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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괴물에 대하여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10월 20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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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10월 19일 (토) 07:34:02
최종편집 : 2013년 10월 19일 (토) 23:26:39 [조회수 : 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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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 교회 개혁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교우님들께 부담을 드렸으니 오늘은 좀 가벼운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 두 얼굴의 사나이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이만수 감독 별명이 ‘헐크’라는 건 야구를 좋아하는 중년의 팬들은 거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 포수 겸 4번 타자로 홈런을 펑펑 쏘아 올릴 때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의 TV 드라마가 상영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된 이 드라마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기에, 연세가 지긋하신 교우님들은 거의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데이비드 배너 박사는 어떤 실험을 하다 사고를 당해 감마선에 오염됩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그 때부터 신체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급격히 흥분하면 본래의 자기와는 전혀 다른 초인적인 거인 헐크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데이비드 배너는 현명한 과학자이며 건실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얼굴에 작은 키, 연약한 육체를 가진, 한 마디로 현대인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조금 부족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배너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다가 위험한 일이 닥칠 때마다 뛰쳐나와 그를 보호해주는 헐크는 배너의 연약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했는지 몇 해 전 <헐크>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탱크를 집어던지는 영화 속 괴물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더 인간적인 TV 드라마의 거인에 사람들이 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요? 실제로 드라마에서 헐크 역을 맡은 배우는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 무제한급에서 우승한 경력의 보디빌더로, 2미터 정도의 키에 우람한 근육을 가진 거인이었습니다.

어쨌든 두 얼굴의 사나이는 평범한 키와 용모를 가진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다 어떤 곤경에 빠져 흥분 상태에 이르면 눈의 동공이 풀리고 서서히 근육이 불거지면서 헐크로 변합니다. 이윽고 자신을 곤궁에 빠뜨린 사람이나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걷어차면서 사태를 깨끗이 제압합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허탈감에 빠지며 서서히 본래의 데이비드 배너로 돌아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관객은 곧잘 주인공의 삶에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현실세계에서는 데이비드 배너처럼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골치 아프고 힘든 상황에 늘 시달리면서도 그 힘겹고 고된 삶을 겨우겨우 견뎌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헐크라는 캐릭터에 심정적 일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일상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고개를 숙이며 살아야했던 그 시대의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큼은 자신도 드라마 속의 헐크가 되어 골치 아픈 문제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집어던지며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데이비드 배너로 돌아온 헐크가 그러했듯이) 곧 현실세계로 돌아와 다시 일상의 허탈감에 빠져야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요소들이 이 드라마가 당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큰 인기를 누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2. 우리 안에 숨어있는 헐크

드라마의 주인공 데이비드 배너 박사는 본래의 자기 모습을 더 사랑했습니다. 비록 초인간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사고로 발생된 헐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과학자가 되고 박사가 된, 그리고 인생을 건실하게 살아온, 연약하지만 진실된 자기의 본래 모습인 데이비드 배너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 중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 데이비드 배너보다는 초인적인 헐크의 이미지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참모습은 감추고 헐크의 겉모습을 추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위선의 탈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서 ‘두 얼굴의 사나이’들을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두 얼굴의 정치인, 두 얼굴의 경제인, 뿐만 아니라 두 얼굴의 시민들, 두 얼굴의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두 얼굴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까지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우님은 어떠신지요? 혹 사고라도 좋으니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정당하게 땀 흘려 돈을 벌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로또에 거액 당첨되어 인생역전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교통사고를 당해 운명을 달리할 가능성보다도 적습니다.

남들 사는 만큼, 또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기 안의 괴물을 몰아내고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데이비드 배너는, 아니 그를 만들어낸 드라마 작가는, 참다운 행복은 남들 위에 올라선 소수의 승리자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꽃피우는 데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3. 사도 바울의 두 얼굴

성서 속의 사도 바울도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대단히 교만하고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그 스스로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착하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던 바울은 비로소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 응어리져 감추어져 있던 흉측한 자아의 위선적인 모습을 영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흘 만에 다시 눈을 뜬 바울은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영적인 싸움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 바울은 두 얼굴을 가진 자신의 이중성을 이렇게 탄식하며 고백했습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18,19. 공동번역).

본문의 바울은, 자신의 ‘마음’은 선을 추구하지만 ‘육체’에 선한 것이 들어있지 않기에 선을 행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리를 통해 본문을 읽는 사람들은 바울이 말하는 ‘육체’를 ‘원죄에 사로잡힌 옛 사람’으로 보려하지만, 교리의 전제를 내려놓고 본문을 대하면 자연스럽게 ‘육체적인 욕구’와 ‘하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의 갈등으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얼굴을 갖고 살던 시절, 즉 바울이 본능적 욕구에 따라 살면서도 하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처럼 위선의 탈을 썼을 때는 아무 갈등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나니 그것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며, 이웃을 가슴 아프게 만드는 죽음의 길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헐크, 이제는 내보내는 게 어떨까요? 드라마 속의 데이비드 배너가 헐크를 내보내고 진정한 자기, 연약하고 평범한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듯이, 우리도 화려한 허상을 좇는 ‘내 안의 괴물’을 내보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듯이,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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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나누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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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21 08:51:34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야누스
고대 신화나 소설 속에서 이중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소설이든 신화든 인간 사회를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소재로 하여 그럴 듯한 개연성으로 풀어나갑니다.
이중 인격의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어던 특정한 사람만이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파악한 그 모든 결과들은 과연 어디서 왔습니까?

성경에도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고민을 사도 바울이 표현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냥 그렇다는 정도로 끝난다면 더 이상 성경이 아니라 근본 모르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그려낸 문학 작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선악이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죄악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도 가르쳐줍니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야누스적인 존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냥 막연히 "화려한 허상을 좇는 ‘내 안의 괴물’을 내보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듯이,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면 어떨까요?"라고 한다면 해결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게서 우리를 사랑하심"은 성경에 이름같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죄인되었을 때입니다.
아직도 우리 안에 괴물이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지만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아직도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의 괴물을 내 보내어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입니다.

내 안의 괴물을 없애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악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가운데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서를 잘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우리 안의 괴물을 내 보내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역사 가운데 우리 안의 괴물을 내어쫓아야 비로소 온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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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4
지나가다 (198.208.251.22)
2013-10-24 01:08:04
겸손을배우다
이곳을 가끔 와서 보면 댓글 수준이 시정잡배 수준인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남의 생각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참지 못해서 그런 것 같군요. 그것이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음은 댓글의 분위기에서 금방 읽혀지고요. "아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정도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요? 사랑의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들이라면 글쓴이를 위해서 기도하시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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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포이멘 (183.109.98.143)
2013-10-21 13:40:10
'
이후 후반절과 8장에 보시면 성령이 함께하는 성도의 삶이 나와 있습니다.


공동번역 로마서 7장

21.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내 마음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23.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25.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

로마서 8장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받는 일이 없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4.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5.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6.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7.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8.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9.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11.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주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과연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육체에 빚을 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 의무는 없습니다.
13. 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14.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
17.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


성령님이 함께 하는 성도들은 마음 속에 괴물이 없습니다.

또한 성령의 법은 결코 율법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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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삼청교육대 (210.97.69.109)
2013-10-21 11:01:41
상태형을 비난하지 않는 글을 쓸려고 했는데
금요일날 SBS 를 보다가 초등학생이 종교의 자유때문에
선생님을 바꿔달라는 1인 집회를 한다는것을 봤다
근데 그 초등학생이 거짓말을 한것이었다는 거다
실제로는 그런일이 없는데

그런데 그런일을 한게 된게 강의석 사건을 보고 자기도 힌트를
얻어서 그짓을 했다고
한다

순간 강의석은 제쳐두고
류상태에 대한 욕이 절로 나왔다

종교의 자유를 빙자해서 선생에게 욕을 하고 학교 물건을 두들겨팬
양아치 같은 행동을 방치하지 않고 이것을 종교의 자유로 두갑시켜버리는
상태형의 그 그릇된 두얼굴에 대해서 정말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이 그것을 보고 나도 얼마던지 종교의 자유를 외치면서
내가 생각하는대로 할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상태형 정말 무릎꿇고 반성하십시오

저번 어떤분이

상태형의 비난은 이제 그만두라고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제 자신부터 불안전하니까 그만둘려고 했지만

SBS의 종교를 강요해서 선생님을 바꿔달라는 초등학생의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상태형이라는것을 알게 된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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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0
초딩을 바라보며 (121.129.19.217)
2013-10-22 20:18:48
누구에게......도움을......갑자기.....5
쯔쯔쯔.......측은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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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최Ray (220.118.20.85)
2013-10-20 13:10:35
성령과 악령의 싸움.!!!

갑자기 차가 끼여 들면, 믿는자가 싫어하는 방언이 분출.

담임목사가 자기 자랑하면 마음속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은혜스러운 설교가 마지막에 헌금 내라고 뉴앙스를 남기면

모두 토해내고 싶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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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
소리 (99.111.60.193)
2013-10-20 11:20:45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교회개혁보다 어려운 주제입니다.
내안에 차라리 괴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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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변화 그리고 포장 (99.224.232.108)
2013-10-20 00:00:39
좋은 야그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인 변화보다는 포장에 많이 치중하다보니 사도바울도 요즘 세대에게는 호소력이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그러구요. 뭐 하러 저렇게 사냐구요. 왜냐고 한다면, 보질 못해서 그럽니다. 농부가 수고하는 것을, 과수원의 주인이 고생하는 것을,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요즘은 다 해외에서 수입을 하다보니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점점 더 포장된 삶을 삽니다. 변화는 무엇인가를 보아야 변화할 생각을 하는데, 교회도, 사회도 맨날 이렇게 포장만 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의 생각속에 사도바울처럼 저렇게 사느니 믿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보다는 저러한 삶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다수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입으로 나불거리기 보다 땀으로, 수고로, 나누고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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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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