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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그는 진정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9월 22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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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9월 20일 (금) 08:37:19
최종편집 : 2013년 09월 21일 (토) 00:48:59 [조회수 : 8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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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당당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교우님들께 드리는 편지는 매우 불편한 내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우리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오래된 물음에 대해, 교리적인 답변이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계속된 저의 오랜 고민과 기도와 성경공부, 그리고 여러 신학자들의 글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겉도는 교회개혁운동, 중심으로 들어가야

이 문제에 솔직하게 접근해가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교우님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전통적인 가르침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 신성모독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너의 양심과 하나님 앞에 솔직하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성서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서를 통해 만나는 예수님은 당시의 모든 종교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율법과 종교전통에 도전하면 큰 벌을 받게 된다고 위협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셨으며 그들의 언행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기존의 모든 교리적 전제를 뛰어넘어 오로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며 행동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서 교회개혁운동에 앞장서거나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 중에는, 기독교의 정통교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여 교회의 조직을 좀 더 합리적으로 개혁하거나, 재정의 투명성과 목회자의 자질문제 등 교회의 도덕성회복을 목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한국 교회가 이토록 부패한 데에는 자본주의와 결탁한 물신숭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 동의하며,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는 도덕성회복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지난 편지들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개혁안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른바 ‘보수정통’이라는 기독교의 독선적인 교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 기독교가 겪어왔던 여러 문제의 뿌리에 바로 그 ‘보수정통’이라는 교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목회자들의 금전적 비리나 윤리적 탈선이 개인의 도덕성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도덕적 긴장에서 해체되도록 만든 보다 깊은 원인을 찾아보면 역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에 닿아있기에, 우리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개혁되어 복음의 원형을 회복하고 예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리 개혁’이 그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2. ‘사람의 아들’ 예수

“예수는 그리스도(구세주)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본질상 신의 성품을 가진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라는 고백은 기독교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 이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동일하게 고백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예수에 대한 해석을 근본적으로 달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난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발하게 연구된 현대신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는 교리적 예수와는 너무나 다른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거대한 자료를 서로 공유하며 연구하는 <예수 세미나>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 결과를 교우님들께 잠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분들의 연구 결과를 자세히 알고 싶으신 교우님은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간행한 책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특히 존 도미닉 크로산 저, 한인철 역의 <예수는 누구인가>와, 존 도미닉 크로산 저, 김준우 역의 <역사적 예수>, 로버트 펑크 저, 김준우 역의 <예수에게 솔직히> 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재발견한 역사적 예수님은 존재하는 모든 이웃을 하늘 아버지의 딸아들로 인식하고 살았던 멋지고 호방한 젊은이였습니다. 또한 어떤 이념이나 교리도 사람을 억누르고 통제할 권리가 없다며 모든 인간의 차별 없는 해방과 무한 자유를 선언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깊은 사색과 명상을 즐긴 영성가였고, 따뜻하고 섬세한 성품을 지닌 분이었지만,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거친 욕설도 불사하는 불같은 성격의 혁명가이기도 했기에, 당시 사회의 기득권자,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사회질서를 뒤흔들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마침내 십자가형을 언도받아 처형되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것은 그분의 육신뿐이었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정신은 결코 죽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따르던 제자들의 마음과 삶 속에 부활한 예수님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어느새 민중의 영웅이 되었으며, 그를 흠모하고 따르던 사람들의 모임은 여러 동아리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조직체로서의 초대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스승 예수께서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어떤 벽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가 스며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과 삶으로 뚜렷하게 보여주신 이정표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것은 신분에 대한 차별과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고 억누르는 모든 전통과 압제를 돌파하는 역동적이고 신나는 삶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마침내 현실의 모든 제약과 고통을 뛰어넘어 천국, 즉 그분이 예언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천국은 죽은 후에나 갈 수 있는 미래의 천국이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3. 사도 바울이 이해한 예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20년쯤 지났을 때, 매우 영리하고 독특한 학자가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도 바울의 서신’으로 잘 알려진 그의 글들은 당시 유대와 갈릴리 땅을 넘어 이방인 지역에 막 태동하기 시작한 교회들에게 편지로 전해졌습니다.

유대인의 혈통과 로마인의 시민권을 아울러 갖고 있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도 아니었고 한 번도 예수님을 직접 뵈었거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독특한 영적 체험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 전통과 그리스 철학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로마제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그는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익숙한 언어와 비유로 ‘예수 사건과 의미’를 소개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억울하고 안타까운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속사의 정점이며 죄와 악에 대한 영원하고 궁극적인 승리였습니다. 복음서보다 20여 년이나 앞서 기록된 바울의 이런 가르침은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더없이 쉽고 만족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처럼 처절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고, 다만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에게 기대는 것으로 충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멸되고 구원을 받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옛 종교의 무거운 율법은 사문화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성인과 유아 등 모든 차별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허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사람은 완전히 평등하며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오직 그분을 믿기만 하면!

바울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차로 사로잡았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으며, 현실은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저 하늘나라에서 주님 품에 안기면 그 모든 고통과 애곡과 눈물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그의 가르침은 가난하고 힘없고 체제에 눌리고 착취당하며 살아가던 연약하고 가난한 민중에게 현실의 질곡을 넘어 삶에 소망을 불어넣어주는 최상의 복음(Good News)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가 제시한 구원의 길은 “오직 그분을 믿기만 하면!”이었지만 그 믿음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오늘날까지도 학계의 논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온 해석은 예수님의 대속과 구세주 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와는 매우 다르게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강조한 ‘오직 믿음’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교리적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적 정치적 속박을 뛰어넘어 자유와 해방을 선포한 ‘그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것이며, 그 믿음이 바로 이 세상의 온갖 핍박과 고난을 뚫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 해석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 해석이 옳다면) 사도 바울이 ‘교리의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교우님은 도서출판 삼인에서 발행한 김진호 이정희 차정식 최형묵 황용연 공저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김진호 저 <리부팅 바울> 등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복음서 기자들이 이해한 예수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4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을 때,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인 지역의 교회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지 20년쯤 지난 서기 70년 경, 예루살렘과 갈릴레이 지역에서 전해지던 예수님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삶의 이야기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한 사람들이 마침내 뜻을 이루었습니다. ‘예수 이야기’가 전승 과정을 거쳐 기록의 단계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은, 40년간 내려온 수많은 전승들 가운데 서로 다르거나 모순되는 자료를 접했을 때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그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웠습니다. 어떤 자료는 그의 영웅담에 치중한 나머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자료는 영웅적이기는 커녕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평범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묘사된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 기자들은 서로 모순되는 자료들이라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내용은 기록에 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글이 거룩한 책으로 편집될 뿐 아니라 후에 ‘성서무오설’이라는 교리의 보호(?)를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모순되는 자료를 함께 싣는데 갈등을 느낄 필요는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출판기술이 없었던 당대에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베껴서 복사본을 만들 수밖에 없었기에, 비의도적인 실수도 있었고 복사자가 의도적으로 내용을 바꾼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축자영감설을 믿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에 있어서는” 성서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입니다.

마침내 전승 자료들이 기록물로 모아져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들이 탄생되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가 네 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즘 널리 알려진 <도마의 복음서>를 비롯하여 <마리아의 복음서> <베드로의 복음서> <빌립보의 복음서> 등 여러 복음서가 존재했으나, 이후 교회의 심의에서 정경에 들지 못하고 사복음서만 경전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성서에 수록된 네 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은 마가복음입니다. 서기 70년경에 기록된 마가복음의 예수님이 복음의 원형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마가(개인이 아니라 아마도 마가공동체)가 소개하는 예수님은, ‘하늘 위의 저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 오신 개혁자였습니다. (하지만 훗날 16장 9~20절이 첨가되었습니다).

마가복음보다 10~20년 정도 늦게 기록되었으며, 마가복음의 기록을 상당 부분 인용한 것으로 확인된 마태복음(서기 85~90년경)과 누가복음(서기 80~90년경)에는 개혁자로서의 예수님보다 신적인 예수님의 모습이 더 많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서기 90~100년경)에 나타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로고스)으로서의 하나님’으로 그려집니다.

이처럼 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대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예수님 사후 40년 동안 입으로 전해진 후에야 기록되었기에 ‘사건’과 ‘기록’ 사이에 긴 간격이 있다는 점과, 복음서에는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가 함께 담겨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 중에서 사실의 언어로 기록된 것과 고백의 언어로 기록된 것을 정확히 구별하여 사실의 언어는 사실의 언어로, 고백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날 교회는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사실의 언어로 해석했기에, 배타적인 교리가 안고 있는 모순과 함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의 교회 역사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에서 ‘신앙의 대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삼백년쯤 지났을 때, 예수에 대한 모든 논의가 차단되고 오직 한 가지 해석만 통용되게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정권 유지와 로마제국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예수님이 ‘신의 아들’을 넘어 ‘신 자체’가 되었으며,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선포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5. 마침내 신이 된 ‘사람의 아들’

서기 4세기 초반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늙고 병든 로마제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기독교를 동반자로 선택했습니다. 제국의 정신적 구심점을 새로이 세우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와 사상을 아우르는 절대신념체계가 필요했는데, 마침 그때 지난 이백여 년에 걸친 정책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신념으로 버텨낸 유일신 종교가 그의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제국의 동반자로 선택한 중요한 이유는, 예수께서 “카이사르(로마 황제)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심으로써 로마제국의 권위를 인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타협을 시도한 교회가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기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이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통일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 고백되기도 했지만, 단순히 인류의 영적 스승 중 한 분으로, 또는 기득권에 저항하는 혁명가로 인식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예수관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견해 중에서 황제에게 필요한 것은 ‘유일신의 유일한 아들’로서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신의 절대계명이 될 수 있고,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바치라.”는 유일신의 명령을 중심으로 제국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 325년에 니케아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교회는 마침내 예수님을 ‘신과 동일 본질을 가진 유일한 아들’로 선포하였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에서 성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로마 황제이며 이교도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정치적 선택에 의해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의 친구’였던 예수님은 ‘신의 아들’의 지위를 넘어 급기야 ‘신 자체’로, 또한 인류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로 선포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이웃을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품으신 예수님의 너그러운 삶과 가르침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에서 제외된다는 배타적 교리로 바뀐 채 중세 천년을 지나 한반도에까지 유입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신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으신 교우님은 제가 지은 <소설 콘스탄티누스>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6. ‘예수에 대한 신앙’을 넘어 ‘예수의 신앙’을 가져야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이런 현대 신학자들의 새로운 해석은 교우님들을 매우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이런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과 진실을 알기 위해 정직하게 의심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온 견해를 계속 견지하고 주입하는 것이 교회의 안정과 성장에 바람직하다고 믿는 교회지도자들이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할 경우에는, 양쪽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후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세상 이치 뿐 아니라 신앙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통용되는 이치입니다. 하여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교우님들도 정직한 탐구를 계속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바른 신앙은 무엇보다 사실을 바탕으로 구축되어야 하며, 사실 위에 구축되지 않은 신앙은 깊어질수록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세상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인격)로 고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은 예수님을 이천년 전에 사셨던 참 자유인으로,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압제에 저항했던 혁명가로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재해석은 이미 기독교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이삼백 년 전부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존 힉(John Hick)을 비롯하여 폴 니터(Paul K. Knitter) 등 세계적인 다원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전환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일어나야 한다고 일찍이 주장하였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는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를 원하시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원하셨을 뿐이다.”라고 하여 교회가 예수님의 따뜻한 인류애 정신을 배타적 교리로 만든 것은 예수님의 뜻을 거스른 잘못된 선택이며,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신앙은 ‘예수에 대한 신앙’(예수님을 신으로 믿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의 신앙’(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 신앙)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다양하고 열린 예수 연구가 지구 마을에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불러오고 있으며, 지구마을 여기저기서 정직한 신학자와 예수사람들이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외치고 있지만, 배타와 독선에 빠진 미국의 근본주의 교회와 한국의 주류 개신교회들은 여전히 이천년 전의 원시 교리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본받아 이제 우리 한국 교회도 이런 현대 신학의 도전에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모든 전제를 과감히 내려놓고 현대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검토하며 정직하게 ‘역사적 예수’를 재탐구하여 아름다운 인류 문화 특히 지구마을의 정신을 지켜온 고등종교들과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또한 현대 과학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교리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교우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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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 (72.69.99.28)
2021-09-20 11:50:16
왜 기존 기독교가 이리도 근본주의에 목메달까? 당연히 헌금 때문이지. 게네들이 자기 믿음을 부정하면 헌금 끊어지고 지네 밥줄이 짤리는데 당연히 인정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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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8 03:29:26
참으로 안쓰럽도다.
간절한 소망이 부활한 예수를 만들어 낸 민중들.
그리하여 그 부활한 예수(?)를 믿고 정치적 탄압,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는 힘을 얻고자 하였다?
결국 민중들의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예수를 믿고 힘을 얻었다는 말쌈이구나.
참으로 안쓰럽도다.
허기사 세상 관점에서 보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저 사람을 위한 위대한 정신만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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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보관 (207.210.3.147)
2013-09-29 08:41:42
이 자의 뇌 안에는 온통 쓰레기들로 가득합니다.


멕메스터 대학에 가면 아인스타인의 뇌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 자가 죽은 후에, 이 자의 뇌도 꼭 보관하여야만 합니다.
인류 정신분석학의 발전을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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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8 02:22:42
바울의 체험
한국교회의 소장(지금은 중견?) 신약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에의 예수의) 나타남의 사건은 바울에게만 확실한
바울의 주관적인 체험으로 후대에 인각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개별적 나타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바울의 개인적 체험으로 그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마치 부활이 사실인 것처럼 각인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또한 하나의 추론일 따름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부활의 사건도 사실이 아니지만 마치 부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후세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성경은 사실이 아니 것을 각 사람들이 그렇다고 여기면서 체험한(이것은 비몽사몽 간에 일어난 일이라 여기는 것이다) 것을 기록한 문학에 불과하다는 말씀이렷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상상력에 의지하여 만들어낸 어떤 존재를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을 뿐이다.
새긴 우상에 불과함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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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27 13:18:55
조약돌님
우선 저는 고수가 아니라고 자수하면서, 님의 의견에 대한 저의 소견을 나누었으면 하여 몇자 올립니다.

요즈음 대학에는 종교학과에 BIBLE AS LITERATURE 라는 과목이 있는데 재미있는 과목이라 그런지 종교를 떠나서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성경을 문학적 차원으로 접근을 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 보자는 것이죠. 아시는 바와 같이, 문학은 인생의 고락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바를 산문이나 시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학과 언어적 기술과 기교와 또한 예술이 가해지는 것이죠. 지금껏 우리가 통상적으로 배워왔던 방식 즉 성경을 어떤 지침이나 명령으로 보는 것 보다는 성경을 문학적인 접근으로 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훨씬 좋고 바르다고 봅니다.

또 다른 접근은 성경 (특히 신약)을 사회학적 또는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지요. 여기에 요즈음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확실히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관점으로 보면 성경을 매우 보편적인 사고로 다시 바라볼 수 있고 또 성경이 사실은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알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주입식으로 강압되었던 케리그마의 예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너무나도 많이 남겨 놓았고 기독교를 말 그대로 개독교로 변형시켜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시방의 기독교는 지금까지의 교리중심의 세계관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신에 독자는 성경을 읽어 나갈때 문학적이고 사회-역사적 접근을 병행하여야 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나누어 섬세히 분류하자면, 세가지의 유형으로 나타난다고 생각되는데요.
첫째는 방울이라는 자가 쓴 케리그마의 예수중심의 바울서신들이고
둘째는 그 방울의 케리그마 예수에 대항하여 반대의견으로 쓰여진 일부 바울서신들이고
그리고 또다른 제삼의 서신들 즉, 개인적 신학을 드러내기 위해 바울의 이름을 빌어 쓴 위서들로 파악되는 것으로 압니다.

20세기초 역사적 예수를 찾다가 거의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60-70년대에 다시 부활하여 지금은 많은 것이 밝혀 졌다고 봅니다. 역사적 예수로 밑천으로 신앙하기에 충분한 량은 이루어 놓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밝혀 낼 수 있을지는 저도 의문이며 기대가 됩니다.

"예수의 이적사화가
그레코-로만 사회의 아레탈로지의 형식을 빌어
그의 뛰어남을 선전하려는 도구였다면
나는 성서의 이적사화를 하나의 우화로
어떤 종교적 깨달음과 내용을 전달하려는
문학적 장치였다고
간단하게 치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놀라운 깊은 고찰이십니다.
여기에 제가 하나 더하자면 예수의 기적은 많이들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알레고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이해하는 성서는 복잡하게 그러나 아주 정교하게 쓰여지고 수정되고 엮어진 사람이 쓴 매우 인간적인 사회학적이고 문학적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작품이 나오기 까지는 수천년 동안의 인간활동이 뒷바침되어 있었고 인생의 고락을 통한 인간의 깊은 깨달음과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서술하고 시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 안에는 신의 뜻이 아로 새겨져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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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7 14:00:35
본류에 합류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주입식으로 강압되었던 케리그마의 예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너무나도 많이 남겨 놓았고
기독교를 말 그대로 개독교로 변형시켜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시방의 기독교는 지금까지의 교리중심의 세계관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서는 복잡하게 그러나 아주 정교하게 쓰여지고 수정되고 엮어진..."

공감하면서 또 감사드립니다.
성서-성경이 구술문화권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드라마처럼
낭독되도록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그 구조가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것 같습니다.
당시 문자를 다루는 사람이 전 인구의 5% 미만으로
대단히 지성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성서를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충분히 가늠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경조차도 후대의 허접한 교리와 신학으로
재단하고 해석하려 하니
기독교는 '도가니'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본류'에 합류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너무나 많은 인간들이 그 오솔길을 지나쳤으므로
우리에게 다시 '그 길'을 발견할 행운이 올까요?

아니면
그냥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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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27 15:59:25
아무래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최우선적으로 되어야 할 것이 신격화 된 참예수를 제자리로 모셔와야 하는 일인것 같습니다. 류목사님께서 인간이신 예수에 대한 본문에서 '새술은 새푸대에' 라고 말씀하신 것 처럼, 아무래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하겠지요.

제가 아는 바로는 한국에 평신도 열린 공동체로 알려진 새길교회에서 이러한 새로운 페러다임으로 가고있고, 순천 하늘씨앗교회 에서도 아마 비슷한 페러다임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동지를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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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7 09:18:22
기독교의 실존이라...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무엇이 기독교의 실존인가?
창조주 하나님, 성육신 하신 예수님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
이 기독교의 실존의 근거는 어디에 있나?
성경이 아니던가?
기독교는 성경에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실존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고, 깨닫고 믿는다.
성경을 신화니 문학이니 하는 자들이 곧 개독교를 만들고 있음을 아시라.
또한 그리스도교라 칭하는 것은 세상에 드러나는 거룩한 무리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들을 그리스인이라 하였으니 세상을 향하여 기독교 곧 그리스도교라 칭하는 것이다.
아무렴 어떠랴.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기독교의 실존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역사적 예수가 기독교의 실존이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시존을 알게 하시는 성령이 기독교의 실존이다.
어리석게도 머리 속에서 막연히 떠올리는 그런 존재를 하나님이라 여기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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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7 13:48:20
이자와 박 아무개의
머리속이 궁금합니다.
도대체 뇌라는 것이 있는지
무슨 쓰레기가 그렇게 많이 차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한편 불쌍합니다.
그러나
저들의 허설이 아직은 개독교라는 현실 속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여전히
우리 공동체의 불행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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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파 (72.196.234.24)
2013-09-28 12:08:34
염려 내려놓으십시요. 내가 알고 있는 근본주의 신앙인들
중에 저 정도 수준으로 무식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저 정도면 근본주의 신앙인들도 싫어하는
엔티 예수, 막가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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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잠꼬대 (24.141.4.52)
2013-09-27 12:22:41
역사적 예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뭐라도 아는양 설쳐대야만 하는 너.

아무리 봐도
너는
정.신.박.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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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7 07:19:21
역사적 예수
참으로 고민스럽다.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인가?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동정녀 탄생'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건 아닌것 같다.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본받을 '예수 정신'은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기 난감하니 그건 아닌것 같다.

성경 말씀을 사실로 보면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 되고
성경 말씀을 신화로 보면 예수는 가공의 인물이 된다.

옳구나!
성경은 사람이 쓴
그러나 위인전 같은 글로서 역사적 인물인 예수를 쓴 책이구나!

맞는가?

기독교의 물을 먹었으니 예수를 부정할 수는 없고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니 신성을 인정할 수는 없고
그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상상력을 발휘하여 생각해낸 잡설이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또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의 뜻을 행한 자로 인정하고 그 정신을 따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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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7 07:31:45
근본주의는 또 다른 안티(기독교)일 수 밖에
왜?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에.

자칭 빌립 집사님,
빌립은 성서에서 상당한 진보주의자인데
댁은 근본주의를 가장한 안티?

"성경말씀을 사실로 보면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 되고
성경 말씀을 신화로 보면 예수는 가공의 인물이 된다."

멍청한 인생아.
성경말씀을 (문자적) 사실로 보면
예수는 허구(신화)와 잡동사니이고
기독교의 실존을 보면 예수의 역사성을 최소한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어떤 역사적 예수가
이런 개독교를 산출해내었는지가
성찰의 대상인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머리 좀 정리하고 주절거려라.
하기야 그 머리가 정리가 되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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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6 18:28:20
정말 역사적 예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왜 바울이 역사적 예수에 그토록 무관심 할까요?
예수는 그의 이름처럼 '하느님의 구원(천국)'을 실현하는
집단이 아닐까요?
갑자기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예수가 의심스러워집니다.
마가야말로 예수를 한 개인으로 창조한 인물이 아닐까요?
뭐 '아레탈로지'인가 하는 당시의 문학 장르를 원용하여.

고수님의 답변 바랍니다.
머리없는 근본주의자의 댓글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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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7 10:10:23
예수의 부활과 이적사화...
예수의 부활사건을 보면
'뒤집어읽는 신약성서'라는 책을 공동 저술한
한국교회의 소장(지금은 중견?) 신약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에의 예수의) 나타남의 사건은 바울에게만 확실한
바울의 주관적인 체험으로 후대에 인각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개별적 나타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의 문제는 여전히 문제이다.
부활을 민중의 희망의 표현으로 보아야지,
역사적 사실(사건)로 보는 것은 넌센스이지 않을까?
물론, 민중의 희망은 사실 또는 사건보다
더 가치있고 중요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활한 예수의 몸이란
사실, 그의 가르침을 추종하여
그의 길을 계승한 ‘공동체의 현존’ 외에 무슨 다른 것일까?

예수의 이적사화가
그레코-로만 사회의 아레탈로지의 형식을 빌어
그의 뛰어남을 선전하려는 도구였다면
나는 성서의 이적사화를 하나의 우화로
어떤 종교적 깨달음과 내용을 전달하려는
문학적 장치였다고
간단하게 치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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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7 04:31:14
추천
제가 굳이 이곳에서 예수의 역사적 실존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가 지금까지의 성서비평 연구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예수의 역사적 존재성은 매우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는 학계의 공통 결론일 뿐아니라, 또한 기독교와 안티를 제외한 일반대중의 일반적 시각이기도 합니다.

객관적인 학계 연구결과조차 인정하지 않고..이미 거의 사라진 예수신화론을 주장한다면 이미 클안기는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기 어렵게 될뿐더러..
<기독교를 혐오하는 사람들끼리의 아우성>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개독들 역시 클안기를 전혀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는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한 힐렐계열의 저항운동가로서..
당시 로마지배층과 산헤드린으로부터 국가질서에 매우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어 십자가형을 당한..
역사적으로 실재한 유대인이었습니다.

먼저, 신화적 예수론과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함께 본격화된 1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 연구가들의 비평과 연구결과를 일별해 볼수 있도록 간략한 정리글을 올립니다.(예수의 역사적 실존성 - 학계의 최신 연구결과 정리2012.10.21
토론을 전개합니다)
cafe.daum.net/clubanti/4IhG/2780 클럽 안티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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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7 10:12:46
빌립은 이름값이나...
근본주의는 또 다른 안티(기독교)일 수 밖에
왜?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에.

자칭 빌립 집사님,
빌립은 성서에서 상당한 진보주의자인데
댁은 근본주의를 가장한 안티?

"성경말씀을 사실로 보면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 되고
성경 말씀을 신화로 보면 예수는 가공의 인물이 된다."

멍청한 인생아.
성경말씀을 (문자적) 사실로 보면
예수는 허구(신화)와 잡동사니이고
기독교의 실존을 보면 예수의 역사성을 최소한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어떤 역사적 예수가
이런 개독교를 산출해내었는지가
성찰의 대상인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머리 좀 정리하고 주절거려라.
하기야 그 머리가 정리가 되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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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5 10:47:01
첫 단추부터 잘 꿰어야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사람일 뿐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은 무엇일까?
이성을 바탕으로 한, 사람의 생각이 그 중심이다.
사람이 생각할 때
말씀으로 어떻게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가?
남녀의 교접없이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가?
아무런 도구의 사용없이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있는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등등

사람의 생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여기니
이런 내용으로 가득한 성경은 역사적 사실로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다만 그 작품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성경에 하나님이라는 신이 있으니 그 하나님이라는 분이 주시는 의미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신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맞다. 하나님을 믿는다.
다만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자.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올바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했다고 했으니까.
그것도 무에서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이는 사람이 상상하여 지어낸 이야기라 할 것인가?
그러나 이성은 합리적인 추론에도 사용된다.
현재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물론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창세기를 지어낸 이야기라 할 것인가?

자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첫 단추를 잘 꿰어야한다.
성경을 떠나서 사람의 이성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한번 해보시라!

참고로 이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그리고 이성을 사용하여 추론하고 생각하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다만 어떤 이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사용하는 이도 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꾸며진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종교적인 의미를 얻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이성을 넘어선 신비적인 행위이다. 저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이것은 신비주의자들이 자주 애용하는 것이다.)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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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4.141.4.52)
2013-09-25 15:01:37
위의 머리없는 망부석!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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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6 05:58:19
본인이 평소 말한 것을 진정 잊었나?
주구장창 뇌까리는 말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논리적으로 지적하라는 것 아니었나?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말할 마음이나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망부석이 되게나.
남이 사용한 말 앵무새처럼 되뇌이지 말고.
그동안 남 꽁무니 쫓는 소리 충분하였으니 자중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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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3-09-26 10:00:20
하하하
내가 하도 불쌍해서...
애이~ 그러지 말자 하고 지웠는데...
진짜 안되겠네요.
임빌립의 위의 말은 앞뒤가 없는 완전 잠꼬대이기 떄문에 잠꼬대에 대고 고쳐주는 내가 처량해서 관 둿소이다.

임빌립 형제님!^^
나는 사람 보아가면서 말하거든요.
또 사람보는 눈이 예리하지요.

내 한테 인간대접을 받으려면 글쓰기 부터 배우고요.
쓴 글을 자식들이나 아내님께라도 먼저 읽어보고 앞뒤가 맞는지를 확인한 후에
올리세요.
그러면, 얼마든지 수정해 주고 할꼐여~

그러나 위의 글은 본인이 무슨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잠꼬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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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똥칠 (72.196.234.24)
2013-09-26 12:38:07
댓글을 읽는 사람마다 예수얼굴에 똥칠를 한다고
머리를 흔드는 데. 왜? 그 똥칠을 목숨을 걸고 계속 하겠다는
건지? 진짜 속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적그리스도?

담당 목사들이나 주위 교인들이 싫어하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일 거라고 예측은 갑니다.

목사들 쫒겨내는 일에 맛붙인 집사!

주위에 그런 소문이 자자합디다.
자기가 스스로 개, 돼지라고 실토를 하잖아요.
더 이상 우리들은 신경을 끕시다. 개, 돼지는
자기들 끼리 어울려 사는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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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6 02:38:56
차라리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
기껏하여 한반도 한 귀퉁이 조그마한 나라 신라의 왕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사람의 기상도 높이 사겠거늘
창조주 하나님을 위하여 머리없는 망부석이 된 자라는 말이야 어찌 수용 못하리!
차라리 머리 없는 망부석이 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길 것이니 염려마시라.
머리 있어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영원한 불못에 던지운다면 차마 못할 짓이리니 그 머리를 없앰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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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그래서 (112.222.123.131)
2013-09-26 14:49:39
사람들이 빌립을 사람 취급 안 하고...
.


개, 돼지 취급을 하지...


실은...


나는 개 돼지 취급도 안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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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네 맘대로 (207.210.3.147)
2013-09-26 10:02:32
하고 살아라.
구제불능...
그냥 살어~ 알아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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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익명 (218.38.160.207)
2013-09-25 13:01:31
점심 후 커피 시간에 잠깐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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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개는 (72.196.234.24)
2013-09-25 14:54:00
개는 불안할 수록 더 큰 소리로 짖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예수처럼 살았던 분입이다.

나는 두 분 다 직접 뵈온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라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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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Philip Im (70.62.49.64)
2013-09-26 03:35:44
개는 불안할수록 더 큰소리로 짖는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꼬리를 내리고 짖는다.
꼬리를 올리고 짖는 개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개이다.

또 소리도 다르다.
불안한 개는 자라목처럼 웅크리고 기어들어가는 듯한 소리를 낸다.
그러나 충성스런 개는 목을 쭉 내밀고 뱉어내는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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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72.196.234.24)
2013-09-26 12:27:29
그래, 참 좋은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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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psk9192 (112.167.186.94)
2013-09-24 19:25:14
요한복음3:3-1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없느니라...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말을 놀랍게 여기지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우리는 아는것을 말하고 본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하리니(십자가 사건) 이는 그를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니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서는 그뜻을 알수없기에 심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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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무릇돌 (218.38.160.207)
2013-09-24 20:39:13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리플달기
2 0
선돌 (112.158.248.48)
2013-09-24 02:04:30
반갑습니다. 함께 갑시다. 한국의 교회 개혁을 위해
박창진 목사님, 한걸음 더 앞으로 나가세요.' 예수에 대한 열린 연구' 참 좋은 말씀입니다. 역사적 예수를 말하면서 톰 라이트를 한마디도 언급 안했다면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이왕이면 크로산이나 예수세미나를 넘어서 톰.라이트(한국어로 약20권이 번역됨)에게 까지 가보세요. 이들의 책을 읽으면 목사님이 하시는 사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원히 보입니다. 목사님의 하시는 사역에 큰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리교 원로목사 이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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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7 16:46:19
우선 이글을 쓴 분은 박창진 목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원로목사님께서 톰 라이트를 추천하셨는데
톰 라이트의 새관점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덧붙여 톰 라이트는 크로산 등으로 대표되는
예수세미나 구룹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학자입니다.
크로산과 예수세미나는 미국의 근본주의에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한국 실정에 좀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톰 라이트는 분명 크로산(예수세미나)보다는 '보수적' 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원로목사님께서는 자신은 미국제 번영신학에 속았다고
고백하시며 자신의 목회는 실패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에 대한 목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외람된 참견 너그럽게 이해하시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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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8.38.160.207)
2013-09-27 16:43:12
우선 이글을 쓴 분은 박창진 목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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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8.38.160.207)
2013-09-24 19:17:33
원로목사님께서 교회개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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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218.38.160.207)
2013-09-27 16:50:24
원로목사님께서 '교회개혁'에?
동참하신다니 반갑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모든 것을 걸어놓고
가야할 길이 '교회개혁'일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지심은 종교(교회)개혁에 대한
종교권력의 답례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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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8.38.160.207)
2013-09-24 20:45:02
어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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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라이트 (24.141.4.52)
2013-09-24 20:30:27
톰 라이트의 책을 두어권 보았고 또 라이트 신부와 크로산과 보그 또다른 두 분이 모여서 역사적 예수에 관해 대화를 나눈 좌담록을 읽어 보았습니다. 라이트 성공회 신부는 보수적인 분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의 도량과 아량이면 얼마든지 대화도 되고 함께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무릇돌님과 피키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 분들의 책 한권 읽어 보지 않고서 자기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좀 다른 말을 하는것처럼 들리면 바로 배척하지요. 생물학적 보호본능이 발동하는 거겠죠. 자기들의 철밥통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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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9-23 12:59:04
류상태 선생의 장점은...
.

어려운 내용도 알기 쉽게 쓰는 것이다.

세상에는 4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2. 어려운 내용을 쉽게

3. 쉬운 내용을 쉽게

4.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 사람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버뜨...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 자들이 있다.

창진이나 빌립 등의 개독이 이에 해당한다.


어렵게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념이 불명확하면 말이 많아지고 앞뒤가 맞지 않다.

게다가 지난 번에도 몇 번 말했지만 설명문이나 논설문에서 지켜야 할

글쓰기 규칙을 알지 못 하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나 맞춤법 오기 등은 이해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논리구조, 단락구조, 문장구조의 불일치는 쓰는 자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주장이 뭔지 도통 모른다는 명백한 증거다.


글쓰기를 배우면 글만 느는 것이 아니라 사고능력이 향상된다.

사실 글쓰기는 이러한 모든 사고체계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 쓰는 류상태씨의 사고는-그의 주장이

옳건 그르건-하나의 통일된 체계와 개념이 정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창진이나 빌립이는 무슨 말을 하든 개소리에 불과하다.

그 내용 역시 볼 필요가 없다.


논문의 내용이 아무리 참신해도 형식이 틀리면 좋은 논문으로 평가

받지 못 한다.

이 때의 형식은 하나의 규칙이며 약속이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개독경 구절 가져와서 방언하듯이 나열하는 바퀴벌레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박멸되어야 할 해충들이지 인간이 아니다.



글을 쓰려면 자신이 아는 내용을 써야지 자기도 모르는 내용을 망상

으로 쓰면 안 된다.



내가 창진이에게 그토록 당당이나 다른 사이트에 키보드질 그만 두고

글쓰는 법을 배우라고 해도 소용없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사고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능력이 전혀 없이 키보드질을 하면 100년을 쓴다 한 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창진이는 당당에 공식적으로 글을 쓰니까 이런 이야기라도

하는 것이고 빌립이는 뭐 말할 가치가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못 배운 것들하고는 상종하지 말자'




아 참 그리고 누구는 개독경 구절 몰라서 안 가져 오는 거 아니다.

빌립아!

알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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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24 13:21:47
솔직히
도끼님이 참 부럽습니다.
우선 생각이 바른 분인것 같아서요.

나는 신앙 이전에 바른사고의 틀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풀빵을 찍을때 그 틀의 생긴대로 풀빵의 모양이 나오는 것이니까요.

당당에서 몇분들이 저를 몹시 미워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가지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어 오늘도 핏대를 냈습니다.
'진리가 있다면 반드시 보편적일 것' 이라는 신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보편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동지를 만난 기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그런 감격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느낌을 여러차례 도끼님을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바른 생각과 좋은 글 많이 나누어 주시고 또 써 주시기 바랍니다. ^^

위에서 말한 4가지 유형의 글쓰기는 참 재미있네요.
저는 '쉬운 내용을 쉽게 쓰는' 스타일일 것 같은데.. 맞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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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익명 (70.62.49.64)
2013-09-24 06:08:31
나는 개독경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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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112.222.123.131)
2013-09-24 11:04:24
너...
.

바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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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12.222.123.131)
2013-09-23 13:07:54
창진이 너는...
.


글 써 봤자 댓글 아무도 안 달아주니 또 남의 글에 와서

질할하는구나.


그냥 넌 혼자 놀아라.

괜히 분탕질 하지 말고...


류상태씨네 가게 손님이 많으면 왜 많은지 연구하고 너도 좀 열심히

벤치마킹 해서 다음 번 가게는 손님이 늘도록 해봐.


아무도 안 가잖아?^^


손님 탓하지 말고, 니 가게 아무도 없다고 남의 가게 훼방하지 말고

그냥 니 가게 번창시킬 연구나 해.


뭐하는 짓이냐?

백주대낮부터?


.


그리고 밤늦게까지 대리운전한다고 고생한다마는

이제 정신차리고 말씀사역이니 하는 개질할 그만두고

이제라도 가족들을 위해서 땀방울을 흘려라.

나이 들어 뭐하는 짓이냐?

언제까지 그럴래?

나이 50 정도면 이제 철 들 나이도 되었잖아?


시간은 널 위해 기다려주지 않아.

귀한 시간 되지도 않은 개소리 한다고 키보드질 하지 말고

이젠 너의 처, 자식들을 위해 귀한 땀방울을 흘려라.

그 땀방울이 너를 구원해 줄거다.

너를 구원할 능력이 있는 것은 그 잘난 구원론이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고

예수가 어쩌고 저쩌고도 아니며 바른 신학이 어쩌고 저쩌고도 아니다.


너의 가족이며 너의 이웃이며 너의 평소의 삶이다.

네 아내가 예수고, 네 자식들이 예수며 네 이웃이 예수다.

괜히 거지 같은 고신 나와서 뭐 신학에 대해서 안다고 껄덕대지 말고

그냥 내 말 들어라.


인간 안 될 놈인지 알면서도 내 또 이런다...


너한테 몹쓸 애정이 있나보다.


정신차리고...


가족에게 충실해라.

제발 키보드질 그만 하고...


.


추석은 잘 보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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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박창진 (1.220.135.107)
2013-09-23 12:50:29
어차피 소귀에 경읽기이다
신학이라고 하면 그 원 근거 사료가 성경(서)이다.
그 사료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사료의 내용을 근거로 주장하여야 바른 신학이 된다.
보수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현대신학이나 마찬가지이다.

성경의 예수는 아주 선명하다.
원래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신인이 아니라 사람이 되셨다.
사람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다.
그가 죽었다.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것은 사망이라는 죄에 대한 값인데, 자신의 죄로 인해 그렇게 죽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대신 지불하신 것이었다. 대속이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대속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기에 무덤에서 살아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되찾으셨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자리로 돌아가신 것이다.

보수신학에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구원은 영원한 구원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면 그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곧 구원이다. 과거형으로 쓰인다. 신자에게는 과거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원한 구원은 미래의 일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였다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하여야 주어진다. 곧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이다. 이는 다르게는 종으로 주인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기에 순종이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이 시점에 해당된다.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현대신학은 후자만을 강조하며 전자를 거부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자가 성립되지를 않는다. 성육신 부정, 속죄 부정, 부활 부정, 당연히 승천 부정. 그들이 말하는 예수는 구원자가 아니다.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 곧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태어난 사람인데, 단지 제자들을 잘만나서 출세(?)한 인물일 뿐이다. 내가 볼 때에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가 아니라 그 제자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고백적 언어를 사실인 것처럼 잘꾸며서 후대의 사람들이 최소한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현대신학의 추종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와 같은 이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제자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물론 내게 있어서 예수님이 믿음의 대상이라는 말은 교리적 진술의 수용이라는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삶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누리는 삶을 바르게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함께이다.

한쪽에서는 전자만을 앞세우고 다른 한쪽은 후자만을 앞세운다. 그러면서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우기고 있다. 서로 간에 소귀에 경읽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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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9-23 14:48:11
언어라는 것을 그리 신뢰하지 말것
당신이 이런 저런 말을 하는데 좀 생각을 가지고 했으면 한다.

하나만 물어보자.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이기는 하나 기독교의 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내용이다.

당신은 "반면에 영원한 구원은 미래의 일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에 나타난 단어 하나만 가지고 물어보자.

영원이 뭐냐?

그런 것이 존재하냐?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시간이 존재하냐? 그렇다면 현재가 존재하냐? 과거는 또 어떤가?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이 어떠헤 존재하냐? 또 미래는 뭐냐? 존재하지 않은 것을 왜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들은 미래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하지?

더해 볼까? 존재란 뭐냐? 우리가 왜 툭하면 존재에 대하여 논쟁을 해야하냐? 그게 뭐길래?

그리고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물어보지만 영원이 뭐냐? 그 어떤 인간도 그리고 심지어는 신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원이라는게 도대체 뭔데 당신같은 개독들은 툭하면 영원토록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헛소리를 하는게냐?

영원은 어떤 인간도 그리고 신도 영원히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겠냐? 이 말이 이상하냐?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다. 신학 나부랭이 가지고 헛소리 말고 철학적 사고가 뭔지부터 좀 알고 덤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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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9-23 21:48:10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하루는 한 추종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영원" 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아인슈타인 은
"내가 영원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다려달라" 고 대답했습니다.
명언 중 명언이지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만을 아는 사람들,
신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신이라는 단어만을 아는 사람들,
예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예수라는 단어만을 아는 사람들,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구원이라는 단어만을 아는 사람들,
..............
자신이 무슨 말들을 지껄이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53년 전 국민학교 시절에 신에 대한 토론에 참석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참석한 어린이들의 수준이 이 정도 보다는 훨씬 지적이고
논리적이었습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고. 국민학교 교지에도 실릴 수 없는
헛 소리들을 글이라고. 아무리 공짜라고 하지만 지면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 분수도 모르고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글마다 천방지축으로 물고 뜯고 있느니. 똥 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의 글을 읽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하긴, 개인적으로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자랑하고 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서 컴컴한
방 안에 틀어박혀 애국가를 목터지게 부르면서
자신만이 애국자라는 환상에 젓어있는 미친 사람들,
그대로 두고 봅시다.

무지는 하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깊은 깨달음에서 나온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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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23 13:25:20
아니, 박창진 목사가 여기에는 왜 또?
신학을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나요?

성경으로?
그런가요?

아니예요.
모든 사고는 두뇌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 생각 좀 하고 삽시다.



허구헌날 구습이나 답습하려 하고
다 아는 말이나 되풀이 하고
수백년 전의 무지한 사람들이 뇌까리던 헛소리를 진리라고 외우고 있으니...

그래도 박목사는 빌립과는 아애 차원이 다르죠.
우선 정직하신 분이니까 내가 좋아하기는 하는데요.

근데, 두 사람이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 아쉽네요.
앞서가는 사람들 얘기를 영 들으려 하지 않으려는 고집통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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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9-24 00:57:49
거짓과 진실
거짓과 진실
진실은 실존합니다. 임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거짓은 허구입니다. 머리로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진실은 흙과 같은 존재입니다. 흙은 질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생명체들을 길어낼 수가 있습니다.

거짓은 아무것도 길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럴만 한 아무런 실체가
없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거짓은 눈덩이처럼 자꾸 불어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그만한 거짓을 숨기거나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더 큰 거짓을 자꾸 만들어 갑니다.

거짓은 남이 용서할 수도
자신에게 용서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럴만한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의 유일한 탈출구는 정직입니다.
가짓은 정직이라는 문을 통해서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아주 두려운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간첩들 처럼 자수를 해야만
광명을 찾을 수 있는 것이 거짓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덴동산 선악과나무 열매가
우리 인류에게 주는 교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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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24.141.4.52)
2013-09-23 11:54:08
빌립같으니라구...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하나님이 아니다.
>> 옳다. 이신부는 하나님이 아니다. 바로 그거닷!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 뿐이다. 그 분의 훌륭함을 보고 그렇게 은유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이신부=하나님" 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부분은 분명 동의할 것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았다면 다행이다.
>> 예수님을 통하여 빌립이나 나나 여기오시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이것 없으면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는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씀에서 증명된다.)

>> 나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이 내가 하나님이라는 말이라는 것은 사기다. 분명히 말한다! 아와 어가 완전히 다른 법이다. 여기서 예수가 하는 말의 뜻은 "나의 말과 행동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이고 행동이니 나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라"는 말이지 이 말이 무슨 수학공식처럼 '나 예수 = 하나님' 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이는 특별한 추론이 필요없는 상식이다.

법정에서 민사소송 재판중에 가끔씩 한쪽 변호사가 이런 식의 논리오류를 은근히 사실인양 증명해 보이려 하는 계략을 꾸미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마다, 쓴 웃음을 짓을 수 밖에 없고 판사는 대개 이를 바로 알아 차리고서 그 변호인에게 따끔한 주의를 주게 된다.

이런 교활한 말이 또 어디있나?
예수는 단 단 한번이라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한적이 없다. 비슷한 말도 한 적이 없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였던 근본주의 기독교가 만들어 낸 교리인 것이다. 4세기 이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근본주의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주류가 되었고 이렇게 황당하고 무례한 즉 신성모독을 저지르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것은 땅과 우주가 없어져도 남을 선언이다.
삼위일체는 "성부=성자=성령" 그리고 "성부+성자+성령=1" 은 틀렸다.
이런건 실존세계에서 실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주로 세가지로 경험하게 되는데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예수를 통하여 경험되어 지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와 함꼐 하시며 도우신다고 믿어지는 하나님. 이렇게 세가지의 형태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삼위일체의 이해이다.

포이멘 님이 좋은 의견을 주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의 마음을 품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의 친구인 것이다.

예수에 대한 왜곡된 기독교의 교리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선량한 하늘의 백성들을 세뇌의 맨홀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리고...
세뇌가 새뇌가 되는 것이다.



빌립이 내 말을 알아 들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번에도 또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로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볼 수 밖에...
나의 설명을 이해 못하는 수준이라면 확실히 그의 두뇌는 세뇌로 인해 새두뇌로 되어 버렸다는 명확한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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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23 12:26:24
보충설명 하나만...
내가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 으로 고백하는 이유는
"예수님 = 하나님" 이라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당시, 독재에 반대하며 쓴소리를 글로써 많이 쓰시던 어느 어른을 두고서 한 신문기자가 "저 사람이 바로 예수다!" 라는 말을 한적이 있답니다. 이는 은유적인 표현의 말이지.. 그 분이 진짜 예수라는 말이라고 알아 듣는 분들이 있다면 뭔가 모자라는 사람들일 겁니다. 성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를 읽고 이해하려드니 속뜻을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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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3-09-23 09:54:03
개혁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개독을 모면하고 참하나님과 참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절대적' 이라는 생각의 틀을 부셔야만 한다.


솔직히 말해 보자.
'절대' 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그런건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으며, 악이 있고 선이 있고, 음이 있고 양이 있으며..
상대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개독을 모면하려면, 성경이 절대적이라는 망상부터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는 개혁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쓴 매우 인간적인 내용의 글들을 인간들이 추려 모아 경전으로 하자고 약속한 기독교의 경전일 뿐이다.
신앙인들을 위한 지침서 내지 참고서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 없다는 여기서 나눌 내용이 아니지만
사람이 고락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통해 거기에 분명히 신의 간섭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인생의 다스림을 하나님꼐 고백하며 쓴 책들을 묶어놓은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한권의 책이 아니라, 66권의 책을 모아논 도서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시대를 격으며 많은 다른 사람들이 다른 문화아래서 서로 다른 신학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논하고 고백하고 서술한 것이 성서들이었고
그 많고 많은 성서들 중에서 구약의 39권은 그대로 받고 나머지 신약 27권을 경전으로 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성경을 보면 서로 상반된 이야기가 수도없이 나온다.

만약 하나님이 직접 한 말을 그대로 적은 글들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성경이 오류가 없는 절대적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여기서는 이런 말 저기서는 저런말을 하는 위선자이고 거짓말쟁이 라는 말인가?

무엇이 한국의 개혁을 막고 있는가?.
성경이 신의 계시로 쓰여져서 모든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무.지. 와 무.식. 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를 않다.
이것이 기독교가 교리로써 만들어 놓고 믿게 한 거짓이다.
다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빌립은 성경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음을 쉽게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 창세기 1장에는 "다섯째 날 새를 창조하고 여섯째날 사람을 창조하다" 하는데 창세기 2장에는 인간을 만들고 나서 식물을 만들고 그리고는 새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이를 둘러 대거나 변명말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나는 빌립의 손을 들어주고 앞으로 빌립의 헛소리를 위대한 소리로 듣기로 하겠습니다.
만약 설명을 못 할 경우에는 성경은 절대적이라는 것은 빌립의 망상이고 사실은 아니라는 강력한 더없는 증거일 것이다.
설명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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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4 02:00:25
댓글 달 가치를 느끼지 못하며
창세기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를 문학으로 보는 그대여.
창세기 1장과 2장을 문학으로 보고서도 모순되게만 본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다.

왜 모순처럼 보이도록 문학적인 표현을 하였는지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면 잘 알 것이어늘...

그러나 문학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차원에서도 그 설명은 가능하나 진주를 돼지에게 줄 필요가 있는 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도다.

지금까지 보여온 행태로 보아 이런 제안은 하나의 계락에 불과한 것.
"나는 빌립의 손을 들어주고 앞으로 빌립의 헛소리를 위대한 소리로 듣기로 하겠습니다."
이 말은 "'헛소리'지만 까짓거 '위대한 소리'로 쳐주지 머" 이런 마음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제시한 질문에 대하여는 매우 흥미가 있으며 논쟁할 가치가 있으나 지금의 댓글 수준에서는 논쟁이 될 듯 하지 않아 접는다.
다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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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참빛 (207.210.3.147)
2013-09-24 03:38:38
하하하
아메바가 이제는 말을 하네, ㅋㅋ. 빌립의 사고력은 유원인 수준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원숭이도 네게는 과하다. ㅋㅋ. 빌립아, 너 그래도 내가 내준 숙제가 너를 괴롭힐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꼭 풀어서 가지고 오길 바란다... ㅉ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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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정직성 (72.196.234.24)
2013-09-24 05:41:15
쏘크라테스 와 아인슈타인 처럼 모른 것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이 정직성입니다. 모르는 것은 챙피한 일이
아닙니다.
솔직히 나도 창세기 1장과 2장을 별로 주의 깊게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을
보고 읽으면서 확인했습니다. 나는 왜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포이멘 님이 인용하신 요한복음 10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아들의 뜻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같은 성경구절을 수십 차례 읽었으면서도
나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들 처럼
세심하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지 못한
탓일 것입니다.

과학서적도 아닌 성경을 일목연하게
꿰똘어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점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깊은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롭게 느껴지지요.

저는 기독교든 다른 종교든 구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성이라고 믿고있습니다. 종교는 정직성이 무너지면
미신이나 사기로 변해버립니다.
물론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요.
정직성이 없는 과학은 존재할 수도 없고요.

정직성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한 고백하는 데서
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면 진실한 대화의 문이 열리게
되지요.
나는 사업을 하면서도 아주 사소한 일로
상대방의 사람됨을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본적으로 정직성이 결여된 사람들이나 글들은
가급적 비켜가려고 노력합니다. 나에게 유익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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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3 08:44:10
미국발 '번영신학'은
개혁주의에서 인정하는 신학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을 따른다고 표방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않다. 짝퉁이다.
복음주의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번영신학을 따른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개혁주의신학을 따르지 않은 것이 잘못되었음을 반증하며
교리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이다.

역사적 예수만을 붙들면 신실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주장한 역사적 예수, 그의 정신을 실천하여야 바른 기독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역사 가운데 예수의 정신(?)만큼이나 위대한 정신들이 많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모든 사람들의 삶이 정상적이었는가?
기독교는 그런 인간 정신을 강조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다.
그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정신이 아니다!)을 가조하고 있다.
절대 진리의 말씀을 인간의 정신으로 격하시키지 마시라!
개혁은 절대적인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진다.
인간의 정신(그것을 예수라는 단어를 갖다붙인다하여 그 정신이 고귀해지지않는다.)으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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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220.79.149.230)
2013-09-23 09:43:35
그러니까 결국 그겁니다.
기독교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바른 기독교는 무엇인가..
이런 차원이 아니지요.
그렇게 해서는 결국 '기독교'를 유지하지위한 기독교일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만약 예수님이 종교를 원하신게 아니었다면 기독'교'도 자체도 부정할 수 있어야 이 글이 이해됩니다.

그래도 걱정은 마십시오. 아마 대부분 한국 교인들은 예수님 말씀보다 목사님 말씀을 좋아해서 필립님이 우려하시는 일들을 쉽게 벌어지지 않을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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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익명 (218.38.160.207)
2013-09-22 18:48:58
아직 혼미한 영과 교리에 절은 자들이 많지만, 이제 역사를 만들어야...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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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참빛 (24.141.4.52)
2013-09-23 00:35:05
창조적 소수가 역사를 만든다.
무릇돌님의 글은 새로운 참예수운동을 시작하는 기초 선언문으로 쓰이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감동의 글입니다. "할렐루야!"가 저도 모르게 터집니다. 주일 아침을 이런 글과 함께 시작하니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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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8.38.160.207)
2013-09-22 21:02:42
홍정길 목사의 실패의 교훈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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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저는 (72.196.234.24)
2013-09-23 01:59:22
저는 성경역사, 신학의 유래에 대한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새로운 사실과 지식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들 중에 선생님의 글을 자세히 앍어보지도 않고
무작정으로 반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심사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성경책에는
연대와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나옵니다.
연대와 저자가 미상인 경우도 많습니다.
아마도 그런 기초적인 지식도 외면하고 있는
분들 같습니다.
어떤 분은 케토릭 성경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혹은 옛 한국번역본과 다르다고
새변역을 부인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사람들입니다.
하늘이 다른 종교인들이 쳐다 본다고 해서
하늘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비행기가 옛날에 없었다고
해서 부인하는 것과 같은 무지의 소산입니다.
그래서 용감들 합니다.

수준은 어쩔 수 없습니다.
농네 뒷산이 가장 높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상상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무지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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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2 08:13:44
세계적인 석학?
세계적인 석학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내가 보기에는 저들만의 석학이로다.

그 썩학의 학문을 기준으로 성경을 재단하고 있으니 그 결과는?
그 썩학의 학문적 결실이란 게 무엇일까?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
하기야 성경도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니 썩학이 될 수 밖에.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 그 진실을 모르니
아무 것이나 대고 예수 정신이라 하고 자기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예수라 하여 믿고 있으니 나 원!

저들이 말하는 예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 예수를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는가?
역사적 자료인가 성경 말씀인가?
성경 말씀에서 아니던가?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대로 알아야할 것 아닌가?

저들은 역사는 힘 있는자의 논리대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역사는 믿을 수 있는가?
가령 어제의 역사가 오늘 뒤바뀌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역사는 새로운 힘을 가진 자가 변개한 역사가 아니던가?
어느 역사를 믿을 것인가?

어느 힘 있는 썩학이 예수를 모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는가?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자만이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부활 승천 후 보내신 하나님이 성령이시다.

새로운 성경을 쓰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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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0.207)
2013-09-22 21:32:10
참 머리없는 분 같으니라고...
이태석 신부님이 톤즈의 일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으로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오.
역사적 예수가 있고 그에 감동한 사람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높이면서
신약성경을 기록한 것이오.
아직도 깨닫지 못한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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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3 08:19:22
역사적 예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역에서 성자 하나님을 드러내셨다.
이태석 신부를 통하여 성자 하나님을 보았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았다면 다행이다.
(사실 이는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씀에서 증명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이태석 신부가 다른 점은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지만
이태석 신부는 그 광채를 반영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머리가 있다면 이 정도는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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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207.210.3.147)
2013-09-22 09:29:51
용감하다는 말이
임빌립의 글을 볼때마다 느낍니다.


거 참 않됐습니다.
아무리 무뇌아일찌라도 아메바는 아닐찐데요.. ㅋㅋ



자꾸 성경 성경 하는데 그대에게 성경은 뭔가?
신주단지인가 우상인가, 하나님인가?

세계적인 석학들이 그냥 석학이 되는 줄로 아는가?
물론 임빌립이야 교회에서 그냥 그 훌륭한 집사 자격증을 땄겠지만서도,,, ㅋㅋ

자꾸 성경 성경 하며 앵무새가 되어 줄은 모르고.
그래, 그 성경에 무엇이 써 있던가?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말한 적이 있었나?
사람의 아들이라고 예수는 스스로를 항상 소개 하셨다네.

긴말 필요없이, 자네는 ((정말로 양심불량)) 이라서 못 쓰겠데이..


양심불량한 자는 그리스도인의 탈을 쓴 잔머리 굴리는 양아치로 밖에 내겐 보이지 않느니~
자네는 먼저 가서 빼놓고 숨겨둔 자네의 양심이나 빨리 찾아 오게나.

그리고는 예수고 성경이고 자시고를 논할 자격이나 있을지는 그때 가서 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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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참빛 (207.210.3.147)
2013-09-22 08:28:23
하하하하
원숭이가 사람훙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진화를 거듭하더니만 투표까지도 조정한다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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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소크라테스 (72.196.234.24)
2013-09-22 13:17:15
인류의 위대한 스승 쏘크라테스는 죽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진실뿐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을 인테넷으로 줒어 들은 한 무식한 사람이
"보라! 학문적 배움이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구원밖에
필요없다. 나는 비록 국민학교교육 수준이지만
쏘크라테스 보다 수 천 배 똑똑하다" 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는 슬하 자녀들을
몇 명 두고 있었습니다. 성경지식만으로는
목구멍에 풀칠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학력, 지식수준에 따라서
사회적, 경제적 대우도 다르다는 것도 뼈져리게
체험해 왔습니다.
"내 자녀들에게는 내가 겪은 수모를 겪게할 수 없다" 그는
이를 악물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자녀들
만큼은 우수한 학교교육을 시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남의 자녀들 보다
조금이라도 학교성적이 우수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그렇다" 며
자랑하며 온갖 밉쌍을 다 떨고 다녔습니다.

이런 것들을 두고 비양심적 위선형위라고 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매사가
내가 하면 로멘스 고
남이 하면 불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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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2 04:54:23
과연 그러한가?
3.'사람의 아들'로서 그의 몸은 죽고 정신만 살아남았는가?

그렇다면 한 마디로 말하여 예수는 세계4대 성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고귀한 정신을 물려받아 생활 속에 잘 적용하면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시라.
성경의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사람의 아들이 할 수 없다.
그말을 한다면 소위 말하는 이단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이 말씀도 사람이 할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만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 입어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람이 삼위일체나 된 듯 말한다면 그 또한 소위 이단이 하는 짓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그 당시 황제가 신적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사용한 용어를 단순히 빌어 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도용한 것을 되찾은 것 뿐이다.
이런 고백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덧붙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그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부를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부활이 없는 예수를 따른다면 분명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이다.
부활하지 않은 예수를 부활했다고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기 때문이다.
부활한 예수를 전파해야 하나님의 참 증인이 되기 때문이다.
부활하지 않은 예수는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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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참빛 (207.210.3.147)
2013-09-22 06:44:33
요즈음 도끼님이 당당에 뜸하시네요.
도끼가 없다고 하여 참빛이 약발이 떨어졌을 거라는 망상을 하며 덥쳐 보려고 노렸던 한 영리한 원숭이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원숭이 한마리가 여기서도 겁박을 주려는지 뭔지 끝없이 똥막대기를 휘드르고 있네요. ㅋㅋ

빌립 형제님,
그 원숭이가 누구인지 잘 아시죠?


...

믿는것 그대로 그냥 믿으시라니까..
빌립이나 혼자 망상에 젖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니까..
왜 똥막대기를 휘두르시는가?

성경을 우상화 시키고 망상과 세뇌에 도취되어 허우적 거리는 불쌍한 자여!
보편적 사고나 논리를 들고 와서 논쟁을 하던지
아니면 끽소리라도 내질 말던지

이러니 매번 맞어도 싸지 싸~


요 사악한 원숭이를 누가 과연 잡을꼬나... 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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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화평짱 (175.202.195.171)
2013-09-21 20:05:08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 신앙이 왜 자기소견대로 이해하려 하는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지식이 있으면 얼마나 있는가?
소위 신학공부 또는 연구를 하였다 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안다고 할 수 있는가?
말장난, 말유희에 불과한 인간적 지식으로 예수님을 논하지 말라
성경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성경에 답이 있는데
어떤 인간의 설을 더 앞세우고 그런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자신이 생각한 부분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려 하는데
제발 믿음 생활 잘 하는 분들 헷갈리게 하지말고
조용히 혼자 이불 뒤집어 쓰고 혼자만 그렇게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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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익명 (218.38.160.207)
2013-09-22 21:35:55
이 생각없는 거짓말장이 같으니라구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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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참빛 (207.210.3.147)
2013-09-22 06:32:17
하나씩 답변을 드립지요. ^^
왠만하면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자꾸 말도 않되는 말을 하는 분들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지껄이시다가 배설하고 사라지시길래 아무래도 또 예수님의 참빛이 나서서 보충설명으로 해결을 해 드려야 할 것 같군요. ^^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어야 한다.
-> 그리하쇼. 그걸 말리는 사람은 없소이다. 다들 그렇게 믿고 있으니.. 예수를 예수로 믿지 그럼 석가로 믿나요? ㅎㅎㅎ


예수를 믿는 신앙이 왜 자기소견대로 이해하려 하는가?
-> 이게 왜 자기소견이라 생각하는가? 위의 본문에서 자세하고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었는데.. 역사적 예수에 대한 과거와 현대의 연구결과에 의한 결론적 말이지 이게 가기소견인가요? 그럼 화평짝님도 자기소견으로 예수를 믿는가 보죠? 위의 본문은 류목사가 혼자서 지어낸 말이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들과 지성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확신하고 있는 바 인데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지식이 있으면 얼마나 있는가?
->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음 문장으로 가보자.


소위 신학공부 또는 연구를 하였다 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안다고 할 수 있는가?
-> 언제 다 안다고 하였나? 왜 없는 말을 꾸며서 또 뭘 성취하려 하시는가? 이런 스타일이 근본주의자들의 특기이다. 다 싸잡아서 맘대로 판단내어 버리는 것!


말장난, 말유희에 불과한 인간적 지식으로 예수님을 논하지 말라
-> 그러는 님은 여기서 완전 말장난 하고 있다는 것 진정 모르시는가요? 그리고, 그러는 먹사나 개독들은 인간적 지식으로 예수님을 논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논하나? 지식으로 안하면 뭐로 하나요? 영으로 논한다고요? 에라이~!


성경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성경에 답이 있는데
어떤 인간의 설을 더 앞세우고 그런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자신이 생각한 부분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려 하는데
-> 그럴까요? 성경을 살펴보면 무슨 답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왜 성경에 서로 상반되는 내용이 수도 없이 나오고 왜 셀수도 없이 많은 교파와 교단이 오늘도 생겨나고 있으며 왜 같은 교단의 목사들도 주장들이 다 다를까요?


제발 믿음 생활 잘 하는 분들 헷갈리게 하지말고
조용히 혼자 이불 뒤집어 쓰고 혼자만 그렇게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
-> 님도 제발 믿는 것 그대로 믿으세요. 단, 남들 잘못했다고 나서대지 마시고 낮잠이나 주무시죠.
신앙은 자유입니다. 님이 믿는것 그대로 맘대로 믿으라니까요.. 다른 사람 어쩌구 하며 가르치려 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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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1
거지목사 (72.196.234.24)
2013-09-22 12:20:53
"교회와 기독교의 문제가 ‘근본적인’ 것이 고 ‘신학적인’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는 무룻돌님의 주장에 깊히 공감합니다.

얼마 전에 "이것이 알고 싶다" 에
나온 가락시장 거지목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바올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거지목사를 비롯한 일련의 근본주의 신앙에 바탕을 둔
유명목사들의 추악한 모습들이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근본주의 신앙인들이 종국에 다다르는 길의 종착역이고
그분들이 믿고있는 믿음의 실상이 아닙니까?

가락시장 거지목사는
근본주의 신앙인들의 위대한 교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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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참빛 (24.141.4.52)
2013-09-22 13:03:42
저도 그 거지목사에 대한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 보고 놀랐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요.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근본주의자들 중에서도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 뜻만 겸손히 말하시고는 잠잠하시는 분들이 당당에서 더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님께서도 아시지만, 양심불량에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가 아는체 하면서, 마구 휘저으며 떠들고 무례하기 짝이없이 행동하며 ~하라 ~마라 명령 해대며 심지어는 저주까지 퍼붓습니다. 누군인지 말 안해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주의 자체가 나쁘다고 저는 절대 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평생동안 근본주의자 였고 저희 부모님들도 다 그랬으니까요.

근데 말입니다. 개독 중에도 상개독이 있습니다. 이 무례한 원숭이들은 절대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우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대해야지 따듯한 말로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면 그것을 기회로 삼고 바로 이용해 먹으니까요. 그 사악한 거지목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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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알만 합니다 (72.196.234.24)
2013-09-22 14:14:34
가끔 "내가 왜 이런 대화에 끼어드는 것일까?" 하고
후회를 하곤 합니다. 나의 잍테넷 중독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때 가깝게 지냈던 근본주의 장로 한 분이
계십니다. 이 지역 교계에 목사들을 쫒겨내는 분으로
악명이 높은 분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아마도 지난 30여 년 간
30여 개의 교회를 옮겨다니며 불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 분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혼자만의 의인이지요.

교회일에는 아주 열심입니다. 헌금도 누구보다 많이 냅니다.
그러면서도 그 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반기는
교회는 없습니다. 가는 교회마다 교회를 분렬시키는
암적인 존재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신앙인 이전에
인간으로써 정직하고 선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믿고있습니다.

내가 사업 파트너,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 금융계통,
의사까지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런 데 그 분들 중에
단 한 사람도 그 분에 대해서 좋은 평을 하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부인,자녀들도 존경은 커녕 위선자라고 비난을
하며 멀리하고 있습니다.

그 분을 생각할 때 마다
"신앙이 무엇인지?" 자꾸 머리가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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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삼청교육대 (39.7.10.99)
2013-09-21 20:03:06
무식한 상태형은 보기를
일단 추석인사 대신 난 상태형을 볼때마다

보수원리주의 개신교 지하철 에수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들보다 상태형이 훨신 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에 어울리는 사람같아 진심으로


혹시 내말을 못믿겠다는 사람있으면 강의석의 판결문과 대학교

가서 한 행동을 봐 그런데도 상태형이 원래 자기가 잘못한 일을

사죄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는 그논리가 진정 독선 배타의

표본아닌가


그리고 예수논쟁 까놓고 이야기 해보자

울나라 신학수준 한번 볼까

교회 몇십년 다녔댜는 장로들도 기독교의 기본교리인

삼위일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이야

한번 물어봐 하나님이 높아요 예수님이 높아요

뭐라고 대답하는지

한국교회 수준이 이정도야 이래가지고서야 무슨 교리 인성과

신성을 갖췄다는 이야기를 할수 있다는 거야

속칭 대하민국 신학은 대부분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 끝

나머지 복잡한 이야기는 끝

그 이유가 뭘까 그런 이야기 하는 목사는 성도들이 무척 싫어하고

성도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예수 믿으면 현실에서 사업 성공하고

로또 당첨되는거야 목사들 부패 탓하기전에 멍청한 신도들탓도 좀

해야지 그렇게만든 상태형같은 사람도 반성하고

그리고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간단하게 나머지 설명하면

쿤란 사해문서 q문서 도마복음등이 위조인지 진본인지는 아직

논란이 있어 진실인지 위조인지 아직 판가름 안났는데

상태형은 어차피 진실은 상관없이 자기 입맛내키는 말만

끌어와서 씨부리는데 선수잖아

최소한 신학의 근거자료를 가져올때는 근거있는 것만

가져와서 씨부려야지 어느 개인의 이야기를 진리인냥

씨부리는것도 독선아닌가

그렇다면 이만희 문선명도 진리잖아


그리고 바울 이야기 하면

예수는 원래 무서운이야기이고 예수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했어

눈이 잘못하면 눈깔을 때버려라 손이 실수하면 손을 짤라라등

오히려 사랑을 강조했다는 예수가 구약만큼 비합리적이고 무자비한

말을 복음서에서 많이했는데 이것을 부드럽고 완고하게 사랑을 강조한 것이 바울이야

이런 바울을 제쳐두고 정말 한번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말하대로 해봐


자신있어 정말 신자들이 복음서 말대로 진리인냥 행동할꺼같아

말같은 소리좀 해

상태형 무식하면 말을 하지마

차라리 성도들 재산을 도둑질하느 대형교회가서 옷 다벗고 회개하라
외치면 용서해줄 생각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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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
이사야 (121.129.19.135)
2013-09-22 21:36:37
그대를그대가 판단하시요.....ㅎㅎㅎ
삼청교육대가 생기면...또가야할사람이누굴까....제발제수없으니 형...좀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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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이사야 (121.129.19.135)
2013-09-21 19:38:50
아멘..영원한 아멘
귀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아멘 영원한 아멘

예장 통합은 류 상태 목사를 즉각 복권시켜라

그리아니하면..예장 통합 관계자들이 예수를 죽인자와 무엇이 다를꼬

가식과 위선자요 독사의 새끼들 아닌가...그죄업을갖고 갈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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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
최Ray (220.118.20.85)
2013-09-21 22:27:14
과녁에 벗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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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Ray (220.118.20.85)
2013-09-21 19:13:22
오직 주님만 믿습니다.!!!

이 한가지만 내 세워도 난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글이 불편하다.

많이 안다는 지식 자랑만으로 느껴진다.

복잡하고 혼란할수록 단순해져야 한다.

오직 주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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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이사야 (121.129.19.135)
2013-09-21 19:40:55
무뇌아의 길을 자초하신다
그래서 이땅에 기독교가...개독교로 변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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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Ray (220.118.20.85)
2013-09-21 19:49:00
추석에 쉰 송편 드시진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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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9-22 21:32:07
예수는생각있는 믿음을원하신다
아니제대로된 송편을드셨다네....예수를열나게 믿어대는그대 이제그만하고 예수가 원하시는 삶을 사시게.....무뇌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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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최Ray (211.55.117.85)
2013-09-23 08:08:32
믿음 다음에 행하는 것이라네. 눈먼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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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9-23 22:20:09
생각으로 음행하는자여...너의믿음은 니안에갖혀있을뿐이다
그러하니 주딩이 신앙이요 개소리도 아멘하는 니신앙 아이겠는가
뭔가 행해본적도 없고 행할 의지도없고 행할수도 없느니라....사마리아인을 진정한 이웃이라 칭하신 예수님의 심정을 그대가 아는가....한심한 인간아..이인간 그네찍은것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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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Ray (220.118.20.85)
2013-09-23 23:54:34
이사야님 행함이 먼저인가?

그 행함이 선택은 어디에서 오는가?

믿음의 본체인 성령님께 허락 받고 행하시오.

이사야님은 믿음에 앞서 행함의 결정은 누구에게 물어보나

돌, 나무, 해, 달, 부엉이바위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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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9-27 21:37:00
믿음은
말로표현되는것이 아니니라 주딩이질 그만하고...믿음의주체가 너에게 무엇을 바라는지....살피거라...착각하며 우메한 존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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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Ray (220.118.20.85)
2013-09-28 23:29:23
눈먼자 이사야야.

믿음의 주체가 뭐가 부족해서

내에게 바라는게 있것냐 이 맹꽁아.!

나의 믿음의 주체는 주시는 것 밖에 없다.!!!

당신이 믿는 믿음의 주체는

너에게 바라는게 많은가 보다.

주둥아리 다물고 자숙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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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143)
2013-09-21 13:41:19
예수님도 나도 사람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도 나도 사람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래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도 나도 사람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구속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칭 정통인 로마 카톨릭의 말입니다.
삼위일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믿고 또한 성령님을 믿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고백한 사람을 성경에는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신입니다. 제사장도 필요없습니다.


류상태 형제님, 다양한 이론 주심을 감사합니다.

본훼퍼의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를 원하시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원하셨을 뿐이다.”라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 아래 -

요한복음 10장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33. 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
34.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 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고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37.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시편 82편

1. 하느님께서 신들을 모으시고 그 가운데 서시어 재판하신다.
2. "언제까지 너희는 불공평한 재판을 하려는가? 언제까지 악인에게 편들려는가? (셀라)
3. 약한 자와 고아를 보살펴 주고 없는 이와 구차한 이들에게 권리 찾아주며
4. 가난한 자와 약자들을 풀어주어라. 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어라."
5. 그들은 분별력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여 어둠 속을 헤매고만 있으니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6. "나의 선고를 들어라. 너희가 비록 신들이요 모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나
7. 그러나 너희는 보통 인간처럼 죽겠고 여느 군주처럼 넘어지리라."
8. 하느님이여, 일어나시어 온 세상을 재판하소서. 만백성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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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1 06:39:43
정말 그러한가?
2.기독교의 독선적인 교리를 해결하여야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는가?

먼저 질문하고 싶은 것은 독선적인 교리가 무엇인가?
우리가 독선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 때문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지만 기독교만이 아니 하나님만이 선하심은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다면 독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선을 적용함에 있어 하나님의 선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의 선을 드러낸다.
(그래서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달을 없애려고 한다.)
예수님만이 구세주요 구원자라함은 하나님의 선이다.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악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나 하나님의 선이라 하여 타종교에 대하여 무례히 행하는 것은 사람의 선일 뿐이다. 하나님께는 악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저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이다.
교리가 사람을 악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아직도 마음에 자리잡은 악한 본성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며 마음에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제도를 고쳐서 되지 않는다는 것 잘 알고 있지 않나?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한 교리를 없애자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소견에 좋은대로 행하려는 것일 뿐이다.
말씀으로 돌아가자.
창세기의 말씀이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실임을 인정하는 말씀으로 돌아가자.
그래도 이 땅 위에서는 온전한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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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9-21 03:59:56
정말 그러한가?
1.예수님은 당시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애쓰셨나?

예수님는 왜 그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셨는가?
마태복음12장에 의하면 예수님이 귀신을 물리친 후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듣고
성령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 하시고 그들을 악하다고 하셨다.
종교적 속박이 어디에 있는가?
핵심은 종교적 속박이 아니라 영적으로 무지한 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 입어 행하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질책하시던 말씀이 아니던가?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는
말씀에서 보듯이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으로서 그 조상의 남은 분량을 채우는 악한 자들임을 드러내신다.

"화 있을진저" 무슨 화가 있다는 것인가?
만군의 여호와께 심판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단순히 이 땅 위에서 종교지도자들의 횡포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이 삼판까지도 이 땅 위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하면 한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산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악한 자들은 결코 심판에 대해 무서워하지 않으며
부지한 자들은 이 땅 위에서의 평화, 평등, 자유, 공의를 외치다가 허무히 스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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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짱 (175.202.195.171)
2013-09-21 19:54:3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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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4
Picky (170.20.186.251)
2013-09-21 02:31:41
드디어 결론이 나타났습니다.
전에 류 목사님의 글에 대하여 더 이상 댓글을 더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이 글에는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군요.

거의 10년 가까이 제가 여기 저기서 강조하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개신교의 개혁은 교리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고 교리의 개혁은 역사적 예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죠.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기독교는 예수의 복음을 믿는데서 출발하였지만 예수를 신의 아들로 믿는 길로 가면서 잘못 되었다고 말합니다.

신의 아들이 되어버린 예수를 나무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경배하는 것은 무속신앙이며 주술신앙이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고 삼위일체를 거부할 수 없도록 배운 많은 목사들이 인간의 아들로서의 역사적 예수를 인정하면 당장 그들의 밥줄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양심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보호 본능입니다.

동물적 본능을 넘어서 자신의 인간적 양심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이성적 수준과 의지를 지닌 목사가 한국 땅에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제 자신만 보더라도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하였고 바른 선택을 하기까지는 많은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할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의 참 모습이 빛을 보는 시대에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불행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전시대의 사람들에 비하면 그 여명이라도 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보아야겠지요.

앞으로는 어떤 글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이 글이 지금까지 류 목사님이 하시고자 했던 말씀의 본론이자 결론이라고 여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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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44
익명 (218.38.160.207)
2013-09-24 21:12:01
피키님께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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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34
Picky (170.20.186.251)
2013-09-25 02:17:18
글쎄요
무엇을 어떻게 더 표명하기를 원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당당이나 뉴조에 남긴 글이 꽤 많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알아들으시는 분들은 다 알아들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하신다면 다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만 제가 말한대로 류 목사님이 하신 얘기를 저는 10년이 넘게 해왔습니다. 별로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나 신학에 관련된 저의 관점은 류 목사님과는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교리에 관련된 개혁의 문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저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성경과 관련되어 밝혀 놓은 사실들은 동의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톰 라이트도 그렇고 스퐁 주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라고 해서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해서 그들의 주장을 여과없이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정통주의 기독교 신학에 의한 전통적인 교리와 성경에 대한 이해는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은 옳은 지적이지만 그것을 확장하여 내어놓은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복음서를 역사의 기록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까지는 동의하지만 그렇다면 복음서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데에는 아직도 미흡한 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의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여기서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성경의 헤석이나 관점에 대하연느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만 최소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문제는 직시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원하시면 제 의사를 다시 정리해서 글을 더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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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32
익명 (218.38.160.207)
2013-09-25 20:48:51
기억력이 점점 희미해져서..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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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3
박평일 (72.196.234.24)
2013-09-21 17:43:34
"인간에게는 양심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보호 본능입니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보다 무서운 것이
무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따지고 보면 무지야 말로
모든 악과 불행의 근원이지요.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 는 말이 생겨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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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8
참빛 (207.210.3.147)
2013-09-21 04:19:12
해방을 맞은 기분입니다~! ^^
아마 일제로 부터 8.15 해방을 맞았던 부모님들이 느꼈던 그 희열과 바로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 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류목사님의 글과 피키님의 댓글 모두 상아탑 같으며, 마치 헨델의 메시아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함께 느끼는 감격의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두 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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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8

류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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