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와서 이상했던 일 중에 하나는 어떤 길에 교통량이 늘면 길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좁히는 경우를 보는 것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지역에 교통량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 주고 분산시킨다나 뭐라나……

미국에 복잡계라는 것을 연구하는 산타페 연구소라는 곳이 있단다. 복잡계 이론이란 물질을 잘게 나누어 현상들을 설명하려 했던 지금까지의 경향과는 달리 작은 단위의 물질과 현상들이 모여 어떻게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란다.

그러니까 쪼개어 보던 것은 상호 관계를 통해서 보는 방법인 것 같다. 그런데 ‘복잡계’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잘 모르겠으나 내게는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대단히 적절한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 세상은 복잡 미묘한 것이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기도 한 것이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복잡한 인간행위들을 복잡한 환경 속에 대입해 보고 복잡해진 역학을 현실에서 적절히 다루는 법을 강구하는 일이다.

우리의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가 실은 많은 요인들이 복합된 결과이고, 이런 작은 행동들이 또한 무수히 많은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에 변동을 주고 있다. 복잡함은 세상의 본질 그 자체여서 우리의 작은 일상생활 하나에도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현상의 배후에는 단순히 한 가지 원인만 있는 법은 없다. 모든 일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함수 작용을 하고 있다.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의도하지 않은 미시적인 행위나 현상이 모여 거시적인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창발’이라고 일컫는단다. 마치 나비효과와 같은 이 같은 현상은 ‘의도되지 않음’이 핵심이다.

연전에 온라인에서 정체불명의 쪽집게 경제전문가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시끄럽게만들었던(시끄럽게 만든 것은 본인이 아니고 정권이었지만) 미네르바 사건과 싸이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본인이 의도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물론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행동을 시작하는 것까지는 의도된 것이지만 그 여파에 대해서는 애초에 계획한 것과 차이가 큰 것이었다는 말이다.

미네르바의 경우는 본인의 글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파만파로 파장을 일으켰고 싸이의 경우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대박이 터졌다. 이런 현상을 복잡계 이론으로 이해하면 일단 시작된 행위는 다양한 연결고리를 타고 걷잡을 수 없는 양태로 번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의도 하지 않은 결과'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같은 뜻의 말이지만 복잡계 세상의 특징을 표현해 주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운동권에 유행하던 유머가 있었다. 시위 현장에는 언제나 가장 앞에 서서 경찰의 공격을 무력으로 막아야 하는 머리 보다 몸이 중요한(?) 사수대라는 조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구호가 “단순! 무식! 과격!”이었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지만 단순, 무식, 과격해야 파워가 나온다는 만고의 진리를 표현한 말이다.

이 말처럼 보수 기독교인들의 특징을 잘 말해 주는 적절한 예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이 믿어야만 그 책에 쓰여진 구절 등에 대하여 문자적으로 절실하게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성서를 신학적으로 깊게, 넓게 해석 할 줄 아는 신학을 가진 교단일 수록 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단순, 과격, 무식하게 해석하는 교단일 수록 교회가 잘되는 현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예이기도 하다.

어차피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사람은 많이 알고 사는 사람과 대강 알고 사는 사람으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세포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면 복잡한 세상에서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남한에 교회가 너무 많은 것을 개탄하는 자리에서 어떤 순진한 목사님이 통일이 되면 지금 몇 억씩 주고 세를 들어 있는 작은 교회들이 북한으로 올라가면 그 돈으로 땅 사고 건물 짓고 할 수 있을 것이니 교회 많다고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참으로 뇌에 주름이 없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 되면 남쪽의 부자 교회들이 '열중 쉬어' 하고 있을 것 같은가?

우리는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곤란한 사람은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영화관이 밝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영화의 해상도가 낮아져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이 흐릿해져 잘 보이지 않아 짜증이 난다. 그래서 영화관 안은 어두워야 하는 것이다. 환상을 또렷하게 보기 위해서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두움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