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월호의 세월이 ‘세월이 잘 간다’는 ‘세월’(歲月)인 줄 알았더니 한자로 ‘세상 세(世)’와 ‘넘을 월(越)’자를 써서 ‘세상을 초월 한다’는 뜻이었단다. 유병언씨가 직접 작명했다는데 이제 그가 세상을 초월했단다.

월남전 때 실종자를 전사한 것으로 판단해서 호적에 '사망'으로 처리했는데 나중에 살아서 나타난 일이 있었다. 시골 면사무소의 호적계 직원은 이 사건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부활'이라고 기록을 해서 덕분에 공식적으로 예수 이후 최초로 부활한 케이스가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병언이 직접 나와서 "내 시체가 맞다."고 증명해주지 않는 한 유병언의 부활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반 국민들이 이렇게 유병언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된 까닭은 그 동안 수많은 의혹사건이 있을 때마다 여러 의문들이 유언비어가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었다고 확인된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은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조작하고 의혹에 가담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까 ‘‘국가기관이나 권력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일거야’, ‘저건 나중에 사실로 밝혀질 거야’ 같은 늑대와 양치기 소년 같은 현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의 깃털에 불과한 유병언은 세상을 초월했다지만 정작 사고의 몸통인 정부는 세월호 사고 자체를 어떻게든 초월해 버리려고 하고 있다.

사실 함부로 초월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하면 유병언처럼 사기꾼 되기 딱 알맞은 것이다. 입으로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모든 것 다 버려도...”라고 찬송은 부르지만 실제로는 “주 예수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 다 갖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지만 그래도 ‘초월’이라는 것은 신앙생활을 좀 제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지 못하고 있는 숙제 ' 마냥 항상 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초월(超越)’과 ‘포월(匍越)’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초월이, 뛰어넘을 超 자에 넘을 越 자. 즉, ‘뛰어 넘다’라면 포월은, 길(기다) 匍 자에 넘을 越 자. 그러니까 ‘기어 넘다’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초월이 이곳을 훌쩍 뛰어넘어 저 곳으로 가는 것이라면, 포월은 이곳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이곳에 있는 것들을 끌어안고 낑낑 기어가는 것이다.

가령 선녀가 나무꾼과 아이들을 버리고 그냥 하늘나라로 승천해 버리면 초월이지만 산골에서 잘 살아서 그 산골을 하늘나라로 만들어 버리면 포월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초월이 아니라 포월이다. 군대 훈련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포복훈련이다. 포복을 잘못 하면 무릎과 팔꿈치가 다 까진다. 그러나 포복에도 요령이 있는 것이다. 포복에도 높은 포복과 낮은 포복이 있어서 팔과 다리 전체로 기는 낮은 포복을 해야만 무릎과 팔끔치가 까지지 않을 수있다는 것을 신병 훈련소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들은 다 안다.

나는 요령 있게 세상을 기어가는 것 그것이 예수 잘 믿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포월을 말하는 인하대 김진석 교수의 아래의 시는 매우 적절하다.


우리는 부처도 예수도 아니고, 노자도 공자도 아니다.
고승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고 현자도 아니다.
더 이상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되려고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겨우 기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도사가 될 수도 없고 또 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이 조금씩 기고 있음은 몰락과 퇴락의 제스처가 아니다.
낮은 데서 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새로운 차원의 넓이와 깊이와 거리를 가진다.
거의 제자리에서 머무르는 듯 하지만 매우 멀리 간 것과 같고,
너무 느리지만 너무 빠른 것과 같고,
너무 작지만 너무 큰 것과 같고,
너무 얕지만 깊다.
기지만 넘어가기 때문이다.
넘어갔다 다시 오면서 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월은 안하지만 포월을 하고,
해탈은 안하지만 탈을 한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지만,
거룩한 포월의 길을 간다.

우리의 세상살이는 각자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심지어 가슴에 끌어않고 속박과 번뇌 속에서 사는 것이다. 벗어나 보려고 애를 쓰지만 애초에 그런 길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포월을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