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선장에 대한 비판이 커서 ‘선장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하루 일당 10만 원짜리 계약직 대리 선장에 대한 동정론을 폈더니 많은 사람들이 돈을 적게 받는다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을 합리화 할 수 있느냐는 이해할 수 있는 반론을 폈다.

이런 반응은 30년 전의 경험을 떠올렸다. 전방 지역에서 목회를 할 때 사단 군종참모의 부탁을 받고 사단내의 대대 급까지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부대순회를 끝내고 사단장이 감사의 뜻으로 식사를 초청한 자리에서 “사단장인 나도 우리 부대를 그렇게 돌아다니지 못했는데 우리 부대를 모두 돌아 다녀 보셨으니 느낀 점이 있으면 한 마디 해 주시요. ‘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대대장이 “요즘 사병들은 국가관이 도무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관을 좀 심어 주십시오.”고 말했지만 국가관은 대대장처럼 군인으로서 출세하겠다고 마음먹은 직업군인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국가의 종살이를 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사병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형식논리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단장은 껄껄 웃으면서 “군에서는 처음 지휘관이 된 대대장이 제일 무서운 겁니다.”라고 했다. 형식논리 상으로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병사는 마땅히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장은 비루하게 목숨을 구한 반면에 인솔 책임자였던 단원고 교감 선생은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자기의 책임을 졌다. 우리는 살아 있는 선장과 죽은 교감선생을 비교하면서 가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아마도 선장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목숨을 살 것이고 교감은 죽어도 죽지 않은 것 같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동네에 초상이 나면 3 대 독자 돌상도 차리지 않고 온 마을이 같이 슬픔에 동참 했다. 마을에 사는 한 사람이 죽은 것이지만 모든 이들이 슬픔에 동참하고 싸움도 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끼리 평소에 서운한 것도 풀어 버리는 기회를 삼았었다. 죽음 앞에서 그 시간만은 온 마을이 공동운명체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은 전국토가 초상집이다. 부모가 없는 자식이 없고 자식이 없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이번 사고는 국민 모두에게 슬픔과 충격으로 덮친 것이다. 지금 한국을 휩쓸고 있는 애도의 분위기가 원망과 비난의 에너지가 아니고 화합과 쇄신의 분위기로 승화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 과제이다. 여기에서는 가정으로 본다면 가장의 역할처럼 국가의 지도자의 역할이 결정적인데 불행히도 박근혜 대통령에게서는 그럴만한 가능성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지만 박근혜는 ‘인간은 미워하되 죄는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죄인지 조차 모르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같이 그가 살고 있는 상황에 의해서 절대적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설령 누군가가 죄를 저지르더라도 그 죄가 그가 기반을 둔 ‘형식’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그 존재에게 죄를 묻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죄를 묻고자 한다면 그 사회의 모순에게 물어야지 거기로부터 파생된 ‘형식’들에게 묻는 것은 그저 허무한 개그일 뿐이다.

지금 온 국민이 세월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간혹 미국 영화에 보면 월남전에 참전했던 제대 군인이 TRAUMA에 시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때린 놈이 그 정도면 맞은 놈은 어떻겠냐?’하고 묻고 싶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나는 지금까지 월남전에 참전했던 전우들 가운데 TRAUMA에 시달린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한국인이 미국인 보다 더 독종이어서 그런가? 아니다. 한국인은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서 면역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인이 분명치 않게 애매하게 겪는 일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겪는 일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다른 법이다. 뭣도 모르는 미국군들이야 군에서 가라니까 할 수없이 갔지만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했을 초창기에는 막연한 외국에 대한 선망, 돈을 벌어야 하겠다 등등의 이유로 대부분이 지원을 했었다. 당시 월남에 지원했던 많은 젊은이들은 가족을 위한 희생양(scapegoat)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 흔히 ‘고기값이라도 해보자.’ 즉 죽으면 보상금이라도 타서 부모님에게 효도하자는 자조적 진담(?)을 많이 했었다. 최소한 누구나 “내가 무사히 돌아가면 우리 집에 황소 한 마리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월남전 자체가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객관적인 자세를 갖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한국 군인과 비슷하게, 2차 대전을 치룬 일본 군인들도 TRAUMA에 시달리는 비율이 너무 낮은 것은 스스로를 윤리적인 책임의 주체로 설정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주장을 접한 기억이 있다. 한마디로 전체주의적인 윤리적인 감수성이라고 할까?

TRAUMA라는 측면에서 월남전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보면 미국은 개인적으로 겪고 있고 월남은 민족적으로 집단적으로 겪고 있다. 때린 놈은 개인적인 TRAUMA를 느끼지만 맞은 놈은 집단적인 TRAUMA를 느낀다는 것이다.

치렀던 전쟁의 성격, 정도에 따라 후유증도 다르게 나타난다. 월남전은 형식은 내전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외세와의 싸움이었고 한국전은 유엔 16개국이 참전하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기본적인 성격이 내전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외세와의 싸움이 아닌 우리 끼리 싸우다 지친 한국은 서로 간에 의심만 늘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트라우마는 이 나라가 내가 살아야 할 나라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한 인간의 현재는 과거 사건들을 기억하는 방식에 의해 구성되어진다고 한다. 나는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이 마음에서 나라를 지우는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지극히 염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