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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다신한열 옮김/이해인, 김기석 추천 / 크라운판/15,000원/신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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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09월 17일 (수) 01:04:03
최종편집 : 2014년 09월 24일 (수) 13:55:30 [조회수 : 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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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랑의 증인 로제가 또다시 사랑 들고 찾아왔다..

사랑을 선택하다

신한열 옮김/이해인, 김기석 추천

크라운판/15,000원/신앙과지성사

 

 

 

 

로제 수사는

불어권 스위스의 프로방스라는 마을에서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로잔과 스트라스부르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떼제에 정착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해, 인류의 평화를 위해 누룩이 되는 수도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혼자 지내면서 독일 점령지를 빠져나온 피난민, 특히 유대인들을 숨겨주었고 전후에는 독일군 포로들을 맞이했다. 1949년 부활절, 그를 포함해 일곱 명의 형제들이 평생 독신과 공동생활을 서약했다. 로제 수사가 원장이었다. 그 뒤로 개혁교회뿐 아니라 루터교, 성공회 등 여러 개신교회 출신의 형제들이 들어왔고 1968년부터는 가톨릭 신자들도 입회하게 되었다. 오늘날 떼제공동체에는 30개국 출신 약 백 명의 형제들이 있다.

로제 수사는 성경 중심의 개신교 전통을 유지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일치의 은사와 동방 정교회의 깊은 영성에 주목했다. 교종 요한 23세와 깊은 교류를 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관인으로 초대되어 전체 회기에 참가했다. 콘스탄티노플과 모스크바를 비롯해 동유럽의 여러 정교회를 방문하고 교류했다.

서구의 젊은이들이 전통을 거부하고 교회를 떠나던 시절 로제 수사는 그들을 초대해 경청하고 격려하면서 신뢰를 일깨웠다. 그가 제창한 “젊은이들의 공의회”와 “신뢰의 순례” 모임에는 매년 수만 명의 청년들이 참가했다. 수십 년 동안 남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미국과 중남미의 가난한 지역을 찾아가 일정 기간 머물렀고 형제들을 파견해서 생활하도록 했다.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템플턴 상, 독일 출판인평화상, 유네스코 평화교육상 등을 받았다.

2005년 8월 16일 떼제에서 저녁기도 중 정신착란을 가진 여성에 의해 살해되었고 떼제의 마을교회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신한열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경험한 뒤에 1988년 프랑스 떼제에 가서 1992년 공동체의 수사로 종신서약을 했다.

프랑스 떼제에 살면서 젊은이들의 국제 모임을 진행하고 손님맞이와 공방 일을 하는 한편, 매년 남북한과 중국 여러 지역을 다니고 있다.

 

마더 데레사가 가장 존경했던 믿음의 벗

참 사랑의 종 로제가 남기고 간 큰 감동의 이야기들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한결같이 사랑만을 선택했던 고귀한 삶

전 세계 12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을 사는 신앙인의 길을 밝혀주는 책

 

깊은 울림,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 | 이해인(수녀·시인)

일생 동안 사랑을 선택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으며 위대한가를 알려주는 책, 떼제의 노래처럼 담백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로제 수사님의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좋고, 수사님을 알던 형제자매들의 생생한 증언과 사진들이 실려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을 더해줍니다. 모든 이를 놀라게 한 수사님의 ‘최후의 순교’는 큰 슬픔의 충격과 당혹감을 안겨주었지만 사랑이 너무 많은 그가 우리에게 남기는 사랑과 용서의 마지막 메시지로 전달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생여정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할지를 몸소 가르쳐 준 로제 수사님의 『사랑을 선택하다』를 읽고 우리도 더 없이 순수하고 영적인 사랑을 갈구하고 실천하는 사랑의 승리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정표가 된 사람 |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세상에는 이정표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성이 혼돈의 물결에 갇혀 표류하고 있을 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일깨우는 이들 말입니다. 그들은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말하는 이들입니다. 로제 수사도 그러합니다. 떼제공동체를 가리켜 어떤 이는 ‘아름다운 봄소식’이라 했습니다. 시적 울림이 있는 이 어구에는 많은 서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긴 겨울에 지친 사람이 아니라면 봄소식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도 탐욕의 제국 속에서 바장이는 많은 이들이 떼제를 찾는 것은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기 내면에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진저리치며 신음하고 있는 세계를 보고 가슴에 멍이 든 한 영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로제 수사는 상처 받은 인류를 감싸 안고, 망가진 하나님의 세계를 복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그저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형제들을 보내주셨고, 그 형제들의 아름다운 사귐은 세상의 관습과 폭력이 지배할 수 없는 공간을 창조해냈습니다. 형제들은 그 공간 속에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침묵했습니다. 상처 입었던 이들이 일어나 화해의 전령이 되었습니다.

떼제공동체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교회에는 로제 수사의 소박한 무덤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곳을 찾아 빗돌이나 작은 십자가 위에 꽃이나 돌을 올려놓습니다. 존경과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그렇게 표하는 것일 겁니다. 나는 이 책의 영문판(Choose to Love)을 ‘마을교회’ 한구석에 앉아 다 읽었습니다. 그가 엎드려 기도를 드리던 그 공간에서 저는 로제 수사와 한 숨결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 있는 사자’로 우리 가운데 머물면서 조각난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여정에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Contents

로제 수사를 기리면서

옮긴이의 말

시작

어린 시절

음악

사춘기

교회일치 소명의 열쇠

출발

공동체 생활의 시작

떼제로 돌아와

사랑을 선택하다

공동체의 비유

일생을 건 응낙

단순소박함

어린이들을 맞이함

가난한 이들을 맞이함

젊은이들을 맞이함

내면 생활

기도

경청

교회라는 비길 데 없는 친교

그리스도인들의 화해

화해를 구체화하기

잊을 수 없는 만남들

요한 23세

요한 바오로 2세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

요하네스 헴펠

마더 데레사

대륙을 가로질러

작은 우애공동체

신뢰의 시대로 들어서다

동유럽 방문

다른 대륙을 찾아서

평화를 위해 바친 삶

죽음

용서

평화의 미래

인류 가족 안에서 드넓힐 여러 가능성을 열어……

로제 수사의 죽음은 그가 늘 지녀온 모습을 확인시켜 주었다

로제 수사의 연보

로제 수사의 저술

 

로제 수사를 기리면서 Homage to Brother Roger

로제 수사는 2005년 8월 16일 저녁, 떼제의 화해의 교회에서 공동기도를 드리는 동안 정신병을 앓는 여성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 우리 형제들은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를 인도하심을 느꼈고, 작은 우리 공동체는 첫 그리스도인들처럼 일치를 체험하며 “한 마음 한 뜻”(사도행전 4:32)이 되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로제 수사가 유산으로 남긴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 책은 그 감사의 한 표현이다. 불어 원본은 로제 수사의 죽음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왔다.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차를 두고 특별한 시각에서 그의 삶을 조명했다.

 

로제 수사에게 그리스도인들의 화해를 추구하는 것은 어떤 지적인 수준의 주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고 분명한 과제였다. 그는 무엇보다 복음대로 살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그런데 복음대로 사는 것은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는 공동체 생활이 화해의 징표가 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삶이 하나의 징표가 될 수 있다는 직관을 가졌다. 그런 이유로 그는 우선 화해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려 했다. 처음부터 떼제의 소명은 눈에 보이는 화해의 작은 징표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훗날 그는 이것을 “친교의 비유”라고 불렀다.

로제 수사는 개신교 가정 출신이었는데, 당시에 개신교회에는 수도생활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출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개신교를 넘어서 “분열 이전의 교회”에 뿌리를 둔 형제 공동체를 창설했다. 떼제공동체는 그렇게 가톨릭과 정교회 전통과도 떼놓을 수 없이 연결되었다. 1970년대 초에 기초가 단단히 세워졌고 가톨릭 형제들이 공동체에 입회했다. 로제 수사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우리 공동체를 세우며 이끌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외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삶에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나는 그분처럼, 그 누구와도 친교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내가 조상들로부터 받은 신앙과 가톨릭 신앙의 신비를 내 안에서 화해시키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그가 남겨준 유산은 엄청나고 무엇보다도 그 유산은 살아 있다. 로제 수사는 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그것이 계속 다듬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 공동생활의 기본서로 남게 될 공동체의 규칙조차도 여러 차례 다시 손질했다. 마치 우리가 문자나 구조에 매달리지 않고 항상 성령의 숨결에 자신을 내맡기도록 우리를 이끌려는 것 같았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계신다. 로제 수사는 마음속에 늘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 특히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품고 있었다. 친교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그는 자주 “그리스도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하느님과의 친교를 열어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하곤 했다. 이 비길 데 없는 친교의 공동체인 교회는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로제 수사는 젊은이들이 이 친교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주고 그것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을 걷어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가장 큰 장애 가운데 하나가 하느님을 엄격하고 무서운 심판자로 생각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 그에게는 갈수록 분명해졌다. 그래서 로제 수사는 자신의 온 삶을 통해서 이것을 전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다. 언젠가 정교회 신학자 올리비에 끌레망(Olivier Clément)은, 로제 수사가 하느님 사랑에 대해 줄기차게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의 사람들이 벌주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던 시대를 끝냈다고 말했다.

 

소년 시절에 로제 수사는, 복음은 신자들에게 준엄하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확신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 이 때문에 그는 믿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은 그의 전 생애 동안 진정한 투쟁이었다. 젊은 세대에 대한 그의 열린 자세와 젊은이들을 경청하려는 열의는 이런 내적 투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많은 젊은이들은 로제 수사가 매일 밤 공동기도 후에 항상 개인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준 분으로 기억한다. 그는 자주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했다. 말년에 기력이 없을 때도 저녁이면 교회에 앉은 채로,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놀라운 활력과 용기로 우리가 다른 이들을 향해 열린 자세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그는 어떤 외적이거나 정신적인 어려움 앞에서도 도피하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하나의 특정한 상황에 몰두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의 비유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버리고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와 같았다.

 

우리가 그의 누님 주느비에브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심한 말이나 판단하는 어투를 피한다는 점에서 동생과 놀랍게 닮은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자세는 그의 가정, 그중에서도 각별했던 그의 모친에게서 온 것이다. 물론 그런 성격에는 양면이 있는 것이지만, 로제 수사가 이 은사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 형제들은 이 때문에 그가 때로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한계까지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로제 수사는 모든 이에게 열린 마음을 가졌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인자함을 지니고 있었다. 인자한 마음은, 하느님께서 그것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에 빈 말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악 앞에서 인자한 마음은 상처입기 쉽다. 하지만 로제 수사가 바친 삶은,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마침내 하느님의 평화가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의 반증이다.

 

그는 늘 자비심을 구체적으로,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거듭해서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의 삶으로 그것을 보여주라”는 아우구스티누스(성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했다. 실제로 그는 가끔 이것을 놀라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한번은 캘커타를 방문해서 병든 아기를 안고 돌아왔는데, 유럽에 가면 혹시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며 마더 데레사가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 아기는 정말로 살아나 떼제에서 자랐다. 또 태국의 베트남 난민촌에서 그가 만난 과부들이 많은 자녀들을 데리고 떼제로 와서 정착하기도 했다.

 

로제 수사의 구체적인 성격은 그가 공간을 사용하고 배치하는 능력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집을 새로 지으려 하지 않았고, 정말 다른 방도가 없을 때는 모든 것을 아주 소박하고 아주 나즈막하게 그리고 가능하면 중고 자재를 이용해서 짓도록 했다. 떼제에 더 큰 교회 건물을 지을 필요가 생겼을 때, 그는 오랫동안 고심했고, 여러 해에 걸쳐 모양을 바꾸었다. 그는 공간 배치를 다시 하고 아주 적은 것을 이용해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우리가 여러 주 동안 함께 지냈고 몇몇 형제들은 남아서 수년 동안 살았던 케냐의 빈민촌 마타레 계곡에서도 이런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비참한 가난 한가운데 있는 보잘것없는 움막집을 거의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도 잘 꾸몄고, 그가 흔히 말하던 대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로제 수사는 산상수훈의 팔복(진복팔단)을 자주 인용했고 자신에 대해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우리 수사들에게 우리가 영적 지도자가 아니라 무엇보다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원장 직무에 대해 “공동체 안에서 친교의 가난한 종”이라 불렀다. 그는 상처입기 쉬운 자신의 약함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작은 우리 공동체는 로제 수사가 열어놓은 길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신뢰의 길이다. “신뢰”라는 말은 그가 함부로 쓴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아주 단순하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맞이하고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며 여기에 동반한 위험까지도 감수하라는 호소가 담겨 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린다면 생명수를 찾아서 오는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는 꼴이 될 것이다. 이 사랑에 대한 믿음은 단순소박하고, 너무나 순수하기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산을 옮긴다! 그래서 우리는 분열과 폭력 그리고 갈등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눈길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알로이스 수사

 

 

옮긴이의 말

로제 수사가 세상을 떠난 다음 세계 각지에서 수천 통의 조문이 도착했다.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또 개신교와 정교회, 가톨릭은 물론 유대교와 회교, 종교가 없는 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보내온 글을 읽으며 우리 형제들은 그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로제 수사의 정식 전기문이 나오기까지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한 우리는, 우선 로제 수사의 인격과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책을 하나 출판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온 이 책은 로제 수사가 가졌던 직관과 공동체의 역사 안에서 그가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보여준다. 일부는 그가 쓴 책과 편지에서 가져온 것이고, 일부는 1992년에 녹화했지만 출판되지 않은 장시간의 대화록에서 발췌했다. (녹화할 때 나는 카메라 뒤에 있었다!) 각각의 글 옆에는 그분의 죽음 직후 떼제에 도착한 수많은 조문 가운데 일부를 실었다. 다른 형제 한 사람과 함께 편집 일을 맡은 나는, 사진을 고르고 녹취록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목젖이 뜨거워졌다. 17년 동안 함께 살면서 나누었던 많은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용솟음쳤기 때문이다. 정작 내 손으로 책을 만들어 놓고도 출판된 뒤에는 한 번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로제 수사의 전기문 출간은 계속 미루어졌다. 그분의 삶의 궤적과 영향이 워낙 방대해서 역사학자와 전기작가의 작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길면 2-3년 정도 갈 것으로 생각했던 이 작은 책이 영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헝가리어, 중국어, 일어를 비롯해 11개 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신앙과지성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로제 수사에 대해 알았던 사람들은 물론, 그분을 모르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 책을 통해 그분을 만나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나는 그분과 오래 함께 살았지만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에 실린 로제 수사의 글 또한 웅변도 설교도 아니며 곁에 있는 친근한 벗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그분 특유의 맑고 작은 목소리에 담긴 뜨거운 열정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분의 탄생 1백주년과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한국어판이 출간되어 더욱 뜻 깊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분열의 많은 상처를 지닌 한반도에서 이 책을 읽는 분들이 평화와 일치, 화해와 신뢰의 희망을 키울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로제 수사는 인류와 교회의 어두운 시절에 그 희망을 간직하고 전하기 위해 공동체를 세우고 지구 곳곳을 찾아갔으며 자신의 삶을 바쳤다.

 

비록 소제목에 영어가 붙어 있지만 로제 수사의 뜻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불어 원본에서 옮겼음을 밝힌다.

신한열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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