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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카펠라 (송병구)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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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06월 13일 (금) 01:18:06
최종편집 : 2014년 06월 13일 (금) 02:18:13 [조회수 :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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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에서 시편을 계속 묵상하였다. 하루 한 편씩, 그새 두 계절을 훌쩍 넘었다. 무려 150편이나 되니 그 세계가 무궁무진하다. 본래 시편은 제2성전시대의 찬송가라고 불렸다. 비록 그 노래들에 악보는 없으나 그 사연의 깊이와 넓이는 헤아릴 수 없다. 다윗을 비롯해 아삽, 고라 자손 그리고 수많은 익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공동체의 예배 의식도 포함되었다.

왜 이렇게 많은 노래들이 성경에 들어있을까?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노래를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을 하나님이 그들과 동행하심을 감사하며, 찬양하였다. 심지어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노래하였다. 아마 천 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고백하고, 구전되고, 악보가 붙여졌으니 시편 그 자체로 위대한 영감이 느껴진다. 예수님은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고 하셨다.

이렇게 길고, 짧은 시편들은 어떤 곡조로 불렸을까?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캘빈의 시편찬송가가 있다.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개혁교회 시대에 불렸던 것인데, 당시에는 오직 시편으로만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우리 찬송가에도 ‘만복의 근원 하나님’(1장)처럼 제네바 시편의 흔적이 남아있다. 캘빈 찬송가 편집자들은 예배 찬송을 ‘콘템퍼러리’(contemporary)로 자유롭게 부르는 것을 우려하였다. 그렇다고 16세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무반주 노래라고 말하는 ‘아 카펠라’(A cappella)는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다. 그런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아주 뛰어난 악성을 가진 사람들만 가능할 듯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음역을 지키면서 고유한 음정을 발성하려고 집중한다. 중세교회가 성가를 부르던 방식이었다. 이탈리아 어로 ‘카펠라’(Cappella)는 교회라는 뜻이다. 그러니 ‘아 카펠라’는 ‘교회 스타일’로 노래하라는 의미이다. 강조하려는 것은 ‘무반주’가 아니라 ‘스타일’이 아닌가?

우리가 찬양하는 CCM 곡들은 많은 경우 시편에서 가사를 빌려왔다. 1990년 초에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 다달이 양심수를 위한 기도회를 열 때에 중보기도 직후에 조용한 기도송을 만들어 불렀다. 애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가사는 역시 시편에 담겨있었다.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소서/ 내가 고난을 당할 때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소/ 내 마음은 풀처럼 시들어 가고 시름에 지쳐 살이 마르오/ 지붕 위에 외로운 새들처럼 잠 못 이루고 탄식만 하오”(시 102편 중에서).

나 역시 시편에서 여러 번 빚을 졌다. 독일 복흠교회에서 만든 ‘하가다 찬송’ 5곡도 모두 시편의 고백을 흉내 냈다.
“부모-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일하고 사랑하-며 길을 함께 걷는 사-람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일하고 사랑하-며 길을 함께 걷는 사-람
아빠- 내 아내는 포도나무 같-고-
엄마- 내 아이는 올리브 나무의 햇순 같으며
부모- 주께서 모든 나날을 축복하시어 우리 집에 평화 있으라-
주님이시여 음-- 우리 소원의 깊음을-기억하소서-”(시 128, 133편 중에서).

고난 받는 사람의 간구를 시편처럼 잘 담아낸 노래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호소와 절규를 외면하지 않고 귀기울여주신다는 진실이다. 심지어 구체적인 고난까지도 기도의 속살이 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계명에서 ‘도’(Do)의 원래 이름은 ‘우트’(ut)였다. 라틴어로 음표 이름을 ‘우트, 레, 미, 파, 솔, 라’로 불렀다고 한다. 이를 중세기에 구이도 다레초(991 경~1033년 경)가 바꾸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바로 ‘우트’가 ‘도’로 바뀌었다. ‘도’는 ‘도미누스’(Dominus) 또는 ‘도미네’(Domine)에서 따온 머리글자로 ‘주님’이란 뜻이다. 모든 노래의 출발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복음성가를 부를 때마다 자주 세대 간의 심각한 분리와 단절을 느낀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도 아이와 젊은이 그리고 부모 세대 모두 합창이 가능한 레파토리 몇 가지쯤 있으면 좋겠다. ‘아 카펠라’ 하듯, 한국교회 스타일로, 모두를 아우르는 그런 조화 있고 힘 있게 부르는 합창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시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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