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 1903 성령한국’ 기도 성회에 참석을 했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순번을 따라 지방 감리사직을 맡고 있었고, 지방 내 교회 교인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받은 터였다. 행사 전날만 해도 연회 감리사 모임 책임을 맡은 이로부터 행사 당일 행사장 모처로 모여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감리사들이 광목 스톨을 두르고 제단 위로 오른다는 안내문이었다. 짧게 답장을 보냈다.

“버스 두 대와 교회 차 등으로 지방 내 교우 150여 명과 함께 참여할 예정입니다. 저는 제단에는 오르지 않고 어디 구석에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너그러움을 빕니다.”

자발적인 마음이었을까, 감리사의 체면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적잖은 교우들이 같이 길을 나섰다. 여유 있게 도착을 했다 싶었는데도 대회가 열리는 올림픽체조경기장은 이미 초입부터 버스와 승합차 등이 길게 밀려 있었고, 멀찌감치 내려 행사장으로 걸어가는 이들이 물결처럼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나 어떻게 모일까 궁금해 하며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미 행사장 대부분의 자리가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닌가? 연회별로 배정된 자리도 소용이 없어 빈자리가 눈에 띄는 곳으로 이동하여 교우들과 자리를 잡았다. 무대 뒤쪽까지 자리가 차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체육관을 가득 채운 뜨거운 열기는 고스란히 모든 순서에 반영이 되었다. 찬송과 기도로 이어진 순서마다엔 간절함이 넘쳐났다. 행여 그 많은 회중에게 전달되기 못할까 염려해서였을까, 순서를 맡은 이들의 목소리는 고조되어 있었다.

찰스 웨슬리의 찬송을 중심으로 한 찬양은 더없이 은혜로웠다. 해금을 비롯한 국악 반주가 참회의 비통한 분위기를 잘 담아냈고, 그 많은 인원이 한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니 찬송 속에 푹 파묻힌 느낌마저 들었다. 감독회장의 설교에 이어 한동안 이어진 회개의 기도, 순서마다 두 손을 들고 목청껏 드리는 회개의 기도는 과연 다른 곳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뜨거움 그 자체였다.

13개 연회 대표가 십자가 나무 조각을 가지고 입장을 하여 하나의 십자가를 만들어 세우는 퍼포먼스와 그 뒤 몇 가지 이어진 순서는 결단선포식을 끝으로 모두 끝났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정성껏 준비한 행사라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 큰 행사를 하면서도 끝나는 시간을 예정 시간에 맞춰 끝냈으니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를 했을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어렵게 인원 파악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교우들의 소감을 들었다. 그렇게 큰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별로 없는 교우들의 반응은 대개가 들뜬 반응이었다. 같이 눈물로 기도했다는 교우도 있었고, 감리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교우도 있었다.

'개'는 어디에 있을까?

교우들께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진한 아쉬움이 있었다. 오랫동안 정성껏 준비한 행사, 분명 많은 도전과 감동과 은혜를 준 뜻 깊은 행사였다. 행사가 열리기까지 같이 마음을 합하지 않은 누군가가 꼬투리를 잡듯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은 도무지 예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대단한 행사였다. 올림픽체조경기장이 빈자리 없이 가득 찼으니 그런 일이 어디 흔하겠는가? 주최 측에 따르면 1만 8천여 좌석이 다 차고 행사장에 들어오지 못한 채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참여한 이들까지 족히 2만 명이 성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몸으로 눈으로 체감한 숫자는 그보다도 훨씬 많아 보였다. 한 교우가 말한 대로 감리교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만도 했다.

하지만 숫자가 의미를 대신할 수는 없다. 같은 날 2002년 한일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일본 닛산 스타디움에선 동방신기라는 가수의 공연이 있었는데, 거기 모인 관중이 7만2천명이었단다. 연이틀 같은 인원이 모여 열광을 했다니 숫자를 자랑하기에는 머쓱해진다.

마음속에 자리 잡는 아쉬움은 ‘개’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분명 회개를 위해 모였고, 뜨겁게 찬양했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도 뻥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개’란 말은 ‘悔’(뉘우칠 회)와 ‘改’(돌이킬 개)를 합한 말로써, 돌아섬을 의미한다. ‘뉘우칠 회’(悔)는 ‘마음 심’(心)에 ‘탐할 매’(每)를 짝지어 놓은 글자로, 욕심을 내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칠 개’(改)는 ‘몸 기’(己)에 ‘칠 복’(攵)을 합한 글자로, 회초리를 쳐서 자기를 바로잡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글자의 의미로 보자면 우리는 그날 반쪽에 머물렀다. ‘회’(悔)는 했는데, ‘개’(改)는 보이지 않은 것이다. 눈물 흘려 찬송을 부르고 두 손을 들고 기도를 했다고 회개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친 세례요한은 어찌하면 좋겠는가 묻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요구를 한다. 세리에겐 정한 것 외엔 더 받지 말라 했다. 군인에겐 누군가를 협박하여 빼앗지 말라 했다. 그것이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고 있었는지, 얼마나 당연시 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 것인지를 세리와 군인들은 너무도 잘 알았으리라. 진정한 회개가 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을 것이다.

이럴 순 없었을까? 감독회장을 비롯한 모든 연회 감독들이 제단에 무릎을 꿇고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눈물로 고백을 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소임을 돈으로 탐하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여러분이 받아주신다면 우리 모두 감독직을 내려놓고 전 감리교인이 금식기도를 드린 뒤 제비뽑기 방식으로 하나님의 일꾼을 다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돈으로 표를 구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했다면!

이어 감리사 대표가 감독 뒤에 무릎을 꿇고 “우리도 잘못했습니다.” 눈물로 고백하며, “거창하게 취임식 한 거, 교우들의 피땀 어린 헌금으로 너무 쉽게 해외 여행한 거, 뉘우칩니다. 지방 내 어려운 교회 성심껏 돌보겠습니다.” 했다면!

이어 목회자 대표가 나와 “앞으론 고급 자동차 타지 않겠습니다. 남의 설교 베끼지 않겠습니다. 권위를 내세워 교인들 함부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목사 이전에 좋은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릎을 꿇었다면!

장로 대표가 나와 “장로 직분을 권위로 생각했던 것 회개합니다. 우리는 섬기기보단 다스리는데 익숙했습니다. 신앙 다르고 생활이 달라 우리는 양무리의 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눈물로 고백했다면!

그런 시간 이어졌다면 아무리 행사장이 비좁다 할지라도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는 교우들은 없었으리라.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지 않았을까?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며 내가 버려야 할 것, 내려놓아야 할 것 눈물로 고백하지 않았을까? 바로 그것이 110년 전 하디 선교사가 했던 일 아니었을까?

물론 행사를 준비한 이들은 그날의 모임을 두고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했다. 실천의 시작이라는 의미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지만, 이런 류의 행사를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었다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이런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뜨겁게 찬양하고 두 손 들고 기도했다는 이유로 회개를 마친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점점 진정한 회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잘못했던 것을 시인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 눈물로 고백하며 다짐하는 자리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기꺼이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개’는 보이지 않고, ‘회’만 요란한 자리라면 다시는 교우들에게 모임을 알리지 않을 것이다. 회개의 시간을 훈장처럼 간직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개’가 없는 요란한 ‘회’로 ‘회개’를 대신한다면 분명 하디도 주님도 손사래를 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