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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 "네덜란드 개신교회의 협력적 노사관계가 주는 시사점” 강연예수살기 수도권 12월 모임, 이덕신 박사 초청강연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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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12월 16일 (화) 12:11:55
최종편집 : 2014년 12월 16일 (화) 12:15:07 [조회수 :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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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 수도권 모임이 송년회와 더불어 2014년 12월 15일(월) 오후 7시 30분 향린교회 2층 어린이부실에서 열렸다. 15명 가량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는 기독교윤리연구소 에이레네 운영자인 이덕신 박사의 초청강연이 있었다. 강연자 이덕신 박사는 네덜란드 자유대학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백석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이 박사는 “네덜란드 개신교회의 협력적 노사관계의 한국의 대립적 노사관계에 대한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한 시간 동안 강연하였다.

이덕신 박사의 강의내용을 요약한다.

   
 

들어가는 말

어느 사회나 산업현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이런 현장에서 기독교 정신으로 대처하는 시도를 네덜란드 개신교회가 했다. 한국에서 개혁교회 전통은 매우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혁교회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 교회는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다. 한국에는 교리적인 것만 알려져서 그런 것 같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sms 16세기 종교개혁자 요한 캘뱅의 ‘하나님의 주권’ 개념을 중심으로 한 사회참여적 신학과 사상을 19세기 후반 이후 네덜란드 상황과 관련하여 재해석하고 강화, 발전시킨 ‘신 캘뱅주의’의 창안자였다. 한국에서는 ‘신 캘뱅주의’의 전통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혹은 복음주의 교회에서 영향을 끼쳤다. 복음주의교회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이 있었지만 예언자적 목소리와 실천이 미약한 반면 진보적 개혁주의 혹은 에큐메니컬 교회에서는 선구적이고 헌신적인 사회참여를 하였지만 기독교 고유의 정체성에서 벗어났다는 의심을 받기도 하였다. 이 발제가 진보와 보수교회를 아우르는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적 신학과 실천의 새로운 모색에 자극제가 되기를 바란다.

1. 한국 노사관계의 대립적 특성

한국의 노사관계는 강한 대립적 관계로 특징지어지는데 정부와 자본의 노동에 대한 권위주의적 억압과 노동의 전투적 저항으로 요약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제도화하기도 했지만 이 위원회가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역할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우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사회에는 자본주의와 송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깊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꼽을 수 있다. 해방 후 친공계열인 전국노동자조합평의회(전평)와 반공계열의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이 있었으나 전평은 1947년 미군정에 의해 금지되었다. 한국전쟁 후 정부와 기업은 반공주의, 반노조 정서를 이용해 저항적 노조를 성공적으로 탄압했다. 여기에 ‘국가안보’라는 이유를 들어 독립적인 민주노조까지 탄압하였다. 이런 역사로 인해 노조운동 지도자들은 초기에 사회주의자들에게 훈련 받았고 오랜 군사정권기 동안 국가의 억압을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에 전투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둘째로 전국적 수준의 노사관계가 미발달되었고 따라서 노동분쟁을 해결하려는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였다. 초기업 수준의 산별노조는 성장한 것 같지만 개별사업장 수준의 조직과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사용자의 미온적 태도와 단체협약 효력확장에 대한 법률미비도 한 몫 하였다.

셋째, 노동자에 대한 불충분한 사회적 보호가 평화로운 노사관계에 대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IMF이후 노동시장 유연화의 신자유주의정책과 상응한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는 노동자로 하여금 생사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2. 네덜란드 개신교회의 협력적 노사관과 실천

2.1 아브라함 카이퍼 : 유기적 사회관과 영역주권의 원리

네덜란드 개신교회의 입장은 일찍이 19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대립적 노사관계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네덜란드 개신교 사회운동의 결정적 이론적 틀을 제공하였다. 그는 유기적 사회관을 제시하면서 ‘기독교인은 모두 사회운동의 편에 서야하고 개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한 혈통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단일한 언약에 참여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책의 연대성과 골고다 상의 구속의 신비 양자 모두, 그런 개인주의와 상존할 수 없는 것으로서, 서로 경쟁적으로 우리 자신의 사회의 상호연결된 전체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카이퍼는 프랑스 혁명과 등치된 자유주의의 개인주의에 반대하고, 인간의 의지에 기반한 개인주의로서 사회주의 역시 반대한다. 그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와 구분되는 기독교적인 제3의 길을 제시하면서 갈등모델이 아닌 조화모델을 제안하였고 이 조화적 사회관이 노사관계에 적용되었다.

또 카이퍼는 ‘영역주권의 원리’를 제창하였는데 이는 일개인들 간의 관계에 관심하는 유기적 사회관과는 달리 사회 각 제도들 간의 관계에 주로 관심한다. 그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국가와 사회 각각이 고유의 영역 혹은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이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사회문제는 올바로 해결될 수 없다고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기본적 동등성이 인간들이 함께 살고 일하는 상이한 삶의 영역들, 즉 국가, 교회, 학교, 기업 등등 사이에 있으며 어떤 제도도 다른 삶의 영역들을 하위에 두며 아우르는 제도로 여겨질 수 없다.

자본과 노동 사이에 힘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하며 균형이 무너질 때 정부가 개입하여 회복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개입은 주도권의 의미가 아니다. 네덜란드의 개신교 노동운동은 단지 제한적인 국가의 간섭만 허용하였다.

2.2. 파트리모니움 : 글라스 카터와 빌렘 호비

네덜란드 개신교 노동운동 역사에는 파트리모니움이라는 독특한 조직이 존재한다. 이 노동자 단체는 노동자에게만 회원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회원으로 고용주들도 포함하고 있으며 고용인과 고용주의 조화로운 관계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익을 추구하였다. 초기 이사인 글라스 카터와 초기 회원 중 하나인 빌렘 호비가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글라스 카터(1833-1916)는 정통 개신교 중산층 가정에서 양육되었으나 곧 고아가 되었고 14세 때부터 농장인부, 벽돌공이 되었고 곧 빌렘 호비의 기업에서 벽돌공 십장이 되었다. 빌렘 호비(1840-1915)는 당시 유럽에 퍼진 부흥운동에 고무된 귀족 가정 출신이었고 개혁교회 공동체의 독실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독교의 사회정신에 의거하여 기업을 경영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동일한 신앙과 사회에 대한 동일한 이상을 지녔다. 그들은 이상적 기업을 영적 공동체로 이해했다.

파트리모니움은 기독교 정체성과 조화로운 노사관계에 대한 추구를 첫 번째 회칙으로 삼으며 ‘파트리모니움(선조의 유산)이라는 명칭 하에 네덜란드 노동자 협회가 존재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국민의 전통이 기독교사회의 가치 있는 기반을 이룬다는 신념으로, 그러한 기반 위에 사회 전체의 유익, 특히 노동자의 유익을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여 증진하기 위해, 그에 대한 지식을 퍼뜨리고 그에 대한 애정을 일깨우는 목표를 설정한다. 암스테르담에 소재한다.’고 기초와 목표를 진술한다. 이 조직은 네덜란드 전역에 반향을 일으켜 1880년에는 전국적 조직이 되었고 1890년대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노동자 협회가 되었다.

2.3. 초계급적 파트리모니움에서 분리된 기독교 노동조합으로 : 아리티우스 탈마

1891년 기독교사회대회는 이미 시대에 뒤쳐진 파트리모니움의 모델을 포기하고 노동자와 고용주 양자 모두의 독립적 기구와 최후수단으로서 노동자의 파업권을 인정하였다. 1892년에 네덜란드고용인연합회 보아즈가 창립되었고 1894년에는 첫 번째 네덜란드 기독교 전국단위 노동조합이 탄생하였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연합쪼직은 이후 다양한 분화과정을 겪게 된다. 개신교 노총인 네덜란드 기독노총은 1909년에 세워져 1940년에는 120,344명의 조합원이 가입하게 되었다.

기독노총은 설립 이후 포괄적인 기독사회운동이 된다. 이 변동기에 아리티우스 탈마(1864-1916)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그는 하나님 앞에서 노동자와 고용주가 동등하다고 주장하였다.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라’는 골로새서 3:22의 말씀은 노예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현대적 계약관계에 적용될 수 없으며 고용주의 신적 권위를 비신성화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는 정부, 교회와 가족에는 적용되지만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에는 적용될 수 없다며 보수적 비판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그는 기독노조가 단순히 물질적 이익과 혁명적인 계급투쟁이 아닌 보다 고상한 비물질적 가치와 권리보호투쟁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은 강력한 자본주의적 체계에서 무력하게 된 개별 노동자들의 대표할 근본적 권리를 가진다고 가르쳤다.

2.4. 분리된 노동자와 고용주 단체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협의적 산업기구 “ 마리누스 루페르트

비록 독립적 기독노조를 인정하였지만 그렇다고 노동과 자본 사이의 조화주의적 이상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기독노동운동은 네덜란드의 협의형 경제 내에서 협의적 산업기구들을 만들고 참여하는 데서 대안을 강구했다. 노동자와 고용주를 화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양자 동수로 구성되는 노동회의소를 추천하였고 노사와 정부관료, 전문가도 참여하는 고위노동협의회를 설립하는데 참여하였다. 보다 발전된 협의적 산업기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동반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사회경제 질서에 대한 각서’ 체결로 만들어졌다. 이 협의는 1945년 ‘노동재단’의 설립으로 귀결되었는데 이는 사회경제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내각공식 자문기구로 발전되었다.

기독교계에서 ‘공법상의 산업기구’를 변호하는 일에 기독노총의 지도자 마리누스 루페르트(1911-1992)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수적 진영은 개별기업에 권한을 더 부여하려고 하였지만 루페르트는 ‘영역주권의 원리’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여 사법과 공법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단체근로협약은 사법과 공법의 엄격한 구분이 불가능한 실례로, 노동법은 상위노조나 개별노조가 고용주 단체나 고용주와 맺은 단체근로협약이 하위노조나 노조원 심지어는 비노조원에게까지 법적 구속력을 가지도록 규정한다.

2.5. 노동재단과 사회경제협의회 : 바세나르 협약, 유연안전성 협약 그리고 수렴과 협의형 경제에 대한 보고서

바세나르 협약은 노동재단이 근래에 네덜란드 협의형 경제와 협력적 노사관계에 기여한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곱히는데 이는 2차 세게대전의 폐허에서 신속하게 복구하고 1950-60년대에는 복지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떠받쳤다. 그러나 1970년대에 협의형 경제는 위기에 처했고 ‘네덜란드 병’이라고 알려진 현상들이 나타났다. 노동비용이 증가하고 복지지출이 확대되었으며 인플레이션, 실업률 증가, 노사관계 악화, 협력과 조정의 모델 붕괴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바세나르협약은 협의형 경제를 재활성화하고 이후 20년 동안의 경제적 개선의 기초를 창출한 전환점이 되었다. 공식 명칭은 ‘고용정책의 측면들에 대한 일반적 권고’로 임금억제와 고용재분배를 결합하는데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근무, 청년실업 방지와 경쟁력 강화를 그 실행내용으로 하여 노사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가 재개되는 등 네덜란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평균 실질임금은 9% 하락하였지만 노조들은 노동을 분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도록 협상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국내총생산의 성장, 실업, 정부 재정적자, 투자 등 모든 측면에서 유럽연합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런 성과는 국제적으로 ‘네덜란드의 기적’으로 칭송되면 ‘폴더모델’이라 불렸다.

또 노동재단은 1996년 ‘유연성과 안정성의 협약’에 기여하였는데 이 협약에서 노사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보다 유연한 노동시장과 이에 상응한 노동자에 대한 보다 많은 사회적 보호 간의 새로운 합의를 성사시켰다. 한국에서는 노동시장 유연성만 강조하고 노동자를 보호하고 안정성을 제공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것과 대조된다. 이 협약의 제안들은 대부분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법제화 되었다. 초대 임시 고용기간이 6개월에서 3년으로 늘었고 해고절차도 빠르게 하기 우해 고지기간이 단축되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임시직 노동자에게도 임금, 승진, 기본 사회보장, 훈련과 교육, 보조금이 지불되는 돌봄 서비스, 휴가비와 연금, 3회 연속 임시계약을 할 경우 영구계약의 권리 등이 보장되었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동시간을 가진 나라로 일과 여유가 균형을 이루는 삶을 지향한다. 노동자들은 자발적 시간제 직업을 택하였는데 2001년의 경우 42.2%나 된다. 이중 비자발적인 시간제는 2.5% 미만이다. 네덜란드 폴더모델은 전반적인 사회보장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와 노사관계를 개혁하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체제와 대조되는 제3의 길의 사례로 권장된다.

노사와 더불어 정부가 참여하는 사회경제협의회도 눈여겨 볼만한데 정부대표는 빈번하게 경제학, 사회과학 분야의 대학교수, 중앙은행과 경제정책국의 대표자들로 선임된다. 이 조직은 공법상의 산업기구이지만 정부단체는 아니며 재정적으로도 정부에서 독립돼 있다. 이 협의회에서 요청한 것에 대해 정부는 3개월 내에 응답해야 하며 만약 제안을 거부할 경우에는 그 이유를 진술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장일치의 의견은 매우 강력한 압박수단이 된다.

3. 평가와 교훈

네덜란드 개신교회의 폅력적 노사관게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 개신교의 노동운동은 노동과 자본 간의 자율적인 2자적 관계의 개념을 주로 지지했으며 자본과 노동이 자체 주도권을 가질 때 더 나은 결과가 도출된다. 한국정부는 ‘노사정위원회’ 같은 유럽의 조합주의 모델을 이미 도입하기는 하였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에 주는 교훈은 첫째로 노사의 자율적인 협의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시기를 거치며 정부주도의 집약적 경제성장을 위한 억압적 노사관계를 강제했다. 1997년 IMF 위기 이후에는 노동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요되고 이제 노동자들은 개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3자로 구성된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간섭하기 이전에 양자 간에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산업의 영역에 있어서도 화해와 회복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로 최상위 협의기관, 곧 노동재단과 사회경제협의회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에도 노사정위원회(1998)와 경제사회발전위원회(2007)가 있어왔지만 대통령이 의장과 모든 위원을 임명하는 정부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양대 노총 중 하나인 민주노총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것은 노동자와의 실제적 동반자 관계가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의 협상력이 여전히 미약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는 한국에서 노사 간의 자율적인 협의기구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이 분야들에 개입해온 것이다. 최상위 협의기구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때 높은 수준의 산업평화도 보장될 수 있다.

끝으로 한국의 노사대립 이유 중 하나는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이 강요되는 반면, 그에 상응한 보상과 사회안전망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노동자들은 임금억제와 유연한 노동시장을 노동시간 축소와 유연해진 노동자들의 사회적 보호와 맞바꾸었다. 비록 실업상태에 처한대 해도 사회안전망이 완충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인간적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으며 오히려 조기은퇴 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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