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구원론은 초대 교회 이후 지금까지도 그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논쟁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신칭의론과 세미 펠라기즘의 논쟁

2. 자력 구원론과 타력 구원론 그리고 신인협동설의 논쟁

3. 예정론과 보편구원론 그리고 만인구원론의 논쟁

4. 의의 전가와 의의 주입의 논쟁

5. 피스티스 논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가의 논쟁)

이 논쟁들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 이유는 각각의 주장들이 나름대로 모두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자신들의 주장만 옳다고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쟁들에서 일단 벗어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서술하고 있는 구원의 논리를 논리 자체로 접근하여 그 순서대로 요약 정리해 봅니다.

1.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복음에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명백히 밝혀져 있는 바, 하나님의 피스티스(히, 에무나), 즉 신실하심을 인간에게 부어주시고 그에 따라 신실하게 변화된 그 사람은 의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 구절의 후반은 모두가 잘 아시는 대로 하박국 2장 4절 후반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보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인 맛소라 사본에서는 “그의 에무나로 말미암아”로 기록되어 있으나 칠십인 역에는 “나의 피스티스로 말미암아”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칠십인 역의 원본은 맛소라 사본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 중의 하나지요.

그렇다면 어느 표현이 성경의 계시의 논리에 부합될까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학습했던 사도 바울이 이 불일치를 몰랐을 리가 없을 터이나 이 말씀을 세 번이나 서신서에 인용하면서도 세 번 모두 소유격 인칭 대명사를 생략했습니다. 왜일까요? 의인이란 자신의 신실치 못한 속성이 이미 하나님의 신실하신 속성으로 바뀐 존재이므로 이 불일치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이 문제는 로마서 전반에 걸쳐 계속 문제가 되는 사항이므로 이 글에서 계속해서 다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 구절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소위 이신칭의론을 주장하고자 했다면 이 구절의 후반은 “오직 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가 되었어야 오히려 논리적인 진술이 되었을 것입니다. 로마서의 시작부터 사도 바울의 논리와 루터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을 여기서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3)”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들어 깨닫고 또 마음속에 간직한다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 법을 준행할 때에 비로소 실제로 의롭게 - 또는 실제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 됩니다.

(여기서 수동태로 사용된 헬라어 동사 “디카이오오”는 “의롭게 만들다”와 “의롭다고 판정하다”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동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 동사를 사용할 때마다 두 가지 의미 중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는 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 또한 이 글에서 계속 언급될 것입니다.

참고로 “(아직 의롭지 못한 자를 일단) 의롭다고 간주하다”라는 표현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4장에서 “로기조마이 디카이오쉬네”라는 다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디카이오오”와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3.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법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더구나 하나님의 법을 실제로 준행하며 살 수 있는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의 결과로 오직 각자 자기의 유익을 위해 선악을 판단하고, 항상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희구하여 공포와 탐욕에 휘둘리면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며 사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존과 번영을 희구하며 공포와 탐욕에 휘둘리고 있는 자야말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요? 주류 기독교의 해석에 따른다면 말이지요. 그러나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희구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이 원하는 생존과 번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입을 크게 열면 채워주겠다고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도 않고 원치도 않았다는 말씀(시81:10-11)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지 말라는 말씀(마6:31) 등 신구약의 무수한 말씀이 그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에스겔 14장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나아오는 자는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끊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씀까지 하십니다. 사도 바울 또한 로마서 말미에서 자기의 배만 섬기는 자들에게서는 떠나라고 강력하게 권면(롬16:17-18)하고 있습니다.

한편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은 혹 지나친 말씀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간디나 슈바이처와 같은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말이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을 포함해서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사도 바울은 사도인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 또한 계속해서 이 글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선악의 충돌이 아닌 하나님의 선과 인간의 선의 충돌에 대한 계시로 보고 있다는 점만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