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엄격하게 번역하면 <21세기 자본(론)>)은 그 제목의 인상과는 달리 자본가들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국가정책의 개입으로 완화시켜 보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이 책은 18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3세기에 걸친 경제사상사에 대한 압축강의와 그것과 관련된 수학공식, 도표, 이론 등으로 가득 차 있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면이 없지 않으나 웬만한 인내심만 가지면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중심논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 칼럼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의 중심논지와 그것의 실천적인 함의를 다룬 13장 “사회적 국가를 위하여”를 요약하려 한다.

이 칼럼이 13장 “21세기를 위한 사회적 국가”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편의 감동적인 학문설교이기 때문이다. 13장에서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를 억제할 중간수단으로 사회적 국가모델을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13장의 논지는 칼 폴라니의 <위대한 전환>과 일맥상통한다. 13장은 4부 21세기 자본규제에 속하는데 4부에서 피케티는 1-3부의 부와 소득의 불평에 대한 논의, 분석, 관찰, 평가로부터 규범적이고 정치적 교훈을 도출한다. 이 교훈도출의 과정에서 13장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국가모델로 현재 부와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21세기 상황에 적합한 사회적 국가상을 착상한다. 1990년 대 이후 가속화된 새로운 세계경제체제로 생겨난 거대한 불평등 현실에 직면해 저자는 앞에서 각종 자료를 통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전 세계적 세습자본주의를 정당하고 효율적으로 통제할 만한 새로운 정치제도로 부의 불평등을 막는 조세제도와 공공정책을 가동시키는 사회적 국가를 제시한다. 사회적 국가란 전 세계적인 차원의 공정한 조세정책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과 심화를 억제하는 약자 배려 형 국가다.

먼저 저자는 끝없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하고 자본축적의 다이내믹스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이상적인 정책으로 자본에 대한 글로벌 누진세를 제안한다. 피케티는 대부분 2차 세계대전 후 소득상의 차이가 급속하게 줄어들었던 이유가 임금 불평등은 그대로인데 비해 부동산 불평등의 감소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기의 불평등 감소는 전쟁 직후에 시행된 고도로 누진적인 소득세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이 가장 부유한 자들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잉여돈을 축소시킴으로써 부동산 집중의 위력을 상쇄시켰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2%까지 올라가는 누진적 연례세금과 80%까지 이르는 누진적 소득세를 신설해 불평등을 줄일 것을 제안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이러한 세금은 또 다른 장점도 지니고 있다. 부를 노출시켜 민주적인 감시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인데, 이는 은행 시스템과 국제자본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 자본세는 경제의 투명성과 경쟁의 힘을 유지시키는 한편 사적 이익에 앞서 공공 이익을 증진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는 전 세계적 차원에 못 미치는 국가적 차원 혹은 한 차원 낮은 다양한 형태의 자본세도 대안이 될 수는 있다고 본다. 진정한 전 세계적 차원의 자본세가 유토피아적 이상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상에는 못 미치지만 이러한 과세를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 국가에서부터 지역이나 대륙적 차원에서 자본세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피케티는 현실적이다. 다만 저자는 자본세 문제를 좀 더 광범위한 맥락, 즉 부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21세기에 적합한 사회적 국가의 건설에서 국가의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분석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역설하는 사회적 국가가 맡은 과업 중 하나는 현대적 재분배인데 이것은 국민기본권의 확장논리를 의미한다. 현대적 재분배는 부자로부터 빈자에게로의 소득이전을 의미하기보다는 의료, 교육, 연금 등 만민에게 동등한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서비스 확대와 대체소득을 위한 재원 조달 등을 통해 이뤄진다. 대체소득의 경우, 형평성 원칙은 평생소득에 대략 비례하는 대체소득을 지급하는 형태를 띤다. 교육 및 의료와 관련해서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소득(또는 부모의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실제로 동등한 혜택이 주어지는 수준의 서비스를 생각한다. 이처럼 현대적 재분배는 기본권의 논리 그리고 기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일정한 상품에 대한 평등한 접근이라는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이 기본권의 효시는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 두 번째 문장이다. 그것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불평등을 용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오직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만, 특히 가장 불리한 입장에 처한 사회적 집단의 이익에 공헌할 때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리와 기회가 가장 적은 사람들의 이익에 공헌하는 한, 기본적인 권리와 물질적 혜택은 가급적 모두를 대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결론에서 저자는 과학적 지위를 얻기 위해 수학적 이론적 모델에 머무는 주류경제학을 비판하고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훨씬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정치경제학이 다른 사회과학 분야와 달리 정치적이고 규범적이며 도덕적 목적을 지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정치경제학은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 조직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이상적인 역할을 과학적으로 또는 적어도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연구하고자 했다. 그것의 핵심질문은 어떤 공공정책과 제도가 우리를 이상적인 사회로 이끄는가 하는 착상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정치와 경제 등 정의와 올바른 사회질서의 문제를 정치적 엘리트에 맡겨두고 자신은 논평가라고 자임하며 4~5년에 한 번씩 투표나 하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사회과학자, 모든 저널리스트와 논평가,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가와 온갖 부류의 정치가, 특히 모든 시민은 돈과 그에 대한 측정,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이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 김회권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