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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함의 은혜 (김석년)
김석년  |  5lor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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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05월 31일 (토) 23:57:51
최종편집 : 2014년 05월 31일 (토) 23:58:18 [조회수 :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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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큰 슬픔이 닥친 지도 한 달 남짓, 어느새 사람들에게 잊혀져간다. 일상의 피로에 쫓겨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것이 우리내 인생이기에 감히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다만 각자가 감당해야 할 의무마저 져버리면 안 될 일이다. 우리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가족대책위 대변인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지만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중략)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해주십시오. ‘한 달 뒤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그리고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고통을 거름삼아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잊지 말고, 가슴에 깊이 새기라는 절규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억력은 절망적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지금도 연일 크고 작은 사건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그때마다 우리는 금세 잊어버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살아간다. 오늘의 쾌락을 즐기기 바쁘고, 내일의 허망한 꿈만 좇으니, 어제를 잊어버려 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언제나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은혜’와 ‘고통’이다. 왜 그런가? 은혜를 잊으면 배은망덕이요, 고통을 잊으면 타인의 아픔에 둔감한 이기적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잊지 않으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잊지 않으면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시대의 고통을 잊지 않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 역시 기억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들으시고 이전에 세웠던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출 2:24) 이렇듯 하나님의 기억함이 은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도 동일하게 기억함을 요구하신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24:18) 본래 종이었던 자신의 고통을 기억하며 이웃을 돌보고, 거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분만을 믿는 것이 하나님 백성 됨의 기본이다.

그래서 기억함은 기독교 영성의 출발이다.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결정적 증거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잊지 않으셨다. 잊지 않음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기억함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잊지 않음,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십자가 사랑의 시작이다.

일본 기독교 문학의 대가 엔도 슈사쿠(Endo Shusaku)는 결핵과의 사투로 지난한 고통의 세월을 보냈음에도 인생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것 하나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나 사소한 추억조차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그렇다. 우리 인생에, 세상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그럼에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그래서 고통조차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이 기억함을 통해 다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수 있으며 마침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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