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은과 금은 없다. 그러나..."

물이 고이면 반드시 썩게 되어 있습니다. 썩은 물은 악취를 풍겨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물은 계속 흘러야 합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서서히 흐르면서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곳곳에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물의 존재이유입니다.

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재물도 고루 쓰이지 않고 한 곳에 고이면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탐욕으로 썩고, 방탕으로 썩고, 교만으로 썩고, 갈등으로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이 썩어 고약한 악취를 발하듯 재물이 고이면 더러운 악취를 풍깁니다. 재물에서 썩은 냄새가 나서가 아니라, 재물을 향한 탐욕이 속절없이 사람을 타락과 부패로 썩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토록 타락하고 목회자들의 부패와 비리가 코를 찌르듯 악취를 뿜어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흔히 지적하듯,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목사들의 허술한 자질 때문입니까? 물론 학문의 깊이도 여러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버젓한 신학교가 하나도 없던 시절에 오히려 목사들은 지금보다 한결 깨끗했습니다.

원인이야 여럿 있겠지만, 교회가 타락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에 재물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교회 곳간에 닥치는 대로 쌓아둔 ‘은과 금’이 차고 넘치면 마치 물이 고여 마침내 썩듯 교회는 타락하고 맙니다. 교회는 훗날을 기약하며 재물을 쌓아두는 닫힌 곳간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수시로 재물을 나눠주는 열린 곳간이 되어야 합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걸인에게 베드로가 외쳤습니다 :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영역본 성경을 보면, 본 구절은 복문으로 구성된 한 문장이 아니라 분리된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없거니와... 걸으라’가 아니라 ‘...없다. 그러나(But)... 걸으라’로 엄연히 다른 형식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은과 금이 ‘없을 망정’ 다른 것이 있다는 애매한 뜻이 아니라 은과 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소중한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곳간에 재물이 넘치면 그만큼 역비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은 초라하게 사그러듭니다. 재물을 지니면 사람은 너나없이 재물의 능력(power)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베드로에게 은과 금이 넘쳤다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났을까요?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돈주머니’를 차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이유는, 돈에 의존하지 말고 온전히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라는 명령입니다. 은과 금이 넘치면 그 다음에 영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좀더 정확히 말하면, 곳간에 은과 금을 쌓아둔 교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주께서 도우라고 명령하신 세상에는 먹을 빵이 없어 굶는 자, 마실 물이 없어 목 마른 자, 돈이 없어 병든 채 죽어가는 자가 차고 넘치는데 곳간에 재물을 넘치도록 쌓아두고 예배당 지을까, 선교센터 지을까, 교육관 지을까 고민하는 교회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목사에게 전별금으로 수십 억 줄까(삼일교회), 쓰는 김에 수백 억 줄까(순복음교회) 고민하는 교회에 과연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영성은 신비한 표적을 드러내는 초월적 능력이 아닙니다. 기적은 타종교나 심지어 이단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친다든지 귀신을 내쫓는 능력은 일부 용한(?) 무당들이나 축귀사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허접한 이방신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의 영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영은 허세와 탐욕을 모두 내버린, 가난한 영성에서 비롯됩니다.

교회는 주저없이 곳간을 비워야 합니다. 성경적 근거도 없는 십일조를 거둬들여 화려한 건물 짓는데 혈안이 되고, 겉멋에 빠진 종교인들 허세 부리는데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곳간을 비워 가난한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나눠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것,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명백한 존재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