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센인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소록도를 떠올립니다. <당신들의 천국>이란 소록도 한센인들의 실상을 그린 이청준 작가의 소설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록도를 있게 한 오방(五放) 최흥종 목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흥종 목사는 구라(救癩)운동과 빈민운동, 그리고 민족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그의 활동무대가 주로 광주였다는 지역성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최흥종목사가 한센인과 운명적으로 만나는 장면은 소설가 문순태가 쓴 <성자의 지팡이>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최흥종은 원래 망치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왈패였는데 마음을 잡으려고 광주에 있는 의료 선교사의 집에 조수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목포에서 사역을 하던 포사이트 선교사가 한 나병환자를 나귀에 태우고 광주로 왔습니다. 온 몸이 썩고 고름과 진물이 흘러나와 송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포사이트 선교사는 환자의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고 부축하며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환자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놓쳐 버렸습니다. 포사이트 선교사는 곁에 있던 최흥종에게 지팡이를 집어달라고 했습니다.

지팡이에는 고름과 핏물이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엄두가 나지 않았지요. 겁이 나고 두려웠습니다. 주저하던 최흥종이 용기를 내어 지팡이를 집어서 나환자에게 지팡이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때 문드러진 나환자의 얼굴에서 작은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그 순간 최흥종의 가슴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확 밀려왔습니다. 최흥종의 마음이 깨어졌습니다. 자기 본위로 살던 최흥종이 예수를 만난 순간이었고, 이후 그의 삶이 한센인과 함께 하는 삶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최흥종목사의 삶은 이 땅의 수많은 최흥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최흥종 목사의 마음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단체가 ‘한국기독교 구라회’(救癩會)입니다. ‘기독교 구라회’는 42년 전에 설립되어 한센인을 위해 헌신해온 선교단체입니다. 하지만 ‘구라회’의 사역은 힘을 많이 잃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더 이상 한센병이 발병하지 않는 한센병 완치국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천대받고 버림받았던 한센인들의 아픈 삶도 이제는 점점 과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큰 축복이지요. 하지만 적지 않은 기금이 적립되어 있는 ‘구라회’로서는 한센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선교 과제를 발굴하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국내에서는 한센인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과제를 찾을 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구라회’에 최근 들어 새로운 소식들이 날아들었습니다. 동남아 여러 국가와 중국에서 한센병퇴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사역소식들을 접한 것입니다. 그 중에 중국 서안에 있는 상락인애원의 김상현박사의 사역은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의 소식이었습니다. 상락인애원은 한센병 환자 80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치료요양센타입니다.

이 상락인애원을 한국의 한 의사가 방문을 했습니다. 며칠을 그곳에서 봉사를 하며 지내던 중 한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를 아느냐?” 그랬더니 한센 환자가 대답을 했습니다. “잘 안다. 나는 그 분과 함께 산다.” 환자는 뭉개진 손으로 그를 이끌고 김상현 원장에게로 가서는 “이분이 예수다”하고 말했답니다.

김상현박사는 한국에서 잘 나가던 외과의사였습니다. 그가 온 마음을 다해 한센병을 돌보는 그 정성을 환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시아 각국에서 사랑을 가지고 수행하는 한센병 사역과 ‘한국기독교구라회’가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나는 작아지고 하나님은 커지는’ 생명과 희망의 울림이 아시아 곳곳을 가득 메우게 되지는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