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정길이와 같이 놀려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먼저 나와 있어야 할 정길이는 보이지 않고, 동네 우물가에 남자 어른들이 서너 명 모여 있었다. 보통 우물가에는 여인들이 있기 마련인데, 남자들이 모여 있는 것도 이상했고, 그들이 무엇인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영수는 무슨 일인가 알고 싶어서 우물가로 가보았다. 놀랍게도 목사와 목사 사모님이 반듯이 누워 있었다. 가만히 보니 죽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물에서 영수를 가르치던 교회 선생님을 끌어올려서 눕히는 것이 아닌가! 영수는 놀랐지만 또 누구를 끌어올리는지 보고 싶어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대여섯 살 된 어린애를 끌어올렸는데, 어른들 말이 그 아이는 교회 선생님의 아들이란다.

이때 조그맣게 숨죽여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았더니 “영수야, 영수야” 10여 미터 떨어진 정길이네 집 앞에서 정길이가 입에 손을 대고 부르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정길이 어머니가 그리로 오라고 서둘러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영수는 얼른 정길이네 집으로 갔다. 거기에 가자마자 정길이 어머니가 두 손으로 영수의 어깨를 잽싸게 감싸고 자기 집 안으로 영수를 데리고 들어갔다. 정길이 어머니는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너 죽고 싶어서 거기 가 있었냐? 공산당 눈에 띄면 저렇게 죽어!”라고 말했다. 그제야 영수는 왜 정길이가 나오지 않았는지를 알았다.

이것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초등하고 3학년이었던 곽 장로가 9월 28일 아침에 겪은 일이다. 공산당원들이 퇴각하면서 그 동네 교회의 목사 내외, 교인들, 그 식구들까지 동네 우물에 빠뜨려 죽이고 갔던 것이다. 이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곽 장로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하고 있다. 만약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을 계속 장악해서 공산주의 나라가 되었으면 이 땅에서 교회는 모두 사라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곽 장로는 6.25기념주일을 지키지 않는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6.25기념주일을 지키자고 했단다.

친구들 모임에서 그 말을 듣고 나는 ‘당당뉴스’에 실린 내 글 “은혜를 모르는 가증한 백성이 되어서야”를 읽어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교회달력에 6.25기념주일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더니 한남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이 장로가 옆에 있다가 “그려? 그것을 몰랐네.”라고 놀라워했다.

9.28수복 때 공산주의자들이 북으로 서둘러 달아나면서 많은 남한의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곽 장로가 본 것처럼 젓갈 담듯이 사람들을 우물에 빠뜨려 차곡차곡 쌓아 죽였는가 하면, 유치장에 가두어 두었던 사람들을 끌어내서 한 줄로 세워놓고 총을 쏘아 죽이기도 했다. 살해될 사람들을 시켜서 구덩이를 파게 하고는 그들을 그 구덩이에 몰아넣고 여럿이 구덩이 가에 서서 그들에게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잔혹하게 기독교인들을 죽였다.

김은국 씨의 소설 『순교자』는 9.28수복 후에 우리 국군이 북한까지 밀고 올라갔을 때 평양에서 퇴각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목사들을 처형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거기서 살아난 신 목사는 폐허가 된 평양의 교회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중공군이 밀려와서 모두들 퇴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떠나지 않는다. 그 후 신 목사는 순교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6.25동란 동안에 수많은 남북의 기독교 신자들이 살해되었다. 그리고 6.25를 전후해서 많은 북한의 신자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남한으로 내려 왔다.

우리 집에서도 6.25때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날 저녁 모깃불을 피워 놓고 마당의 멍석 위에서 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있는데, 우리 밭 건너편에 사는 태식 씨가 한 잔 걸친 상태로 우리 집에 왔다. 그 젊은이는 다짜고짜 우리 아버지에게 “최 생원, 할 얘기가 있어서 왔쇼. 우리 집하고 최 생원 집 사이에 있는 콩을 낼 아침 당장 한 두렁 뽑으쇼. 밭을 삥 돌아서 물 길러 다니기가 힘드니께 가깝게 다녀야겠쇼. 이제 우리 세상이 되었쇼. 예수쟁이들은 인민의 적이니께 앞으로 조심하쇼.”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 부당한 말을 듣고도 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태식 씨 동생이 진짜 빨갱이라고 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점령 아래에서의 3개월은 ‘예수집’이라고 불리던 우리식구들에게는 마음조리는 나날이었다. 태식 씨는 술만 먹으면 자기네 세상이 왔다는 말을 지껄이면서 예수쟁이들은 자기가 한 마디만 하면 끝이라고 말했다. 태식 씨나 우리 아버지나 모두 농사꾼들이었지만 종교를 아편이라고 생각하는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들을 적대시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면소재지에서는 장로가 붙들려갔다는 이야기도 들렸고 어떤 곳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살해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우리는 9.28수복 때까지 태식 씨 눈치를 살피면서 언행을 조심했다. 그 사람 기분에 따라서 우리 식구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살벌한 분위기였으니까.

이제 6.25를 앞두고 있다. 곽 장로의 말대로, 한국교회가 64년 전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에서 우리를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아주 많은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했거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도 살해당했을지 모른다. 다행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 김정은의 백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교회는 찾아볼 수 없고, 먹고 살기조차 힘들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6.25기념주일조차 지키지 않는다. 왜 한국교회는 이렇게 6.25를 잊었는가!!

6.25전쟁 동안 남한의 군대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밀려서 낙동강까지 내려갔을 때, 만약 미국이 선도적으로 우리를 돕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공산화하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의 참전은 기도하는 사람 트루먼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6월 25일 밤 한국에서 구원병을 요청하는 전문을 받고 트루먼 대통령은 잠자다 일어나서 고심했다고 한다.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보낼 경우 수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이고, 보내지 않으면 남한이 공산화하게 될 판이었다. 이 중대한 문제를 놓고 신앙의 사람 트루먼은 엎으려 기도했다고 한다. 기도 후에 그는 파병을 결정했다. “남한이 공산치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한국동란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이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178만 9천 명의 군인을 파병했고 그중 전사자 3만 7천 명, 부상자 9만 2천 명, 실종자 3천 7백 명, 포로 4천 4백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6월 26일에 소집된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면 UN의 파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 대표 아담 말리크가 거부권을 행사할 마음을 가지고 캐딜락을 타고 뉴욕 거리를 달릴 때 이상하게도 자동차의 엔진이 꺼져서 차가 멈추어 서는 바람에 안전보장이사회가 끝난 다음에야 그가 UN본부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때는 이미 UN의 파병이 이사회에서 통과된 후였다. 이것을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 당시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시기를 한 목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었다. 이 캐딜락 사건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기적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의 기도와 말리크 대표의 캐딜락 사고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도하는 대통령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UN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파병을 가결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공산화의 위험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한국교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6.25 전쟁을 겪은 지 60여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곽 장로 교회의 목사를 비롯해서 한국교회는 그러한 끔직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주신,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이런 엄청난 은혜를 감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자는 말인가!!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절기를 성대하게 지킨다.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 신구약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절기를 잘 지키고 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기념주일이 있다. 장애인주일, 이단경계주일, 종교개혁주일, 성서주일, 총회주일 등을 지킨다. 그런데 우리를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6.25기념주일은 교회 달력에 없다.

한국교회는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라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교회가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쳐주시고 이 땅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크나큰 은혜를 기념하는 일이 장애인주일, 이단경계주일, 성서주일, 총회주일 등을 지키는 일보다 하찮은 일이란 말인가?

아직도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무인 비행기 사건, 나아가서 북핵의 위협 등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북한의 정체를 젊은 세대에게 알리기 위해서 학교에서 6.25에 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6.25는 북침이었다고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하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학교의 역사교육이 허술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주사파 등 북한에 동조하는 학생운동으로 사회가 어수선했는데 이제 국내 정치도 안정되었으니까 6.25에 관한 역사교육을 제대로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용산의 ‘전쟁기념관’의 전시물이 대부분 6.25전쟁에 관한 것이므로 그 기념관의 이름을 ‘6.25전쟁기념관’으로 바꾸어서 그 기념관을 역사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말들 가운데에는 ‘알라모를 기억하라’와 ‘진주만을 기억하라’가 있다. 1835년의 알라모 전투에서 멕시코 군대의 공격으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들은 200명이었고, 1945년에 일본의 진주만 포격으로 애리조나호가 침몰했고 그 배 안에 있던 병사들 1,300여 명이 죽고 그 외에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했다. 멕시코군에게 당한 공격과 일본군에게 입은 이러한 피해를 놓고 미국인들은 그 사건들을 기억하라고 외치면서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북한의 침공으로 인해서 6.25 동란 동안에 우리가 입은 피해는 미국이 두 사건에서 입은 피해와 견줄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침공으로 인해서 한국군이 입은 피해는 전사자 14만 명, 부상자 45만 명, 실종자 24만 5천 명, 포로 8천 3백 명이었고, UN군은 전사자 4만 8천 명, 부상자 10만 명, 실종자 4천 2백 명, 포로 4천 명의 피해를 입었다. 민간인 피해는 사망자 38만 명, 부상자 23만 명, 납치자 15만 명, 실종자 30만 명이이었는가 하면, 전쟁고아 10만 명, 전쟁미망인 30만 명이 발생했다. 이산가족은 남북한 인구 3천 3백만 중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1천만 명이나 되었다. 이상은 인명피해에 한한 것이고, 가옥 51만 동이 파괴되는 등 물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6.25전쟁은 한민족의 역사 가운데 일어난 전란들 중에서 가장 처참하고 엄청난 피해를 냈다. 세계의 전쟁사에서 1, 2차 세계대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피해를 낸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같은 민족끼리 싸운 동족상잔으로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전쟁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의 국민으로서 6.25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6.25를 기억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6.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역사교육을 시켜야 한다.

6.25는 이렇게 한국인 모두가 기억해야 할 전쟁이지만,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꼭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지금도 기독교인에 대한 북한의 적대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정권에서는 호텔에 성경을 놓아두고 나왔다는 죄목을 씌워서 미국여행자를 억류하고 있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6.25전쟁 때 우리가 공산화했더라면 한국 땅에서 교회가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에서는 우리를 공산주의자들에게서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대체 누가 한국교회의 달력에서 6.25 기념주일을 제외시키자고 제안했단 말인가? 그렇게 제외시켰는데도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우리는 흔히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개만도 못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자는 교회가 우리 한국교회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너도 나도 복을 달라고, 교회를 부흥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까? 당신은 진정 기독교인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를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여, 6.25를 기억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