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쓰여 있다는 이 글귀가 유난히 가슴에 와 닫는 요즈음이다. 지난 5년은 감리회 역사상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혼란과 치욕의 시간이었다. 최근 감리회는 온갖 대가를 치르고 간신히 혼란의 터널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감리회는 또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혼란의 터널 속으로 접어들었다.

현 상황에 지혜롭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감리회는 지난 5년간 했던 경험을 고스란히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지금 감리회가 해야 할 일은 지난 5년간의 경험을 면밀히 복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화를 위해서 천하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감리회가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5년 전에도 그랬듯이 문제 해결을 진두지휘해야 할 이들이 하는 드러내는 양태와 인식이 꼭 5년 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큰 위기를 만나면 먼저 그 위기 극복에 집중하는 것이 상식이다. 국가의 지도자가 제 정신이라면 전쟁이 난 상황에서 전쟁에 집중하지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는 문제를 내놓고 국민끼리 싸우게 하지는 않는다. 기업이 망할 지경에 이르면 기업주는 회사를 살릴 방안을 찾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지 신제품 개발에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제대로 된 자식이라면 부모가 상을 당하면 장례에 집중하지 부모의 유산을 탐하며 싸우지는 않는다.

감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 감리회의 상징이자 대표인 감독회장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 일이 얼마나 지속될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이것이 감리회의 선교에 얼마나 커다란 타격을 줄게 될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감리회 지도자들의 판단과 현실 인식, 자세 그리고 지도력이 그 언제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그들이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 꿈과 같은 이야기 하나

이반 사태 후 꿈같은 이야기지만 이런 모습을 상상해 본적이 있다. 감독회장의 당선무효 유무를 가리는 총회특별재판위원회 재판이 열리는 날이다. 감독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집무실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묵상하며 결과를 기다린다. 총회특별재판위원회가 감독회장 당선이 무효라는 판결을 했다는 소식이 감독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감리회의 위기라고 판단한 감독들이 모든 일정을 최소하고 감리회 본부에 모여 든다. 얼굴에는 감리회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우려가 가득하다. 감독들은 말없이 자리에 앉아 묵상하며 기도한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기도하던 감독들은 기도를 마치고 대화를 시작한다. 기도 중에 저마다 깨달은 하나님의 답을 서로 나누며 깊이 있는 대화를 시작한다. 한 참을 이야기하다가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된 답을 찾은 감독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후 일을 처리하기로 다짐한다. 그 후 각 총무들로부터 이 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임시적으로 조치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협의하고 역할을 분담한다. 그리고 교계 기자들을 불러 감독들이 앞장서서 사심 없이 오직 감리회의 정상화만을 위해서 헌신할 것이며 이를 통해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니 감독들을 믿고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국의 교회에 전한다. 그리고 본부에 문제 해결과 상황 점검과 대응을 위한 테스크포스가 구성되고, 감독들은 즉시 연회로 돌아가 연회실행부위원회를 소집하고 감독들이 논의한 사항을 보고한 후 연회실행부위원회의 의견을 묻는다.

또 감독은 감리사들에게 감독들과 연회실행부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에 대하여 지방실행부위원회를 열어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보고할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감리사들은 즉시 지방실행부위원회를 열어 결과를 보고하고 의견을 수렴한 후 결과를 감독에게 보고한다. 연회 감독은 다시 연회실행부위원회를 열어 각 지방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한 후 연회 차원의 의견을 모아 총회실행부위원회를 소집하여 그간의 경과와 정리된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하여 감독회장이 사라진 이후의 대응방안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모든 교회에 공표한 후 차근차근 결의사항을 집행한다.


∙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때문에 서두를 일이 아니다.

위기는 정세의 급격한 변화 또는 어떤 사상의 결정적이고도 중대한 단계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전화위복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특히 이런 위기의 때일수록 그 처방은 근본적이어야 한다. 감리회가 5년간의 혼란을 겪고도 오늘의 상황에 이른 이유는 당시의 처방이 임시변통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임시감독회장 체제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처방을 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을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감리회는 급하게 임시변통으로 문제를 수습하려다가 오늘과 같은 더 큰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앞으로 감리회에 감독회장이 없는 시간은 생각보다 상당히 길어 질 수 있다. 총회특별재판위원회가 재심을 수용하여 전용재 감독회장을 복권시킨다고 해도 신기식 등이 소송을 포기하지 않는 한 끝날 일이 아니다. 또 총회특별재판위원회가 재심을 거부하거나 원심을 다시 확정한다고 해도 전용재 감독회장이 결과를 수용하고 국가의 법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든 이번 일이 1-2년 내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며, 길게는 4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송이 계속되는 한 감리회는 후임 감독회장은 선출할 수도 없다. 감독회장 직무대행을 선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직무대행의 경우 현직 감독만이 그 자격이 있기 때문에 내년 총회 이후 감독직무대행을 다시 선출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냥 감독회장 복귀나 선출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5년간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난 5년 간 감리회는 세 번의 감독회장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모두가 헛된 노력이었다. 선거 와중에 오히려 다툼은 많아지고 갈등은 깊어졌다.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위기의 감리회는 안중에도 없이 오히려 이를 이용해 더 높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 않았던가? 위기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정치꾼들만 본부 주위를 어슬렁댈 뿐 뜻있는 감리회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는 말할 기회도 문제 해결에 참여할 공간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 아닌가? 때문에 감리회가 지난 5년간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 문제 해결은 근본적인 해결이어야 한다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감리회의 위상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통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세습금지법의 예를 보라. 최근에 끝난 각 교단의 총회는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그 첫 테이프를 지난 해 위기의 감리회가 끊었다. 급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법안에 일부 미숙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하여 5년간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역시 감리회는 저력 있고 희망 있는 교회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금권선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감리회는 물론 한국교회의 여론이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도록 권위 있는 재판제도를 만들라는 것이 감리회의 여론이다.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은급제도를 만들라는 것이 감리회 교역자들의 여론이다. 감리회의 전반적인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의회 제도를 만들라는 것이 감리회의 여론이다. 신뢰할 수 있는 감리회 본부,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감리회본부로 개혁하라는 것이 감리회의 여론이다. 여론이 일하다면 감리회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여론을 모아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감리회 교역자와 신자들이 새로운 감리회의 건설하는 데 나도 벽돌 한 장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은 확대되어야 하고 문제 해결 방안은 대다수 감리회 목회자와 신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입법의회는 무기한 연기되어야 한다

때문에 제안한다. 예정되어 있는 입법의회는 무기한 연기되어야 한다. 장정개정위원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각종 개정안은 그렇지 않아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감독선거법에 금품을 제공과 관련하여 30-50배의 보상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지만 이것은 효용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감리회 여론이 요구하는 선거법 개정의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본부 구조개편안에 대한 여론이 높지만 개정안은 본부 인원을 축소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지적이 있다. 각 국은 주인 없는 국으로 만들어 놓고 본부 총무도 없는 상황에서 겸임감독제로 가자는 것은 감리회를 주인은 없고 정치꾼들만 판을 치는 정치꾼들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자는 말과 같다. 은급법 개정안은 어떤 교역자로부터도 지지를 못 받고 있다. 문제가 많은 재판법 개정은 시늉에 그치고 있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감리회가 이런 부실한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그 막대한 돈을 들이면서 입법의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입법의회를 강행하여 부실한 개정안을 처리할 경우 또 다른 입법의회 개최가 불가능한 만큼 입법의회의 강행은 감리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입법의회에서 이 부실한 법을 처리하기 위해서 상당한 논란이 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만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위기의 감리회, 지금은 갈등을 만들 때가 아니다. 논란을 키울 때가 아니다. 지혜를 모으고 뜻을 모아야 할 때다. 때문에 차분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입법의회는 무기한 연기되어야 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처음부터 다시 모색해야 한다. 이 위기를 감리회가 새롭게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감독들의 지혜로운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