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사무실 앞에 신문이 매일 한 부씩 놓여있다. 이 신문은 우리가 구독한 적도 없고 또 구독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 신문이다. 처음에는 옆 사무실 것이겠거니 혹은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으나 2~3일이 지나도 계속 놓여있는 것을 보고 문 앞에 ‘신문사절, 구독신청한 적 없음’ 이라고 써 붙여놓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사무실 앞에 놓여 있는 신문을 발견한다. 사무실 직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보다 강도 높은 문구를 써 붙여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신문사에 전화해서 항의를 해야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신고를 해야 한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몇 년 전 일들이 생각난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사들이 무가지 발행 및 구독 경품 경쟁에 열을 올리는 세태를 가만 놓아둘 수 없어서 정부는 신문고시인가 뭔가를 만들어서 자본을 배경으로 무한경쟁에 올인하는 거대신문사들을 견제하는 법안을 만들었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은 일단 신문을 집어넣고 보는 관행들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십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다시 이런 행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이 복잡하다. 거대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거대신문사들의 막가파식 위법행위를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결국은 돈이 승리하는구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 돈 있는 자들이 원하는 대로 원위치 되는구나, 법 위에 언론, 언론 뒤에 자본!
결국 돈이다. 돈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돈이 가장 강한 권력이고 돈이 가장 귀중한 가치인 세상이 되었다. 돈이 원칙과 법, 도덕과 인간의 존엄성 보다도 우위에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천박하다.

지난 4월 16일, 한국사회는 참담한 사고와 마주쳤다. 물론 처음 당하는 대형사고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여러 지점에서 다르다. 200여명의 열여섯 열일곱 청소년들을 포함한 300여명이 사망 혹은 실종되었다. 입시경쟁에 쫓겨서 죽어라고 공부만 해대는 청소년들이 모처럼 바람 쐬러 나선 수학여행길에 이런 참사를 당했으니 그들에 대한 연민은 다른 참사 때보다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고 일인당국민소득이 2만 불을 훌쩍 넘은 경제규모를 성취했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이었지만 사고를 수습하고 실종자들을 수색하는 과정은 후진국 수준이었으며 어느 것 하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은 현지상황과는 전혀 다른 희망적 메시지만을 읊어대었다.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투명하지 못한 사고 처리와 진행과정, 실종자 가족들에게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정보, 오락가락하는 사고통계,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 사고현장, 청해진 해운의 말도 안 되는 안전관리, 초기 구조활동 실패, 구조활동에 소극적인 해경조직, 언딘이라는 수중산업기업의 등장과 계약과정,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언론보도, 사복경찰의 등장, 다이빙벨을 투입하는 구조작업 거부, 민간잠수사들에 대한 배제, 관리들의 실수, 국회의원들과 극보수 인사들의 종북몰이, 여객의 안전을 담당해야 할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등등. 무엇보다도 국민을 분노하게 한 것은 구조활동에 대한 최고행정수반의 분명하고 납득할만한 약속과 사과가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대명천지 2014년에 버젓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결국은 돈 문제였다는 것이 보인다. 이미 몇 사람이 구조활동에 지출되는 재정문제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국가예산, 부처예산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을 텐데 이를 뛰어넘는 지출을 승인할 수 있는 선택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보는데 대통령은 이에 대한 약속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 해경이 자체적 재정부담을 안고 구조활동을 할 수 없기에 청해진 해운과 계약한 언딘마린인더스트리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도 역시 지적되었다. 여기에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부당한 구조변경을 실시했던 해운사와 이에 연루된 공무원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수익이 엉뚱하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유병언이라는 사람과 그 일파도 역시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결국 사고와 사고 수습과정에서 나타난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의 보이지 않는 배후는 돈이었다. 한국의 국가부채가 이미 1천조 원을 넘어섰다. 미국의 국방비가 1천조라고 해서 네티즌들은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하는데 이제 한국도 천조국 반열에 들었다, 부채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엄청난 국가부채를 짊어진 나라의 대통령이, 또 얼마가 들어갈지 모르는 막대한 구조활동, 사고수습 비용을 선뜻 허락하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업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청해진 해운이 합법적인 틀 안에서 배의 구조변경을 하는 것은 욕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익을 최대주주가 가져가는 것도 욕먹을 일은 아니다. 다른 기업들도 다 그렇게들 하면서 운영한다. 해경으로서도 비용이 나올 구멍은 없고 결재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괜히 나서봤자 나중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돈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런 입장을 이해하고 분노를 삭이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목숨보다도 돈이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이 상황에 기가 막힌다. 돈이 사람보다 먼저 고려되는 이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사람이 죽어가는데 돈,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긴 있는데 다른 곳에 써야 할 돈밖에 없어서, 돈 때문에 적극적인 구조를 지시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정상적인 대통령인가?

이번 참사는 돈, 돈, 돈, 노래를 불러대면서 돈을 상전으로 모시고 돈의 노예로 살아왔던 지난 수십 년에 대한 형벌이고 죄과라고밖에 할 수 없다. 국민의 안녕과 재산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대통령조차 돈에 발이 묶여야 하는 지금의 이 상황을 과연 누가 만들어냈을까? 결국 우리 자신이다. 기꺼이 돈의 노예가 되기로 하고 도덕과 윤리, 전통적인 가치와 공동체성을 기꺼이 내팽개쳐버린 우리 자신임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하여 결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중대한 상황을 맞이하였다. 사회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다. 한 청소년 희생자의 어머니는 자신이 ‘60평 집에 살면서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고 자식 공부시키면서 좋은 엄마라고 자부하였지만 결국 자식을 지키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는 살 수 없어 다 정리하고 이민을 가겠다’고 했다. 매번 대형사고가 났을 때마다 피해자 가족들이 ‘이 나라에서 못 살겠다, 이민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로지 자식들 키우는 노고와 재미 하나로 살아왔던 이들이, 그 자식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는 상실감과 죄책감에 의해 선포한 이민은 이전의 이민선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것도 200여명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그렇게 무참하게 스러져갔다.

4월 16일 이후부터 돈이 인생의 목표, 전부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순진한 게 아닐까? 지금이야 난리지만 몇 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돈이 우리 인생의 핵심으로 복귀할 공산이 물론 크다. 그것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가공할 권력이다. 그러나 온 국민이 세월호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의 국민의식을 전혀 새로운 목표와 도전, 차원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저 깊고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버린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은 돈에 의해 희생되었기에 남은 자들이 돈에 맞서 싸워주기를 바랄 것이다.

더 이상 돈 때문에 국민의 안전을 외면하는 지도자들은 필요 없다. 국민의 안녕을 위한 국가예산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국회의원도 필요 없다. 돈에 눈이 멀어 부당한 일을 행사하는 기업들도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 맘모니즘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위하는 자본이 아니면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산자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같이 눈물만 흘려주는 이웃들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