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세월호 참극을 통해서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 대하여 어느 외국 언론에서 ‘얼음 공주’라고 표현 했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마 이번에 그녀가 보여준 이미지를 보고 그녀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을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모두 총에 맞아 죽은 상처가 그녀를 그처럼 냉정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불행한 가정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다. 나는 오히려 그녀의 사람됨은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찾아보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

지금 연이어 아들과 아내가 자기들의 출신 성분을 잘 표현해 주어서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빠져있는 정몽준 의원의 경우를 보자. 사실은 정 의원 아들과 아내는 그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뿐이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인 신당동의 아래쪽은 소위 적산가옥이라고 부르는 일본 사람들이 지어 놓은 번듯한 양옥집이, 위쪽으로는 한옥이, 산 쪽으로는 해방 후 가난한 사람들이 지은 무허가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신당동에서 보통 아이들은 내가 다니던 청구국민학교를 다녔고 조금 잘 사는 아이들은 학구제를 초월해서 건너편에 있는 장충국민학교를 다녔다. 정몽준과 박근혜는 장충국민학교의 동기동창이다.

나는 부자동네의 주변에서 살다보니, 비록 잠깐 동안이기는 했지만 명사들의 자녀들과 친하게 지낸 적도 있었다. 초대 서울대 총장과 문교부장관을 지낸 장기욱 박사의 손자, 문교부장관이었던 고광만 씨의 손자, 합참의장이었던 유병현 대장의 아들 등이 지금은 나를 기억도 못하겠지만 한 때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집도 내가 6 학년 때 과외공부를 하던 선생님 댁 근처에 있었다. 아마 박정희의 집은 잘 사는 동네의 거의 끝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박정희의 집은 깨끗한 적산양옥집이 있는 동네였고 그 집을 조금 지나면 한옥으로 되어 있던 못사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과외 공부를 하러 다니다 보면 가끔 군용 지프차가 서 있고 나보다 몇 살 어린 여자애가 타고 내리는 것을 자주 보았다.


90년도에 광나루 장로회 신학대학에 신앙 강좌를 하러 갔을 때였다. 그 당시는 총학생회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여서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강사로 나설 수 있었다. 강연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학생처장을 맡은 여 교수와 잠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분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변혁운동은 가진 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근거로 해서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변혁을 이루는데 큰 에너지가 되기는 하지만 미움은 사랑과 반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랑으로만이 자랄 수 있는 생명을 파괴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물었다. 나는 짧은 시간에 내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없기에 묵묵히 앉아 있었지만 이 분이야말로 참으로 문제를 피상적으로 밖에 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에게는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아 보이는 학생, 노동자 빈민은 사실은 증오심에 찬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감정은 그 교수가 아름다운 꽃을 보고 고상한 음악을 들으면서 좋다고 느끼는 것처럼 춥고 떨리고 배고프고 억울한 사람들이 자기의 아픔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다만 그 교수는 그런 현실이 자기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현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끄러운 불협화음으로 들릴 뿐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위장의 상태에 따라서 주위의 사물이 다르게 보이게 되어 있다. 배가 고프면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하여 감각이 예민해지기 쉽지만, 배가 부르면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즉 배의 기름기와 눈의 시력은 반비례한다. 기름기가 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는 사람들의 배고픔, 슬픔, 억울함 등이 정확하게 보이지를 않는다.

천국과 지옥의 있다고 믿는 이들에 한해서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누가 보더라도 선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될 때는 자연스럽게 천국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에 누가 보더라도 틀림없이 지옥에 갔을 것으로 생각될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판단을 하기가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종교는 나름대로 구원의 기준을 설정하는 교리라는 것이 있다.

예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했다. 지옥에 당첨된 부자가 '앗 뜨거워라!'하고 지옥이 얼마나 힘든지 사람을 보내어 경고를 해달라고 쓸 만한 제의를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하기 위한 더 이상의 예방 조치는 필요 없다고 한다. 지옥에 대한 홍보는 이미 충분히 되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있을 때 잘 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름기 낀 눈으로 보지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