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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님은 무엇인가?”라고도 물어봅시다.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9월 29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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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9월 28일 (토) 07:50:03
최종편집 : 2013년 09월 28일 (토) 16:09:55 [조회수 : 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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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독교의 전통 신관, 이대로 좋은지’ 교우님들과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쳐주신 하나님에 대해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 한국의 주류 개신교회들이 여전히 강조하는 ‘배타적 유일신 신앙’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우리의 의식을 넓혀가야 좋을지 솔직한 생각을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1. ‘제가 만난 하나님’과는 너무나 달랐던 ‘교리의 하나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제가 처음 기독교를 접했을 때의 경험을 잠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35년 전에 ‘저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저의 하나님’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객관적으로, 즉 ‘존재하시는 그대로’ 만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신적 존재를 만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나고 체험한 신은 ‘그 사람이 주관적으로 인식한 신’일 수밖에 없으며, 그 체험되고 인식된 신은 사람마다, 또한 종교전통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만난 하나님 역시 ‘절대객관의 하나님’이 아니라 제가 인식한 ‘저의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인식한 저의 하나님만이 옳고 다른 분들이 만나거나 인식한 하나님은 틀리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하나님을 교우님께 소개하는 이유는,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님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가듯이, 저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생각이 많이 달라졌는데, 그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 교우님들의 신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무신론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으로 철학을 전공했던 저는 종교의 세계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기독교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 것은 당시 만났던 예수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을 통해 만났던 따뜻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막 입문한 기독교 초년생으로서 신앙동아리를 통해 배운 기독교 교리가 너무나 배타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종교철학>이나 <인도철학> 등 철학과 수업을 통해 접한 이웃종교는 의외로 너그러웠습니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손에 잡은 꾸란(보통 ‘코란’이라고 발음하지만 ‘꾸란’이 원음에 가깝고 무슬림도 그렇게 부르기를 원하므로 ‘꾸란’으로 통일하겠습니다.) 해설서에서 “너희의 종교는 진실로 하나이니라.”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의 충격과 당혹감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했던 신앙공동체는 이슬람을 사교로 배척했지만, 꾸란은 우리 기독교인을 경계하면서도 ‘경전의 백성’으로, 즉 형제종교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담긴 내용이 우리 기독교 성서보다 상대적으로 너그럽다고 느꼈을 때의 혼란과 두려움은 당시 기독교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근본주의에서 시작한 대학시절의 저의 신앙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포용주의로,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로는 다원주의로 이동하였고, 이후 한국 교회가 우상으로 치부하는 이웃종교들이 기독교 못지않은 영적 매력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확인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2. ‘성서의 하나님’은 이삼천 년 전 고대인이 인식한 하나님

근본주의 신앙에서 벗어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삶의 방향을 정하고 신학을 전공하는 길로 들어섰을 때 본격적으로 찾아온 그 변화는 저 스스로 보금자리를 깨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험한 세계로 나가는 것을 의미했기에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제가 몸담고 있던 보금자리 또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저는 결국 오랜 두려움과 망설임 끝에 한 걸음 한 걸음씩 다음 세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래 문장은 근본주의 신앙교육을 받던 대학시절에 만난 성경말씀으로 저에게 말할 수 없는 번민과 아픔을 안겨주었던 말씀입니다.

“한밤중에 야훼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맏아들을 모조리 쳐죽이셨다. 왕위에 오를 파라오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땅굴에 갇힌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에 이르기까지 다 쳐죽이셨다.” (출애굽기 12:29, 공동번역).

“그 때 파라오가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으므로 야훼께서는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모조리 죽이실 수밖에 없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처음 난 것은 모조리 죽이셨다.” (출애굽기 13:15).


이 본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저는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가 갖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신문기사처럼 객관화되어 기술된 성서본문은 저의 머리와 가슴을 혼란과 당혹감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자신이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라지만, 파라오 한 사람의 고집을 꺾기 위해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죽이는 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야훼께서는 파라오로 하여금 또 고집을 부리게 하시었다.”(출애굽기 10:27)는 말씀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 주체는 파라오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파라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혔습니다.

저에게 기쁨을 주었던 기독교 신앙은 이제 고통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쳐주신 ‘따뜻한 나의 하나님’도 저의 마음에서 사라졌습니다. 대신 파라오의 마음을 그렇게 조종해놓고는 당신의 섭리에 거역할 능력이 없는 불쌍한 그에게 책임을 묻고 벌을 주는 ‘구약성서의 하나님’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운 채, 혼란과 두려움으로 아파하는 저에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정의로우심을 의심해선 안 된다.”고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성서를 차례로 통독해가던 저는, 모세가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살인면허를 주어 자기 동족 삼천 명을 몰살시켰다고 기록된 본문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죽이라고 모세에게 명령한 이유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섬겼기 때문이라고 성서본문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명령에 절대순종하지 않으면 이방민족 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까지도 몰살시키는 ‘성서의 하나님’을 넘어, 처음 만났을 때 저에게 희망과 빛을 주셨던 ‘저의 하나님’을 다시 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납고 반인륜적인 하나님에 대한 기록들은, 당시 사람들과 기록자가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즉 고대인의 ‘신인식의 한계’를 정직하게 반영합니다. 출애굽기의 기록 또한 당시 사람들과 기록자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믿고 해석했음을 반영하는 것일 뿐 그 기록 자체가 객관적 사실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가 기록된 시대는 이삼천 년 전입니다. 그때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신들의 신앙으로 그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피해자로서 신음하고 있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징계는 철저하고 가혹할수록 정의롭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자신과 동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대국 지도자 파라오는 절대악일 수밖에 없었고, 그를 가혹하게 징계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천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런 원시 유일신 신앙과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는) 편협하고 반인륜적인 기록들을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슬픈 현실이 우리 한국 교회 교우님들의 자유로운 신앙과 삶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무오설이라는 오래된 교리에 매여 이웃종교와 문화를 부정함으로써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가슴에 못을 박을 뿐 아니라, 그분들의 삶의 자리를 실제로 파괴하기까지 하는 무례한 행동은, 그것이 비록 일부 극단적 성향을 가진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 예수사람들이 함께 책임을 지고 반드시 극복해내야 할 우리 한국 교회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3. ‘변치 않는 신앙’은 스스로를 가두는 것

한국의 주류 개신교회들은 ‘변치 않는 신앙’과 ‘의심 없는 신앙’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겠다는 것은 성장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성장하기 마련이며 성장한다는 것은 계속 변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변치 않는 신앙’과 ‘의심 없는 신앙’은 곧 부패한 신앙이 되고 결국은 죽은 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산보다도 더 크셨습니다. 틀림없이 그랬습니다. 저의 체험에 의하면, 그때 아버지는 늘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올려보아야 겨우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산은 그렇게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볼 수 있었습니다. 원근의 개념이 형성되기 전의 어린 저에게, 아버지는 틀림없이 산보다 크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체험과 고백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제가 아버지보다 더 키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그렇게 크신 분도 아니었지만, 그리 멋진 분도, 너그러우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어느덧 제 앞에는 어린 시절의 슈퍼맨 아빠는 사라지고 세월에 지친 한 초라한 노인이 다가와 계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셨습니다. 감히 키로 잴 수 없는 깊음을 간직한 분이며, 객관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저의 ‘독특하고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신 지 이미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분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계시며, 늘 저와 동행하는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교우님들은 방금 저의 아버지 이야기를 ‘고백의 언어’로 들으셨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종교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입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고 주관적으로 고백할 수는 있지만,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이런 분이다.”라고 객관적으로 단언할 수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보다 크신 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는, 오래 전에 살던 사람들이 오래 전에 고백하고 기록했던 글을 근거로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단언하기에, 아직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과학과 합리와 상식을 모두 외면한 채 ‘오직 성경만’을 외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이삼천 년 전에 살던 분들이 인식한 하나님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지금도 강단에서 설교하는 분들이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4. ‘하나님을 믿는가?’보다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더 중요

교리를 통해 배운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살펴 주시는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과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기 위해 친히 행동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하셨고, 홍해 바다를 가르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서의 예수님과 베드로처럼 믿음으로 물 위를 걷겠다고 시도하다 익사한 경우는 있었지만, 실제로 물 위를 걸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런 장비 없이 맨 몸으로 물 위를 걷는다거나, 생선 두 마리와 빵 몇 개로 수천 명이 배불리 나누어 먹는 등의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기적’은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병 고치는 기적을 행한다며 수만 명이 모이는 기도회를 주관하는 ‘신령하다는 목사님들’ 중에도 그런 기적을 내려달라고 기도하거나 시도하는 분은 없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것은 한 소년의 행위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도시락을 모두 내놓아 굶는 사람 없이 다함께 식사를 나누었을 것이라는 성서학자들의 해석이 그나마 설득력을 갖습니다.

해마다 발생하는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너무나 무력합니다. 지난주 화요일, 파키스탄에서 강진이 발생하여 삼백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습니다.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거의 2만 명에 이르는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2008년 중국의 쓰촨성 대지진은 8만 명이 넘는 생명을, 2004년에 발생한 동남아 지진해일은 무려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던 것일까요?

자연은 자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자연재해 또한 그러합니다. 하지만 성서의 예수님(제가 ‘성서의 예수님’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성서의 예수님’과 ‘실제의 예수님’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복음 10:29)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의하면, 수많은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자연재해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수천수만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자연재해를 “너무나 자주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재앙들을 허락하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도 손 하나 쓰시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여전히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해도 되는 것일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손을 ‘쓰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시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여전히 고백해도 되는 것인가요?

이쯤 되면, 현실세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성서의 기록에 대해 당연히 의심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실제의 하나님은, 그 옛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인식하고 고백했던 하나님과는 달리, 우리 인생들의 생사화복에 일일이 관여하시지 않는 분이 아닐까요? 어쩌면 실제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일일이 들어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일 우리가 이런 의심을 한다 하여 벌을 받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교우님들이 혹 계신다면 매우 슬픈 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겨우 그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분께 너무나 큰 결례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도 모순투성이인 성서의 문구와 오래된 교리를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보다, 열린 마음으로 이웃종교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5. 많은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

지구마을의 어떤 분들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을 ‘이(理)’라고 부르고, 어떤 분들은 법(法), 또는 공(公)이라 부르며, ‘Cosmic Mind’나 ‘Cosmic Principle’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여러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원시 유일신 신앙’만은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하여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유일신 신앙’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유일신 신앙을 재해석하여 ‘배타적 유일신 신앙’을 넘어 ‘포용적 유일신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과거 기독교 전통에서 고백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인류의 아름다운 종교 유산과 신념체계를 모두 부정하는 ‘배타적 하나님’이었지만, ‘포용적 유일신 신앙’을 장려하는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온 세상 만물을 크게 품으시는 ‘한 울’님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런 ‘포용적 유일신 신앙’에는 배타성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우리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허락하신 것이기에, 지구마을 모든 종교와 문화도 (심지어 무신론까지도) 있는 그대로 포용해야 하며, 서로를 자매형제로 인정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포용적 유일신 신앙관에 의하면, 기독교와 이웃종교 모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담고 있는 그릇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그릇, 즉 특정 종교의 전통이나 제도를 절대화하여 갈등을 빚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스르는 것입니다. (포용적 유일신 신앙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교우님은 삼인출판사에서 발행한 김경재 저 <이름 없는 하느님>과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발행한 마커스 보그 저, 한인철 역 <새로 만난 하느님>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 전통에서는 오래 동안 하나님을 오직 인격적인 신으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인격’이라는 개념은 신성의 신비와 독특성을 우리의 경험과 논리로 설명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분’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로서 ‘인격’이나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은 적절하고 아름다운 말일 수 있지만, 그 용어를 절대화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 안에 갇혀버리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셨다.”는 생각도 절대화해서는 아니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초인격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이라는 말을 순 우리말로 풀이하면 ‘사람다움’이 됩니다. “말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을 말처럼 생긴 신으로 이해했을 것이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하나님을 인격, 즉 사람의 모습을 한 분으로 이해한 것은 옛 믿음의 선조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인격’이라는 개념 안에 가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Who is God?)’라고만 묻지 말고 ‘하나님은 무엇인가?(What is God?)’라고도 물읍시다.” 우리가 그렇게 물을 수 있다면 하나님을 더욱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그분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만나는 지구마을 모든 이웃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일편지를 읽어주시는 교우님들께 부탁드려도 될까요? 교우님께서 다니시는 교회에서부터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는 작은 밀알이 되어주십시오. 만일 우리 한국 교회가 배타 교리의 벽을 넘어 포용적 신앙으로 가는 이 일에 앞장서게 된다면, 지구마을은 종교와 문화에 의한 갈등을 극복하고 지구가족으로 대화합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우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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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옥 (205.175.107.213)
2018-10-04 02:18:53
기독교의 신이라고 하면, 인격적 냄새가 나지만, 동양의 불성, 도, 역, 등의 단어에서는 인격적 냄새가 나지 않는다.

불교나 도교, 유교 등 동양의 제 종교에서는 무념무상, 불성, 도, 역, 등의 상태에 이르러, 즉 쉽게 말하면, 자신의 의식에서 념과 상이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의식의 상태를 공, 열반, 본래면목, 우아일체, 브라만, 천수경에서 진참회, 순수 의식 등 여러가지로 표현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인격으로 보는 듯하다. 이러한 상태에 이른 후에 불멸의 존재가 된 존재들을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불멸의 존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를 도교에서는 상제라 부른다.

이러한 동양의 상제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인가? 처음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성경의 하나님을 상제로 번역했을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 하느님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으로 바꾸었다. 여전히 중국 성경에는 상제라 번역한다. 동양의 상제는 지배자의 성격이 강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창조자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기독교 신의 개념에는 만유 안에 있는 신의 개념 뿐만 아니라 만유 위에 있는 신의 개념도 존재한다. 물론 만유 안에서만 신은 우리에게 유의미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반응하는 존재를 인격적 존재라 정의한다면, 직접적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불멸의 인격적 존재가 도와주는 형태를 띠지만, 전체적 우주의 흐름 속에서 기도가 응답될 때도 많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우주의 본질은 인격이라고 믿는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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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5 02:08:59
그리스도인의 자격
나는 그리스도인이라 외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다닌다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하신다.
저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곧 성령)"을 받고 "주 예수"를 전파하여 믿게하니 많은 이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
이런 일들을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행하니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주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파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이는 내가 믿으려해서 되는 일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로 그 믿음이 주어질 때 되어진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예수는 과거의 수 많은 예수 가운데 한 사람이며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한 인물로서 존경받을 존재라고만 여긴다.
거기다 더하여 석가나 공자나 심지어 노자와 장자까지 들먹이며 그들의 사상과 동일함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내가 정죄하고 있는가?
성경 말씀을 따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정죄당한다고 마음에 찔림이 있는가?
돌아오라!
하나님은 변치 않는 분으로 돌아오는 자들은 언제든 용납하신다.
주께 돌아오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실 분이심을 믿으라!
리플달기
2 2
참빛 (207.210.3.147)
2013-10-05 09:48:53
또 똥막대기를
한심한 지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건만 한 점의 깨우침도 없으니 상개독이구먼.
누가 누구에게 돌아오라 하는지...ㅉㅉ
리플달기
2 1
Philip Im (70.62.49.64)
2013-10-02 07:44:19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냄새
곧 그리스도의 향기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그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리스도는 오직 독생자 예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사람의 아들로 생각하는 자들이나
창세기는 사람이 쓴 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
저들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 뿐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창세기의 말씀대로 천지가 지어진 줄 믿는 자들은
참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분별할 수 있다.
리플달기
3 5
악취 (72.196.234.24)
2013-10-02 12:13:54
자기가 스스로 그리스도 향기가 난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놈들 치고 썩은 악취 풍기지 않는
놈들이 없소. 거지목사 보시오.

향기는 자기 코가 아니라
남의 코가 맡는 것이오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해 주지.

마귀가 천사로 가장하고 어떤 수도사에게
나타나 " 나는 가브리엘 천사다. 주께서 나를 너에게 보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도사가 말했다.
"정말로 내게 가라는 명을 받았소? 다른 사람에게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오, 나는 주께서 천사를 보내실 만큼
가치있는 사람이 아니오!"
순간 마귀가 사라졌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그리스도 인의 향기라고 하는 거요.
자칭 의인이 되어 남을 정죄하는 위선행위가
아니고.

아무리 무식해도 겸손하면 어디든 사람대접을
받는 법이오.

겸손은 하나님뿐 아니라 인간들이
가장 사랑고 존경하는 성품이거든.
리플달기
6 1
악취 (24.141.4.52)
2013-10-02 12:58:25
타인은 함부로 정죄 판단하는
빌립의 입에서는 썩은 시체 같은 악취만 납니다~~~
그러니 이 자는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이 없는 자 입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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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미달 (72.196.234.24)
2013-10-02 20:36:42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이런 세 부류의
종원들과 마주칩니다.


첫 번째; 아무런 불평도 없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처리해 나가는 정직한 종업원들입니다.
그들은 회사에 보물같은 존재들입니다.

두 번째;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른 비양심적인 종업원들입니다.
그들은 자칭 의인으로 정의, 신앙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비행을 철저하게 위장하고 포장합니다.
그들은 회사에 악같은 존재들입니다.

세 번째; 근본적으로 무능한 자격미달의 종업원들입니다.
그들은 가는 곳 마다 몰상식한 언행으로 회사얼굴에 똥칠을 하고,
능력과 자질 부족으로 손대는 일 마다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칩니다.
그들은 회사에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신앙세계도 이와 유사한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세 부류 사람들 모두 다 사랑하실 것입니다.
.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종업원들과 같은 신앙인들은
하나님 역사를 위해서 망부석처럼 침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아무리 무보수 전도를 자청한다고 해도
허락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평화를 파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그런 근본주의자들의 싸움질 때문에 이틀 째 연방정부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죽어나는 것은 우리같은 소수민족,서민들입니다.
리플달기
1 1
참빛 (24.141.4.52)
2013-10-02 22:33:11
오바마 케어와 예산안
방금 아침뉴스를 보니, 미국정부의 셧다운이 길게는 3주까지도 갈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원흉들인 국회의원들의 봉급은 하나도 삭감없이 그대로 지불된다고도 합니다.
결국은 시민들만 죽어나는 겁니다.

공화당이 어찌보면 근본주의자들의 집결지로 보입니다. 부시 부자가 전형적인 근본주의자들 이었죠, 신은 자기편에 서 있고 자기를 인정하지 않거나 동조하지 않으면 전부 악의 편이라고 윽박지르며 흑백논리를 펼치며 이라크까지 침공하였던 부시와 그의 똘만이들,,,
이번도 새예산 통과를 공화당이 막는 바람에 정부가 문을 닫은 것 아닙니까.

저야 미국인이 아니니까, 이래라 할 수 없지만, 미국은 지나치게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아요.
미국의 쟁점이 붙은 새예산의 주요 안건이 바로 '오바마 케어' 라는 의료보험안으로 보이는데요.
캐나다만 해도 의료보험이 Universal 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의료혜택이 무료로 주어집니다.
암수술까지 그 이후 테라피까지도 모든 의료가 공짜이지요.
물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닫아가지만서도요.

국민의 성향이자 멘탈리티인 것 같습니다.

이곳 캐나다인들은 미국과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진것 같습니다.
돈을 벌때는 미국과 같이 철저한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이라는 룰을 따르고
분배를 할 때에는 공산주의 식으로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나누어 주기의 룰을 지향합니다.

캐나다의 자긍심이 되어왔고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Universal Health Care 장치를 어느 한 정치가가 만약 없애겠다 하거나 줄이겠다고 한다면 그 정치가의 생명은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의 캐나다인은 근본주의자들이 아니라 생명과 복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중심자이기 때문입니다.

어치피 기왕 쉬실때, 아애 마음 놓으시고 푹 쉬십시요.
사모님과 어디 까까운 데라도 다녀 오시던지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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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미국소식 (72.196.234.24)
2013-10-03 01:28:54
미국에 문제가 참 많습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합니까?
점점 그런 현상이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극보수 티파티 목소리도
높아가고 사회가 양극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저같은
이민자들이나 서민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요. 사회불안 요소도
높아가고.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집단 총기살해 사건들이
이런 미국사회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좋은 예지요.

처가 군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데
지난 며칠간 필수요원 선별작업 때문에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는 쉬게 되는 불필수 요원들의 불평불만으로
녹초가 되어 퇴근 했더군요.

오늘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놀웨이,독일, 네델란드 순으로 해서 케나다 가 5번 째, 미국이
8본 째 이더군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일본이 유일하게 10번 째에
들어 있고.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상위 16개 국의 면모를 보면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이 완전 쇠퇴한 유럽국가들이 경제문제를 제외하고는
미국보다 훨씬 점수가 높습니다. 일본의 경우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아직도 1% 전후지요. 그것도 대부분 케토릭 신도들입니다.

그런면에서 한국 기독교는 참 독특합니다. 몇 년 전에 만난
한 케토릭 신부의 말에 의하면 세계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거라고 하더군요.

이곳에서도 가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길 목에
서있는 한국인들를 발견합니다. 미국인들로 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지요.
미국은 문화적으로 기독교문화입니다. 그러나 법과 질서에
따라서 움직이는 합리적인 사회입니다. 그런 몰상식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이들일 수가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절대로 타인의 종교적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거나
간섭, 괴롭히지 않습니다. 성생활과 같은 개인적 프라이버 로
이해하고 존중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인들의 근본주의 신앙이
우리 자녀들의 미국주류사회 진출에 큰 장애요소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어차피 미국은 다른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타민족들과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는 멜팅팟 사회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이웃으로 부터 팽을 당하게 되지요.

빌립과 같이 한국교포사회에서만 의존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심심해서 자주 댓글을 쓰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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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뇌의 주름 (207.210.3.147)
2013-10-02 10:41:26
뇌에 주름이 없는 이자는, 분명 IQ 가 25는 넘을지 궁금함
똘똘한 개의 IQ가 한 35에서 40 정도 된다고 하는데..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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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Philip Im (70.62.49.64)
2013-10-02 06:49:10
왜곡?
왜 곡을 하는지...
나 원 참으로 말 못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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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2 03:59:48
경험
경험은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 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경험하여 안다는 말이
내가 죽음으로 경험하여 안다는 말일까?
문맥상 경험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슨 악한 심정으로 악한 말을 내 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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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나는 (72.196.234.24)
2013-10-02 04:40:24
나는 간접 경험으로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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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익명 (72.196.234.24)
2013-10-02 04:30:36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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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정말 무식하다 (72.196.234.24)
2013-10-02 04:13:52
간접경험으로 세상 사람들이 다 부활했네?
간접경험으로 당신도
이병철이나 정주영같은 부자가 됐고,
하바드대학 박사출신이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혼자서
그냥 무식하게 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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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2 04:32:57
선문답?
선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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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2.196.234.24)
2013-10-02 04:42:13
그래 나는 선무당이다. 그래서 너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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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2 02:12:59
선문답?
쉽게 말해 선문답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은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 깨달음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어느 깨달음이 깊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대체로 유명인이 하는 말이면 깨달음이 깊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무슨 깊은 의미가 있는가?
처음에는 산을 산으로 보았다가 조금 깨우치고 난 뒤에는 산이 곧 물이라고 깨달았다가 다시 깨달은 것이 산은 역시 산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 생각의 과정에서 깨달음이 정진되어 나가는 것을 서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의 마지막은 이미 성경에서 말씀하신 바이다.
다만 저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란 실존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산은 산으로 지으셨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산을 바라보며 산을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떠올리며 찬양하는 것이 깊은 깨달음이다.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전혀 논리에 맞지 않게 비약적으로 생각하면서 마치 선문답을 하는 것인 양 착각을 하고 있다.
단순히 논리를 벗어난 비약이 선문답이 아니다.
억지로 꿰어맞추는 것이 선문답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혹은 그 말씀에 대하여
자기의 생각대로 해석하고 말하면서
마치 무슨 대단한 선문답식의 깨달음을 나타내는 듯 자랑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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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한마디 더 (72.196.234.24)
2013-10-02 07:38:09
한 마디 더 할까? 당신이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당신을 위장하고 포장을 해도 당신의
존재가 당신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나다" 라고 한 선문답이
바로 그런 의미다.

예수도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지금 너희들이 보고 듣고 있는 나의 삶이 바로 나다" 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목사를 한참 쫒겨내고 순간에 누가 당신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 다면
"당신이 현재 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바로 나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눈노에 차서 어거지 글을 쓰기위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실존이고.

실존이나 실재나, 한자 단어만 다를 뿐
같은 의미다.
영어 LOVE 와 한국어 사랑이 같은 의미인 것 처럼.

선문답? 알지도 모르면서
어려운 성철말씀을 인용할 필요가 없다. 선문답은
불교전용 단어가 아니야. 성경을 깨어난 눈으로
제대로 읽어봐.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영적말씀은
대부분 시적 선문답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시편, 잠언, 전도서,아가서, 사복음서등...

본시 모든 종교경전은 詩로 기록되어 있다. 詩의
한자 뜻은 神과의 대화이거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청조하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니라."

이 모두가 詩적 선문답이다.

모르면 배워둬.
내가 당신과 말싸움 해서 얻는게 뭐겠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나는 당신처럼 남과 말싸움에 목숨을 거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지적대화상대도 안 되는 사람한 테
이겨서 뭐하겠어. 오늘 미국정부가 예산문제로
문을 닫아서 집에서 잠시 쉬는 중이야.

서로 사랑하자고.
리플달기
3 0
성철 (72.196.234.24)
2013-10-02 05:06:24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처음에는 산을 산으로 보았다가 조금 깨우치고 난 뒤에는 산이 곧 물이라고 깨달았다가 다시 깨달은 것이 산은 역시 산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 생각의 과정에서 깨달음이 정진되어 나가는 것을 서로 말하고 있다.

어디서 퍼 온지는 모르겠지만 성철스님이
지하에서 통곡하겠다. 그래서 절대 무식하면
절대 용감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뭔 말을 하느지도 모르거든.

이 사람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는 영어로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te wisdom and discipline" 다.
인간들의 모든 지식은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부터
시작(beginning) 되었다는 것은 맞는 말이야.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지혜다. 그리고 그 지혜가 타인들에
자비로 나타난 것이 훈계이다.

당신은 그 Beginning 도 모르는 사람이야.
인터넷 에서 아무리 도둑질을 해도 당신 것이
되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여지껏 고 모양으로
주위에서 무시 당하면서 살고 있지.
남 걱정 말고 정신이나 차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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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네 생각대로 살아 (72.196.234.24)
2013-10-02 03:10:29
네 생각데로 살아.
선한 목사들이나 쫒겨내면서...

"말이 행동이다, 죽음을 경험를 통해서 안다"는
말을 들으면 미국유치원생들도 미친 사람취급을 한다.

아무리 무식하고 못 배웠어도 단어의 개념이나
알고 댓글을 쓰라고. 독자들 중에 당신보다
못 배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제발 분수를 알라고. 당신 사생할 이야기를
글로 써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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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류상태님 (24.36.118.176)
2013-10-02 00:07:28
강의석군 좀 말려주세요.
가서 강의석군 좀 말려 주세요. 남들은 고생하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데, 가서 홋 홀 딱 벗고 뭐라고 하는데,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데,물론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실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북한 아저씨들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안되지 않나요. 전쟁이 끝난것이 아니라 휴전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혹시 이글을 보시면, 가서 좀 이런짓은 하지 마라고 하세요. 정말 하고 싶으면 정치인이 되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서 국회의원이 되거나 아니면 대통령이 되서 하라고 하세요. 이것은 국민 계몽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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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10-03 21:30:58
그대가 뭔가를제대로알고실천하길
그래서 평화협정으로가는 운동에참여하고 작전권 환수를 위하여 애쓰고...황당한 미국 무기그만사고 미국으로부터 자유해야 할것입니다..강의석 군 같은사람을통해 뭔가를 제대로 느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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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143)
2013-10-01 12:19:39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에 모두들 동의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방법론에 관한 물음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성도가 되느냐,

힌두교와 불교처럼 고행 등을 통해 해탈을 하느냐,

수신제가하고 덕을 쌓음으로 군자가 되느냐,

도교처럼 도를 닦아서 신선이 되느냐

하는 방법론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단순 명쾌하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자 합니다.


신학이니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는 다 사이비 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끼어있는 사람(종교가)들은

그들의 밥벌이하기 위해 종교를 팔아먹는 삯꾼들 입니다.


오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 못하는 자신이 괴롭다는 부처님의 말씀과

일곱에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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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10-01 13:16:26
참 귀한 신앙을 지니셨습니다.
포이멘님의 열린 마음과 신앙은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좁은길을 함께 갈 수 있는 동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를 고백하고 받으려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속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믿음만이 옳고 남의 것은 다 틀렸다는 독단의 무지를 경계할 것이며,
자기를 낮추지 않고 자기의 것이 전부인양 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실인양 주장하고 강요하려는 개독들과는
맞서서 싸워 계속하여 진실을 드러낼 것입니다.

포이멘님의 신앙관을 진심으로 존중합니다.
참 귀한 신앙입니다.
님의 말씀이 오늘 저를 아주 소인배로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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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1 03:53:58
궁극적 실재에 대하여
철학이란 어려운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쉽게 말하자면 각 사람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학문적으로 요모조모 따지면 깊이 있는 철학이라 할 것이다.

실재 혹은 실존이 무엇이며 궁극적 실재란 무엇인가?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철학은 인간중심이다.
세상의 선악 혹은 좋고 나쁨의 기준은 인간 혹은 자기 중심이며
인간에게 좋으면 다 좋은 것이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철학은 하나님 중심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고
세상의 선악이나 좋고 나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 믿는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궁극적 실재는 달라진다.
인간 중심이면 궁극적 실재는 인간이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 중심이면 궁극적 실재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기 때문에
나는 비록 이 땅에서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지속되고 있다.

궁극적 실재를 성경이 아닌 인간의 머리로 찾아낸다는 것은 실상 자신을 찾는 것이나 다름 없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궁극적 실재라 여긴다면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보아야한다.
성경이 아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 낸 실재는 '자신'이라는 우상의 다른 표현이다.
비록 말로는 '하나님'이라 부르지만...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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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1 01:40:26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단순한 성경 지식은 신앙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신앙은 성경(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에 대한 참된 지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참된 지식이란 무엇인가?
참된 지식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사람의 죽음이 무엇인가?
이 죽음에 대한 여러분의 지식은 어떤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그 죽음에 대한 지식을 모아놓고 내린 결론적인 지식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그 지식은 구체적인 것 같으나 피상적이다.
죽음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경험하여 얻게된 죽음을
이미 사람이 죽기 전에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하나님은 경험을 너머 자신 스스로의 지식을 말씀하셨다.
사람처럼 경험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읽고 지식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지식이다.
참된 지식이다.
그리고 이 지식이 드러내는 죽음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죽음너머 영적인 죽음까지도 아는 지식을 가진다.
성경을 통하여.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존재이다.
미련한 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며
누가 알려주어도 멸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

당장에 이 창세기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문학으로 치부하고 멸시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참된 지식을 모르고 자신의 경험적인 지식을 전부인 양 뽐낸다.
미련한 자가 아닐 수 없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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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과 실재 (72.196.234.24)
2013-10-02 04:01:32
단어의 뜻도 모르고 말 작난질을 또 하구먼.

그래서 어디서 신학을 공부했느냐 고 묻은 것이다.
아무리 근본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대학도
그정도 무식은 가르치지 않는다.

차라리 가락시장 거지목사가 당신보다는
훨씬 성경지식이 풍부해 보인다. 사기도 머리 속에
어느정도 아는 것이들어있어야 치는 법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있지.

제발 당신 소망처럼 망부석이나 되라고.
망부석의 무슨 위대한 사람 이름인 줄로
착각하고 덜썩 망부석이 되겠다고 했나?

이사람아! 인터넷을 다시 검색해 봐.
그 단어가 당신귀에 아무리 아름답게 들려도
망부석은 돌 이름이야. 당신에게 딱 어울려.

당신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최선의 헌신이야.
괜히 신도수도 몇 십 명 되지 않는 교회에서
또 다시 소란 피우지말고.

주위 사람들 간증은 다음 기회에 하지.

매사에 넘지 말아야할 최소한의 선이 있는 법이다.
제발 알아서 자숙하라고. 그만 설쳐 대고.
항상 적당한 것이 좋은 법이야.
후회할 일들을 미리 피하는 것이 좋아. 우선
컴퓨터 IP 번호도 정리하고 교회 컴퓨터도
더 이상 쓰지 말라고. 괜히 오해받도 있잖아.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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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0.207)
2013-09-30 23:41:26
이제 남은 것은...
구원론이 될 듯 하네요.
성서론, 기독론, 신론...결론은 구원론?
이기를 기대합니다.

아주 끝장을 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은 또 다른 '시작'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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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1 07:10:19
또 다른 시작
기존의 교리를 끝장내면 또 다른 시작 즉 또 다른 교리가 시작됨을 예상함은 왜일까?
또다시 성경과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구원에 관하여 정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ㄱ이라는 사람을 ㄴ에게 설명할 때 그 사람만이 지닌 독특성만 가지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진리의 보편성을 주장하듯 성경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하나님, 예수님,구원을 정리한 것이 교리이다. 물론 타종교와 비교할 때는 독특하지만.
이를 타종교와 묶어 보편성을 지향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그에 따른 하나님, 예수님, 구원관은 성경적이지 않다.

교리에 얽매인다고 하는데 그 교리가 잘못된 것이라면 안되겠지만 올바른 말씀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며 교리의 폐기를 외치지만 설사 성경에 입각한 구원관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타 종교와 관련된 구원관이 만들어질 것이고 이것이 곧 교리가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리된 그것(교리?)은 또다시 변할 것이다.
이렇게 자주 변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가 있는가?
절대 진리가 없다는 자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부평초 같은 인생이다.

결국 교리의 폐기를 외치는 것은 성경 말씀을 폐기하고자하는 사탄의 전략에 빠지는 것이다.
‘네 마음대로 살아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펼치는 사탄의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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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0.207)
2013-10-01 07:18:40
이분은
왜 사는지...
참으로 불쌍한 중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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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0.207)
2013-10-01 07:20:04
10센티미터 자로
온 우주를 재려는
용감무식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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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자 (72.196.234.24)
2013-10-02 02:47:27
완전"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는
주장입니다. 그런 무지한 말을 하다니.
지구상에 죽음은 경험해 본 사람은 단 한 사람,
"오직 예수님만 부활을 통해서죽음을 경험하셨다" 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신념인데..

완전 정신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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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을 듣고 (207.210.3.147)
2013-10-02 04:40:56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빌립의 그 말을 듣고, 거짓 조금 보태서요 저는 한 30분은 깔깔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ㅎㅎㅎㅍ. 프후흐하하하하하핫

근본주의 교리를 오래오래 숭배하다 보면 저런 현상이 뇌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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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친구 (72.196.234.24)
2013-10-02 06:32:51
저 친구는 근본주의 신앙인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인테넷에서 글을 퍼와 지껼여 대는
과대망상증 환자지. 교회에서 순진한 신도들을
몰아내고, 예수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교회로 부터 차단하는
적 그리스도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당당뉴스의 귀한 공간이 저런 친구들에 의해서
쓰래기장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참으로 안탑갑습니다.
수준에 따라 함께 어룰려 노는 것이 자신의 마음도
더 편할 텐데.
지금까지 저 친구 댓글들을 읽으면서 단 한 번도
기독교인의 향기를 못 느꼈습니다.
열등의식과 눈노로 가득찬
백수건달이라는 인상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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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는 (24.141.4.52)
2013-10-02 12:42:03
저 자는 왜 사는지 왜 밥을 먹는지...?
하나님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는데
저 자를 만든건 완전 실패작인 것 같습니다.
임빌립을 보면 하나님도 실수와 실패를 저지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저나 어쩌면 아마 도끼님이라도 '임빌립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 로써 이 자를 해부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무식쟁이가 (제가 보기에 중핵교도 제대로 나온 사람이 아님) 아는체로 나서대는 꼴은 처음 봅니다. 인터넷 이곳 저곳에서 글을 훔쳐와서 마치 자기가 쓴 것처럼 하고 올려대고 있는 양심불량자 입니다.

지성인은 아무리 하찮은 글이라도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가 쓴 글이 아니면 그 출처를 반드시 밝히지요. 빌립은 도둑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 원숭이는 투표조작 뿐만 아니라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는 하나님 노릇에다가 이제는 도둑질 까지 하는 아주 파렴치한 자로 보입니다.


ps.: 빌립원숭이는 들어라. 너! 계속 지껄여라. 임빌립 해부작전에 곧이어 들어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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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머리 (72.196.234.24)
2013-10-02 02:56:12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그런 무지한 말을 할 수 있다니.
지구상에 죽음은 경험해 본 사람은 단 한 사람,
"오직 예수님만이 부활을 통해서 죽음을 경험하셨다" 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신념인데..

기독교 기본도 모르고, 기초 단어의 개념도 모르고...
과연 돌머리는 돌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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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170.20.11.5)
2013-09-30 07:39:43
예상대로
하나님의 문제로 넘어왔네요.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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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9-30 07:39:41
하나님이 무엇이냐?
그 질문은 신이란 무엇이냐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이란 무엇이냐? 왜 인간은 신을 말해야 하는가?

당당에서 이런 글을 싣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읽는 사람들 가운데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별로 없으리라고 에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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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0.207)
2013-09-29 18:47:05
구구절절 절절합니다!
잘못 믿는 것은 안믿는 것보다도
훨씬 나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비정상이 정상 노릇하는 괴이한 곳(것)입니다.
이 개독판을 어찌하든지 흔들어 부숴야 합니다.
끝까지 끌고 가시기 바랍니다.
길을 가는 데에는 '벗'들이 많아야 합니다.
다음 화두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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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29 13:31:06
신인동형에 대하여
구약의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신인동형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신을 사람처럼 울고 웃고 화내고 질투하기도 하는 그런 인격체로 이해했습니다.

고대 신화를 보면 신이란 신들은 모두 다 인격체로 나타납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좋은 예로써
창세기 3장에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 로 묘사되어 있고,
출애굽기 3장을 보시면... "내가 애굽에 (직접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의 손에서 건져내고..." 라고 하나님이 말했다고 출애굽 기자는 기록한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마치 사람처럼 표현한 문학적 기법이지요.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러한 신인동형의 인격적 여호와 신에 대한 이해가 현저하게 약해집니다.
그리스 헬라철학의 이대아 사상 영향을 받아 이제는 하나님이라는 신이 다시 재조명 되어 이해되는 것이었죠.
구약의 인격적인 신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존재'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신약의 디모데서 저자는 이러한 헬라철학을 바탕으로 신은 인간이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약에서 인격적인 신의 이미지가 완전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구약에서 늘 인간처럼 표현되었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나 기록이 현저히 줄어 들었음을 보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교리 등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사람인양 표현하고 인격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재로 하나님이 인격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름을 알아야 합니다.
신을 인격체로 본다면,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너무나도 많이 남겨지기 때문입니다.

왜 나찌에 의해 그 잔인한 홀로코스트가 일어 났으며, 지진이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왜 신은 간섭을 않고 한마디도 없이 가만히 있겠는가 등에 대한 '고통의 문제'의 답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최고의 권력을 지닌 어느 아버지가 있다 합시다. 어느날 자기의 자식들이 불량배들에 의해 하나 둘씩 자기의 눈 앞에서 맞아 죽어 나가는데 가만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


자, 이제...

우주를 태동시키고 운행시키고 있는 그 무엇!
인간의 제한적 이해력과 언어로써는 이것이다 라며 단정할 수는 없는 그 무엇..
그러나 우리가 늘 느끼면서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 무엇!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궁극적 실재' 입니다.

이 궁극적 실재가 구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엇' 인가는 우리 각자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궁극적 실재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모든 것이 궁극적 실재 (하나님) 으로 부터 나온 것이지요.
모든 것이 종국에는 그 궁극적 실재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것은 주께로 부터 나왔으니 주께로 돌아감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철학이고 신학의 결론입니다.

누구나 철학자와 신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조금의 고찰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철학가요 신학자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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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10-02 11:16:09
왜 나찌에 의해 그 잔인한 홀로코스트가 일어 났으며, 지진이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왜 신은 간섭을 않고 한마디도 없이 가만히 있겠는가 등에 대한 '고통의 문제'의
이런 생각을 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자들에게는 다음의 글이 적절하다.

"‘하나님은 왜 전쟁을 허용하시는가?’.....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러한 질문은 1914-18년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 동안 매우 빈번하게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상황에서는 그런 질문이 그리 자주 제기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이 우리의 불신앙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두려워집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그만큼 불경건해지고 타락하여 결국 단지 태도나 견해나 이념이나 행위의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 아닌가싶어 두렵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무례하고 거만하게 묻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전쟁이 하나님이 아예 존재하시지 않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해도 틀림없이 사랑의 하나님은 아니실 것이라는 데 대한 궁극적인 증거가 된다고 단정합니다. 그들의 질문은 의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언에 더 가깝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사례들처럼, 여기서의 실제적인 문제는 근본적인 신앙의 문제입니다. 전반적인 태도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과 같은 특정 질문과 관련하여 그들에게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가장 주된 문제에 대하여 명백히 옳지 않은 견해를 가진 사람과 부차적인 문제들로 토론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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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72.196.234.24)
2013-10-03 02:19:56
그러니 토론에 끼어들지 말라고.
그리고 전쟁은 바로 당신과 같이 자기만 옳다고 믿고있는
과대망상증환자들에 의해서 일어난 거야.
기독교,모슬람, 유태교의 근본주자들, 히틀러,나폴레온, 스탈린, 김일성,
일본의 군국주의, 십자가를 앞세운 유럽의 식민지 제국주의, 미국 극우파....등 당신같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지..
그리고 자꾸 신이야기를 거듭하는 데 그들 모두 신의 존재를
믿고있는 사람들야. 당당뉴스 독자들처럼. 당신과는 신에 대한
개념이나 믿는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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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9 08:09:51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인가의 차이
나는 누구인가는 존재의 본질을 묻는다.
사람의 존재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을 믿지 않는, 만들어진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있지만)

나는 무엇인가는 나는 누군인가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 때 종속된 질문이 된다.
근본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 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죄악된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 채 내가 무엇인지를 알기를 애쓰고 내가 무엇이 되기를 원한다.
나는 무엇인가는 세상의 직위나 직분을 가리키는데 이는 본질이 아니며 인격과는 상관이 없다.

윗글에서 글쓴이는 인격적인 하나님 너머 어떤 존재를 찾으려고 '하나님은 무엇인가?'하고 묻기를 권한다.
그리고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을 다른 이들은 ‘이(理)’ 혹은 법(法), 또는 공(公)이라 부른다고 말한다.
‘이(理)’ 혹은 법(法), 또는 공(公)이 무엇인가?
이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물질에 불과하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물질과 비물질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한다.
그런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려고 '하나님은 무엇인가?'하고 묻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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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뇌보관 (207.210.3.147)
2013-09-29 08:43:11
그런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려고???
이 자의 뇌 안에는 온통 쓰레기들로 가득합니다.


멕메스터 대학에 가면 아인스타인의 뇌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 자가 죽은 후에, 이 자의 뇌도 꼭 보관하여야만 합니다.
인류 정신분석학의 발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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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9-29 20:31:41
창조 좋와하네...개독인그대는
뇌와 심장을 함께 보관하여 개독인의 실상을 연구해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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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단어 개념 (72.196.234.24)
2013-09-29 11:10:46
혼자서 단어의 개념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 통하지 않을 수 밖에. 자신의 말이
사전이구먼.

하나님은 보았다는 모세는
떨기나무 가지위에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고 했지.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께 "당신은 누구냐" 고 물었더니,
" 나는 나다" 라고 대답하셨다고 하더구먼.

저 사람 해석으로는 "불꽃"이 하나님 형상이고
"나"가 하나님 이름이네?

참 신기맹통한 머리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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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9 07:12: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 말씀도 인정하겠지.
그 예수님을 머리 속에서만 생각하니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자기를 계시하셨고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를 마감하셨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도록, 성경을 깨닫도록 하셨다.
우리가 완벽히 하나님을 알지는 못하지만
아는 만큼은 정확히 알 수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자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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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헛소리 (207.210.3.147)
2013-09-29 07:26:22
내가 내준 숙제는 못 해 오고서
연일 잠꼬대만 하고 있는
너!

...


숙제 하나 더 내 주겠다.

"성경은 사람이 썻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풀어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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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이사야 (121.129.19.135)
2013-09-29 20:36:21
니가 잠꼬대를하며 누굴탓하는가
큰병 이로구나 니랑 논쟁하느니 돌하고 대화 할것이다
사꼴통 개독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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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본 자 (72.196.234.24)
2013-09-29 08:48:19
저 사람은 예수을 직접 본 적이 없을텐 데.
공상 그림만 보았지.
그것이 빌립에게 한 예수말씀의 본뜻일 텐데?
그러니 하나님도 모를 테고
성경해석을 자꾸 인간 머리로 요상하게 하네.

사도 빌립이 한국인 집사로 환생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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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9 08:48:07
답할 가치 있는 질문인가?
선문답은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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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 (72.196.234.24)
2013-09-29 12:17:49
스스로 망부석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 하겠소? 아무말도 하지 마시오.

우리집에 당신이 좋아하는
항상 꼬리를 세우고 짖는 시바이누 명견 한 마리가 있소.
질문이 있으면 차라리 충성스런 우리 개에게 묻는 것이
나을 것 같소.

독자들 중에 당신보다 성경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소? 내 눈에는 단 한 명도 없을 듯 하오.
요즈음은 미국교회 주일학교 학생들도
당신보다는 성경지식이 유식하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소?

이처럼 좋은 글은 읽고 나면 감사하다고 격려를
표하는 것이 최소한의 사람된 도리이고 예의요.
비록 의견이 다소 자신과 다르더라도. .

성경이 당신에게 이처럼 말싸움질 하라고 가르치고 있소?
당신 믿음으로 지금까지 과연 몇 명이나 교회로
인도했고, 또 명 명이나 교회에서 쫒겨냈소?
목사들은 제외하고..

나는 평생 교회를 다닌 사람이오.
주로 근본주위 신앙관을 가지고 계시는
목사님들이 시무하는 교회였소.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다투어 본 적이 없소. 다행이 내가 스쳐간 목사님들이나
전도사 님들이 당신보다는 수 십배 겸손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교리를 설명합디다.

하나만 물어 봅시다.
도데체 당신은 어느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소?
한국에서요? 아니면 미국에서요?

그리고 선문답에 대한 질문은 예수에게
직접 물어 보시오. 예수가 왜? 60여 개 이상의 가르침을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식 우화로 이야기 했는지를.

당신이 선문답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말이오.
.
예수를 직접 보면 하나님을 본거나 마찬가지라는
성경구절은 내가 아닌 당신이 인용했소.
당신은 예수를 직접 본 사람이 아니니
하나님을 모를 거라는 해석이 논리적으로 하자가 있소?

성경은 일자일회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성경이 잘 못 기록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오.

내가 보기에는 류 목사는 누구 보다도 예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고 있는 신앙인이오.

다만 당신과 다른 신앙관을 가지고 있을 뿐이오.
이 세상에 당신과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고
류 목사와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류 목사 밖에 없소.
내 말이 틀렸소?

당신 성경해석은 하나님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성경해석은 이단적이라고 정죄하는 권위는
도데체 누구로 부터 당신이 위임받았소?
그 권위위임 증거를 제시하시오.

사도 바올이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왜 사랑이
의뜸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있소?
바올이 이해하고 있는 사랑의 특성을 담은 고린도 전서
사랑의 장을 단 한 번이라도 실천해 본 경험이 있소?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간증을 부탁하오.

당신이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있는
성경지식은 신앙의 삼대 요소인 믿음, 소망, 사랑에 아예
끼지도 못했소.
당신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내 이해로는 신앙은 말이나 머리 속 지식이 아니라
실제 삶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당신의 댓글들은 신앙인들에게 백해무익한
요란한 꽹가리 소리일 뿐이오.

차라리 한 편의 짦은 신앙간증이 독자들에게
더 유익할 것 같소.

당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살려
신출귀몰한 당신의 목사잡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듯 하오.
부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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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원숭이 (24.141.4.52)
2013-09-29 12:54:56
말씀 정말 잘 하셨습니다.

시원합니다~!


저 원숭이 만큼 사실 멍청한 넘은 없을 겁니다.

근본주의를 두둔하려면,

똘똘한 말을 하여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여볼까 말까 할 터인데.. ㅉㅉ

이건 매번 완전 헛다리만 붙잡고서 망상적 닭다리 잡고 삐약 소리만을 연속적으로 뇌까리고 있으니

신학적 관점을 떠나서, 겸손하고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 저 원숭이를 보고 모두 다 혀를 끌끌 차지요.


왜 저 자가 저토록 발악을 하는지 진짜로 궁금합니다.

앗 그거?

마지막 발악?


아님.. 혹시...

근본주의자를 위장한 적그리스도?...?..!
리플달기
1 0
선문답 (207.210.3.147)
2013-09-29 09:14:48
성경은 사람이 썻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은 너의 한자릿수 아이큐로는 절대로 못 푼다.

그리고...
진실은 선문답을 통해서 더욱 밝히 드러나느니라
리플달기
0 1
이사야 (121.129.19.135)
2013-09-29 20:40:06
자네 다니는교회
좀 밝혀야 할것이야....그럼 거의 알수있네..수준을..삼도,선.홍.국>교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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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참빛 (207.210.3.147)
2013-09-29 05:36:58
'무엇'과 '누구'에 대하여
아래 댓글들 중에 '무엇'과 '누구'에 대한 개념을 몰라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어 보입니다.
철학을 공부한 분들이라면 본문에서 류목사가 말하는 '무엇'을 금방 이해할 것인데...
'무엇'과 '누구'의 쓰임새에 대한 고찰을 해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략히 적어 봅니다.


누구는 반드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물이나 물건을 가리키지는 않죠.
동물을 가리킬 때는 '무슨' 이나 '어떤'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럼 '무엇'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무엇은 대체로 우선적으로 물질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무엇이 반드시 물질을 바리킬 때 쓰이는 것 만은 아닙니다.
무엇은 때때로 그리고 깊은 고찰이 필요할 경우에는 '무슨' '누구' '어떤' 이런 의문의 물음을 총.체.적.으로 물을 때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영어에서 What am I? 라는 말은 매우 통상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말입니다.
....

개독님들아...
제발, 제발 공부 좀 하고 덤비더라도 덤벼라~~~!
난 너희들보다 국어공부를 덜 했지만, 내가 어찌된게 한국어를 느그들보다도 더 잘 하는것 같데이~

너희 개독들은 고작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은 높으신 분이고 절대자 이니까 덤비면 않되고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이건 신성모독이다" 라고 생각하는 한 자리수 IQ만 지녔냐?

....


하나님은 누구인지 무엇인지 무슨인지 정확히 그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볼 수도 없다고 하였고 본 자도 없다고 디모데전서 에선가 증언하잖나요?

그런데 인간은 신이 분명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신이 사람과 같은 신 일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신일동형론'의 관점에서 신이 사람처럼 말하고 걷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구약에 묘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로 그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거듭 말 하지만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한 물체나 유기체도 아닙니다.

영적 실체. 바로 그 '무엇' 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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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하나님 (72.196.234.24)
2013-09-29 06:16:16
미켈란젤로 의 천지창조에 그림에 나오는 하나님,
다빈치 의 최후만찬 그림에 나오는 예수 를
실제 인물로 믿고 우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더 하리오.
유년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경지식을
왜 되풀이 하는지?
당당뉴스 독자들 중에 그 정도 성경지식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누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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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적 질문 (207.210.3.147)
2013-09-29 06:12:08
신인동형론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인간이 지닌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음 중 어떤 것이 맞는 지를 답 해 보시오.

1. 하나님이 인간을 그의 이미지 대로 창조 했다.

2. 인간이 하나님을 그의 이미지 대로 창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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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자 (99.224.232.108)
2013-09-29 02:56:44
그리고 통합측 신대원에서 공부를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고, 교목까지 했다고 합니다. 저분도 참 자신의 욕망 때문에 참 어려운 시절을 보냈네요. 그 욕망이 뭔지도 좀 궁금하지만, 이러한 분에게 안수를 주고, 교목으로 부른 학교도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칼럼은 이제 감리교 웹사이트에 와서 기고하고, 저는 이해 불가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기사 가지고 싸우지 마시고, 감리교 현안에 대해서 좀 깊이 나누었으면 합니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돈이 문제일지 모르지만, 감신대에서 공부하고, 감리교회 다니시는 분들한테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소망과 희망이 이제 교회마저도 사그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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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9-29 20:48:41
이땅에교회와 먹사막사에게
희망을가지시는군요....확신의말을 전합니다...바른기독교로 가는 가능성은
전무합니다...각종 범죄와.사기에 길드려진자들이 맘몬과 기득권의 길드려진 이땅에 자칭목사들1.20%빼고는 불가능합니다 평신도들이 좀더 성숙해야겠지요...예수가 원하시는 삶을 사십시요....목사가 주딩이질할때 그가 그리사는지 꼭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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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9 02:37:41
"필립 임은 무엇이고 류상태는 무엇인가?"
만약 이런 질문을 한다면 마음이 어떨까?
"우리를 물건 취급하나?"하면서 대부분 화를 낼 것이다.
인간은 물건 즉 비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엇인가?"하고 질문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란 존재를 물건 곧 비인격적인 존재로 대한다는 뜻이 된다.
과연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존재인가?

어떤 이는 하나님은 신이기 때문에 신격을 가졌지 인간처럼 인격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질과 같은 존재인가?
하기사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우주의 기와 같은 존재를 신과 같이 취급하고 있으니 물질이라고 할 만하다.
나아가 그 기를 인간이 끌어들이고 합일하여 신과 같은 존재 혹은 인간이 곧 신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물질이 아니시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에 삼위로 계시며 서로 사랑하시고 의사소통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도 똑같이 서로 사랑하며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간혹 어떤 이는 말이 인간처럼 지낸다면 하나님은 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하나님께서 말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만드신 것처럼 만드셨다면 말격을 가졌다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창세기 1장과 2장이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읺다.
1장은 우주의 창조 가운데 한 부분인 인간의 창조가 그려져있고 2장에서는 창조의 핵심이요 목적인 인간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핵심은 인간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에 대해 '무엇인가'하고 물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인가'하고 물을 수 없다.

다만 성경을 성경대로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머리속에서 하나님을 만들어 내었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다.
인간은 생명을 만들 수 없고 비인격적인 물질밖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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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72.196.234.24)
2013-10-03 10:03:06
하나님은 무엇을 먹고,
무슨 옷을 입고사니? 무슨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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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점 (72.196.234.24)
2013-09-29 13:01:07
류 목사는 정상적인 사람이고
당신은 과대망상증 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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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143)
2013-09-28 23:29:22
하나님은 태양, 돌, 번개, 사제, 교황, 목사, 이만희, 기타 잡스러운 종교가 아닙니다.
창세기 1장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님이 나에게 들어오셔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하며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나님과 나와의 신분관계를 묻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며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예수님 안에 하나님 안에 계시듯이
나도 예수님 안에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무엇들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무엇들은 태양, 돌, 번개, 사제, 교황, 목사, 이만희 등과 기타 잡스러운 종교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을 가리우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자유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두려움과 탐욕과 질투로 가득채워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 지배자 계급이며 껍데기입니다.

사람 자신들의 노력으로는 싸움과 죽음 밖에는 이룰 수 없습니다.
또한 무엇을 가지고 인간들을 위협하는 종교인들에 의해서
사기를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교에서 성인이 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불교에서 성인이 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부처 외에 있습니까?
이슬람교에서 성인이 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령님이 오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는 자를 우리는 성도(saint)라고 합니다.

구약의 유대교가 아닌 신약을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죄 지은 자들을 처벌하는 공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베푸시며
불교도에게, 유교도에게, 도교도에게, 이슬람교도에게, 힌두교도에게, 신천지교도에게, 기타 잡스러운 종교가들에게, 또한 사제들에게, 교황에게, 목사들에게

예수님을 믿어 쉽게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껍데기들에 의해서는 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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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28 23:20:37
감사합니다.
본문의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평소에 제가 고민하고 생각해 온 것과 어쩌면 이토록 동일할 수 있을까.. 참 놀랐습니다. 류목님은 진정으로 양심가이고 현자이십니다.

아, 이런 솔직하고도 통찰력 있는 글을 왜 다른 목사들은 대중을 향해 쓰지 못할까요? 아니, 쓰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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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9-29 20:52:36
장사에만 신경을쓰는 먹사 막사가
이런 글을쓸수가 없습니다.....그들은 맘몬에 기득권에 길드려지자들 입니다...........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십가가가 아닌 목을 자를자들 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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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0.207)
2013-09-29 18:16:59
아시겠지만...
우선, 알려고도 않습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성찰하는
기독교인들이 대단히 적기 때문에
기독교가 개독교라 불리지요.
그러니 먹사들이
아무리 허설을 늘어놓아도 별 문제가 안됩니다.
참빛님께서도 수십번도 더 언급하셨듯이
한국개신교는 무지할수록 신앙이 돈독하다고
여기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엉터리 학위는 또 엄청히 좋아합니다.
참 구제불능에 가깝습니다.
하여 여러 선생님들께서
회초리를 들어 힘껏 질책을 하시고
이 무지몽매의 개독판을 흔들어야 합니다.
힘드시고 피곤하시더라도
더욱 더 열심히 채찍질하여 주심을
바랄 뿐입니다.

류목사님, 참빛님, 박평일님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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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39.7.21.170)
2013-09-28 20:28:21
종교의 자유를 핑계로 쓰레기짓은 용납되나
일단 강의석 사건에 대한 류상태 칼럼입니다

강의석의 주장은 정당했다.” / 강의석 승소 판결에 대한 소감

오늘, 그러니까 2007년 10월 5일은, 나로서는 2004년 6월 16일과 함께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학내 종교의 자유’를 외친 강의석군의 주장이 정당했음을 대한민국 법정이 공식 인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 10시에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배기열 부장판사는 강의석군이 대광고 재단과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대광고는 원고인 강의석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장은 오늘 판결에서 두가지 중요한 점을 명시했다. 첫째는, 종교재단 사립학교가 선교목적으로 학교를 세웠다 하더라도 학교는 교육기관이므로 교육의 공공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법정은 사립학교가 선교하는 것을 ‘조건적으로’ 인정한 셈이 되겠다. 쉽게 말하면 이런 셈이다. “선교하고 싶으면 해라. 그러나 강요는 하지 말라.”

아직도 강의석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기독교인들 중에는 강의석이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의석이의 주장은 그런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방어적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학교가 종교재단으로서 종단의 신념에 따라 종교교육을 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학생들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종교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으니 예배 참석에 대해 선택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강군의 주장은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다. 법정은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강의석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 기독교학교는 물론 기독교계 전체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할 점이 있다. 자기 신념이 소중하다면 남의 신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의 가치를 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강요할 권리는 없다.

오늘 법정은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사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종교 교육은 특정 종교 교리가 아니라 종교에 대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당연하고도 적절한 지적이다. 특정 종교 교리를 심어주는 교육은 종교기관 즉 교회나 성당, 사찰 등에서 하면 된다.
학교는 교회가 아니다. 학원과 같은 사설교육기관도 아니다. 사립학교라 하더라도 학교는 공교육기관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종교교육은 특정 종교 교리의 주입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객관적 판단력을 키워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공교육기관인 학교에서 허용할 수 있는 종교교육의 범위와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강군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지나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금전적인 손해보상을 청구한 것에 대해 “모교를 상대로 돈을 받아내려 한다”는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강의석군이 형사소송이 아닌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이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을 경우 개선명령이나 처벌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종교 강요 행위와 그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는 발생하고 있는데, 가해 학교는 무책임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런 종교적인 독선과 배타에 의한 강요 행위가 교육이란 미명으로 공교육기관에서 자행되는 현상에 대해 공익적인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택한 것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이었던 것이다. 손해배상금으로 5천만원을 청구한 이유는, 그것이 상소가 가능한 최소한의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신교회 지도자들에게 경고한다. 이번 판결을 개신교가 새롭게 거듭나는 기회로 삼으라. 수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에 등을 돌리는 현실과 그 이유를 냉철히 곱씹어 보라.

이제 더 이상의 교리적 독선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개신교가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상식을 가진 보통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세련된 종교의 모습을 갖추라. 그렇지 못하고 2천 년 전에 만들어진 편협한 원시 교리를 여전히 고집한다면 자멸하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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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을 보면 강의석이 아주 평화스럽게 예수님처럼 종교의
자유를 외친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아주 딴판이다

원고는 담임교사 앞에서 벽을 주먹으로 치면서 ‘자신은 잘못이 없고, 잘못이 있다면 방송실 관리를 소홀히 한 학교 측에 책임이 있다.’라고 소리를 치고 ‘원고가 전학을 하든 퇴학을 당하든 상관이 없고, 원고가 주장하는 것처럼 학교가 변화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부모가 왜 학교에 죄인처럼 와야 하느냐.’고 큰 소리로 항의한 사실

이 사건 징계처분의 사유가 된 원고의 담임교사에 대한 불손한 행동이나 지도에 불응한 행위의 내용 및 정도가 결코 경미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대법원 판례


강의석이 대학교때 한 행동인터뷰는 제쳐두고
강의석과 류상태는 종교의 자유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종교의 자유는 주먹의벽을 치거나 자기만의 독단 아집 독선으로
뭉쳐서 맹신하는 그릇된 광신도 목사들이 말할수 없는 고귀한
것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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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삼청교육대 (39.7.21.170)
2013-09-28 20:31:09
한마디로 말해
강의석의 종교의 자유를 외치면서 한 행동은 쓰레기양아치짓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는 소중한것이라는 대법원 판례인데 류상태는 종교의자유의 본질은 망각한체 양아치들이 쓰는 폭력이나 일삼는 애를 졸지에 영웅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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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망각 (72.196.234.24)
2013-09-29 14:14:50
삼청교육대 님

류 목사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그
냥 묻어두세요. 인간들은 하루에도
오 만 번 이상 변하고 바뀜니다.
나 자신도 360도를 수 만 번씩
돌고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던지는 돌팔매질 무덤만 해도
매일 하늘을 찌르고 남을 것입니다.
자신이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서가 아니라 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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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참내.... (218.235.58.13)
2013-09-28 23:08:06
아니...뭐...
삼청교육대님 쓰시는 말씨도 쓰레기양아치들이 쓰는 폭력적 언어시네요 뭐...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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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무릇돌 (218.38.160.207)
2013-09-28 20:06:12
우선,
하나님은 누구신가?가 아니라,

하느님은 무엇인가?

충분히 좋은, 성찰을 요하는 주제입니다.

우선,

하느님은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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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박평일 (72.196.234.24)
2013-09-29 13:35:19
하느님은 '변화'입니다.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삶이란 周易이지요.
신은 易이라!
周易 64 卦의 마지막 未濟의 卦가
신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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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무릇돌 (218.38.160.207)
2013-09-29 14:00:25
하느님은 '변화'입니다.
이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모든 갈등, 분란, 왜곡, 오해가 생기는 듯합니다.
특히 박 아무게, 빌립 어쩌구...
그러나 대다수는
이 명제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논리나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저는 십여년 전에
언급한 이정용 박사님의 「易의 신학」을
충격 속에서 그리고 희열 속에서
읽었습니다.
제 생각엔 우리 세대의
최고수준의 신학자들 중의 한분으로 사료됩니다.

언제나
이 어린 백성들이 '깨몽'이 되어 계몽이 될지?

거듭 이런 자리를 마련한
'당당'과 '류목사님'께
또한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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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무릇돌 (218.38.160.207)
2013-09-28 20:19:06
神 卽 易
「易의 신학」, 이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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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무릇돌 (218.38.160.207)
2013-09-28 23:27:10
신은 또한 인간
흔히 무로부터의 창조 운운 한다.
신 외의 어떤 다른 무를 상상할 수 없기에
신은 자신 안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셧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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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무릇돌 (218.38.160.207)
2013-09-29 08:55:32
성서적, 기독교적 신은 또...
존재론적으로는
신은 영(spirit)이다.
그러므로 신비의 미지의 존재이다.
그러나 한편
체험적(윤리적, 실천적) 의미에서의
신은 사랑(love)이시다.

그러므로
신은 무엇이다 하면서
우기는 자는
신을 모르는 자이고
인간에 대한 우주에 대한
나와 다름에 대한
이해가 없고 사랑이 없는 자는
신을 모르는 자이며
불신자일 뿐이다.
(주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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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박평일 (72.196.234.24)
2013-09-29 13:59:01
공감
몇 주 전에 한 친구부인이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맨손으로 이민와서 수 천만 불의
거부가 된 친구입니다. 몇 달 전에 해변가에 몇 백만 불 짜리
호텔을 새로 구입해서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궁굼해 하던 차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사업에 어려움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놀라서 " 갑자기 무슨 일이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뚱단지 같은
질문을 나에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에 대해서 좀 알고 있지만 신은 모른다. 신을 알면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살고있겠느냐?" 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공기가 무엇인지? 물이 무엇인지? 에 대해서
의문을 갖어 본 적이 있느냐?" 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래서,
" 당신이 목이 마르던 가. 숨이 막힐 때
물이나 공기를 생각하지 않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때 물이 무엇인지 공기가 무엇인지 묻지 않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들이쉬면 해결되지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

"물이 산소와 수소의 결합이라는 지식은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만 필요로 합니다. 실제 삶에서는 그런 지식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신에 대한 의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무엇인지 묻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냥 열심히 일하면서
선하게 사십시요. 그러다 보면 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고
대화를 끝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혹씨 사업체가 골치가 아프거나 적자가 나면 신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말고 적당한 가격에 빨리 처분하십시요" 하고
권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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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
무릇돌 (218.38.160.207)
2013-09-29 18:26:03
신은 '일상' 속에서, 그리고...
옳은 지적이십니다.
비루한 것 같지만
우리의 지금 여기에서의 '일상' 속에서
신을 만나지 못한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한편,
그 신을 설명하거나 정의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박선생님께서도 언급하신 바와 같이

"나는 나다(출 3:14)"하는 말씀과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엡4:6)"라는

성경의 표현들을
교회와 기독교는 왜 이해하려 않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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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
참빛 (207.210.3.147)
2013-09-29 09:24:53
아~멘 입니다.
너무나도 바른 정리를 하여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지랭이들이 이곳에서 우리의 말을 언젠가는 스스로가 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깨달음에 이를 날을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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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1
최Ray (220.118.20.85)
2013-09-28 16:52:51
나의 하나님 아버지.

나의 예수님.

나의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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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9-30 23:02:30
제발 부탁한다
하느님 예수님 성령....망신좀 그만시켜라...개독교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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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1
최Ray (220.118.20.85)
2013-10-02 19:18:10
뒤 똥이나 닦고다니는 이사야 불쌍하다.

너 자신이 개독교가 안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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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10-03 21:43:59
최씨 자네같은
주딩이 신앙에대해 잘알고있네..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운운하며 예수를 욕먹이고 성령을 희롱하며 한심한 하느님으로 전락시키는자...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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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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