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지의 글로벌 네트워킹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50년 전 초등학교 시절 놀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고 나는 기억 속에 정착한다.
그리고 어린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높이뛰기를 한다.
아이들이 메뚜기처럼 폴짝 폴짝 잘도 타 넘는다.
저 정도면 나도 거뜬히 뛰어 넘을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든다.
아이들이 잡고 있던 대나무가 내 다리에 걸려 떨어진다.
다시 도전한다. 어린이들이 내가 또 실수 할까봐
양쪽에서 들고 있던 대나무 높이를 살짝 낮춘다.
이번엔 넘었지만 마른 논바닥에 엎어진다.

논바닥에 넘어져 허리를 움켜지고 나뒹구는 노인이 있다.
정신이 번쩍 난다. 아, 그게 나였다.
나는 어린이가 아니고 그들에게 이미 노인이었다.

세월은 유수처럼 또는 살처럼 빠르게 흐른다더니
지난 60여년의 세월이 하룻밤처럼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이 배려하느라고 대나무 높이를 낮춰 주던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
녀석들! 그냥 들고 있어도 되는데 왜 그 짓을 했을까!
분명히 초등학교시절엔, 내가 육상선수이며 높이뛰기 선수였는데---
인정해야 한다. 가는 세월 어떻게 잡을 수 있으랴!
이제 미련 없이 묵은 의자를 물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인생은 유한하고 어느 듯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남은 시간들만이라도 잘 떠나기 위하여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가는 세월 붙잡으려 하지 말고, 오는 세월 잘 맞이해야겠다.

따지고 묻고, 바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열정도 좋지만
지금 현재 나의 자리에서 행복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행복하고 내가 만족해야 남들도 즐겁게 할 수 있다.
행복은 열심히 일을 하는데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닌, 타인을 위해 헌신할 때를 말한다.
나 돈키호테 아직 할 일이 많다.
깊은 산속 골짜기 마다 나무 숫자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몸을 아파하며 내가 방문하길 기다리고,
산속 오지에는 이런저런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다만 산초와 로시난테가 없어 지체할 뿐이다.

얼굴에 땀과 때가 범벅이 되었어도,
입은 옷이 헤어졌고 몸에는 역겨운 냄새가 나도
마음엔 아직 때가 묻지 않은 너희들 시절이 좋은 때다.
가난하다고 너무 생활에 찌들지 말고,
잘 놀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라!
지금 좀 가난하드라도 좌절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라.
너희들 장래가 형통하리라!

행복은 과거에도 아니고 미래에도 아니고
즐겁게 지내는 너희들의 일상에서부터 이루어진다.
행복은 내일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 이루어야 한다.
지금, 오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거라.

한 쪽에선 카라바우 타고 노는 아이들도 있다.
카라바우는 몸무게가 300키로 정도 되는 거대한 소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힘센 물소다.
세월은 빠르게 지나 벌서 10여 년 전 카라바우를 타고
피나투보 화산지역 아이따 족을 방문한 적이 있다.
뜨거운 태양 빛이 내려 쬐는 화산재 위를 달려가는 마차위에서
검은 우산을 쓰고 자갈밭과 강물을 가로질러 약 10시간을 간적이 있다.
마차위의 모든 사람들이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도
카라바우는 지치지 않고 힘차게 마차를 끌었다.
참으로 힘센 짐승이다.

아이들 열 명이 카라바우 등에 올라타도 꿈쩍 않는다.
원래 덩치 크고 힘 좋은 동물은 맘도 좋다.
성나면 사자도 덤비지 못하지만,
잘 비위만 맞춰주면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
약 5년 전 팜팡가 평야지대 만딜리 니닝할머니 집사님댁 마을에서
쉽게 생각하고 카라바우 등에 올라탔다가
타자마자 등허리에서 미끄러져 낙상하여 한 참 고생한 적이 있다.
옛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카라바우에 올라타다.
맘 좋은 카라바우가 아이들은 태워주고 나는 넘어뜨릴 수 없어
오늘은 그냥 참고 봐 주는가보다.

방과 후 카라바우를 타고 노는 마을 아이들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어제 저녁에 만났던 꾸보의 아이들이 이른 아침 분주히 학교에 간다.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을 따라가 본다.
마른 논을 지나고 또 마른 개울 자갈밭을 지나 언덕을 올라
다시 꼬부랑 오르막길을 통과해 학교에 도착한다.
언덕 위 조그만 교실로 아이들이 몰려들고 이어서 담임선생님이
남편의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도착한다.

오전 수업만 마치면 집에 가서 또 다시 어제처럼 놀 수 있다.
학원에 갈 필요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다.
어제처럼 마른 논에 모여 높이뛰기 하다 지루하면 딱지치기하고
그래도 지루하면 카라바우 타고 논다.
어쩌면 외국인 선교사 할아버지가 사탕을 사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그 때는 땡잡는 날이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시를 채우고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외국으로 진출한다.
보건소 간호사로 있던 이가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직했고
나의 클라이언트 한명이 두바이 촬영기사로 갔고,
한 사람은 싱가포르로 갔다.

생기는 대로 낳아, 여자 나이 스무 살만 되면
아이를 두세 명 낳아 데리고 다니고
아이들이 크면 세계 각지로 나가 외화를 벌어 와
고향에 멋진 집을 짓고 사는 게 꿈이다.
앞서 외국에 다녀 온 어른들이 그렇게 돈을 벌어 넉넉하게 사는 바람에
읍내나 시골에서 가끔 멋진 호화 주택을 보게 된다.

그런 호화 주택들은 크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아이들은 언젠가 자기도 외국에 나가 돈을 많이 벌어와
보란 듯이 큰 집을 지어 종을 두고 사는 게 꿈이다.
전 세계 노동시장에서 벌어들여오는 이들의 임금이
필리핀의 경제흑자를 이루어낸다.

이른 아침 등교하는 어린이들

필리핀 사람들은 인터넷의 페이스북 통신을 즐겨한다.
내가 다녀 본 나라 중에서 이 나라 사람들만큼
페이스북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못 보았다.
이곳의 사람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척형제 부모들과 가장 신속하고 값싸게
통신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페이스북을 통한 문자통신이다.
이곳 사람들은 어른이고 어린이고 틈만 나면 페이스 북을 한다.
외국에 근로자로 나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가족들에게
페이스 북을 할 수 있는 핸드폰을 선물하고
매일 그것으로 채팅하며 소식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대부분 각 가정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사진을 올리거나 통신하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스마트브로라는 인터넷 송수신기를 구입하고
사용할 때마다 매일 50페소의 충전비용을 내야 한다.
이들에게 이 비용은 적지 않은 금액이다.
보건소의 간호사들도 충전비용이 부담되어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브로를 빌려서 통신 하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브로는 한 사람만 사용하게 되어있다.
하여 내가 인터넷을 하는 동안
간호사들이 나의 스마트브로를 빌리려고 기다린다.
내가 마칠 때 까지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모두 함께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어느 날 바기오에 갔다가 포켓용 스마트브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만 있으면 여섯 명이 동시에 무선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다.
비용은 좀 들지만, 간호사들을 위하여 하나 구입하였다.

포켓 스마트브로를 켜서 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내 주위에서는 항상 인터넷이 작동된다.
하여 간호사들이 나를 칭하여 “걸어다니는 와이파이”라고!
기분 좋은 말이다. 기분 좋은 일을 하게 되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경찰관들도 내 옆에선 인터넷이 터진다. 비밀번호를 알려달란다.
가난한 나라에 와서 지내면서 이들에게 무엇이든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삶을 살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다.
무료로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된 간호사들이 매우 좋아한다.
하여 틈만 나면 그들의 노트북이나 핸디폰을 들고
이층 내 클리닉으로 슬며시 올라와 와이파이에 접속하여
페이스 북으로 친구나 외국에 나간 형제들과 소식을 나눈다.
간호사들이 항상 내 옆에 모여 있으니
이제 간호사 부르려고 일부러 아래층에 내려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조금 배려하니 나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왔다.
나눔이 있는 곳에 풍요가 있고, 풍요한 가운데 은혜가 깃든다.
적은 것이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누군가와 공유하려하려 하니
기쁨과 은혜와 감사가 이루어진다.

간호사들이 내 클리닉에 와서 틈틈히 페이스북 채팅을 즐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