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공동체의 뿌리는 대부분이 Anabaptist들인데 대표적 공동체가 250년 된 부라더후프이다. 브라더후프는 세계의 여러 곳에 있는데 시드니에서 800KM 떨어진 곳에 호주 부라더후프가 있다. 나는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서 3번이나 갔었다.

한 번은 작업 시간에 고교를 금방 마친 소년과 공동체 입구 정 복판 마당 한 가운데 묘지의 울타리를 만드는 일을 했다. 아직 한 사람도 묻힌 사람이 없지만 묘지를 준비하는 것이다. 죽어서도 공동체 한 가운데 있으니 좋을 것 같다. 항상 눈 앞에 있으니 피차간에 외롭지 않고.

나는 무덤을 만드는 자리에서 이팔 청춘인 이 녀석이 일생을 여기서 보내다가 여기에 묻힐 것인가가 궁금했다.

“여기서 평생을 살 생각이냐?”

그는 아직 결정 하지 못했다며 선배들이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결단하라"고 충고를 한다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왜? 돌아갈 길이 있으면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라더후프에서는 젊은이들을 가능한 한 2년간 군대 보내는 것 같이 세상으로 내보내도록 한단다.

기독교 공동체는 세상을 도피한 집단인가? 아니다. 마치 절 생활이 더 이상의 물질이, 세상의 즐거움이 필요하지 않은 생활이듯 그렇게 사는 것이다. 개인적 입장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 하는 것은 불교에서 스님들의 출가와 같다. 현실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럴만한 필요성이 있어야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 사람은 감기 몸살기가 있을 때마다 “나 먼저 죽으면 재혼 하면 안돼!”하고 늘 강조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당신 죽으면 빨리 가봐야 할 곳이 있으니까 걱정 말고 죽어”라고 대꾸한다. 늘 공동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동체 생활의 현실적 유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육아 문제. 교육 문제, 노인 문제 그런 거 없다.

마태 10:30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를 받되" 말씀이 공동체에서 문자적으로 이루어진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으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저 한테 필요한 부분만 문자적으로 믿는다면 좀 치사하지 않나?

그러나 공동체 안이라고 해서 아름다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 상호간에 벌어지는 끝임 없는 작고 큰 갈등이 발생한다. 오히려 외부적으로는 한 없이 평화로워 보여도 실제로는 날마다 보이지 않는 총탄이 오고가듯 치열한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최전방일 수가 있다. 공동체 생활은 마치 군대나 감방 마냥 꼼짝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 속에서 날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공동체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긴장된 생활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마치 태권도 선수가 대련을 통하여, 권투선수가 스파링을 통하여 강해지듯이 영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몇 해 전에 한국에서 신학대학 합창단이 호주에 순회공연을 왔었다. 학생들에게 공동체 맛이라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무리를 해서 부루더후프에 데리고 갔다. 저녁 집회 시간에 공연을 했는데 첫 곡이 끝났음에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합창단원들은 조금 당황한 체 두 번째 곡을 불렀는데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손바닥에 곰팡이가 날지라도 인간을 향해서 박수를 치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박수를 치지 않는 까닭은 인간들끼리 영광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철저함에 소름이 끼쳤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30년 전에도 그런 경험을 했었다. 장애인 선교단체 베데스다 선교회에서 해마다 여름 방학 때 장애인들을 100여명을 데려다가 캠프를 했다. 요즘처럼 차가 흔하지 않을 때 내가 목회하던 교회의 봉고차를 가지고 청년들을 데리고 가서 한 주간 동안 열심히 봉사를 했는데 아무도 고맙다고 하지 않아서 무척 이상하게 느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곳은 모두가 자원봉사자뿐이어서 누가 누구에게 감사할 일이 없는 곳이었다. 아무도 ‘수고 했다’고 하지 않고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 ‘나’와 ‘내 것’을 주장하며 남과 다투게 되었을까? 기억을 할 수 있기로는 초등학교 때 언제 쯤 인 것 같다. 왜냐하면 짝꿍과 둘이 한 책상을 쓰는데 책상에 줄을 그어 놓고 넘어 온다고 서로 신경이를 벌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칠판에서 주워온 몽당 분필로 경계선을 그어 놓기도 하고 색연필로 줄을 긋기도 하고 아예 칼로 책상을 파서 경계선을 그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 때 이후 나는 남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으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다.

작업시간에 몇 명씩 조로 나뉘어서 일터로 가는데 공동체의 3 청년과 함께 우리는 픽업트럭에 연장을 실고 밭으로 갔다. 작업은 삽으로 밭의 고랑을 파는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학생들에게는 평생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밭일도 낯설지만 말없이 일만 하는 것도 생소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슬슬 지루하기 시작하자 총무를 맡은 학생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목사님! 오늘 작업량이 어디까지 인지 물어봐 주세요.”

“왜 하기 싫으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우리 목표량을 정해주면 빨리 끝내고 자유 시간을 갖게요.”

내가 공동체 식구에게 물었더니 “작업량 같은 거 없다.”고 대답을 했다. 합창단원들은 할 말이 없어져서 또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조금 있다가 작전을 바꾸었는지 막 복학을 했던 총무가 학생들을 집합 시켜서 뭐라고 지시를 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흩어지더니 3 명이 한 팀이 되어서 한 사람이 고랑을 파면서 앞으로 나가면 양 옆에서 두 사람이 흙을 긁어서 이랑을 만들어나갔다. 작업이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며 한 고랑을 끝내고 나고서 공동체 청년들에게 “어떠냐? 잘되지?”하고 물으니까 그들은 무표정하게 “너희들이 좋아하면 됐다”라고 대꾸했다.

새로운 방법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학생들이 무색해졌다. 나는 그날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요즘 같은 첨단 시대에 공동체 청년들(그들은 모두 미국인이다)이 묵묵히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삽으로 밭고랑을 파나갔다. 그들은 어떤 효과도 생각하지 않고 하루 종일 말없는 소처럼 우직하게 똑 같은 동작으로 긴 밭고랑을 한 삽 한 삽 떠내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노동이 곧 기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서운 유영모 선생이(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이 무서운)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선생님은 기도도 안 하시고 교회에도 안 가시죠? 또 찬송도 안 하시죠?” 그러면 찬송은 몰라서 못하고 기도는 이렇게 한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다. 몸 안에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어 호흡이 기도고 맥박이 팔딱팔딱 뛰는 것이 찬미하며 반주하는 것이라고. 이 어찌 무서운 말이 아닌가? 가볍게 입술을 놀려서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것이 기도인가?

나는 교회를 갈 때마다 목사님들의 구성지고 푸짐하고 은혜스러운 기도소리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목회자형 기도 습관을 버리고 짧고 간결하게 수식어 없이 용건만 간단히 겸손하고 차분하게 조심조심 기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은 시드니에서 목회자들 사이에서 ‘공식기도목사’가 되었다. 왜냐하면 짧고 간단한 나의 기도에 당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마다 누군가가 “기도 목사님이 기도 하겠습니다.”하면 내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식사를 한다. 다른 사람이 그런 식으로 기도하면 웃을 일이지만 내가 그렇게 기도하면 아무도 웃지 않는다.

내가 시드니 공식 기도 목사가 된 것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몇 해 전에 어느 교회에 임직식이 있었다. 11시 대예배 이후 점심 식사하고 오후 3시부터 시작한 행사가 장장 2 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쉬는 날에 그 교회 신자들은 예배를 4 시간이상 드리는 예배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서를 맡은 목사님들이 차례로 나와서 비슷 비슷한 소리를 하고 또 했다. 지루함이 충만했을 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 차례가 왔다.

나는 “하나님 일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라고 기도했다. 충청도 사람은 눈을 감기도 전에 기도가 끝나 버렸다. 아멘 대신 박수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