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하늘을 먹고

몸이 아파도 누구에게 말하지 않는다.
부모가 옆에 없어서 뿐만이 아니라
아예 어릴 때부터 그렇게 참고 견디며 살아온 것이 습관이 되었다.
몸에 생기는 조그만 종기도 조기에 치료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생명을 잃는 수도 있다.
이곳의 일직 죽는 아이들은 조그만 종기를 조기에 치료하지 못해
돌도 지나기 전에 죽는 아이들도 있다.
돌때까지 살아남으면 자기면역력에 의하여 오래 살 수 있다.

게티 또한 어릴 때부터 그렇게 모질게 살아와서
종기 하나쯤으로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요번엔 좀 상황이 다르다.
외상으로 생긴 종기가 아니고
내상 병에 의하여 생긴 종기이므로 쉽게 생각해선 안 될 일이다.
겨드랑이에 난 종기가 밤톨 만하게 굵어지고 벌겋게 염증이 잡혔다.
치료 받으러 오라고 몇 번 이야기 했지만
어릴 때부터 견디며 살아 온 경험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오질 않는다.
이들이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치료받을 돈이 없어서이다.
어제 방문하였다가 보니 너무 심각해졌다.
이젠 침으로도 안 되고, 수술을 하고 약을 먹어야 될 정도다.

오늘은 토요일
보건소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휴일에 들어갔고
당직서는 조산원 두 명만 있다.
게티가 망설이고 망설이다 통증을 못 참겠는지 찾아왔다.
해충에 의해 생긴 외상 종기가 아니고
몸이 나빠 몸 안에서 치솟고 나와 생긴 종기이므로
근본을 치료할 필요가 있다.
종기의 외상 치료는 월요일 보건소 의사가 출근하면
의사에게 치료받도록 하고 난 그 아이의 내상병에 관심을 두다.

나의 치료방범은 질병을 직접 퇴치하는 서양의학적 치료방법이 아니고
몸의 경락을 돌려 오장육부로 연결된 혈관과 림프관의 흐름이
잘 흐르도록 도와주는 면역요법이다.
면역요법을 통하여 언밸런스 된 몸의 균형을 맞추어 주어
몸의 자기면역력을 증대 시켜주는 방법이다.
나의 자침법은 어린아이들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피부에 얕게 찔러 별로 통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맞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는다.
침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잘 달래서 한 번 놓아보다.
별로 아프지 않고 맞을 만한가보다.
양경에 시침을 마치고, 음경에 시침할 차례다.

경락의 흐름이 원활해짐에 따라 잘 여문 종기가 스스로 터진 것일까?
종기는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터져 겨드랑이에서 고름이 흘러나온다.
나도 처음 보는 신기한 경험이다.
겁이 많은 아이라, 흘러나오는 고름을 닦는데도 무서워한다.
실은 나이만 어리지 아이가 아니다.
이 학생은 이제 겨우 18세 된 여대생이지만
16세 때 아기를 낳아 지금은 두 살짜리 아기가 있는 어엿한 아기 엄마다.
여기는 사회인이 되는 과정이 매우 빠르다. 특히 학제가 빠르다.
여섯 살에 학교 들어가서 초등하교 6년과 고등학교 4년을 마치면
바로 대학에 들어가므로 16세면 대학교 1학년이 된다.
그가 어떻게 해서 레베카의 꾸보 하우스에
합류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자세히 묻질 않았다.

음경에 유침을 한 상태에서
살금살금 종기를 눌러 고름을 짜내다.
고름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조금만 눌러도 아파 죽겠다고 야단이다.
아기 낳았을 때 보다 더 아프냐고 물으니
아기 낳을 때는 수술하여 나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았다고!

아무리 짜내어도, 밤톨만한 종기에서 쉬지 않고 고름이 나온다.
솜 한 봉지를 모두 써서 약 10분 만에
고름을 모두 제거하고, 소독을 하고 드레싱을 하다.
돈이 없어 약을 사먹을 형편도 못된다.
약방으로 데리고 가 소염제 이틀 분을 사서 주며
하루에 세 번 식후에 꼭 잊지 말고 먹으라고 당부하다.
그리고 레베카와 함께 숙소에 데리고 와서
배고플 것 같아 건포도 빵과 바나나를 주고
물을 끓여 분유를 한잔씩 타서 주다.
어린것들이 부모를 떠나 객지 타향에 와서
형편이 어려워 잘 먹지도 못하며 공부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겠는가.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어
한 창 클 아이들이 비쩍 마르고 초등학생처럼 어려 보인다.
처음에 꾸보에서 게티가 꾸부려 앉아 무언가 다듬는 것을 보고
초등학생인줄 알았다.
제대로 먹지 못하여 성장기를 놓친 탓이다.

따전에 사는 네나 여사가 휴일을 맞이하여 치료받으러오다.
이 분은 정년을 앞둔 주정부 감찰직 공무원이다.
직책이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시장을 오라고 부르면 금방 온다.
하여 따전의 시장도 이 분 덕분에 나에게 치료를 받았다.
네나 여사는 소변을 잘 볼 수 없어서 치료를 받고 소변이 잘 나올 뿐만 아니라
고혈압과 당뇨까지 치료받게 되었다.
소변이 잘 소통되니 혈액운행도 좋아져 덤으로 낫게 된 것이다.
그 후 많은 환자들을 데리고 주말이면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는 밴을 타고 꼭 나를 찾아온다.

올 때마다 치료해 주고 점심도 대접하였더니
이번엔 빈손으로 오지 않고 상추를 한 봉지 들고 오셨다.
상추는 이곳에서 매우 보기 드문 귀한 야채이다.
일천 미터 이상의 고산지대에서나 조금씩 생산된다.
매번 주기만 하다가 받아보니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
상품의 가치보다 가져온 정성이 더욱 감사하고 기쁘다.
작은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서로 나누는 정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다.

환자들에게 유침을 해 놓고
20분간 기다리는 틈을 타 얼른 숙소에 달려가
냉장고에서 고치장과 된장 그리고 참기름을 꺼내어 섞어
맛있게 쌈장을 만들다.
조금 짠 것 같아 마요네즈를 좀 섞다.
혼자 상추에 쌈장을 넣어 밥을 싸서 한 입 가득물고 맛있게 먹다.
이곳에서 처음 먹어보는 상추쌈이라 더 맛있는 것 같다.
먹을 만한 음식을 파는 곳도 없는 산골에서
상추쌈은 나에게 최고급 음식이다.
환자들이 누워있는 사이
잠시 짬을 내어 먹는 맛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아무리 잘나고 근엄한 척 해도
뱃속이 비면 소용없다.
시인 김지하씨는 밥을 하늘이라 하지 않았는가.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 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 김지하 시, <밥은 하늘입니다>


예수께서는 밥(빵)을 귀하게 여기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워 주시며
“이는 내 살이니 받아먹으라.” 하셨다.

함께 나누어 먹는 밥은 바로 하늘이며
하나님 임재의 거룩한 사건이다.

예수께서는 각별히 먹는 일에 관심을 쏟으시고
복음을 전하시다 때가 되면
수많은 군중들을 일일이 챙겨 먹이셨다.

나의 침구학 스승님은 밥이 보약이라 하셨다.
밥만 잘 먹고 매일 뜸만 뜨면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고.
그분은 올해 100세이시지만
세끼 밥을 모두 넉넉히 한 그릇씩 다 비우신다.
그리고 매일 오전 10시만 되면 뜸을 뜨신다.
27세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뜸을 뜨셨고
병원에 가신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잠은 하루에 4시간만 주무시고
일은 지금도 하루에 10시간씩 하신다.

가끔 꾸보에 닭 한 마리씩 들고 가서
밥을 나누어 먹는다.
오늘은 쌈장과 쌈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과 함께 푸지게 먹어봐야겠다.

모두 함께 즐겁게 한 입 가득
하늘을 먹고
하늘이 되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