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장부는 공개해서는 안 되는 비밀장부인가?


감리회 헌법 제6조(기본체제)는 감리회는 의회제도에 기초한 감독제임을 밝히고 있다. 의회제란 국민대표에 의하여 조직된 기관이 정치의 중심으로 되는 제도를 말한다. 또 의회제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로써 조직될 것, 서로 의견과 이익을 달리하는 정치세력의 대립이 있을 것, 그 기관의 의사는 이러한 대립된 의견 및 이익의 토론과 타협으로써 결정될 것 등을 요건으로 한다. 이는 감리회 의회제도를 규정하는 <의회법>이 담고 있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하지만 입법의회를 앞두고 공고된 감리회 <의회법> 개정안은 감리회가 채택하고 있는 의회제도에 의한 감독제라는 감리회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고된 <의회법>,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교회재정장부는 그 누구에게도 공개해서는 안 되는 비밀장부인가?

장정개정위원회는 의회법 개정안 제33조(구역회의 직무) ④에서 “교인이 재정장부를 열람하려면 입교인 2/3이상의 서명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장정개정위원회가 무슨 의도로 이 조항을 신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조항은 어떤 경우에도 교회의 재정장부는 공개하지 못한다는 명백한 선언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출석하는 입교인 수는 등록된 입교인 수에 비해 크게 적고, 일부 대형교회의 경우 주일에 교회에 출석한 신자 전원이 서명해도 전체 입교인의 2/3가 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이런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얼토당토않은 발상을 했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이 조항은 교회의 재정장부는 어떤 경우에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이 조항은 교회재정을 투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교회에 대하여는 이 조차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매우 퇴행적인 조항이다.

문제는 이 개정안이 감리회 안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십일조를 6개월 동안 내지 않으면 교인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교계의 거센 비난을 산 후 톡톡히 사회적 망신을 당한 후에야 이를 철회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장정개정위원회가 공고안 교회장부 열람과 관련한 조항 역시 이와 같은 비난과 망신을 자초하기에 알맞은 시대착오적인 조항이다.

둘째 개정안은 감리회의 기초인 의회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감리회 의회제도의 근간은 연회다. 감리회는 감독제를 채택하고 있고 연회는 각 감독이 관할하는 교구의 의회라는 점에서 연회가 의회제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를 충족하고 있는가에 따라 감리회가 의회제도에 기초한 감독제를 실현하고 있는가는 결정된다. 그리고 의회제도의 근간은 의회가 대표성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그런데 의회법 제49조 ⑫의 1은 “연회 평신도 대표는 매년 그 지방회에 출석한 평신도 중에서 평신도 자치적으로 장로를 임명된 년수 순으로, 장로가 없을 시에는 권사를 임명된 년수에 따라 구역별 정회원 수와 교인 수를 참작하여 선출하되 다만, 연회 실행부위원과 지방 여선교회회장은 당연직으로 하며, 30%까지는 장로의 임명된 년수에 상관없이 여성 장로로 우선 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과 구법의 차이는 “평신도 자치적으로”라는 표현이 삽입된 것과, “여성 장로로 할 수 있다.”를 “여성 장로로 우선 배정한다.”고 변경한 것이다.

개정안 중 여성의 권리를 일부 강화했다는 점은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의회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로써 조직되어야 한다,”는 의회제도의 기본원칙을 훼손한 것이다. 또 연회대표 전체를 장로로 임명된 년수에 따라 선임하도록 한 것은 선출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연회대표는 지방회에서 선출한다는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규정대로라면 평신도 자치적으로라는 표현은 사실상 의미도 없는 문구다. 그리고 따라서 이는 명백한 감리회 헌법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개정안은 교권주의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야합의 산물이다.

개정안은 각 의회 실행부위원회에 해당 의회 선교, 교육, 사회평신도분과위원회 등 3개 사업분과위원회 위원장과 각 평신도단체장 및 장로연합회장이 당연직 위원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앞으로 지방실행부위원회는 목사보다 평신도가 2-4명, 연회실행부위원회는 목사보다 평신도가 3명 많게 된다. 이것은 총회를 제외한 모든 의회의 실행부위원회가 평신도들에 의해서 좌우될 것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감독제교회라는 감리회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 연회, 총회실행부위원회에 임의단체인 장로연합회장을 당연직 대표로 참여시킨 것은 장정개정위원회가 임의단체인 장로회에 휘둘린 대표적인 사례로 용납될 수 없다. 본래 감리회 의회의 대표는 개체교회에서 선출한 대표가 지방회 대표가 되고, 지방회에서 선출한 대표가 연회대표가 되며, 연회대표에서 선출한 대표가 총회대표가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표성의 근거를 개체교회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남, 여, 청장년, 청년회의 대표에게 실행부위원회의 발언권을 부여한 이유도 이들 단체가 개체교회 신도회를 기초로 하여 지방연합회, 연회연합회, 전국연합회가 조직되는 등 그 조직의 근거가 개체교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회의 경우 이와 다르다. 현재 감리회 내 상당수의 교회에는 장로가 한 사람도 없는 상황이어서 우선 개체교회의 대표성이 없다. 또 장로는 지방회에서 개체교회에 파송한 지방회원이라는 점에서 장로연합회는 다른 선교회연합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단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의단체인 장로연합회에 각 실행부위원회의 대표권을 보장해 주었다는 것은 원칙은 물론 감리회 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권사회, 집사회, 목사회 등이 대표권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명분도 법리적 타당성도 상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개정안은 행정과 의회제도의 기초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의 작품이다.

개정안은 의회법 제3조(의장의 권한과 직무) “접수된 행정문서는 14일 이내에 처리하여야 한다. 다만, 제3기관이나 위원회와 협의해야 할 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그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장정개정위원회가 감리회 행정체계와 의회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감리회의 모든 의회는 1-3일 동안 개회한다. 때문에 의회가 폐회하면 의장의 권한은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장에게 14일 이내에 행정문서를 처리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또 개정안에 신설되는 교역자특별조사처리위원회는 그 내용의 조잡함을 물론이고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개정안은 위원회에 시정경고, 연회자격심사위원회 회부, 연회심사위원회 고소, 연회감독에게 직권 직임정지 요청 등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실효성이 없는 내용들의 나열이다. 이것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목회자 파송과 관리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감독에게 시정경고, 자격심사위원회 회부, 심사위원회 고소를 요청하도록 하고 감독은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목회자의 소속이 연회이고 파송권한을 가진 이가 감독인 상황에서 “연회교역자특별조사처리위원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사항은 총회 교역자특별조사처리위원회에 의뢰할 수 있다.”는 조항은 감리회 행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개혁은 의회개혁으로부터 비롯된다. 감리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감리회는 한국교회 중 어떤 교단에도 없는 비정상적인 의회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감리회의 의회법은 의회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회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장정개정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보다는 이것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감리회 역사에 또 하나의 죄의 역사 한 페이지를 쓴 것이다. 이제 입법위원들이 이 시대적 역행을 정지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