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목회자정의평화위원회 소속 목회자들이 박근혜 때문에 단식기도회에 들어갔다고 하는 보도를 보고 떠오른 기억이다.

25, 6년 전인가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때에 소수의 진보적 목회자들이 비장한 결의를 해서 '군부독제타도를 위한 목회자 삭발 단식 기도회'를 하기 위해서 모였다. 주변에는 교인들이 아니라 전투 경찰 1개 중대가 호위를 해주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삭발을 했었다. 엄숙을 넘어서 침통하게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삭발을 하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단식은 소문 안 나게 나 혼자 하면 되지만 융통성 있는 감리교 장로교 소속 목회자들과 달리 꽉 막힌 보수교단인 성결교 출신인 나로서는 밖으로 드러나는 삭발은 교단 안에서 왕따를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단에서 유일하게 들어 내놓고 민주화 운동을 하는 내가 삭발까지 했다가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삭발을 하면 경찰은 수첩에다 이름을 적는 것으로 끝이나지만 교단내에서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갈등을 하면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기들처럼 교단적인 배경이 없는 나의 외로운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모임의 좌장격인 고 허병석 목사 님이 "아무래도 지 목사는 안 깍는 것이 좋겠다. 성명서에 이름도 넣지 말고"라고 정리를 해 주었다.

사실 고 허 병섭 목사님은 신학을 공부한 이후 항상 내 목회의 사표가 되었었다. 허 목사 님은 자기처럼 진보적 교단에 속하지도 못하고 보수 교단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내 입장을 잘 이해 해주어서 내가 필요로 하면 언제 어디나 달려와 주었다. 나는 평생 병섭이 형의 뒤로 따라가는 척 흉내를 냈지만 내가 그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은 50 줄에 들어서 막노동판으로 뛰어들어 미장 질을 배우기 시작한 것 부터였다.

1996년 병섭이 형은 한 단계 더 뛰어서 시골로 내려가서 재혼 한 부인과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오리와 우렁이를 풀어 짓는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태평농법’인 유기 농법을 시작했다.

당시 한계에 다다랐던 나도 형을 따라 구례로 내려갈까 생각도 해서 따라가서 직접 생활을 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없는 생활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식 교육을 끝낸 형과 달리 나는 아직도 교육을 시켜야 할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맹목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은 나에게는 문둥병처럼 天刑(천형)같은 존재였다. 결코 내세울 일은 못되지만 8,90 년대 엄혹한 세월을 통과하면서 교단에서 유일하게 빈민운동을 하고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목사에게 교단의 시선은 항상 차가웠다. 아무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관심을 표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수상쩍게 생각했다. 교단은 나를 항상 껄끄럽게 대했고 심지어는 신학교 동기생들 중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도 대화가 단절되었었다. 당시 이런 교단 분위기에서 자발적 소외 상태였던 나는 할 수없이 머리를 깎지 못하고 단식에 참여해서 단식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을 때도 나는 스스로 빠져야 했다.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무엇보다 '신앙의 안전'을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멍청이 부시 대통령 때 에이즈을 줄이기 위해서 활동하는 보건단체들에 대하여 지원금 중단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에이즈를 줄이기 위해서 매춘 여성들에게 콘돔을 공급해야하는데 보수적 기독교들이 매춘 여성들에게 콘돔을 지급하는 것은 매춘을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부시 재임 기간에 전세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에이즈에 걸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처럼 자기들이 믿는 신앙의 가치에 가장 우선권을 두는 사람들은 항상 위험한 사람들이다.

예수는 일생동안 자기들의 신앙의 안전을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긴장 속에서 살았다. 그 당시 예수의 적들은 율법적 차원(?)에서 예수를 다루려고 했다.

그런데 이 율법적 차원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국가 안보 차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위력이 큰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아무리 무섭다한들 현장에서 돌을 던져 죽일 수 있는 율법보다 무섭기야 하겠는가?

그러니까 예수는 말꼬리를 잡아 언제든지 율법재판에 부쳐 죽일 죄를 찾아 처치하고자 하는 살얼음판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언제나 보편적인 가치 보다는 자신들의 신앙의 가치(왜곡된)를 더 우선하는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오히려 역사의 발전을 방해왔다. 예를 들면 한기총 같은.

이런 현실에서 외국에서 비록 몸뚱이는 편안하지만 마음은 불편한채로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단식기도에 돌입한 후배, 동료들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