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임종석 칼럼
기독교인은 정치외적 존재인가?
임종석  |  seok9448@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4년 10월 22일 (수) 23:31:57
최종편집 : 2014년 11월 02일 (일) 23:07:35 [조회수 : 2728]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물고기를 보고 물을 떠나 살라 하면 말이 안 된다

“기독교는 정치외적 존재인가?” 낙제점을 면키 어려운 제목이다. 하나마나한 말이다. 믿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이라 해서 정치와 관계가 없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자기네가 정치와 무관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에서는 정치와 관련이 있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설교에서도 또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당당뉴스> 같은 기독교 신문에도 정치적인 말이 등장해서는 안 된다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산속이 아니라 인간(人間)에 세우셨고, 사람이 사는 세상치고 정치와 무관한 곳은 없다. 기독교인도 교회도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 안에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도 기독교인도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정치와 완전히 무관하게 살라 한다면 물고기더러 물을 떠나서 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 모두인데, 목사를 포함한 기독교인도 사람인데, 그리고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이루어졌는데, 목사가 정치를 말하면 안 되고 교회에서 그 같은 말을 해선 안 된다니 누가 그러라고 했다는 말인가. 신구약 어디를 봐도 지상에 정치가 등장하고 난 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서 그와 무관했던 일이 없었다.

교회에서 정치에 관한 말을 해선 안 된다면 교회 밖에서도 해서는 안 되고, 투표를 하면 더더욱 안 된다. 그러나 누구도 투표를 하면 안 된다고는 하지 않는다. 두 개의 잣대로 세상을 계측하는 이중인격의 표본들이나 취할 수 있는 행태이다.

하기야 이제는 교회에서 그런 이중인격자들조차도 사라져 가고 있다. 좋은 일인데 뭘 그러느냐 한다면 교회의 현실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옛날엔 교회에서만은 적어도 바른 척, 의로운 척이라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에 가도 밖에서 하던 그대로 거리낌 없이 행동하여 예수께서 머리로 계시는 우리의 아름다워야 할 교회를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신도들도 목사들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떠한가?

문제는 분수에 맞지 않게 정치에 깊이 빠지는 데에 있고,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옳고 그름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쓰레기처럼 만들어 짓밟아 버리고 만다는 데에 있다. 더러워진 정치를 바르게 하자 하여 거기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자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종교논쟁이나 정치논쟁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종교나 정치에 진영논리가 얼마나 판을 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 증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말로 하는 전도가 자칫하면 종교논쟁처럼 되어 상대방에게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 키우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며 믿는 우리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행1:8)라는 지상의 명령을 내리셨고, 바울은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고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느냐며,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말로 하는 전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롬1014-17 참조)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전도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갖게 된 배려의 마음 없이 하는 전도는 논쟁의 결과를 낳기 쉽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은 접어 둔 채 설득하려 든다면 전도의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정치논쟁은 서로의 견해차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기 쉽고, 따라서 서로의 마음만 상하게 하고 만다. 그러니 그 같은 논쟁은 안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러니 교회에서는, 그리고 기독교인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논쟁이지 말 자체가 아니다.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겁쟁이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발전 지향적인 사람은 항상 바른 길을 모색하고 잘잘못을 분별하여 나를 세워 가며 주위를 일깨워 간다.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기독교인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양비론‧양시론과 진영논리는 망국을 재촉한다

물론 정치도 인간이 하는 것이니 누가 해도 전적으로 옳기만 할 수는 없다. 아니 더러운 게 정치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른 것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 믿는 사람은 그 차이를 알고 조금이라도 옳은 쪽을 택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 정당이 그 정당이고, 그놈이 그놈이라 해서는 안 된다. 양비론도 양시론도 안 된다는 말이다. ‘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있는데, 그리고 그게 거기서 거기라는 뜻으로 쓰는 일이 많은데, 세상에 그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오십 보는 백 보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 그게 어떻게 거기서 거기라는 말인가. 이 말을 쓰려거든 맹자가 처음 어떠한 경우에 어떤 의미로 썼는지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도 옳고 그르다는 면에서 똑같을 수가 없다. 단 몇 퍼센트일지라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다. 그런데 그 몇 퍼센트가 중요한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지자체의 일꾼을 뽑을 때 그 몇 퍼센트라도 나은 쪽에 표를 주어 그쪽이 뽑히면 정치는 그만큼 좋아진다.

그렇다면 낫다는 것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능력, 그래 맞다. 그러나 능력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직이다. 그리고 가치관이다. 능력은 있으나 정직하지 못하고 가치관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무능한 것만도 못하다. 능력은 좀 모자라나 정직과 바람직한 가치관의 소유자가 일꾼이 된다면 그 속도는 느릴지라도 발전이 지속적일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을 물질 위에 두어 정치를 하고, 부자보다 서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어야 한다. 지자체의 일꾼도 되어야 한다. 선거판에 뛰어든 사람치고 서민을 위해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낙선되기 위해 출마한 사람이 아닌 한 누구도 그리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직한 사람을 뽑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세상 사람들이야 능력에 방점을 찍을지라도 믿는 우리는 정직을 높이 사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정직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거짓만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이 아니고 보면 정직한 면이 있을 것이고, 그 정직에 단 몇 퍼센트라 할지라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 차이를 보고 털끝만큼이라도 나은 쪽의 손을 들어 준다면 그 사회 그 나라는 느릴지라도 건실하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슴의 돌비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은 진영논리에 휩싸이지 말라는 것이다. 패거리 문화와 동류인 이 괴물은 옳고 그름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네가 했으니 불륜이라는 말은 이제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어 버렸는데, 그 같은 매너리즘이 인간의 인간됨의 도리를 깡그리 빨아들여 녹여 버리는 블랙홀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반듯한 신앙에 성경도 많이 그리고 깊이 아는 장로님을 한 분 알고 있다. 그런데 정치에만은 진영논리로 균형 감각이 상실되어 ‘반듯한 신앙’의 ‘반듯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게 되어 버린 분이다. 선거 때가 되면 반대 진영의 사람들에게 누가 당선돼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신다. 크리스천은 하늘나라에 관심을 가져야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할 것이 없는 이 세상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표를 분산시켜 보려는 의도가 깔린 말들이다. 블랙홀이 되어 버린 진영논리에 침윤된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원해서 어느 진영인가에 속하게 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성향에 맞는 쪽으로 시선이 쏠리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필자도 그러하다. 그런데 원해서건, 원하지 않았는데도 건 어느 진영인가에 발을 들여놓았거나 그에 가까워진 사람은 그 진영의 논리에 매몰되기 쉽다. 매몰까지는 아닐지라도 편향되는 것까지 막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필자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필자는 정치와 관련이 있는 글을 쓸 때면 그 점에 각별히 조심한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려 해서가 아니라, 성경이라는 거울에 비춰 가며 그 잣대로 재려 노력한다. 아니 진리인 성경이 가리키는 길로부터 벗어난 부분을 지적하여 경종을 울려 보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것이 기독교인인, 목사인 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여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말하며 글도 쓴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팔이 안으로 굽어 있는 것을 느낄 때도 없지 않은데, 안 될 일이다. 그 굽은 만큼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로 글을 쓴다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세례 요한이 될 수 있다

세례를 받으려 자기에게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던 세례 요한(3:7,8)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헤롯왕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막6:18) 하여 옥에 갇히고 필경에는 목 베임을 당해 죽기까지 했다.

기독교인은, 그리고 목사는 기도하며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전도하며 구제 같은 선행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입을 열어야 할 때 다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정 입을 열기 싫거든 선거 때 표로라도 옳고 그름에 대한 표현을 해야 한다. 그놈이 그놈이라 하지 말고 단 1%라도 나은 쪽에 표를 주어야 한다.

필자는 인터넷에 올린 자신의 글의 댓글에 되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고 있다. 무척 조심스럽지만 굳이 말한다면 도움은커녕 기분만 상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당뉴스>에 실린 지난번 글의 댓글 중에는 필자의 영혼을 꿈틀하게 할 만큼 소중한 내용의 것이 있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 교회 건물이 높이 올라가고 교인이 늘어나는 것은 부흥이 아니다. 예수의 참 제자가 날마다 늘어나는 것이 부흥이다. 참 제자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서도록 노력하는 사람으로 그런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부흥이다. 70년대에 급성장한 교회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라기보다는 말씀에 대한 왜곡에 따른 인간 욕심의 준동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교인이 줄어든 것을 두고 교회의 쇠퇴라 할 수 있는가? 물론 부분적인 면에서는 부흥하였지만, 일반적으로 부흥하였다고 하는 그 현상들은 부흥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

어떠한가.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몰랐던 내용도 아니지만 필자는 이 댓글을 읽으며 속에서 잠자던 의식 하나가 꿈틀하고 깨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자신의 글에 동의를 한 것도 아닌데, 아니 ‘하려면 제대로 알고나 하라’는 일갈이었는데, 거기에서 이 같은 댓글을 단 이의 바른 신앙에 대한 고민과 진정이 담겨 있었음이 느껴졌기에 받을 수 있었던 하나의 신선한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댓글을 달아 주신 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를 통해 잠자던 자각이 자극을 받아 새롭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는 필자에게 있어 헤롯을 향해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 했던 세례 요한보다 큰 존재였다. 요한의 말을 듣고도 헤롯은 돌이키지 않았지 않은가.

진리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독교인이, 진리의 말씀 그 자체인 성경을 소유한 우리가 정치를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한국정치의 발전은 물을 건너가고 말 것이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그들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런데 그같이 소중한 정치에 정치인 아닌 정치꾼들이 오물을 껴 얹어 더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그 책임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꾼들의 손을 들어 준 국민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정치를 그것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 임종석
임종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9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3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심 (72.37.249.108)
2014-10-23 06:17:31
세상에 속한 것 같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정치를 비롯한 모든 환경에 영향을 받고 생활하면서 그 환경을 조종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나 그 환경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생활한다. 때로는 그리스도인들도 환경을 조종하고자 하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면서 이루어진다. 어떻든 그리스도인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관여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사실 정치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에 속한 것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가?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는가? 박사 학위를 따야 하는가?
'~해야 한다 혹은 아니다'로 단정지을 것이 아니다. '왜 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대는 왜 박사학위를 땄는가? 그대는 왜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는가? 그대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갖고 관여하는가? 왜 부장, 사장 자리에 앉았는가? 왜?왜?왜?
이런 질문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를 생각하면 자명해진다. 돈도 벌어야 하고 박사학위도 가져야 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외적인 존재는 아무도 없다. 돈이나 권력 그리고 명예에서 자유로운 자가 누구인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늘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한다. 타락의 길로. 돈이 그렇지 아니한가?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처럼 늘 유의해야 한다. 하늘에 소망을 둔 자답게 살아야 한다.
양비론이나 양시론이 잘못된 것은 진영논리 때문일 것이다.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은 양비론이나 양시론은 정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양쪽의 잘못된 것도 보고 잘된 것도 보아 지지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해야한다. 1%라도 보다 더 정직한 정당이나 정치인을 찾으라는 것도 사실 진영논리에 빠진 자들에게는 우이독경이다. 누구나 제 눈에 안경은 언제든 존재했고 궁극적으로 세상 일에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악한 일들 가운데서도 선한 일을 일으키시며 다스리신다. 때로는 악한 정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도 하시며 저항하라고도 하신다. 사람의 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따르라 하신다.
리플달기
5 0
ㅋㅋㅋㅋ (128.189.191.236)
2021-11-30 14:24:26
ㅋㅋㅋㅋㅋㅋ
사사기 9장 읽고오세요. 숙제입니다.ㅋㅋㅋ
리플달기
0 0
hyong0153 (98.233.175.233)
2014-10-23 17:38:39
제 주제도 못 추수리면서 웬 정치 ...
교단내 정치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 복잡하고 다난한 정치를 할 수 있나?
동의 할 수 없다.
우선 민주시민이 머저 된 다음에 연탄장사를 하던지 면서기를 하던지 하야 할 것이다. 감히 뭘 한다고....
리플달기
1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