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고향을 꿈꾸며

1

17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연방정부가 며칠째 부분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 책임을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네 탓이다" 며 서로 물고 뜯는 비난의 화살들이
가을 숲 속 낙엽들처럼 수북이 쌓여가고만 있다.
해결의 실마리도 묘연하단다. 왠지 불안하다.

피와 살을 함께 섞고 나누는 한 부부인
케롤과 나도 이 문제 만큼은 의견 일치를
아직 못 보고 있다.
그러니 미국회의 이 정도 쌈판은
아주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인류의 지난 역사라는 것이 기득권자들과
비기득권자들 간의 밥그릇 챙기기
싸움판이었으니까 말이다.

누리는 자들은 더 이상 못 내놓겠다고 버티고
못 누리는 자들은 더 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자신들의 각기 다른 입장에서 나온
관점과 시각의 차이일 뿐, 양 편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도둑놈 심뽀의 크기는
도토리 키재기다.


2

노자에 얽힌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왕이 그 당시의 지성 노자의 뛰어난 지혜를 존경한 나머지
수 차례 심복 신하를 보내어 재상을 맡아달라고 노자에게
애걸복걸을 했다. 천하 노자도 실수를 하는 법.
노자는 사양에 사양을 거듭하다가 마지 못해
결국 재상 자리를 수락하고 말았다.

첫 번 째 노자의 업무는 단순 절도사건의 처리였다.

한 도둑이 그 나라 가장 부자 집에 침입해 값진 보석을
훔치려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노자 앞에 끌려왔다.
노자는 피해자인 부자도 재판장으로
붙잡아 오라고 관원들에게 명했다.

노자는 두 사람의 직접증언을 통해서 사건의 자세한 경위와
아래와 같은 원고와 피고 두 사람들의 진술을 들었다.

도둑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가난에 눈이 멀어
그만 도둑질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남은 처자식들을 생각해서 제발 관대한 처벌을
부탁드립니다" 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부자는 "사회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저 같이 (같은)흉악범은
법정 최고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하며 당당하게
노자에게 압박을 가했다.

피고와 원고의 최후의 진술이 끝나자, 노자는
두사람에게 이렇게 선고를 내렸다.

아무리 가족들이 굶주려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법행위에 해당된다.
따라서 너에게 일 년 간 감옥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너! 대부분의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판국에
그 많은 재산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끍어모아
당신 가족들만 호화호식을 누리는 것이야 것이야말로
도둑 중 도둑 행위에 해당 된다.
사회공의를 지키기 위해서 너에게
삼 년 간 감옥형을 선고하노라!

선고를 받은 부자는 당장 왕을 찾아가 억울함을
하소연 했다.

"내가 만약 도둑이라면 나의 뇌물을 상납받은 당신도
도둑이라는 죄명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노자는 당신도 도둑으로 몰아 왕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는 흉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며 노자를 모함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은근슬쩍 왕을 협박했다.

잔뜩 겁을 먹은 왕은 노자를 당장 파면시키고
다행히도 노자는 잠시 자신의 외도를 거두고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3

작가 최인호 씨가
"별들의 고향' 으로 돌아갔다" 는 서거 소식이
이 낙엽지는 가을에 나를 우울케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는 장사도 순서도 없다.
나도 떠날 차비를 곧 서둘러야 겠다.

나는 최인호의 대표작인 "별들의 고향" 소설을
아직 읽어 본 적이 없다. 대신 이장호 씨가 감독한
영화 "별들의 고향" 은 감상했었다.
영화내용은 조금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영화감상 후 무교동 낙지 골목에 들려
통행금지 시간가까이 혼자서 소주를 퍼 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한 것으로 비추어 보아
그 영화에 대한 진한 감동이 어슴프레 짐작이 간다.

암튼,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로 끝나는
영화주제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는
그 후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애창곡으로 남아있다.

사실, 70년 대 장발, 청바지, 통키타로 상징되는
한국청년문화는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우리 문화가 아니었다.
60년 대 미국사회를 거센 태풍처럼 휩쓸고 간
히피문화가 뒤 늦게 한국에 상륙한 히피모방문화였다.

미국의 히피문화는 비틀즈 가 부른 "Let it be "
" Yesterday" 노래로 상징된다.
" Let it be, Let it be....." 는 "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절망적인 막가파 심정을 담은 얄팍한 노래가 아니었다.
시대의 깊은 고뇌를 담은 예언자적 노래였다.

이차 대전 후 경제지향적인 가치관으로 이룩한 물질적 성장과
풍요에 뒷따라 찾아 온 미국인들의 정신적 허탈감과 허무감은
가히 대단했었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인간은 더 이상 빵으로만 행복할 수가 없다.
무위자연적 인간성과 사랑을 회복하자" 는 것이 그 시대
하나님의 미국사회에 대한 경고였다. 비틀즈 는
그 하나님의 물질문명에 대한 경고를 노래한 것이고.

만약, 미국 60년 대에 그런 자기 성찰의 회개에 따른
미자본주의에 수정이 없었더라면 미국의 운명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구 쏘비에트 유니언 과 같이
자체적으로 붕괴되지는 않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심한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지 않을까?
칼 막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예언처럼...

생각할수록 정신이 아찔하기만 하다. 

4

한국의 70년 대는 미국의 60년 대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70년 대 한국사회는
빵이 시대의 하늘이었고
경제발전은 그 빵인 하늘의 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이고 신앙관이었다.
자유는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낭비이고 사치였으며 사회악으로 정죄되었다.

조용남의(조영남의) "불꺼진 창" 노래를 부르면
불을 끄고 커튼을 내려놓은 컴컴한 방 안에서
불순유인물을 프린트하려는 문제학생으로
오해를 받았고,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부르면
새벽 아침 이슬을 밟으며 북한의 붉은 태양을
그리워 하는 간첩으로 의심을 받았으며,

송창식의 "고래사냥 " 을 부르면
어선을 타고 동해바다를 통해
월북을 꿈꾸는 빨갱이로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런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어두운 시절이
바로 한국의 70년 대 사회풍속도였다.

그 당시 한국 젊은이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자유는
"별들의 고향" 에 대한 꿈을 꾸는 자유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거리며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 별들,
그 별들의 자유라도 따서 당신과 나의 손에 가득
채우고 싶은 절망적인 희망 .....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영화주제곡은 바로
그런 절망적인 한국 젊은이들의 시대상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개인적인 착각인지 모르지만.

미국정부의 셧다운 을 며칠 간 지켜보며
비틀즈 의 "Let it be" 와 이장호의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노래를
번갈아 불러보는 것은 나만의 사치스런 감상 탓일까? 아니면,
미국 소수민족들과 서민들도 나처럼 가슴으로 불러보고
싶은 노래일까?

하늘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