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젊은 엄마의 야무진 꿈
   (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어느 집 가장이 하루 종일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고생하고
퇴근 후 집에 가면, 반겨주는 이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밖에 없단다.
모두들 각자 자기 방에서 자기 일 하느라 바쁘고,
부인 역시 본체만체 자기 일만 하는데,
강아지만은 매일 변함없이 꼬리를 흔들며
좋아 죽겠다고 대들며 반가워한다고!
하여 그는 강아지 아니면 집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꾸보 하우스의 에밀리네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들릴 때마다
내가 먼저 친절하게 인사하기 전에는 모두가 무덤덤하다.
무얼 받으려고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무덤덤하니까 자주 방문하기도 그렇다.

어제 아침에는 처음으로 에밀리네 꾸보를 지나쳐 다른 꾸보에 들렸다.
그동안 에밀리네만 관심 갖느라고 다른 꾸보엔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 가보는 마을의 입구가 매우 평화롭게 느껴진다.
한국 황소의 약 두 배 정도나 되는 큰 카라바우가
마을 어귀 고목 아래에서 평화롭게 짚을 먹고
덩치 큰 소 아래서 닭들도 열심히 모이를 주워 먹고
넓게 펼쳐진 논에는 벼들이 풍요롭게 자란다.
물이 없어 메말라 비가 올 때만 기다리고 모를 심지 못하는
에밀리네 집 논과는 대조적으로 풍요로운 모습이다.
도보로 불과 3분 정도 떨어진, 큰 길하나 건너
이렇게 다른 환경에 사는 꾸보 하우스가 있었다.

논 가운데 봇도랑에는 물이 넉넉히 철철 넘쳐흐르고
한 여인이 작프릇 나무아래 도랑물에서 이른 아침부터 빨래를 한다.
비록 낡았지만 논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농막 같은 꾸보에서
이제 겨우 32세 된 젊은 부부가 자녀 셋을 낳고 농사를 지으며 사는 곳이다.

어제 아침에 방문한 후, 풍경이 너무 정겨워 오늘 아침 다시 방문하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 가고, 남편도 논에 일하러 가고,
두 살짜리 젖먹이만 엄마가 안고 집안일을 하다가 나를 보자
어제 봤다고 반갑게 맞이해 준다.
에밀리네 가정에서 받아보지 못한 환영이다.
미리 준비해간 예쁜 옷 두 벌을 선물하고 아기에겐 사탕을 한 봉지 주다.
너무 좋아하다. 그가 좋아하니 나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무감각 무반응 에밀리네 꾸보에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한 기분이다.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인 ‘호응’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무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도
상대편이 기분 좋은 반응을 보이니 더욱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해서 들어오는 가장을 강아지처럼 반갑게 반겨준다면
그 가장은 죽을힘을 다해 가족을 위해 더욱 헌신하고 사랑할 것이다.
이제 에밀리네 꾸보에만 가지 말고,
다른 꾸보에도 자주 방문하며 그리스도의 교제를 넓혀야겠다.
에밀리 가족들의 무덤덤한 태도에 실망 하면서
나 스스로 인간관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는 게기가 되다.

내가 이 집에 방문한 것을 건너편 논의 꾸보에서 젊은 부인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가 아기를 안고 놀러왔다.
그녀도 반가워하며 다음엔 자기 집에도 와 달란다.
방문해 달라는 말이 너무 반가워,
오후 퇴근시간 후 조깅시간엔 그녀의 꾸보에 들렸다.
논에 일하러 갔던 남편이 일찍 돌아와 집안 청소를 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 마침 아기 생일이라며 샐러드 한 접시를 차려 땅바닥에 차려 준다.
별로 맛이 없지만, 차려준 성의에 감사하여 맛있다며 한 접시를 다 먹어주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헤어지는데 남편이 내일 아침 또 오라고 인사를 한다.
아! 이렇게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매일 무덤덤한 집만 들렸다가 혼자 서운해 했을까!

우리 주님께서도 나의 마음처럼
사모하는 영들에게 좀 더 가까이 하고 싶으시리라.
늘 마음속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성령으로 내게 다가오시는 우리 주님 서운하지 않게 해 드려야겠다.

아기 생일에 샐러드를 했다고 대접하여 먹는 중이다.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그냥 매일 가서 일하면 안 될까요?”
“글쎄?, 한 번 생각해 봐야겠는데.”
“우린 집도 없어요. 이 꾸보도 남편 누나네 거예요.
빨리 돈 벌어서 집도 장만해야 되고 아이들 학교에도 보내야 돼요!”

오늘 처음 방문한 웽(weng)의 말이다.
남편이 한 살 된 아기를 안고 얼러주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부인 웽의 말 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눈치다.
부인이 머리에 이고 온 사료부대를 한 번 들어 보고 내 머리에도 이어보다.
이제 겨우 25세 된 가냘픈 여인이 어떻게 이 무거운 사료를 머리에 이고
30분이나 걸어야 하는 험한 길을 걸어내려 왔단 말인가!
누구나 환경에 적응하며 살기 마련이지만
참으로 이 곳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억척인 것 같다.

좌절과 실망은 비굴함이며 추함이고
도전과 열정은 용감함이며 아름다움이다.
이들이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성공하겠다는 삶의 태도는
참 보기 좋은 젊은이들의 건전한 생활 모습이다.

에밀리만 열심히 사는 줄 알았더니 이 여자는 더 열심히 사는구나.
웽은 매일 아침 7시에서 오후 4시까지 시청 옆 마켓에 가서
가게 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휴무 날은 컨셉션 바랑가이에 가서 어린이집 식당일을 한다고.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어떻게 나를 도와주려 하는지.
그녀 말따나 빨리 벌어 집도 장만하고 땅도 장만하려고 열심히 사는가보다.
그렇게 바쁜데 세탁은 언제 와서 하느냐니까
마켓에서 일을 끝내고 나한테 들려 세탁물을 가지고 와서
밤에 빨아 널어 말려 그 이튿날 가져가면 된다고!
일마치고 나면 늦은 시간이라 빨리 집에 와서 가정 일을 해야 하므로
내 세탁물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세탁한다는 거다.
때로는 이불도 빨아야 하고 양이 많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가져오느냐니까

“염려 없어요, 충분히 가져 올 수 있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나서 다시 하는 말이
“매일 가서 일하면 안 되겠느냐?” 묻는다.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몇 푼 받는 것 말고,
매일 할 일거리 좀 달라는 이야기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내가 바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내 숙소에 가사도우미가 있어야겠다고 말하는데
아마 이 아기엄마도 어디서 나에 관하여 들은 말이 있는지
그런 질문을 대뜸 한다.
이곳의 가사도우미 급료는 얼마 안 된다.
한국의 10분의 1 정도나 될까?
그것도 하루 종일 쓰는 게 아니고
저녁나절에만 잠깐 시간제로 쓰는 것은 불과 얼마 안 된다.
나에게 일도 안 해주고 공짜로 도네이션 받아가는 금액에 비하면
가사도우미는 거저 쓰는 거다.

벌써 아이를 둘이나 낳아서, 낮으론 친정 동생에게 맡기고,
두 젊은 부부가 허리를 졸라매고 열심히 살며
사정하다시피 부탁하는데 어찌해야 하나!
일단 내일 와서 일을 하겠는지 한 번 들려 보라고 하다.
그러지 않아도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세탁해 주던 아주머니가
아기 봐주는 일이 생겨 못 오겠다하여 다른 사람을 물색하던 중인데
가능하면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겠다.

퇴근 사이렌 소리를 듣고 나오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서쪽 하늘을 평풍처럼 가리고 있는 약 2000미터의 높은 베상파스 산이
석양을 일찍 가리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방문한 가정에서 대화가 너무 진전된 것 같다.
어둡기 전에 논길을 빠져 나가야지
혹시 논길에서 밤에 뱀이라도 만나면 어찌하나.
이곳의 큰 뱀은 5미터 이상이나 되고
사람도 한 입에 삼켜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늘 장칼을 허리에 차고 다닌다.

허리에 항상 무거운 장칼을 차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2014년 2월 19일 수요일

평소보다 일찍 서둘러 조깅을 나가다.
어제 처음 만난 웽이 아침 일찍 일 나간다기에
출근하기 전에 한 번 더 그 가정을 방문해 보고 싶어서이다.

이른 아침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긋모닝 써’ 하면서 인사를 한다.
나도 답례로 ‘긋모닝’하며 인사를 받아주다.
잘 모르는 사이라도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으니 기분이 좋다.
다정한 인사는 서로에게 활력을 가져다준다.

7시 정도에 논두렁길을 걸어 막 웽네 집에 도착하려는데
웽의 남편이 일터에 간다고 꾸보에서 나오면서 웽은 벌써 출근하였다고!
젊은이들이 참 부지런도 하다.
웽은 한 살짜리 아기를 안아다 친정 동생에게 맡기고 일 가느라고
아침 일찍 벌써 집에서 떠난 것이었다.
웽의 남편은 지금 논에 일 나가면 오후 5시는 되어서 들어온다고.

빨랫줄의 빨래들이 정겹게 느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