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2014년 2월 10일, 월요일

꼬치장사도 별 재미가 없다.
며칠 동안은 아이들이 호기심에 와서 사 먹었지만
가난한 마을에서 매일 와서 군것질할만한 가정형편이 되는 아이들이 없다.
에밀리가 전에 살던 마을에도 몇 번 가서 장사를 해 보았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허는 수 없이 이번엔 나무장사를 시작했다.
논에 가던 날처럼 온 가족이 아침 일찍 산으로 나무하러가다.
걸어서 약 2시간 걸리는 먼 산으로 가야한다.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나무의 양은 일인당 두 단이다.
장날 시장에 가서 잘 팔면 한 단에 50페소 받을 수 있으니
열심히 쉬지 않고 나무를 하면 하루 100페소를 벌게 된다.
모내기 하던 품삯에 비하면 3분의 1도 안되지만
그러나 놀면 어찌하나 한 푼이라도 벌어야 먹고살지.
한 단이 얼마나 무거운지 마른 논에 뉘어 놓은 나뭇단을 들어보다.
만만치 않다. 몇 번 쓰러지다가 간신히 들어 올리다.
여인의 몸으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메고 산에서 두 시간을 걸어 내려오다니!

에밀리가 피곤한 가운데도 짬을 내어 강에 가서 다슬기도 잡아왔다.
옆에 서 있던 올케 조안이 아주 좋은 특식이라고 나에게 소개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다슬기로라도 영양 섭취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사실 에밀리는 먹으려 한 게 아니고 팔려고 잡아온 건데
양이 작아 가족 끼리나 먹으려 한 거다.
배가 불러 잡으러 가지 못하는 조안이 좀 얻어먹고 싶어 하는 눈치다.

부모들은 힘들어도 아이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각자 여기저기 흩어져 평화롭게 논다.
에밀리의 큰 아들이 어디서 사탕수수 가지를 하나 가져와서 잘라 아이들에게 주니
아이들이 여기저기 앉아 간식으로 맛있게 씹어 먹는다.
초등학교 4학년 다니는 아이는 친구와 함께 칼로 나무를 다듬으며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다.
각 꾸보에선 누군가 한 명씩 장작불을 피워 밥을 짓고
허연 연기가 저녁노을을 따라 서산으로 올라가고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까만 하늘에 선명한 달과 별들이 초롱초롱 빛날 것이다.
뜨거운 낮보다 아이들에겐 가족과 함께 쉴 수 있는
별이 빛나는 선선한 밤이 더 즐겁다.
도시의 시멘트 문화가 아직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이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순수한 자연 생태적 삶이다.

이들은 가난할 뿐이지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다.
이들도 남들처럼 세끼 밥을 먹고살며, 잠잘 수 있는 꾸보도 있다.
들에 돌을 받쳐놓고 솥을 걸어 나무로 불을 때어 밥을 한 후
맑은 공기 속에서 한 접시씩 밥을 담아 여기저기 앉아 먹는 모습은
도시인들은 특별히 캠핑이나 가서 할 수 있는 낭만적인 모습이다.

보호해줄 부모와 고통을 함께해줄 가족이 항상 옆에 있고
밤에는 모깃불 피워 놓고 온 가족이 모여 별을 헤며 노래를 부르고
어린아이들은 그 틈새에서 재롱을 피운다.
꾸보가 좁아서 가족별로 모두 모여 함께 자야하는 불편이 있지만
한밤중엔 몹시 추워 서로 꼭 껴안고 몸을 데워주며 자니 행복하다.
도시인들의 시각으로 이들을 불쌍하고 천하게 바라보면 안 된다.
도시인들처럼 풍족하게 살지 못할 뿐이지
하루하루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근면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에서 가끔
때 묻지 않은 인간의 원초적 생활모습을 발견한다.
도시의 때, 학문의 때, 탐욕과 욕망의 때, 위선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처럼, 어린이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하늘나라의 삶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선교사는 섣불리 이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개선하거나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오만한 도시국가의 문화를 선보여 이들이 문화적 충격을 받도록 해서도 안 된다.
이들의 사는 모습 그 자체를 존중하고
때 묻지 않은 그 순수한 자연 생태적 일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늘과 별과 새소리와 물소리 등 자연의 화음 속에서
하나님의 푸근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일로 그쳐야 한다.
지나치게 삶에 간섭하는 것은 돕는 게 아니고 침략이며 정복이다.

아이들이 나뭇단에 앉아 사탕수수를 맛있게 씹고 있다.

2014년 2월 14일, 금요일

꾸보 뒤 마른 논 한가운데서 어른과 아이들이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여
웅성웅성 대며 무언가 열심히들 하고 있다.
아침에 갔을 때 이집 개가 어디서 몹쓸 것을 먹고 와
힘이 쭉 빠지고 몸이 처지며 죽을 것 같은 것을
가족들이 살려보려고 애쓰더니 결국 죽은 모양이다.
사람들이 먹을 양식도 풍부하지 않아 개들도 충분히 먹이지 못하니
개도 거지처럼 이곳저곳 먹을 것 구하러 다니다
아마 썩어 독이 된 것을 집어 먹고 죽은 모양이다.

죽은 개를 잡아 동등하게 여섯 무더기로 나누느라고
온 가족들이 모여 분주하다.
아이들은 어른들 뒤쪽에서 장작개비로 불을 피워
어른들이 몇처럼 던져준 고기를 굽고 있다.
고기를 분배하던 청년들이 장난으로 나도 먹고 싶으냐고 묻는다.
질겁하며 싫다고 하니, 그 모습을 본 옆에 있던 아이들이 더 장난을 피우며
불에 굽던 시커먼 고깃덩어리를 내 입 가까이 갖다 대며 먹어 보란다.
이들에겐 오랜만에 고기를 섭취할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 난도질해서 나누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다.

너무 가난하면 양심도 저버리게 되고
거기다 배고프기까지 하면 이성까지 잃어버린다.

몇 년 전 중국 단동에서 백두산 가는 관광버스의 안내양이
마침 북한에서 단동으로 유학 온 아가씨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북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선 너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를 몰래 잡아다 삶아 먹는 사람도 있다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건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이다.
동물도 자기 종족은 잡아먹지 않는다.
가난은 인류가 힘을 합쳐 물리쳐야 할 인류 최대의 적이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배고파하는 이들을 푸지게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주님께서는 절대로 가난한 이들이나 병든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시며 하신 말씀이 있다.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보내시다”(눅9:1-2)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과 동시에 앓는 자를 고치는 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과 육신의 가난을 물리치는 일이다.

에밀리 가정에 경사가 났다.
그의 남편 무표정 사나이가 취직을 하게 되었단다.
에밀리가 좋아서 자랑을 감추지 못한다.
세르반테스에서 베상파스 산을 넘어 약 세 시간 걸리는 곳에
라우니온 주 산후안이라는 시의 쇼핑몰에 취직이 되어
4월 1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고!
대형 몰이라 100여명이나 되는 많은 노동자를 뽑는 바람에 취직이 되었고
2년 계약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요즈음 일거리가 없어 매일 놀고 있는 중인데 참 잘된 일이다.

오늘은 발렌틴 데이라고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인사가 선물 달라는 거다.
에밀리도 나를 보자 발렌틴 데이라고 선물을 달란다.
하여 “네 남편은 너에게 무슨 선물을 주었느냐?” 물으니
부끄러워하며 자기 볼에 뽀뽀해 주었다고!
잘 안 되는 영어지만 “자기에게 마음으로 사랑해 주었다”며 행복해한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초가삼간도 없어 비록 땅바닥에 볏짚을 깔고 사는 가난한 살림이지만
발렌틴데이를 맞이하여 부인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해주었다니!

무엇이 행복일까?
꼭 고관이 되고 저택에서 종을 부리며 살아야 행복할까?
어디에 살든지 온 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위해주며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
무표정 사나이가 그래도 부인하나는 잘 위해주는가 보다.
가난하지만 꾸보의 가족들은 늘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산다.
그래서 자녀를 많이 낳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눅17:21)
꾸보네 가족의 행복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에밀리 남편이 막내 딸을 안고 큰 아들과 아침식사 할 라면을 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