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류상태칼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8월 25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3년 08월 24일 (토) 07:30:04
최종편집 : 2013년 08월 24일 (토) 11:59:14 [조회수 : 728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끈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될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인면수심의 독재자가 어쩔 수 없이 권력은 내놓았어도 돈 문제에는 끝까지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에게 돈이란 과연 무엇인지 교우님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1.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막상 현실세계에서는 건강과 명예를 모두 잃어가면서까지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미 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은 돈의 위력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돈이 목적이 되면 우리 인생이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왕과 농부>를 잠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왕이 가난한 농부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일 해가 떠 있는 동안에 네가 갖고 싶은 땅을 면적으로 표시해라. 정확한 면적을 땅에 표시하면 그 땅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 하지만 면적을 만들지 못하면 무효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농부는 막대기를 들고 땅에 줄을 그으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나절만 고생하면 넓은 광야가 모두 자기 땅이 된다는 생각에 농부는 끼니도 거른 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그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농부는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농부는 결국 처음 시작하던 지점에 다다르지 못한 채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 걸 보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이 단편소설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는, 이 농부처럼 자기 생명이 시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돈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재물은 배설물과 같아서 그것이 쌓여있을 때는 냄새를 피우고, 뿌려졌을 때는 땅을 기름지게 한다.”

제가 어렸을 때, 농촌에 가면 거름으로 쓰기 위해 배설물을 한 군데에 쌓아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 어린아이가 빠져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지요. 배설물을 쌓아두면 냄새나고 더럽고 위험합니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천연 비료가 됩니다. 땅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곡식과 채소를 잘 자라게 합니다.

돈은 꼭 그와 같다고 톨스토이는 생각했습니다. 돈을 모으는 것도 결국은 뿌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돈을 써야할 때 쓰지 않고 계속 모으기만 하면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막 쓰라는 것이 아니라, 과소비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곳, 생산적인 곳에 쓰는 돈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2. 돈이 목적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비극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의 손’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졌기에 모르시는 교우님은 거의 안 계시겠지만, 그 안에 담긴 교훈이 적지 않기에 다시금 그 의미를 간략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 신이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에게 나타나 무슨 소망이든 한 가지만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미다스는 자기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소망은 즉시 이루어졌지만 미다스는 난처한 처지가 되고 말았지요. 먹을 음식조차 그의 손이 닿는 대로 모두 황금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미다스는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빌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래된 이 옛날이야기는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자본주의 논리의 허구성을, 아울러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논리인지를 우리에게 쉽고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이 신화처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저의 기억 속에 꽤 오래된 일인데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십여 년 전, 인천의 한 호프집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사건입니다.

수십 명이 희생된 그 끔찍한 사건의 희생자는 대부분이 미성년자였습니다. 화재는 두 소년의 엉뚱한 장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자가 더욱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조사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더 드러났습니다.

처음 불이 났을 때 주인이 문을 잠궜습니다. 손님이 모두 대피하면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 호프집 시설이 소방기준에 턱없이 모자라는데도 불구하고 건축허가를 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기검사를 받을 때도 문제없이 통과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이 비리문제로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생각이 총체적 부실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성수대교 사건과 삼풍백화점 사건 등 우리나라가 겪었던 많은 사고들도 돈을 덜 들이려고 안전문제를 소홀히 해서 발생한 사고들이었습니다.



3. 소유하되, 매이지 않기

우리가 돈을 지배하지 않으면 돈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7~10. 공동번역)

이 구절은 통째로 외워 늘 마음에 새기고 다녀도 좋을 말씀이지만, 특히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는 10절 말씀은 꼭 기억해달라고 교우님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셔야 합니다. 성서는 ‘돈 자체’가 악의 뿌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건,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게 하는 힘이 사랑 안에는 있습니다. 자식이 물에 빠지면 부모는 수영을 못해도 물에 뛰어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하기에 돈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돈을 위해서 생명을 걸 수도 있습니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재물을 얻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거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현실세계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것이며,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아무도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아무거나’ 사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걸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애국자’라고 부릅니다. 정의를 사랑하면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정의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순교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내나 남편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생명보험에 든 배우자를 죽이는 비정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끔 매스컴에 보도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지 말고, 돈에 매이지도 말고, 어느 선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권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디모데전서 6:7~8) “돈을 위해서 살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히브리서 13:5)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


4. “나는 관리자, 소유권은 하나님께”

돈 문제에 대해서 우리 예수사람들이 꼭 가져야 할 대전제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나는 다만 관리자일 뿐이다.”라는 전제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거나 쓸 때, “내가 이렇게 벌고 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자신에게 늘 묻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돈에 대한 무모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며, 정당하게 벌어 꼭 필요하고 생산적인 일에 돈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이웃을,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를 윤택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제로 설교하는 목회자들 중에는,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마태복음 6장 20절 말씀을 인용하며, 무리하게 헌금을 강요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무리한 헌금을 기대하실 리가 없습니다.

만약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우님께서 그런 설교를 듣고 무리해서 헌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 목회현장에서, 무리한 헌금으로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분들을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헌금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마음의 짐을 느끼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헌금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교우님의 경제력에 비해 과도한 헌금은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교우님께서 ‘필요’를 느끼시지 않는다면 어떤 헌금도 하시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교우님이 내시는 헌금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쓰여진다는 확신이 설 경우에만 헌금을 하십시오. 그것이 교우님의 바른 신앙을 위해서도 좋고, 그런 의식을 가진 교우님들이 많아져야 교회 또한 타락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습니다. 교우님의 행복한 삶보다 돈을 더 강조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혹 교회를 떠나면 큰 벌을 받는다고 설교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 교회는 반드시 떠나셔야 합니다. 그 목회자는 교우님의 행복과 바른 신앙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교회의 물리적인 부흥에만 관심이 있거나,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돈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선하게 쓰면 좋은 것이고 나쁘게 쓰면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 중립적인 가치수단일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 손에 들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데 쓰이는 칼이, 강도의 손에 쥐어지면 나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고 싶으신 교우님은 열심히 일해서 많이 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치 있게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땀 흘려 벌었다 해도, 그 돈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만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예수사람이며, 그래야 돈에 매이지 않고, 돈을 올바른 일에 잘 쓰고, 잘 사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류상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24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26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류 선생 (180.158.61.251)
2013-09-04 09:03:46
다른여러곳에서 보면 당신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분이 아니시나요?? 근데 뭔 기독교에 대하여 이리도 많은글을 쓰시는지?? 답답하네요 걍 놔둬요
리플달기
0 1
Ismail-x (112.222.123.131)
2013-08-26 19:00:54
소설 <삼위일체> 제 7화
.




삼위일체(=야소)는 12제자들을 불렀다.
“이제 우리의 세력이 어느 정도 커졌으니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업무에 따른 분권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야소의 질문에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탁 오’ 정헌이 야소에게 대답했다. 정헌은 야심이 큰 인물로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의 ‘옥한운’ 선생의 눈에 들어 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정헌이 키우는 교회가 ‘러브교회’로써 우리나라의 중심부 강남 금싸라기 땅에 자리하게 된다. 정헌의 호는 ‘세탁’이고 ‘자’는 ‘표절’이다. 세탁(洗濁)은 주님을 만나 세상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는다는 뜻이었고 표절(表節)은 주님을 향한 자신의 절개를 밖으로 드러낸다는 뜻이었다. 수석 제자인 용귀의 위세가 워낙 당당하여 숨고르기를 하며 조용히 있었지만 실제 제자 중에서는 가장 권모술수를 잘 쓸 수 있는 자이기도 했다.

정헌은 자신의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자신이 의인인 것처럼 사업을 하여 꾸미기를 좋아하고 외식(外飾)을 좋아하는 자였다. 정헌은 평소 경영과 회계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좋아하는 회계는 재무회계나 원가회계 혹은 세무회계가 아닌 분식회계였다. 나중에 그의 동생 역시 교계에 몸을 담게 되는데 그가 세우는 교회는 ‘세로남 교회’였다. 세로남(細路灆)의 뜻은 작은 골목길 구석구석까지 ‘주 야소 구리수도’이신 삼위일체님의 사랑이 물길처럼 전해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헌은 삼위일체에게 공손히 말했다.

“주님, 제가 보건대 저희 조직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려면 정부과 같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분권을 허락하되 이 조직들을 통합할 수 있는 그런 ceo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요즘 저희 세력이 커짐에 따라 성도들을 통제할 여러 기구가 필요한데 치안을 담당할 부서, 법을 집행할 부서, 국내외 정보를 처리할 부서 등 여러 가지 조직이 필요합니다. 먼저 치안을 담당할 부서로는 ‘견찰’이라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견찰(犬拶)’은 ‘견찰(見察)’은 성도들의 고통과 슬픔을 보고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외용이고 대외비로 저희는 ‘견찰(犬拶)’을 운용해야 합니다. 견찰은 우리의 개가 되어 우리의 눈 밖에 나는 성도들을 개처럼 으르렁 거리며 위협, 핍박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런 것 때문에 우리들을 손가락질 하거나 문제를 삼는 적이 있다면 또 이것은 다른 방법으로 피해가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무엇을 진실로 믿게 만드느냐 바로 그것이니까요.

정헌의 말을 들은 야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흠, 이제 보니 저 정헌이란 놈이 물건이군 그래.”
“말이 상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야. 우리 조직의 변론과 변호를 담당하는 장진보다 훨 낫구만. 사실 장진은 논리적이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아무것도 없는 허언에 불과하지만 정헌의 말은 상당히 실용적이고 의미가 있어.”

야소는 정헌에게 말했다.
“흠, 너희 말이 참으로 가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견찰이 하는 일에 대해 문제를 삼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정헌이 미소를 띠며 야소에게 아뢰었다.
“내 주, 구리수도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근심을 덜어드릴 묘책이 있습니다.”

야소는 얼굴에 기쁨을 가득 띠고 다시 물었다.
“오호~! 그런가?^^ 그 방법이 어떠한고?”

정헌이 대답했다.
“네 그것은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가 삼위일체의 교리를 만들었듯이 ‘공의’라는 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야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공의???”
“그것이 무엇이냐?”

정헌이 답했다.
“예, 주님.”
“공의(公義)는 공정한 의로움이란 뜻으로 야소님이 하시는 일 하시는 뜻이라면 그것이 폭력이건 강간이건 살육이건 협박이건 오직 주님의 뜻이기에 인간은 그리고 성도들은 어떤 의문도 질문도 지적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주님의 뜻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도 안 되고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나 논리나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의문이나 의혹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야소는 다소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것이 가능하겠느냐?”

정헌이 말했다.
“예, 야소님. 충분히 가능합니다.”
“인간은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명제를 뒷받침 하는 자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야소가 말했다.
“오호라, 그래 그게 무엇인가?”

정헌이 답했다.
“오직 믿음이라야만 이해할 수 있다.”
“믿음이 이를 이해하게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런 말들이 정확히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야소가 말했다.
“흠, 이거 정말 대단하구나.”
“내 정헌 자네가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토록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일을 추진하는지 몰랐다.”
“정말 대단한지고~!^^”

야소는 정헌의 이야기를 듣고 뭔가 새로운 전략을 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소가 말했다.
“흠, 자네가 든 예 중에서 세 번 째가 마음에 드는구나.”
“나중에 저 문장을 이용할 방법이 있겠느냐?”

정헌이 말했다.
“예, 주님 걱정 마십시오.”
“안 그래도 제가 생각한 것이 있는데 야소님의 말씀을 음성으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이 때 저희가 주님의 말씀을 편집, 왜곡, 변개해서 적절한 표현으로 성도들에게 전해지도록 만들어 놓겠습니다.”


정헌의 말을 들은 야소는 크게 기뻐했다.
“오호라, 정말 그러하냐?”
“내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든든하고 기쁘구나.”
“견찰 외에 다른 조직은 어떠하냐?”

정헌이 대답했다.
“예, 견찰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성도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즉, 법적으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여 집행할 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덕검’과 ‘색검’입니다.”

야소가 물었다.
“그것은 어떤 뜻이고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정헌이 말을 이었다.
“예, ‘덕검(德劍)’은 주님의 은덕을 배반하는 자는 칼로 베어 없애는 자라는 뜻이고 ‘색검(索劍)’은 주님을 부정하고 다른 진리를 이야기하는 자들 역시 칼로 베어 없앤다는 뜻입니다.”
“즉, 주 야소 구리수도이시며 지자수 구리수도 수포수타이신 삼위일체님의 수족이 되어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자들입니다.”
“이들을 잘 이용한다면 아무도 감히 우리 주 야소님께 대적하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야소는 너무나 기뻐 정신 줄을 놓을 지경이었다.
“참 기쁘도다.
“참으로 기쁘도다.
“내 참으로 기쁘도다.”

야소의 칭찬을 들은 정헌은 다시 말을 이었다.
“주님, 우리는 전략을 잘 짜야 합니다.”
“다른 종교와 같은 방식으로는 요즘 같이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요즘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취직조차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인 법~!^^”
“우리가 이 위기를 잡는다면 좋은 기회로 반전 시킬 수 있습니다.”
“기존의 종교와 우리의 차이를 예를 들어 성도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약(藥)’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야소가 물었다.
“그래?”
“그것이 무엇이냐?”

정헌이 말했다.
“네 그것은 기존의 종교는 이미 그 도리와 이치가 다 끝났기 때문에 효력이 없는 약이고 우리 삼위일체 야소님의 법력, 능력은 세상을 다시 비추고 일으켜 세울 새로운 강력한 약이므로 기존 종교의 효력은 ‘구약(舊藥)’ 우리의 능력은 ‘신약(新藥)’으로 비교해서 사람들에게 인식을 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공의’와 ‘신약’이 두 가지 개념이 있으면 성도들을 우리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드는 성도들을 세뇌시켜 길러 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의’의 좋은 점은 폭력을 미화시킬 수 있어 우리가 하는 폭력을 정당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이 것은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을 가져다 줍니다.”
“성도들은 그 폭력이 무엇이건 주의 이름으로 야소의 이름으로 벌이는 것이라면 아무리 잔혹하고 끔찍하고 처참한 전쟁이나 싸움 살육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우리의 ‘공의’라는 전쟁에 나설 우리의 성도들을 일컫는 말도 생각을 했는데 그 이름을 ‘십자군’으로 하려고 합니다.”

야소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오호, 그러한가?”
“그 뜻은 어떠한고?”

정헌이 말했다.
“예, 그 뜻은 십자군(十貲軍)으로써 이는 열 명의 피를 대속하는 군대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적어도 적 10명의 모가지를 베지 않으면 주님의 군대로써 죽을 권리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군의 가장 정예부대는 특히 바로 옆에서 삼위일체 야소님을 보좌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특수한 조직은 우두머리가 10명으로 이루어진 ‘십알단’으로써 이 십알단(十遏團)은 열 명의 우두머리가 각자 거느린 군단인데 최고 무사 열 명이 목숨을 걸고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을 막아내는 군단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 십알단의 하위 부대로 개병대, 생리대, 자위대를 구성합니다. 개병대(改病隊)는 주님을 모르면서 살았던 병자 같은 삶을 새롭게 고친다는 뜻이고 생리대(生理隊)는 생명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주님을 보호하는 부대, 그리고 자위대(刺僞隊)는 주님이 오직 한 분이시고 진리이신데 이 주님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는 모든 거짓 되는 존재들을 찔러 죽인다는 강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야소는 말했다.
“아~! 정말 이야기만 들어도 나의 십자가 군병들이 나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이는 듯 하구나.”
“정말 감동이구나, 감동”

야소는 무척 기뻤다.
“그러하구나. 내 오늘 자네 정헌의 말을 듣고 심히 기쁘도다”
“또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해보라.”

정헌은 아뢰었다.
“마지막으로 일반 성도들도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이 주님을 믿는 어떤 동기 부여가 필요합니다.”

야소가 말했다.
“그래? 그럼 어떤 방도가 있는가?”

정헌이 말했다.
“예, 주님. 성도들 중 행동이 뛰어나고 저희에 대한 믿음이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자들을 골라 그들에게 칭호를 내리는 것입니다.”

야소가 말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구나”
“그래 그 칭호는 생각을 해 두었느냐?”

정헌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주님.”
“그 이름을 ‘맹신자(盟信者)’와 ‘광신자(光信者)’로 하려 합니다. 그 뜻은 주님을 향한 맹세를 지키는 자와 빛나는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야소가 기뻐 말했다.
“오호~! 참으로 절묘한지고”

정헌이 말을 이었다.
“주님께서 직접, 몸소, 친히 조직에 무조건 적으로 충성하는 이들을 치하하시고 그들에게 상을 내리시고 그들을 일컬어 ‘좌 광신’ ‘우 맹신’이라는 칭호로 주님 옆에 좌우로 두신다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심지어 자신의 가족을 팔아서라도 주님께 충성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야소가 말했다.
“오호, 참으로 신묘하고 기묘한 책략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여러 가지 계책을 들었지만 오늘 들은 이야기는 참으로 놀랍기만 하구나.”
“내 너희 같은 천재들을 내 휘하에 둘 수 있어 행복하구나.”
“나의 나머지 제자들이여. 너희들도 절치부심해서 정헌과 같은 공을 세울 수 있도록 하라.”

나머지 제자들이 대답했다.
“예, 주 야소님, 신명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이에 야소는 너무나 큰 미소를 띠고 제자들을 바라보더라.

그 때 우측 끝에서 질투와 분노를 참지 못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정헌을 바라보는 한 제자가 있었으니...






.



























스네이크풋츠 : 소설 <삼위일체> 8편을 기다려주세요.

커밍 쑤운~~~~~!!!^^


.
리플달기
1 0
삼청교육대 (210.96.84.241)
2013-08-26 10:08:45
상태형
나는 밑에 선비님처럼

처음에는 상태형을 존경하고 사랑했으나

정치와 이념의 글을 보고

골수 보수주의 기독교와 다름없는 그 태도

내것만 옳다는 자기 고집적인 편견을 가진 기독교인에 비추어볼때도


하나도 더 옳은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마디로 상태형의 기대를 완전히 접었어

물론 이글은 좋은글이야

그런데 이제는 상태형 생각하면서 지하철에서 예수불신 지옥급행을

외치는 사람들이 왜 생각날까

참 슬픈일이야

그래도 상태형은 자기만의 독선과 아집으로 내것이 옳다고 주장하겠지

그리고 대화도 통하지않고 말도 통하지 않겠지 이메일 보내도 소용이

없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수깨로 돌아와라 그말밖엔 할말이 없어

한때나마 한국교회의 어두운 현실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면서 투쟁했던 류상태 목사의 진정한 가면벗은 모습을

보고 슬퍼해야할지 기뻐해야할지 모르겠어
리플달기
1 5
산골선비 (112.150.89.202)
2013-08-25 23:39:31
첨으로 당신의 글에 동의합니다..하지만
정치와 이념에 관한 당신의 글엔 참 골때렸습니다.
근데 이 글만은 후하게 50점 드리겠습니다.
당신이야 머 내가 어떤 점수를 드리던 신경조차 않쓰는 외통수 꼴통이지만..
왜 50점 이냐??
하나님과 재물을 논했다면 마땅히 재물이던지 하나님이던지 둘 중의 하나로 결론을 내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외통수꼴통이라 삼천포로 빠져 역시 인간으로 결론냈습니다.
인간과 재물이 뭐가 달라요?
하나님과 재물을 논하다가 결국 재물론 결론 내린 것과 뭐가 달라요??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져 땅으로 떨어지고, 어둠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 결론 전에는 잘 나갔기에 50점 넉넉히 드립니다.
그러나 결론이 잘못되면 다 가짜인건 알죠??
땅과 재물과 정치와 인간은 알지만
하늘과 하나님과 진리와 영혼은 모르니
그래도 머..50점은 후한겁니다.
부디 이 글을 보고 느끼는 건데
세상 앞에 진실한 것 만큼
하늘 아버지 앞에 한번 설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빌어드립니다.
리플달기
4 7
시골사람 (211.211.101.185)
2013-08-28 18:58:30
순진한 사람 사람들...
여기 댓글다는 사람사람들...
말다리를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많네요
양의 가죽껍질속에 음흉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중적인 작태로 휘젖고 다니네요..
마침 오늘 국정원이 국가 안위를 위해서 큰일을 핬네요
이 애국적인 국정원을 향해 색안경 끼고 선동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유계에 암약하는 전교조처럼
기독교안에서 거짖 선지자들의 사탕발림에 조심해야 합니다.
마각이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
그때 역기 댓글 올린 자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조심조심 지켜봅시다.
거짓을 일삼는 자들을 지켜봅시다...
리플달기
3 5
이사야 (121.129.19.135)
2013-08-28 21:18:04
시골사람은
확실한 무뇌아다....언제나 철이들꼬 시이비언론의 맹신자로구나
리플달기
2 4
이사야 (121.129.19.135)
2013-08-27 20:17:22
그대들이 .......어찌
류 목사님의 마음을 알까....그의 삶을 알까...그대들의 주접이 일취월장 이라.....
리플달기
3 3
뭔 새 풀뜯어먹는소리 (180.158.61.251)
2013-09-04 09:06:11
이사야님 류 목사는 성경자체를 부정하시는 분이던데요 신화니 어쩌니 모순이니 하면서 다른글에서 보았어요 ,,,근데 어찌 목사이신가요 모순도 이런모순을...
리플달기
0 1
스나이퍼 (175.246.223.167)
2013-08-28 20:56:55
ㅋㅋㅋ
류목사의 졸개답구나...
너를 통하여 류목사의 정체가 드러나는 셈인가?
네가 행한 언행을 미루어 볼 때 류목사도 한 통속이라고 싸잡아도 되는가?
이 어리석은 사탄아....
리플달기
8 8
익명 (180.158.61.251)
2013-09-04 09:07:35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0 0
이사야 (121.129.19.135)
2013-08-30 07:24:29
너...스나이퍼야
사단의 졸개요 시이비막사의 졸개요 그네의 졸개일것이다
어리석은 무뇌아요...그대존제로 이사회가 똥냄세로 진동하는도다
리플달기
3 7
도시선비 (24.141.4.52)
2013-08-27 14:58:47
한가지 알려 드리지요
산골선비님은 류목사님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님의 하는 말을 듣고 보니
단언합니다만, 류목사님의 페러다임을 님은 짐작조차도 못하고 있어요.
살골에서만 살았으니 알리가 없죠.
몰라도 아주 많이 몰라요~

그래도 머..50점은 후한겁니다??
난 님의 댓글에 5점 드립니다. 아주 후한 점수로요...

하늘 아버지 앞에 한번 설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빌어드립니다??
인건 당최 누가 무슨 죄인이라도 잡았단 말인가?
사또 앞에 무릎꿇이리고 간신 목소리로 호통이나 함 쳐 보려는 이방의 짓과 같은디?


한심한 ..
너나 잘 하세요다.
리플달기
5 5
스나이퍼 (175.246.223.167)
2013-08-28 21:01:21
말다리가 드러나다.
마각...
그게 드러나는 순간..
왜 여기 댓글 다는 지저분한 안티들이 기를 쓰고 류목사를 변호하는가?
류목사의 정체가 무엇이냐?
난 그게 아리송하단말이야...
리플달기
3 6
이사야 (121.129.19.135)
2013-08-30 07:26:22
이꼴통아 내가 아르켜줄께
면담 신청하거라....너겉은 넘때문에 이땅에 개독교가 황성해지는것이다
리플달기
3 7
스나이퍼 (211.211.101.185)
2013-08-30 08:51:36
그렇다면 .....
당당뉴스를 접한지 몇개월 밖에 안돼지만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성을 띠고 댓글 다는자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
익명성에 기대어 자신의 가면을 벗기고 악을 써대는 네 모습이 정말 측은하더라.
물론 나라고 예외는 아니지...
어차피 인간은 야누스적이거든...

왜 네가 류목사에 대해 길길이 발악하며 그를 변호하려고 애를 쓰는 것인가?
내가 류목사거나 그 지인이라면
笑而不答心自閒(소이부답심자한)
그렇게 침묵모드로 들어가서 흔들리지말아야 본색이 드러나지 않는 법이야...
너와 혹은 너 따위의 부류들이 개독이라고 주님을 비하하면서 낄낄대며 분탕질해도
주님은 용서해주실지 모르지만
나는 간단히 촌철살인의 빈정거림으로 사탄의 발악을 낚아냈단다.
너의 수많은 댓글..
그리고 네 졸개들...
여기 당당뉴스가 한겨례냐?!
여기 당당뉴스가 반기련 사이트냐?!
이 더러운 사탄아!!
썩 물러가지못하겠는가!!
리플달기
9 4
새총맨 (207.210.3.147)
2013-08-29 06:48:01
나는 스나이퍼 뒤통수를 향해 새총 쏘는 사람.
님도 꼴통수구신가요?
불리하면 무조건 빨갱이 끌고 오는 그런.
지겹지도 않은가?
누가 속아준답니까?

류목사님의 신앙관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일 뿐인데
말다리라가 어쩌고 안티가 어쩌고 변호가 어쩌고..

정신차시오~~!

..


ps.: 그리고 보면, 꼴통정치가들이나 근본주의자들이나 별반 다를바 없는 것 같다.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경쟁에서 밀릴것 같으면 꼭 북한 끌고오고 탈출구를 모색하는 비열한 짓을 일삼는 것 보면은...

어휴~ 언제쯤이나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려는가?
리플달기
5 10
뭔 새 풀뜯어먹는소리 (180.158.61.251)
2013-09-04 09:09:15
류목사가 목사인가요??? 다른글에서 보면 성경을 부정하고 하던데요 어찌 목사인가요?? 신종목사?/
리플달기
0 1
이사야 (121.129.19.135)
2013-08-30 07:28:21
저런 모뇌아가
있즉 예수를죽인자와 다를것이 없지요는한 민주주의는 어렵지요....스나이퍼는 무지 무식 그자체 입니다
리플달기
3 2
박평일 (72.196.234.24)
2013-08-24 21:01:52
나는 돈을 연인처럼 사랑합니다
"돈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맞는 말씀 입니다.

돈은 인간들의 삶에서 공기나
물과같습니다.
부인한다고 해서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하나의 존재입니다.

돈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선택대상이 아닙니다.
사랑과 미움, 좋아함과 싫어함의
선호대상입니다.

나는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연인들 입니다.

돈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미워하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연인인 돈이
선하고 옳은 길을 가기를
원하고 바랍니다.
악하고 그른 길을 가는 것을
원하고 바라지 않습니다.

돈은,
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인 것 처럼..
리플달기
9 17
허생이 (116.44.25.16)
2013-08-24 16:11:54
이 편지는 ..
이 편지는 한국교회 목사님들께 먼저 드려야하는 편지인것같습니다.
송아지는 소를 닮고 강아지는 개를 닮기 마련입니다.
소경 목자가 소경을 인도하니 어찌 다같이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교계가 얼마나 양심에 불도장을 맞았으면 세상 사람보다 못한 온갖 부패와 우상숭배에도 부끄러움하나 없이 모두들 천국 간다고 확신들을 하니, 하나님도 참 낭패가 아닐수 없을 겁니다.

교회 건물만 으리으리했지 양심에 불도장 맞고 거짓말로 하나님의 제단을 더럽히는 거짓목자 따라서 자신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거짓 은혜에 눈물흘리는 성도들은 정신차려야할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사1장)는 말씀은 비단 유대인에게만 주신 말씀은 아닐 겁니다.
리플달기
13 16
최Ray (220.118.20.85)
2013-08-24 12:36:09
1. 몇 달 전 주일말씀 주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입니다.

결론은 헌금 많이 내는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라고

뉘앙스를 남기고 마무리 함.

2. 우리 목사님은 옛 날에 육신의 아버지가 형편이 힘들어도 남을 대접

많이 해서, 그 뿌린 열매를 자기가 따먹고 있다고 펑펑 씁니다.

3. 헌금은 예수님의 명령인 온 인류의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의 도구

이며, 교회 운영을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낸다.

4. 헌금을 제물, 재물, 예물로 해석하는 것은 틀리다고 본다.!!!
리플달기
22 17
최Ray (211.55.117.85)
2013-08-26 13:29:08
하나님께서 돈이 필요 하시나?

헌금이란 교회 운영을 위해 자원해서 내는 것이고

주님께 드리는 것은

믿음으로 몸과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리플달기
13 16
이사야 (121.129.19.135)
2013-08-26 21:42:15
글씨.......
목사들이 다해먹는 세상이요.....교회는 자기새끼 들 꺼고
무슨말을 씨부려대도 하나님 말이라며 사기치고...여신도 실실 훔처보며
정욕을 불태우고..바른말하는교인은 사단의자식이라 미친개수작을떨며
교인들을 무뇌아를 만드는 이땅에 70% 전후의 먹사 막사 넘들아...너희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다..............이독사의 자식들아 가식과 위선의 회칠한 무덤이여.................저주의 지옥이여
리플달기
16 17
포이멘 (183.109.98.59)
2013-08-24 12:23:01
한국교회에 하나만 제안합니다.

최소 1년 동안 교회에 십일조를 하지 맙시다.

성도님들 각자가 제사장이 되어서

교회에 내던 십일조를 가장 가깝고 어려운 이웃들과 직접 나누면 어떨까 합니다.

말라기의 말씀대로

과연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복을 주시는지 시험을 해 봅시다.

교회에 돈이 모이지 않으므로 재정문제도 없을 것이고

목사가 쓰나 성도가 쓰나 같은 지 한번 시험해 봅시다
리플달기
17 17
박창진 (42.82.71.52)
2013-08-24 13:56:53
왜 일년 동안만
평생 동안 하지 않아야지요.
신약의 교회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율법이 완전하게 되었고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하게 된 십일조가 씨와 먹을 것입니다.
씨는 먹을 것 이상의 물질로서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의의 열매는 십일조의 용도로 이야기되는 바입니다.
전인 사역자와 가난한 지체들을 돕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 일에 힘을 쏟으면 교회를 통하여 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더라도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물질적인 복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심는 것과 물질적인 복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리플달기
17 16
일반전도사 (183.96.109.240)
2013-08-24 15:37:02
그런데 예수님은 십일조를 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일조를 냈을까요? 아니면 안냈을까요?
만약 냈다면 유대교에 냈을까요? 아니면 교회에 냈을까요?
리플달기
11 23

류상태 목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