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오전에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총리후보자의 국정수행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이 반복돼서 많은 분들이 고사를 하거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혼란이 지속되는 걸 방치할 수 없어서 고심 끝에 정홍원 총리의 유임을 결정했다”고도 했다.

자기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에 그 책임이 있다는 투이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불과 5개월간에 16억원이라는 서민으로선 입이 딱 벌어질 거액의 수입을 올려 전관예우 논란을 일의킨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도, “일제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고, 남북분단도 “하나님의 뜻”이라 했을 뿐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를 사과받을 필요가 없다” 한 문창극 장로에게도 잘못이 없고, 잘못은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을 한 언론과 야당과 국민에게 있다고 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또 “청문회에 가기도 전에 개인적 비판이나 가족들 문제가 거론되는 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고,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도 했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에 사전 검증이 이루어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라는 건 청문회 전에는 국회도 언론도, 그리고 국민들도 눈과 귀와 입을 모두 봉하고 있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개인적 비판이나 가족들 문제가 거론되는 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검증을 비판이라 하는 것이야 말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정당한 절차를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여 비난을 위해 비판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장로에 대해 어느 가족의 어떤 문제를 그렇게 거론했는가.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 시어머니의 위장전입 등을 문제 삼아 장상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킨 것보다 더 크게 거론했는가 말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니 전 국민 가운데 안대희 전 대법관이나 문창극 장로보다 나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 아닌가. 철저하게 나라와 국민을 무시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종합적인 자질”의 검증에는 전관예우나 식민사관 같은 것이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와 언론과 국민이 마땅히 해야 할 자질에 대안 사전검증을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으로 이해하는 박 대통령의 사고체계는 국민들 다대수의 그것과 다른가도 묻고 싶다.

또 하나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혼란이 지속되는” 그런 불행한 현실을 누가 초래했는가도 묻고 싶다. 누구도 아닌 대통령 자신이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면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수첩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인재풀로 쓰다 보니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미적거리지 않고 문창극 후보의 인사청문회 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과, 그로 인한 “혼란”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가 있었을 것이다. 여론의 흐름이 만만치 않자 그 눈치를 보느라고 미적거리다가 사태를 키운 것이 아닌가.

자신의 말만으로 본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옥에 티만큼도 과오가 없다. 모두가 남의 탓이다. 국회 탓이요, 언론 탓이요, 여론(국민) 탓이다.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또한 인사청문회까지 간다 해도 낙마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인 것 같다. 김 후보자는 장관으로서 부적합하다고 96%가 응답한 조사 결과(‘사교육걱정없는세상’ 조사)도 있다.

김 후보자는 논문 표절과 연구비 가로채기에 대필 등의 의혹에 휩싸인 가운데 또 다른 의혹들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인물이다. 논문 표절은 학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한두 번이 아니라 표절률이 90%에 가깝다니 ‘이럴 수가!’ 하고 입이 딸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혹 이 퍼센티지가 과장된 것이라 해도 표절을 계속적으로 해 왔다면 이는 교수나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시정잡배의 도덕성에도 미치지 못한 자질이다. 이를 두고 관행 어쩌고 하는데, 필자가 알기로는 대학에 그런 관행은 없었다.

필자는 현직시절 대학원생들의 논문을 지도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는 교수도 있다는데 여러분도 내가 표절하고 싶을 만큼 좋은 논문을 쓰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논문의 표절은 가문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씩 있는 뉴스거리였지 관행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만약 김명수 후보자가 낙마한다면 박 대통령은 뭐라고 할 것인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인사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인데 또 남 탓만 할 것인지 걱정이 크다.

5.16쿠데타로 박정희 육군소장이 권력을 장악하자 국민들은 공포의 분위기 속에 숨 막히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 그때 필자는 또 다른 일로 답답함을 견뎌야 했다. 저들이 인간개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신 아닌 누가 인간을 개조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 어린 청년이었던 필자는 새까만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반백년이 지난 이 나라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론을 들고 나왔다. 나이 70을 넘긴 필자는 반백년전의 아픔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해야 했다. 국가를 개조하겠다니 전제군주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병폐를 바로 잡자는 의미로 한 말이겠지만, 말은 바르게 해야 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니 더더욱 그렇다.

어쨌든 개조가 됐건 개혁이 됐건 용어야 덮어 둔다 하더라도 현실은 그와 역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금 세간이나 인터넷상에는 개조해야 할 것은 청와대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이를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한 마디 하라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겠다.

“박근혜 대통령님,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