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30년이 지난 셈이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으나 그리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고교동창을 다시 만났다. 친구는 어엿한 화가로 단단하게 자라나 있었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연결된 그가 자신의 개인전 전시회에 초대 문자를 보냈고 나는 기꺼이 그의 작품 전시회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 뒤풀이 저녁식사 자리는 다른 이들과 서먹할까 염려되어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다행히도 그 자리는 친절하고 사람 좋은 그의 지인들 덕에 기분 좋은 이야기 자리로 이어졌다. 대화 중 우연히 옆에 앉으신 분께서는 아들이 독일학교를 다녔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계속해서 독일과 한국의 교육 차이, 학생들의 차이 같은 것들을 아들에게 물으셨다.

“한국 청소년들과 독일 청소년들은 어떤 점에서 제일 다르다고 생각해요?” “한국 학생들은 멋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건 좋은 거 아닌가요?” “아, 그러니까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국 청소년들은 남과 많이 비교하고, 뭐랄까 허세 같은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독일 애들은 그런 건 없는 편이죠.” 대강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은 마지막으로 이런 확인의 말을 하셨다. “그러니까 독일 사람들은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을 안 쓴다는 거죠?” 그러자 아들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남들이 뭐라 하질 않죠.” 옆에서 아들의 대답을 듣는 순간,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뭐라 하지를 않는다니... 결정적인 차이였다.

우리는 너무나 비교에 익숙해 있다. 심지어 교육마저도 상대적 비교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니 아이들에게는 남이 무엇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고, 무슨 수를 쓰든 남보다 한 걸음만 더 앞에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분노, 쓸데없는 열등감과 우월감, 억눌린 절망감. 이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의 삶과 영혼을 짓누르는 감정들이다. 한 나라의 교육이 자기 한계와의 절대적 싸움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대적 싸움을 장려하고 있으니 지금 이 사회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충격적인 비극은 이미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저술시기로나 복음서의 배열로나 제일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라라!” 주님이 평소에 사랑하시던 저 제자는 어떻게 되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대답은 4복음서를 맺는 주님의 최후의 말씀이 되었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요한복음이 이 말씀을 주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이 말씀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는, 남들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타인을 신경 쓰며 인생을 살아가지 말라는 준엄한 주님의 마지막 말씀인지도 모른다. 남을 보지 말고, 단지 내 등만을 보고 따라오라.

후세 독일인들이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세종대왕에 비견될 만한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누구나 각자의 길로 천국에 가야 한다.” 원래는 종교의 자유를 천명하기 위한 말이었다지만 이 말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마지막 말과도 잘 어울린다. 너는 내 등만 보고 따라와 네 길을 걸어 천국에 이르라.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라라!” (요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