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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기적을 만난 30가지 이야기세브란스 감동스토리《쿵쿵-다시 뛰는 생명의 북소리》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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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06월 20일 (금) 16:43:25
최종편집 : 2014년 06월 21일 (토) 22:54:55 [조회수 : 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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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랑
-신지홍 님의 이야기

꽃다운 나이 스무살, 나는 대학교 3학년이 되자, 통기타 동아리의 총무를 맡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통기타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은 음악을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봄의 꽃들이 만화방창 흐드러진 5월, 학교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 신지홍

나는 밤이 늦도록 공연을 준비하는 통기타 동아리 친구들에게 커피를 타 주고 있었다.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 쌀쌀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에게 커피를 타서 돌리고 의자에 앉아 좀 쉬고 있다가 나는 까닭도 없이 쓰러졌다. 평소 빈혈 같은 증세도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쓰러진 나는 정신을 잃었다. 나중에 들으니, 동아리 선배들이 얘가 장난을 치는 모양이라고, 어서 일어나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자, 사태가 심각하다고 깨달은 선배가 나를 둘러업고 포항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내달렸다.

응급실에 도착해 나를 침대에 눕히자, 얼마 후 나는 거짓말처럼 깨어났다. 눈을 뜨니 걱정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후,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가 의식이 깨어난 후 엄마에게 들은 것이다.

   


   
▲ 신지홍의 엄마

지홍이 넌 어릴 적부터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어. 몇 살 땐지 기억도 어렴풋하지만, 감기가 심해 병원을 몇 번 다녀온 것과, 아주 어릴 적에 중이염을 잠깐 앓은 것 외에는! 그래서 네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지.

네가 응급실에서 다시 혼절한 후 초음파를 찍었는데, 아무 이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어. 의사가 너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 네가 뭐 하느냐고! 그래서 간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며, 요즘 양호실습을 나가고 있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의사가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집으로 데리고 가서 안정을 취하면, 깨어나지 않겠느냐?”고 해서 너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

하지만 너를 집에 데려다 눕혀 놓고 나니 걱정이 몰려왔어. 저러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해서 말이야. 병원에서 의사에게 들은 ‘스트레스’란 말이 생각나서, 나는 네 일기장을 꺼내 보았지. 혹시 양호실습을 하며 무슨 근심스런 일들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엄마 모르게 사귀던 남자가 있어서 그 때문에 무슨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아무리 일기장을 뒤져 보고 친구들에게 전화해 물어도, 그런 것은 전혀 없다는 거야.

며칠이 지나도 너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큰 병원으로 가서 MRI라도 찍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구에 있는 K병원으로 갔지. 검진 결과는 역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였어. 하지만 의사는 일단 입원을 한 후 경과를 보자고 했지. 그렇게 입원을 하고 나서 둘째 날 밤인가, 하두 답답해서 내가 식물처럼 누워 있는 네 귀에 대고, “뭐든지 좋으니 엄마한테 얘기해 봐!”라고 속삭였지. 그리고 나서 네 곁에 누워 자다가 무슨 소리에 잠이 깼는데, 네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예수님, 예수님, 나 좀 내려 주세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
“지금 너 어디에, 어디에 있는데?”
“산 위에요, 산 위에…….”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다시 혼수상태로 들어갔지. 그날 오전 회진을 온 의사 선생님이 병명도 알 수 없고 자기 소관이 아닌 것 같다며, 집으로 가라고 했지. 그러면서 야속하게도 엄마 가슴을 도려내는 얘기를 했는데, 며칠 후에 네가 깨어나도 소용이 없을 거란 거였어. 설사 깨어난다 해도 중증장애인밖에 안 된다는 거야. 그 말이 무슨 뜻이겠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 아니겠어. 의사의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정말 많이 울었단다. 그래도 나는 네 병명이라도 알아야겠다 싶어서, 너를 차에 싣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오게 된 거야.

그런데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열흘째 되는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네 외숙모가 너를 보겠다고 와서 면회시간에 혼자 들어갔는데, 금방 들어간 네 외숙모가 갑자기 바깥으로 뛰어나오면서, “고모야, 애기 깨어났다!” 하고 병실 밖에 기다리고 있던 내게 소리쳤어. 멍하니 넋을 잃고 앉아 있던 나는 네 외숙모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뛰어갔지. 정말 네가 깨어나 있었어.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신경과의 네 담당의사도 달려왔지.

그런데 네가 깨어난 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 의사가 엄마를 알아보겠냐고 했더니, 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시 혼수상태로 들어가고 말았지.

   


내가 세브란스로 오게 된 것은 목사님인 삼촌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촌이 목사님이긴 하지만, 우리 모녀가 신심이 돈독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혼수상태가 지속되자, 병문안을 왔던 지인들은, “이렇게 그냥 눕혀만 놓고 있으면 어떡하느냐, 어디어디에 용한 사람이 있다는데, 찾아가 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며 엄마를 재촉하곤 했다.

그저 막막하고 답답했던 엄마는 그들의 말에 마음이 동해, 소위 용하다는 이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엄마 얘기로는, 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나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지 못할 게 없었다고! 그래서 엄마는 용하다는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많은 돈을 허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고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점집이나 무당을 찾아가면, “이 집에 십자가가 있네”, “이 병을 고치려면 목사인 삼촌은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나같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무당이나 점쟁이가 떠받드는 신이 예수란 분보다 높으면, 왜 목사인 삼촌을 오지 말라고 할까. 상관없이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렇다면 내 딸을 살리지 못하더라도, 차라리 교회를 가자. 예수의 정신으로 환자를 고친다는 세브란스병원에서 고치자’라는 생각이 들어, 용하다는 이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병원치료에 전력을 쏟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내가 만난 분이 중환자실 담당 교역자이신 이이남 전도사님이었어. 어느 날 병실을 순회하시던 전도사님을 붙잡고 내가 물었지.

“아직도 마음속에는 용하다는 점쟁이들에 대한 미련이 있는데, 우리 애가 주님의 은총으로 깨어날 수 있겠습니까?”
전도사님이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셨어.
“일단 주님에게 맡겨 보세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엄마는 거침없이 속을 털어놓았어.
“그동안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이젠 기운이 빠져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돈은 돈대로 너무 많이 들어가고, 막연히 무얼 믿는다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이젠 가정생활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죄 없는 전도사님에게 떼를 쓰듯 내 심정을 쏟아놓았는데, 전도사님은 내 얘기를 들으며 눈물까지 흘리셨지.

그 무렵, 나는 정말 답답한 마음에 다시 의사 선생님을 만났어, 이병인 교수님이었지. 교수님 역시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였어. MRI를 세 번 네 번 찍어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MRI 상에 뇌가 조금도 줄거나 늘거나 한 것도 없이 다 정상이라는 거였어. 그때 교수님은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어.

“지금의 제 심경으로는 신지홍 씨의 뇌를 떼어 조직검사라도 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조직검사를 한다 해도 쓸 약이 없어요.”

교수님의 얘기를 듣고, 엄마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어. 그래서 간호사 몰래 바늘을 사가지고 와서 네 열 손가락을 다 찔렀지. 넌 미동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주치의 선생님이 이제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지방병원으로 가서 생명이 있는 동안은 그냥 산소호흡기만 연결하고 있으라고 하시더구나. 의사 선생님의 권고대로 너를 데리고 내려가려고 시골의 병원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끝내 나는 내려가지 않았어. 시골의 병원으로 내려간다는 건, 너를 포기하는 것이란 마음 때문이었지. 이렇게 널 포기한다면, 난 어미가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어.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중환자실 옆에 붙어 있는 보호자실에 앉아 있는데, 이이남 전도사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어. 함께 금식을 하지 않겠느냐고! 참 뜻밖이었고,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 전도사님은 가정생활을 꾸리시며 병원으로 매일 출근하시는 분인데, 같이 금식하겠다고 하시니 말이야. 사실 나도 금식은 처음이었어.

그렇게 금식을 하고부터 나는 너를 온전히 하나님에게 맡기고 기도에 몰입할 수 있었지. 새벽예배는 병원에서 가까운 교회로 가서 드리고, 낮에는 병원예배실에서, 그리고 오후에는 매일 찾아오시는 이이남 전도사님과 함께 보호자실에서 예배를 드렸지. 그 무렵 나는 너를 완전히 내려놨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너를 완전히 하나님에게 맡겼지.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네가 이렇게 식물인간처럼 살다가 그냥 가면 안 되니, 혹 튼튼한 장기가 있으면, 네 장기를 기증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너를 온전히 내려놨기에 그랬을까? 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네 호흡이 좋아지는 거야. 그리고 얼마가 지나자, 인공호흡기가 필요 없어지고, 너는 자연호흡을 하게 되었지. 그래서 내가 담당의사에게 떼를 써서, 너를 일반병실로 옮겼어. 물론 네 상태가 조금 심해지면,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긴다는 단서를 달고!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기 위해 예배실을 다녀왔더니, 네 옆에 있던 환자가 말하는 거야. 지홍이가 자기와 눈을 맞췄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나하고도 눈을 맞췄지. 정말 거짓말 같았어. 며칠 후 어떤 분이 딸기를 사가지고 왔길래, 딸기를 씻어서 너에게 보여 주며 “이거 먹을래?” 했더니, 놀랍게도 네가 입을 딱 벌리는 거야. 그때의 놀라움이란!

하루는 오후에 담당의사가 회진을 들어오셨는데, 네가 옆 병상에 있는 아줌마를 따라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를 하니까, 의사 선생님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기뻐하셨지. 그리고 얼마 후엔, 이제는 시골의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재활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담당의사가 말씀해 주셔서, 퇴원수속을 밟게 되었단다.

   



그렇게 시골로 가서 1년간 재활과정을 거친 후, 나는 의식이 거의 돌아와 학교에 복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병원원무과에 근무하면서 공부를 하여, 간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시험에 합격하자, 나는 곧 같은 병원의 간호사로 발령이 나, 환자들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내가 주치의로부터 완치판정을 받은 것은 처음 학교에서 쓰러진 후 꼭 7년 만이었다. 그때 주치의 선생님은 MRI를 찍고 나서, 뇌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고 정상인과 똑같다, 그토록 혼수상태를 겪으며 고생한 원인은 아마도 <바이러스성 뇌염>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바이러스성 뇌염은 기계에는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완치판정을 받고 얼마 안 있어,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임신을 하였는데, 몸에 이상증세가 발생해 유산을 했다. 다시 임신한 지 석 달이 되어 가는데, 아기가 잘 자란다니 고맙기만 하다.

이제 잘 쓰지 못하는 글이지만,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정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 고비를 넘기며 내가 살아난 건 무엇보다 엄마의 지극한 간호와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의사가 손을 떼었을 때도, 엄마는 끝내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엄마니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엄마가 너무 힘에 겨워, 절망이 깊어져, 손을 떼었으면, 오늘의 나는 없다.

내가 의식을 회복한 후, 엄마가 이이남 전도사님과 함께 금식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엄마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나를 돌보는, 그 힘겨운 생활 속에서 금식하신 얘기를 듣고, 엄마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그러실 수 있었던 데에는, 이이남 전도사님의 기도와 정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 나를 살린 건 엄마지만, 엄마를 살린 건 바로 이이남 전도사님이셨다.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도록 해 주셨으니까.

내가 완치판정을 받은 후 병원의 원목님 한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기적이라는 게 이유를 알면 기적이라고 안 그래요. 이것 때문에, 혹은 저것 때문에 내가 나았다고 하면 기적이라고 안 하죠. 그러니까 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픈 게 있고 나은 게 있는데, 아픈 것에서 나은 것 사이에 설명이 안 될 때, 그걸 기적이라고 하는 거지요. 무엇이 지홍 씨를 낫게 했을까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기도? 네, 맞아요. 그러나 제가 병원에 있으면서 경험한 바로는, 누가 기도한다고 죽을 사람이 다 살아나는 건 아니에요.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요. 매일같이. 그런데 동시에 또 하나의 진실이 있어요. 틀림없이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을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당사자가 어머니든 전도사님이든, 아니면 의사나 간호사든, 아무튼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드린 기도가 그 사람을 낫게 한다는 것도 또한 진실이라는 거예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진실이에요. 이런 점에서 지홍 씨는 어머니와 이이남 전도사님의 정성과 사랑을 늘 기억하셔야 할 거예요.”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원목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도무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내게 그런 신비로운 기적으로 새로운 생을 선물로 허락하신 분을 나는 하나님이라 부른다. 아, 이제 나는 새로 받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분명한 것은, 간호사인 내가 환우들의 생명을 내 몸처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이이남 전도사님이 내 목숨을 당신들 목숨인 양 극진한 맘으로 돌보며 기도하신 것처럼!

   

신지홍 님은 현재 전업주부로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

-고진하



   
▲ 19일 연세의료원 본관6층 예배실에서 세브란스감동스토리 《쿵쿵》출판기념감사예배가 있었다.


다시 뛰는 생명의 북소리 《쿵쿵》출판감사예배 

 “기적은 어떻게 오는가? 한사코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끝까지 희망하는 이들을 통해 온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자. 기적의 통로가 되자. 우리 모두에게 오늘은 선물이다.”

지난 19일 연세의료원 본관6층 예배실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치유의 기적을 만난 30편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세상과 만났다.

생존가능성 1%에서 다시 살아난 조민정 씨의 이야기, 단 5분만이라도 몸에 통증이 없기를 바랬던 김은철 교목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난 차인태 씨, 건강에 자만하던 경동교회의 박종화 목사, 로봇다리 세진이가 세계적인 수영선수가 되는 이야기 등 픽션이 아닌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들이 에세이집《쿵쿵》으로 묶여 출판기념회를 가진 것.

1,2부로 나눠진 출판기념회는 1부 감사예배와 2부 출판기념회로 나뉘어 진행됐다. 설교는 《쿵쿵》의 주인공 중에 한 분인 김은철 목사(배화여중 교목)가, 축도는 박종화 목사(경동교회)가, 2부 출판기념회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주인공들이 나서서 색소폰 연주와 자신의 치유 체험기를 읽는 순서를 마련하여 감동을 더 했다.

연세의료원에서는 2013년 7월 5일부터 <기도로 함께 하는 의사> 프로젝트를 시작한 바 있다. 병실이나 수술대기실에서의 기도가 아니라 극도로 불안을 느끼는 수술직전의 환우들을 위해 수술실에서 의사가 환우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러면 대부분 환우들은 안정을 찾게 되고 편안히 마취와 수술을 받게 된다고 한다. 치료의 효과도 그만큼 극대화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브란스병원이 있는 신촌, 강남, 용인, 원주에서 모두 실시되고 있다.

 

   
▲ 고진하 목사(좌)와 한인철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73학번 동기로서 41년지기이다.


세브란스병원 원목실장인 한인철 목사는 “세브란스감동스토리 《쿵쿵》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보완하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세브란스 병원에는 이미 수술이나 중증치료를 받은 분들 중 생존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많은 환우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서로 다른 경험들을 모아 중견작가이자 시인인 고진하 목사에게 집필을 의뢰하여 세브란스감동스토리 《쿵쿵-다시 뛰는 생명의 북소리(넥서스 출판사)》를 출간하게 됐다고 했다. 한인철 목사와 고진하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73학번 동기로서 41년지기이다.

고진하 목사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책속의 주인공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했을뿐만 아니라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병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심지어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장면을 직접 견학하기도 했다고 한다. 뇌를 열고 장기를 열어 젖힌 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쿵쿵 다시 뛰는 기적과 감사, 그리고 감동을 《쿵쿵》에 고스란히 담았다.

한인철 목사는 “확신컨대, 이 책은 앞으로 치료가 어려운 중증환우들과 보호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게 될 것이고, 그분들 속에서 또다른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엮음 / 고진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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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61.83.216.23)
2014-06-23 08:55:40
정말로 소중한 책~~!
정말로 소중한 책 만드셨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의 최전선에서 절망하는
이들에게 소망을 줄수 있는 귀한 책!
의료의 한계앞에서 절망하는 환우들에게
온전하신 주님앞에 기도할 용기를 주는 책!!
고맙습니다! 쿵쿵!!
리플달기
2 0
참으로 (91.2.122.44)
2014-06-22 15:23:16
좋은 책일거라 확신합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자신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아픈 이들에게는
의료의 기술이나 신약의 효능보다 절절하게 전해지는
의사의 기도소리가 '삶에 대한 용기'를 갖게 만드는
유일한 버팀목일테니까요
리플달기
3 0
최Ray (220.118.20.85)
2014-06-22 04:53:28
쿵쿵

아멘.!!!
리플달기
3 0
개혁본부 (210.210.216.241)
2014-06-21 23:08:03
할렐루야~
리플달기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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