농업문제의 해결은 민족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호하여 자주경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당위성 확보에서 출발하여 이 땅에 녹색식물과 동물을 보존함으로써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차원과 우리 민족문화의 밑자리를 지킨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민족의 생명원인 식량의 대부분까지 외세에 의존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주체적으로 극복해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민족의 자주를 감히 부르짖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번 무너져 버린 생태계는 그 회복이 결코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농업을 위한 진정한 대책은 현재의 농업방식을 그대로 둔채 이루어지는 임기응변적인 지원정책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발전 혹은 경제발전 비젼 속에서 농업을 어떠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농업을 경쟁력이 있는 산업으로 발전시킬 의지가 있다면 농업의 생산방식, 소득 발생구조 등에 일대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혁신정책을 전개하려면 한국농업에 대한 비젼이 서 있어야 한다. 비젼은 10년뒤 농업의 모습, 농촌의 모습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비젼이 없으면 농업인구를 농촌에서 떠나지 않게 붙들어 놓을 수 없다. 떠나는 농촌이 아니라 돌아오는 농촌으로 만들겠다는 구호가 현실로 나타나는 정책의 요체는 농민들에게 지급되는 소득보상이 아니라 향후 10년내지 20년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비젼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 10년만 참고 기다리면 한국의 농촌은 도시 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고 거기에 쾌적한 전원적 환경이 곁들여 살기 좋은 농촌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이 농민과 국민에게 주어진다면 농업은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농업생산의 특성과 현재의 생산력 수준 및 농촌사회 구조를 진지하게 고려함으로써, 소농경제의 이점을 살리는 생산조직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농업생산의 복합화와 공동화를 지역차원에서 주체적으로 총괄해내는 이른바 새로운 ‘지역농업의 건설’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결국 농산물 수입을 축으로 하는 내외독점자본의 농업지배를 해소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전체 농민의 ⅔를 방출하는 무모함 대신 영세한 소농경영들을 건강하게 조직하고 엮어내는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산의 주체인 농민들의 창발성을 이끌어 낼 새로운 조직적 장치가 필요하며, 이는 곧 생산과 생활의 공동의 장인 마을의 민주적 운영과 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적 농촌자치의 실현으로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 돌아오는 농촌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