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꾸보의 크리스마스
    2013년 12월 25일

온 읍내 사람들이 한 달 전부터 준비하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날이다.
이곳 세르반테스는 인근도시와 확연히 단절된
깊은 산악지대의 분지에 위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명절을 지내기 위하여
원근 각처에서 일가친척들이 험한 산악 길을 넘고 모여 들어
각 가정마다 매일 축제를 벌이며 성탄절을 기다렸다.
이들은 성당으로 교회로 매일 저녁과 새벽에
예배를 드리러 가고, 교회의 청년들은 새벽송을 도느라 바빴다.
오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성탄축하 새벽미사를 드리고 가느라
컴컴한 새벽길에 행렬을 이룬다.

아직 새벽안개가 걷히지 않은 시간
어디로 조깅을 갈까 생각하다가 꾸보네 가족이 생각나다.
크리스마스를 그들은 어떻게 보낼까?
화려하고 웅장한 천주교회의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기엔
너무 안 어울리는 초라한 모습이고
그렇다고 개신교회의 성탄절 프로그램 또한
그들을 감싸고 포용하기엔 미흡하다.
아마 예수님이 오신다면 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디에 가서 당신의 생일 파티를 맞이할까 망설이실 것 같다.

쓸쓸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꾸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구멍가게에 들려 30명 가족이 하나씩 먹을 비스킷을 사다.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어디를 가기에
매일 이른 새벽 먹을 것을 사 가느냐고 묻는다.
비밀이라 하니 이상하다는 듯 한 눈치다.

꾸보 하우스에 다가가도록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1월 들어 밤이 전보다 길어졌다.
움막 옆 마당의 짙은 안개 속에서 저번에 치료받은
큰 딸의 남편이 빤싯을 먹다가 아는 체를 한다.
무표정의 사나이가 오늘은 어설픈 미소도 보내는 걸로 봐선
그리 심각한 우울증 환자는 아닌 것 같다.
아니면 우울증이 조금씩 치료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친절한 척 하며 외국인에게 접근하는 모습보다는
무표정한 모습이 때론 더 믿음이 갈 때도 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시청사를 비롯하여 읍내의 각 가정에서는
한 달 전부터 성탄트리를 만들어 네온사인을 비추는 등
화려한 데커레이션으로 성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이곳에는 성탄트리도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여느 때와 똑 같은 칙칙한 움막 그대로다.

약소한 선물에도 온 가족이 행복해하고 기뻐하다.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가져간 비스킷을 나누어 주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전하니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화답한다.
어제 밤에 가족들이 모여 오붓하게나마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 모양이다.
큰 딸이 나보고 빤싯(잡채 밥)을 먹겠느냐고 묻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그릇이 깨끗지 않아 약간 께름칙하지만
혹시 그들의 마음이 상할까봐 먹겠다하다.
빤싯의 내용물에 고기도 좀 섞였고 당근과 야채도 섞여있다.
그들 형편으론 아주 잘 차린 음식이라 나에게 대접하고 싶었나보다.
대접하는 성의를 저버릴 수 없어 먹기는 했지만 너무 짜서 간신히 먹다.

18세 임산부네 꾸보 앞으로 가다.
그녀의 시누이가 내게 빤싯 대접하는 모습을 갈라진 벽 틈으로
멀리서 바라보던 그녀가
시누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샐러드를 좀 먹겠느냐고 묻는다.
시누이가 나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무언가 대접하고 싶었는가보다.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여기서도 성의를 마다할 수 없어
조금 전에 빤싯을 많이 먹었으니 조금만 달라 하다.
숯불에 커피를 끓이고 있기에 한 잔 얻어 마시다.
내키지 않는 음식을 먹어 느글느글하던 배가 좀 가라앉는 것 같다.
어제 밤 크리스마스이브에 비록 이들이 교회는 가지 않았지만
허름한 꾸보에서나마 온 가족이 빤싯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성탄이브를 보낸 모양이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 태어나신 주님께서
어제 밤에 성령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아마 땅바닥에 볏짚을 깔고 자는 이들의 움막이
교회나 성당보다 더 조용하고 편하게 느껴져
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머무시며 이들을 위로 하셨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의 아침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