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되돌아 갈 수 없어서
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어제는 요 근래 들어 처음으로 오른쪽 허리에 담이 결리고 허리가 무척 아파서
꾸보 하우스 환자를 돌보러 가지 못하였다.
먼저 번 움막에서 불편한 자세로 엉거주춤 꾸부리고 앉아
치료 해 주느라고 허리가 무척 아프더니 이내 담까지 들었다.

오늘 토요일 오후에 허리가 좀 나아져서 꾸보 하우스를 가 본다.
침 맞은 후 목요 장터에까지 나왔던 환자가 여전히 정말 잘 걸어 다닌다.
저번에는 보아도 본척만척 무표정의 사나이가,
요번엔 반가운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손까지 내밀어 악수도 청한다.
정말 되게 비싸게 구는 친구다.
영어가 안 통하는 친구라 제스처로 내 허리를 만지며
괜찮으냐고 물어 보니 이제 안 아프다는 시늉을 해 보인다.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한 발작도 걷지 못하던 사람이
아무런 아픈데도 없었던 사람처럼 걸어 다니며
부인을 도와 부엌일도 하는가!

치료 받은 후 부인을 도와 부엌일을 하는 환자.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매번 환자를 치료하러 가고 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아무데도 아픈 곳 없이 씻은 듯이 깨끗이 낫도록
성령께서 특별히 간섭해 주십사고!
치료할 때마다 순간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그 때 필요한 혈자리로 손이 움직이게 하신다.
나는 그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인체의 12경락에는 361개의 기본 혈 자리가 있다.
경외기혈까지 합하면 인체에 1000개 이상의 치료 혈자리가 있다.
이 많은 혈자리를 증세에 따라
즉각 적절한 치료혈을 판단해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들을 치료하기에 앞서 평소에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지만
일단 환자를 접하게 되면, 조금도 내 실력을 의지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이런 치료 방법은 하나님이 믿는 이에게 주시는 어드밴티지라 생각한다.
아마 믿음이 없는 치유사라면 자기 실력으로만 치료하려 들 것이다.

이들의 식사는 매우 간단하다.
밥을 했을 경우에는 그저 맨 간장에 비벼 먹고
가모떼(줄기 고구마)를 먹을 때는 푹 삶아 설탕을 처서 먹는다.
그 이상의 별다른 식사는 하지 않는다. 할 형편도 못된다.
이들보다 형편이 나은 필리피노들도 평소엔 거의 1식 1찬이다.
이들의 식습관은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많은 반찬을 놓고 먹지 않는다.
그저께 나의 세탁을 해 주고 받은 돈으로
시장에서 가모떼를 20키로나 사 와서 삶는 중이라고
큰 딸이 온 가족이 함께 먹을 가모떼를 삶으며 즐거워한다.
오늘은 온 가족이 오랜만에 별식을 하는 날이다.
꾸보 앞밭에다 찜통을 걸어 놓고, 하나 가득 가모떼를 집어넣어 삶고 있다.
별로 땅기진 않지만,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삶고 있는 까모떼를 하나 얻어 먹어본다.
고구마 보다 별로 맛이 없다. 설탕을 주느냐고 묻기에
그냥 먹겠다하고 천천히 하나를 다 먹다.

가모떼를 삶고 있는 큰 딸과 그녀의 딸

그저께 목요장터에서 만났을 때,
18세 임산부가 나한테만 살 짝 한 말이 있다.
시누이가 빨래하러 갈 때 자기도 함께 하게 해 달라고.
자기 시누이가 맡은 걸 보고 샘이 난 모양이다.
아니면 돈이 아쉬워 용돈벌이를 좀 하려고 하였든지.
만삭이 된 그녀의 배를 쳐다보며 힘들 텐데 할 수 있겠느냐 물으니
당당히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었다.

장날 그렇게 특별히 은밀한 부탁을 받았지만,
시누이와 먼저 약속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시누이 에게만 빨래를 맡겼다.
빨래가 많다면 둘이 하게 할 수도 있지만
혼자 해도 잠간이면 하는 것을 두 사람에게 맡기기가 뭐하여
그냥 큰 딸에게만 맡긴 것이다.
그래도 미안한 맘이 들어, 슬쩍 그녀가 앉아 있는 꾸보에 다가가서
내년 2월 아이를 낳고 난 후 몸이 가벼워 졌을 때 쯤 되면
맡겨줄 테니 그리 알라고 위로해 주다.

이집 식구들이 모두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임산부는 영어를 이해하고 말할 줄 안다.
고등학교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녀는 먼저 번 만났을 때 나에게 슬금슬금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에 살고.
그녀도 물론 마닐라에서 태어났다.
필리핀이 가난한 나라에 속하지만, 수도 마닐라의 발전된 곳은
한국의 강남처럼 고층 비지니스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마닐라는 이곳 세르반테스에서 버스로 쉬지 않고 달려 10시간 걸리는 먼 거리다.
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더하면 20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부모가 마닐라에 살고 그녀가 마닐라에서 태어났다는 점으로 봐
여자의 가정형편은 이곳처럼 이렇게 가난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여 그녀는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거다.
이곳 꾸보의 자녀들은 한 명도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다.
이 여자의 남편만 초등학교 3년 중퇴라 글을 좀 아는 정도다.

그녀 어머니의 고향이 지명은 생각나지 않는데
이곳에서 약 3시간 떨어진 베상파스 산 넘어 서쪽 해안이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지금의 남자를 알게 된다.
서로 먼 곳에 살고 있는 처지였지만
핸드폰 문자통신으로 알게 되어 서로 문자를 주고받다가 만나게 되었다.

15세 어린학생이 문자채팅으로 남자를 사귀게 된 거다.
도시에만 살던 사람이라 산골에 사는 남자친구의 마을에 호기심이 생겨
어느 날 이 먼 곳을 찾아 놀러 오게 되었다.
그런데 남자와 한 참 놀다가 집엘 가려고 하는데
갈 차비가 없어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남자 친구네는 물론 찢어지게 가난하여 꾸보에서 살 정도이니
차비를 빌려 줄 형편도 못 된다.
차비가 없어 가지 못하고 눌러앉아 있다가
그만 아이가 생겨 낳아 기르게 되고,
내년 2월이면 다시 둘째 아이를 낳게 된다.
선녀가 깊은 심산유곡 폭포수에 목욕하러 내려 왔다가
벗어 놓은 옷을 잃어버리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그냥 나무꾼과 살게 된 격이 되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가정에 시집온 이 여자는
이 가정에서는 엘리트이다.
이 집에서는 훌륭한 며느리를 얻어 횡재이지만
이 여자의 친정에선 얼마나 맘이 아플까!
아이를 낳아 두 살이 되도록 너무 가난하여
그리운 부모 품에 한 번 못가 보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오죽하면 만삭이 되어 몸도 가누기 힘든 임산부가
내 빨래를 해 주고 용돈이라도 좀 벌고 싶었을까!

맨 앞쪽에 보이는 꾸보가 18세 임산부가 사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