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예수가 아이를 낳다.
2014년 3월 1일 토요일

그동안 다른 꾸보를 심방 다니느라
오랜만에 에밀리네 꾸보에 들려보다.
아이들은 학교가고 어른들은 일터에 가고
빈 꾸보 세 채만 마른 논 한가운데 쓸쓸히 서서
집나간 가족들을 기다린다.
인기척을 듣고 한 여인이 꾸보에서 아기를 안고 나온다.
조안이다. 며칠 안 온 사이에 조안이 아기를 낳았다.
요즈음 보건소 건물을 리모델링하느라고
분만실을 가동할 수 없는 상태라
조안이 인근 도립병원에 가서 출산한 모양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난 조안이 보건소를 찾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아기를 출산한지 벌써 3일 째 되는 날이란다.

산모를 몸조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몸보신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해 먹은 흔적도 없고
꾸보 문턱에 먹다 남은 식은 밥덩이가 힘없이 뒹굴고 있다.
산모가 기력이 없는 상태이지만
나의 기척을 듣고 아기를 보여주려고 안고 나온 것이었다.
큰 아이는 남자이고 이번엔 여자아이를 낳았다.

병원에 가서 난 것만 해도 호강인줄 알라고 했을
시어머니의 쌀쌀맞은 모습이 상상이 간다.
출산비용을 어떻게 지불하였느냐 물으니 울상이 되어
잠시 방에 들어가 뒤적거리더니 쪽지를 하나 가지고 나온다.
월요일까지 내라는 분만비 고지서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큰 걱정이다.
염려 말고 몸조리나 잘 하라고 위로해 주다.

고지서에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이름이 보인다.
눈을 닦고 다시 읽어보다. 분명하다.
잘 못 썼나 하고 조안에게 물어보다.
“이게 자네 이름이냐?”
빙그레 웃으며 그렇단다.
다시 확인해보다. 분명히 똑 같은 이름이다.
“이 이름이 네 진짜 이름이냐?”
“그렇습니다.
하여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그냥 성을 불러 조안이라고 부릅니다.”

그녀의 정확한 영어 이름은 ‘De. Jesus Joan’ 이라 쓰여 있다.
그녀의 이름은 한 마디로 ‘예수’이다.
보통 이곳에서는 성을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
이들의 방식대로 부르면 ‘예수’라고 불러야 된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냥 성을 이름으로 알려 주어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성이 이름인 줄로 알고 ‘조안’이라 부른다고.

부지중에 불쌍한 이를 돌보았더니 내가 그동안 ‘예수’를 섬겼단 말인가!
참 신기하기도하고,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사는 꾸보의 모습이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태어나신 마구간과 별 차이가 없다.
내가 지금 2천 년 전의 베들레헴 마구간에 온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오늘 우리 앞에 예수께서 이 여인처럼 허름한 거지같은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면 누가 예수를 따를 사람이 있을까!
예수께서 재림 하셔서 당신이 예수라 밝히고
몸에 예수 이름표를 붙이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고 다니신다면
아무리 불한당이라도 누가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믿는 믿음이 과연 믿음일까?

그녀의 이름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다.
이름이라도 부지중에 예수이름 가진 자를 돌보았으니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이 세상을 떠날 필요가 없다.
이름난 교회나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 갈 필요가 없다.
선행이나 덕을 쌓을 필요도 없다.
태양 빛이 선인에게처럼 악인에게도 비치듯이
예수는 이미 성령으로 우리들 가까이 와 계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바라 볼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이며
피조물을 대하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이다.

숙소에 돌아와 보건소 당직서는 간호조무사들을 만나
산모에게 무슨 음식이 좋은지 물어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아기 낳으면
미역국을 끓여 먹는데 이 나라는 어떻게 하는가?”
이곳에서는 비타민이 충분한 과일을 먹든가 아니면,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어 영양보충을 한다고.

저녁나절, 공설시장에 들려 닭고기와 과일을 사고
그리고 조안이 아이를 낳으면 주려고 미리부터 챙겨두었던
두툼하고 긴 털실 외투를 배낭에 짊어지고,
트라이씨클을 잡아타고 꾸보 하우스를 가다.
조안의 남편이 오늘은 일터에서 일찍 돌아와서
부인을 위해 뭔가 만들어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
내용물을 보니 고기는 없고 무같이 생긴 야채를 썰어
볶으려고 프라이팬에 올려놓았다.
그거 먹어선 요기도 안 될 것 같다.
내가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온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 그런지 남편이 요리하다말고 부엌을 나간다.

하나님 안에서 네 자식 내 자식이 어디 따로 있겠나!
내 며느리 네 며느리가 따로 있겠나!
나와 가까이 지내며 함께 하는 자가 내 부모요 형제요 자매이다.
조안은 하나님의 딸인 동시에 나의 딸이다.
오늘 나는 아이를 낳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하는
사랑하는 딸에게 약간의 위로를 하였을 뿐이다.
조안이 빨리 건강을 회복하길 바란다.

조안이 물어볼 것이 있다며,
“왜 자기 이름을 자세히 묻고 써 갔느냐?”고 묻는다.
특별한 이름이라 그랬다고 하니 뭔가 더 말을 하려다
표현을 하지 못하겠는지 그만두다.
누가 이름을 지어주었느냐 물으니 엄마가 지어주셨다고.
내일 마닐라에서 엄마가 오신다하니 만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왜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을까?”

2014년 3월 2일 주일

산모가 몸조리 하는 게 부실한 것 같아 뭐 더 줄만한 게 없나 하고 찾아보니
새로 사온 종합비타민 뜯지 않은 게 있어 아침 조깅시간에 들려 전해주다.
이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시아버지인 왕아버지 부부가 슬금슬금 다가와
며느리에게 무엇을 받았는가 물어본다.
눈치가 왜 맨날 너만 좋아해서 갖다 주느냐는 표정이다.
그들에게도 갈 때마다 옷도 가져다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도
불쌍한 어린 며느리에게 뭘 좀 가져다주면 늘 이런 시샘을 한다.
이들의 생각하는 수준이 이 정도다.

실체의 궁극적인 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의식주에 관한 집착을 버려야
맑은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바라 볼 수 있다.
하늘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가 볼 수 있고
그런 자에게 보여 진다.
가난하다고 모두 욕심이 없는 게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 더 욕심이 많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