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참 증인들 

                                                           정훈영 전도사(단비교회)

석원이 할머니 - 66세의 노인으로 몇달전 할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사시게 된 할머니이다. 실제 나이보다 한참은 늙어 보이시는 허리가 굽고 건강도 약해 보이시는 이 분 집에서 오늘 마당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석원이 할머니가 혼자 몸으로 벼농사와 밭농사의 많은 일을 추수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지난 5월 초에 같이 사시며 건강하게 일하시던 할아버지가 일하는 도중 갑자기 쓰러지셨다. 할아버지가 병원 신세를 5개월 가량 진 후에 돌아가시자 할아버지가 시작해 놓으신 논과 밭의 일을 할머니 혼자서 힘겹게 감당하셔야 했던 것이다.

할머니가 단비교회에 나오시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시고 몇주가 지난 후였다. 단비교회가 개척된 지 1년여만에 이 동네의 두번째 신도가 되신 것이다. 첫번째 신도는 경희 엄마 - 이 분은 지금 교회에 나오시기가 힘든 형편에 있다. 교회에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라 교회에 나오기가 무섭게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입원해 있기 때문에 간호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우리 교회의 처음 결신자는 당시에 100% 중환자의 가정에서 나온 셈이다.

믿는 신자들이 없이 시작된 교회이기에 결신한 두 분의 신자들을 볼 때 더없이 반갑고 기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걱정이 생기기도 하였다. 한 분의 경우는 지친 삶의 환경 가운데서 어렵게 교회를 찾아나왔는데 몇 달 나오지도 않아서 병원에서 불구가 될지도 모르는 남편을 간호하는 처지가 되었고 또 한 분의 경우는 교회에 나오기 이전에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긴 했지만 연세가 많이 드시고 병세가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여간 부담을 주는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통속적으로는 - 그것이 믿음이건 아니건 - 교회가 부흥하려면 환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거나 무언가 특별한 일들이 교회를 통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환자 한 분은 한동안은 회복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악화되어 돌아가시게 되었고 또 한 분의 가정은 현재로선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사람으로 회복되기 힘든 진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 마을에 교회가 생기자마자 이런 재난이 생긴다고 말이 나돌 성 싶은 상황이다. 아니면 적어도 교회에 나가도 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 쉽상이다. 그야말로 무기력한 교회, 별 수 없는 교회가 되어버리면 어찌하나 걱정이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목회자로서의 걱정이  하나 있게 마련이다. 혹시나 이 두분이 도중에서 교회 나오기를 포기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다. 입원해 있는 두 남편의 치유에 가장 큰 관심이 있어서 모름지기 교회에 대한 기대감이 하나님이 두 분을 기적으로 일으켜 주시리라 믿는 마음이 있을텐데 일이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아직 믿음도 초년생인 이들이 실망하지나 않을까 걱정인 것이다.

왜 하나님은 기왕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다면 기적을 나타내시거나 눈에 들어날만큼 위압적인 일들을 만드셔서 마을 주민들을 깨닫게 하시지 않는 걸까? 참으로 힘든 질문이며 하나의 큰 유혹이다.

개척교회 목회자라는 자리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걱정하는 것과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 지금에 와서는 근심가운데서 평안을 더 크게 내리는 섭리와 신앙과 삶의 진실된 면이 무엇인가를 이 두 성도를 통해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이다.

이 두분은 뜻밖의 재난과 계속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가신다. 이분들은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신앙을 핑계삼아 원망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간절한 삶의 염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일이 잘못되어 간다고 그들이 다시 찾은 마음의 기쁨과 삶의 의미를 희석시키지는 않는듯 하다. 혹시 이런 재난을 만났다 하여도 이제까지의 눌리고 고통받아온 삶에 더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밖에 할 수 없는 것이리라.

흔히 기복적인 신앙형태를 조장해야만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나에게도 그러 기대감이 당연히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삶의 진실과 깊이를 깨우쳐 주신다. 모든 일이 잘 되기만을 기대하며 축복의 논리에 기대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내용없는 신앙일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기대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두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참으로 기적적이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구약의 욥의 신앙이 기적이듯이 이분들의 믿음도 그러하다. 이 분들이 지켜나가는 신앙은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다. 물론 목회자의 도움이 조금은 있었겠지만 그 믿음은 그분들 마음 깊숙이에 진실의 씨앗으로 심겨져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들로부터 사람들에 대한 신뢰심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목회자가 사행심을 조장해야 생겨나고 커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씨앗은 이미 고통받는 이웃들의 삶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다만 목회자가 해야할 일은 그 믿음의 씨앗이 싹틔우도록 돕기 위하여 아낌없이 ‘사랑의 봉사’를 하는 것 뿐이다. 성경의 말씀대로 자라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닌가.

이 동네에 와서 살게 된 이후로 ‘노인촌’이 되어버린 이 농촌에서 그분들의 도움이 되고자 애써 왔다. 그분들의 삶과 분리된 고립된 교회안의 기적보다는 아무 댓가도 받지 않고 성심껏 그분들의 고된 삶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굳이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첫 증인으로서 석원이 할머니와 경희 엄마 그리고 많은 주민들이 있다. 두분의 신도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두 분 신도의 가정이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교회를 비난하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교회의 최종 내용이자 하나님의 본성이신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푸른언덕  

     설겆이 목사

           최경모 목사(베들레헴교회)   

설겆이 목사! 듣기에도 별난 명칭이다. 이 명칭은 목회생활 12년째에 동창 목사에 의해 주어진 이름이다.

인연도 지연도 학연도 없는 생면부지의 땅 경상도에서 10여년 간의 목회생활을 하고 서울로 부임했던 88년 6월에 ‘대광 14회 교역자회’가 조직되었다. 이 모임은 대광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생들이 졸업후 25년 만에 만나고 보니 동기졸업생 중 다수가 목회자가 된 소식을 접하고 첫번 모임에 7명 목회자가 모여 결성한 조직이었다. 수소문 결과 국내외에 30여명이 목회자인 것이 확인 되어 격월로 정기적으로 모여 지금은 ‘큰벌세계선교회’란 이름으로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부산 늘노래선교단의 유의신 목사가 시무하는 믿음찬교회로 정기모임차 서울에 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동승한 버스안에서 각기 그간의 삶을 이야기 하는 중 나의 목회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 동창 목사가 “최목사, 그러고 보니 ‘설겆이 목사’군” 하는 말에서 나의 별명이 ‘설겆이 목사’가 된 것이다.

70년 4월에 군에서 제대해서 집에 있는데 당시 노회장이시던 이지수 목사님께서 찾아오셨다. 일산에 살던 우리 가족이 출석했던 교회를 시무하신 목사님이시기도 하다. “최전도사! 마지막으로 교역자를 구해보고 없으면 교회 하나를 폐교회하려는 참에 전도사님을 찾아왔오” 하고 말씀하시는데 당시 내 마음속에 의분이 일어났다. ‘아니, 교회가 문을 닫다니, 우리 주님이 피값을 주고 세운 교회가 어찌 여느 구멍가게나 회사처럼 문을 닫을 수 있단 말인가?’

노회장 목사님께서 언급한 문제의 교회의 위치, 형편, 사정 등을 물어보지도 않고 당장 “목사님 가십시다.” 하고 동행하여 나섰다. 광탄중앙교회 홍중현 목사님을 찾아뵙고, 세 사람이 택시로 문제의 교회에 당도했다. 북한산과 연계되어 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양주 소재의 조그마한 산골 마을에 10평 정도의 흙벽돌로 지어진 예배당이 있었다. 양주군 백석면 영장리 소령원 입구에 있는 영석교회였다. 10여년 전에 시작되었던 교회가 교역자 재임기간의 오랜 공백으로 교인들이 전무하여 건물은 있었으나 폐교회 직전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의분이 일어났기에 답사하고서 두 분 목사님께 이 교회에서 시무할 것을 지체없이 말씀드렸다. 총각 전도사로 이 교회에서 3년 동안 유년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성경구락부를 개설하여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면서 마을마다 전도하여 맨발로 뛰다보니 약 20여명의 교인들과 50여명의 유년주일학교생, 10여명의 청소년들이 모이게 되었다.

하루는 당회장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 주일에 원당에 있는 한 교회에 가보세” 나는 웬 일인가 하고 자초지종을 여쭈어 보았더니 열심히 영석교회의 부흥에 전념하고 있던 나를 좋게 보시고 신학교에 통학하기 쉬운 곳으로 임지를 옮겨 주시려던 호의였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양쪽교회의 당회장 목사님들끼리 결정하시고 나는 그곳 예배당에 가서 인사만 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다녀와서 당회장 홍목사님께 항의했다. “오랜동안 교역자 공백으로 폐교회하려했던 영석교회를 제가 떠나면 후임 교역자가 또 공백이 될 터인데 그건 안됩니다.” “최전도사는 신학교 복학을 안할 것인가?” “그렇다면 당회장 목사님께서 교역자를 선정해 주셔서 저와 인수인계가 된다면 목사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목사님께서 후임 교역자를 보내주셔서 74년 3월에 원당 소재 삼릉교회로 부임하였다. 이렇게 교역자가 계속 시무하였기에 영석교회는 대지를 구입하여 파주쪽에 새 예배당을 아담하게 짓고 오늘의 고령교회(후에 개명함)가 되어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두번째 교회 삼릉교회에서는 신학교를 복학하여 목사안수 때까지 시무하였다. 목사안수 직후 서울에 개척교회를 하려고 기도도하고 목동, 상계동 등을 답사하기도 했는데 마땅치 못하여 지체하는 중에 생면부지의 경상도 포항 모교회로부터 청빙서신을 받았다. 마침 노회가 개회중이어서 증경 홍회장 목사님께 그 교회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여쭈었을 때 총회장님의 대답은 간결했다. “최목사가 그 교회를 어떻게...?” 하고 그 이상의 말씀은 없었다. 한마디로 부정적 견해가 아닌가? 마침 노회소속 군목중에 해병대 군목으로 포항에 근무하는 분이 두 분이 있었다. 이들 군목들에게 여쭈어 보니 한 분은 “그 교회는 안돼요” 갓 임관한 군목은 “그 교회 아무개 장로가 한다는 교회 아니요? 그 장로하고는 교회가 안된다고들 합니다.”라는 부정적 언질을 들었다. 그런데도 성령의 인도인지 자꾸 호감이 가면서 3차례나 물었지만 계속 부정적인 대답만을 들었다. 하나님의 인도로 결국 그 교회에 부임하였다. 사실 부정적 견해를 이미 들은 바 그대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같은 ‘설겆이 목사’를 통해서 교회가 부흥케 하셨다. 교인수의 증가로 예배당도 확장 이전하고 문제점을 해소하고 정식으로 당회를 구성하기까지 하였다.

그 이후 시무했던 교회마다 문제점들이 해소되어진 우여곡절의 목회담을 이곳에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동창목사가 듣고 ‘설겆이 목사’라고 별명을 지을만한 나의 목회생활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목회가 모두 하나님께서 나의 은사를 따라 사용하여 이루어 주신 것이라고 늘 생각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과 천대 멸시를 감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이 글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만 돌릴 뿐이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심에 따라 순응만 하면, 비록 징검다리 중 하나의 큰 돌멩이와 같은 역할이라도 잘 감당하면 유명한 목회자는 아니더라도 훌륭한 목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푸른언덕

   성공회 선교 100주년

                                                                     박성규 (강화)

1893년 7월 영국인 선교사 워너(한국이름: 왕란도)는 염하강변 마을인 강화 갑곶리에 조그만 가옥을 세내어 머무르며 선교를 시작했다. 이듬해 새 한옥을 정하여 성 니콜라 성당으로 명명하고 본격적인 선교에 돌입했다. 성공회 초기 선교의 특징은 갑곶리 선교부의 길강준 신부가 ‘조만민광’이라는 교재를 사용하여 행한 성경교육이었는데 서구식 학습방법을 도입하여 한국인 선교자를 양성할 목적 아래 이루어졌다. 초기 강화 선교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는데 여기에는 의료선교사로서 헌신적으로 봉사한 로스의 공헌이 컸다. 그는 외국인이었지만 강화인과 다름없이 생활하며 희생적으로봉사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헌신적인 선교사들의 활약과 현지에서 교육받은 전도인들의 활동에 힘입어 성공회는 한때 강화 전역에 24개에 달하는 성당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한국성공회의 몿자리로 일컬어 지고 있다. 성공회를 대표하는 김성수 주교나 교회협 인권위원회 위원장에 피선된 김재열 신부등 많은 인물을 배출해 내고 있기고 하다.

현재는 교세가 많이 위축되어 12개 교회에 12명의 신부, 보좌신부가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신앙의 토착화라는 묵은 과제에 한국성공회는 많은 기여를 해왔는데 특별히 강화의 성공회가 돋보이는 것은 강화읍 성당과 온수리 성당의 한옥 구조나 강화읍 성당에 심어진 두뿌리를 가진 노거목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특히나 강화에 있는 성공회 신부님들은 지역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여러모로 다야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3일 강화문예회관에서 있은 대미사를 정점으로 여러가지 기념행사를 벌였는데 강화 성공회의 역사를 발굴 계승하고, 새로운 선교의지를 고취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3차례의 강연회를 비롯, 성 니콜라 합창단의 공연, 강화읍 성당 교우들의 서예전, 사진전 등 내실있고 풍성한 잔치를 벌였다. 특별히 12일장화리 성당의 집회에는 감리교 목사이면서 성공회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현주 목사님이 밖에서 본 성공회란 제목의 발표를 했는데, 예수를 닮은 참된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성공회에 대한 기대를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교단이라고 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편 강화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감리교는 이번 행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성공회 형제들에게 섭섭함을 안겨 주었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그래도 성공회 신부들과 가장 가깝게 지내왔는데 한차례 강연회에 참석했을 뿐 이런 저런 일로, 또 무심하여 크게 실례를 범하고 말았으니 두고두고 후회할 일만 남게 되었다. 이 지면을 빌어 용서를 구하며 성공회와 우리 지역 신부님들의 건투를 빌어 마지 않는다.푸른언덕

        장봉섬에 가다

            손필선 (김포 월곳제일교회)

인천항을 출발 한지 약 두 시간만에 장봉섬에 내렸다. 재활원에서 보내준 승합차로 10분여,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섬마을 한 곳에 아담하리만큼 느껴지는 몇 동의 건물이 들어선 정문안으로 들어가 한 건물 앞에 들어가 차가 멈추어 섰다.

미리 기별이 됐는지 몇분의 환영을 받으며 이층 응접실로 안내 되었다. 원목 박영주 목사님의 자상한 안내 말씀을 듣고 곧 바로 일어났다. 처음 안내 된 곳이 수업을 받고 있는 작은 교실 열 개가 좀 더 될 가량의 책상이 놓여 있는데 그것도 빈자리가 몇군데 있었다. 느닷없이 1m 20cm쯤 되는 작달막한 남학생이 달려 오더니 내 허리를 꼭 껴안고는 무어라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보육사 서희숙 선생님과 귀염둥이 용호>

솔직한 심정으로 처음 당하는 일이라 께름한 느낌마저 들었다. 코를 자극하는 땀냄새 입내음이 좋을리가 없기에... 하얀까운 차림의 여선생님의 시선을 더듬어 무언의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여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꿈벅 했을 뿐이다. 순간 나는 “그 어린 것을 위해 참아 달라”는 무언의 표현임을 깨닫고 도리어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달아 올랐다. 잠시후 “자 이제 그만, 선생님 말씀 잘 듣지”하며 껴안은 손을 풀어 놓는다. 못내 아쉬운 표정을 하며 올려다 보는 그 얼굴엔 알 수 없는 표정이 깃들고 있었다.

이번엔 여자 아이 둘이서 다가오더니 한쪽팔씩을 끌어다녀 제 목에 걸치게 하고는 “나 이쁘지 응” “나도 이쁘지 응” “그래 그래 너도 예쁘고 또 너도 예쁘다” 각각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만족한 웃음을 담북 남기며 다른 방문객쪽으로 옮겨가더니 같은 짓을 되풀이 했다. 보행이 몹시 불편한 남학생이 걸어 가길래 옆에서 부축해 주려고 거들었더니 “그만둬요.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이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잠시후 컴퓨터 한 대가 놓인 두 평이나 될까한 방에 안내됐다. 안내자의 설명이 “이 지체부자유 청년은 가난을 극복하고 독학으로 국민학교에서 대학까지 검정고시로 졸업을 했고 컴퓨터 1급 기능사 시험에도 합격하여 이제 연수과정만 마치면 기업체에 취직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들은 새삼 놀라움과 인간의 능력의 잠재력 그리고 의지에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1m 70cm 정도의 훤칠한 키인 이 젊은이는 언어도 부자유 했다. 늘 들어온 사람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낼 뿐이다. 다리도 찌쩍찌쩍 겨우 걷는다. 두 팔도 비비틀린다. 컴퓨터 앞에 앉았어도 한참 상체를 이리저리 몇 번 뒤틀더니만 열손가락이 키보드에 놓여진다. ‘아! 이 놀라움’ 보탤말이 무어 필요한가! 미처 시선이 따라 움직이지 못하리 만큼 민첩하게 움직이는 손가락과 모니터에 나타나는 글자와 기호들... 성한 사람도 해내기 어려운 과정들을 이 젊은 이는 어떻게 여기까지의 과정을 걸어 넘어섰는가! 그 다음 자신의 재능에 스스로도 감격하는 빛이 우리를 쳐다보는 일그러진 얼굴에 나타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부질없는 걱정이 내 마음을 어둡게 했다. 온몸의 기능 중 오직 듣는 것만이 정상인데 과연 이 젊은 이의 재능만을 인정해 얼른 받아들일 기업인이 있을런지.

재활원 이름은 장봉혜림재활원 대지가 약 10만평이다. 부천에서 6.25사변 직후 이 사업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임성만 원장님은 아버지의 뜻(현재 부천에서 재활원 경영)을 따라 10년전에 어렵사리 아버지가 매입한 이 땅에 오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원생은 100명이 좀 넘고 교사, 보육사, 기타 종사자등 40여명의 직원들이 같이 생활하고 있으며 원생들은 정신장애자와 지체부자유자들인데 이들은 생후 부모와 사별한 고아, 불구라고 부모가 버린 자식. 부모가 있어도 가난하여 양육할 수 없는 사람의 자녀들이란다. 이들의 상태를 대략 구분해 보면 나이 30이 다 되었어도 세살 난 어린애 지능수준 밖에 안되는 정신장애자, 기억상실증 환자, 지체부자유자 들이다. 이들을 양육하는데 어려운 두 가지 측면은 이러하다. 첫째 배설물을 가릴줄 몰라 매일 같이 쌓이는 빨래를 세탁하는 일과 급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인천까지 후송하는 어려움이고, 둘째는 운영자금인데 국고에서 지원해 주는 예산은 50%정도이고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충당하여야 하는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다. 다음은 노력으로 봉사할 자원들이 계속 필요한 것이고(빨래하기, 청소하기, 시설관리하기등), 또 한가지 보육사들의 대우도 어려운 일 중 한 가지다. 교육부 소속 교사들은 기본 대우를 받아 생활하지만 보건사회부 소속 보육사들은 훨씬 못 미치는 대우를 받는단다. 그러기에 원장님은 사재를 드려 이따금 협조해 준다고 한다.

다음으로 마음 고생은 세상 사람들이 이 장애자들을 동정하고 물건이나 돈으로 지원은 해주나 그들과 더불어 살아 주지 않는 일이란다. 그래도 좀 생각을 달리하는 분들 중에 몇 분은 주말이면 장애자 몇을 데려다 잘 먹이고 옷도 사주지만 역시 자기 자녀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격리보호 하는데는 고맙기도 하지만 좀 더 가까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그분은 울부짖듯 말했다.

“동정은 하지만 함께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대상이라는 장애인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으로 인해 삶의 보금자리조차 육지에 마련하지 못하고(주민들의 반대로) 이 곳 장봉도에까지 와서 어렵사리 이 시설을 했답니다.” 끝으로 그는 이렇게 덧 붙였다. “100여명의 장애인들의 생활을 온전히 유지 한다는 것이 젊음과 열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새로와져야 하고요 적은 정성들을 모아 주시면 재활원측으로는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시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매월 1,000원(1구좌)이상을 송금해 주시면 운영에 큰 도움이 되겠고 어떤 장애자와 결연을 맺어 그들의 교육이나 생활을 돕고자 하는 분들은 매월 5,000원(1구좌)이상씩 보내주시면 그 장애자에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임성만 원장님의 말씀은 계속 되었지만 뱃시간이 가까워 아쉬운 마음을 안고 죽 늘어서 환송하는 장애인들과 교직원들의 인사를 뒤로하며 귀로에 올랐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돕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안내 해 드립니다. 

                               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