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꽤 괜찮은 체험 활동, 강화도 역사 기행‘책이좋은사람들’과 함께하는
김종범  |  webmaster@dangda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4년 11월 28일 (금) 13:39:00
최종편집 : 2014년 11월 30일 (일) 15:26:15 [조회수 : 392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영락고등학교 교사 김종범

 대학입시에서 자기소개서와 비교과 활동이 중요해지면서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예전에는 책상에 앉아 책을 파고드는 것만 공부로 여겼지만, 요즘은 다양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고 비전을 세워 나가는 활동 역시 중요한 공부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래서 요즘 고등학생들은 ‘괜찮은 체험 활동’에 목말라 한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 학생의 다양한 필요에 맞는 체험 활동을 제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체험 활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이것이 학교 현장의 고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책이좋은사람들’이 주관한 강화도 역사 기행은 학생의 큰 관심을 끌었다. 대학 교수님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매력적인 프로그램 내용 뿐 아니라, 체험 경비를 주체 측과 학교가 지원하는 것이어서 많은 학생들이 신청했다. 학교 입장에도 학생들에게 좋은 체험 활동을 제공해 주는 것이니 반가운 일이었다.

 

   
 

십자가 갤러리

강화도 역사 기행의 집결지는 김포시에 위치한 고촌교회였다. 교회 건축 하나하나 신앙 고백과 철학을 담아 아름답게 지은 교회였다. 로비에 들어선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십자가 갤러리’, 전 세계에서 수집한 십자가 1,000여점을 모아놓은 특별한 전시관이었다. 대륙별로 구역을 나눠 전시되어 있는 십자가에는 각 대륙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투박한 십자가부터 창의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독특한 십자가까지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그것을 만든 이들의 신앙고백이 형상화된 수많은 십자가가 관람하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학생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주신 교촌 교회 목사님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우리들은 본격적인 강화 기행을 나섰다.

 

   
 

연미정

강화도의 첫 방문지는 연미정(燕尾停)이었다. 연미정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월곶리에 위치한 정자이다. 주변을 흐르는 물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해설을 맡아주신 이덕주 교수님은 수많은 외침 속에서 치열하게 저항했던 강화도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특히 고려가 대몽항쟁을 이어나간 고난의 시기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이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사실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역사의 교훈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우리 학생들이 현실의 장벽 앞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 정신을 가지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인생의 가장 값지고 가치 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강화부근리 고인돌

다음 방문한 곳은 강화 고인돌 유적지였다. 유적지 중심에 자리한 강화부근리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식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국사 교과서 첫머리에 나오는 사진 속 주인공을 실물로 직접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이덕주 교수님은 고인돌이 당시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을 나타내는 건축물이면서도 죽음에 대한 인류의 뿌리 깊은 고민과 관념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들은 고대인의 무덤 앞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강화교산교회 기독교 선교 역사관

   
 

버스는 강화도 최초의 교회인 강화교산교회로 향했다. 교산교회에는 강화도 지역 교회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독교 선교 역사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덕주 교수님은 강화도에 교회가 시작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당시 이 지역 유지의 탄압이 심해 선교사가 육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강화도 최초의 세례 교인이 배 위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탄압을 했던 유지가 후에 바울처럼 복음을 전도자가 되었다고 하니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교수님의 이야기 중 특히 존스 선교사의 삶이 큰 감동을 주었다. 20세라는 어린 나이에 조선을 마음에 품고 선교사로 헌신했던 그는 비록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조선에 대한 그의 사랑과 끊임없는 연구를 인정받아 대학으로부터 박사 학위를 두 개나 받았다고 한다. 학벌과 학위에 목을 매면서도 정작 가슴 속 열정을 따라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교되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우리 학생들이 제 2의 존스 선교사가 되어 사랑과 열정을 실천하는 큰 인물로 성장하는 모습을 꿈꾸어 보았다. 우리들은 교산교회 식당에 준비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분오리돈대, 전등사

우리는 강화도 동막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분오리돈대에 올랐다. 돈대란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관찰하기 위해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방어 시설을 말하는데, 높은 돈대 위에 올라 시원하게 뻗은 해안선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확 트이고 무척 상쾌했다. 다음 목적지 전등사는 분오리돈대에서 멀지 않았다. 예사 사찰과 달리 성벽과 성문을 통해 절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특이했다. 이덕주 교수님은 전등사에 얽힌 재미있는 네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각 이야기의 증거물을 사진에 담아오는 학생에게 푸짐한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학생들은 네 가지 증거물을 찾기 위해 전등사 구석구석을 주의 깊게 살피며 돌아다녔다. 이 특별한 미션 덕분에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전등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 강화 성공회 온수리 성당

강화도 역사 기행의 마지막 여정은 강화 온수리 성당이었다. 한국 전통의 건축 기법으로 건물을 짓고 내부 공간은 서양식으로 구성한 동서양 절충식 성당으로, 고풍스럽고 경건한 분위기에 저절로 나의 마음가짐 돌아보게 되었다. 온수리 성당은 외국 선교사들의 지원 없이 우리나라 신도들 스스로 힘을 모아 세운 성당이라고 했다. 몰락하는 나라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이 지역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성당을 짓고 인재를 키웠는데, 그래서 온수리교회는 강화도 항일 운동의 거점이 되었다고 한다. 학생들과 함께 성당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비전을 품고 살아갈 것인가? 학업과 일상에 파묻혀서 삶의 큰 방향성을 잃고 사는 우리들에게 ‘책이좋은사람들’과 함께 했던 강화 역사 기행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어제 여기를 살았던 선조의 삶 속에서 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인생의 나침반을 찾아보라는 말은 아닐까?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피곤하여 잠이 든 옆에 앉은 학생을 보며 조용히 혼잣말로 말해 본다.

“얘야, 오늘 함께 했던 강화도 역사 기행, 꽤 괜찮은 체험 활동 아니었니?”

 

<끝>

 

 

김종범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8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