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작은 딸 모영이가 아내보고 “엄마 학교에 올꺼예요?”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학교에서 공개수업을 하는데 부모들이 와야 된다고 합니다. 특히 5학년은 <골든벨을 올려라> 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회과목 뽑은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학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로 기억되는데 후라이 팬에 가래 떡을 놓고 튀기다가 사고를 당했거든요. 너무 기름을 많이
넣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불을 너무 세게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뜨겁게 달아 오른 떡이 터지면서 얼굴을 조금 다쳤습니다. 아내가 못가면 저라도
한 번 가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2시부터 약속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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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로 올라 가는
계단 |
| 약이 볼이 부어 있는 모영이에게 “야 그런거 해봤자
오는 사람들도 없어, 이렇게 바쁜 농사철에 누가 오겠냐? 엄마 얼굴도 그렇고 아빠도 시간이 없거든 오늘은 그냥가라” 하면서 잘 달래서 학교를
보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습니다.
<골든벨을 울려라>는 오후
1시부터 시작이 됨니다. 조금 일찍 집을 나와서 학교로 갔습니다. 조금 지켜보다가 중간에 나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아빠가 되어서
학교에 얼굴을 내밀어야 좋을거란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아이들 일로 해서 학교에 가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다른 집도 아빠들도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이곳 교동에서는 아빠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학교 체육대회를 할때에는 아빠들이 참석해야 합니다. 교동
초등학교 전교생이 90명 가량입니다. 운동회를 하다보면 아이들 절반, 부모들 절반입니다. 아빠들이 참석해서 뛰기도 하고, 족구와 축구를 해야
운동하는 분위기가 살아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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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실의
문턱에서 |
| 하지만 제가 운동과는 원수를 지고 살기 때문에 1년에
몇 번 있는 체육대회엔 전혀 참석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날 아침에도 작은 녀석이 그러더군요. “아빠는 학교에 한 번도 온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엄마도 안오면...........”
이왕 말나온 김에 자상한 아빠 노릇 좀 하려고 학교로
갔습니다. 1시가 될려면 한 10분쯤 남은 것 같았습니다. 3층에 있는 5학년 교실로 올라 가다가 모영이를 만났지요. 눈 도장을 확실하게 찍어
두려고 거금 1,000원까지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한지 28년이 되었습니다. 그후에 초등학교 교실을 찾은 것은 통 털어서 5 번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1층 현관에서부터 3층 5학년 교실까지 걸어가는데 꼭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습니다. 예쁜 글씨들이 붙어 있는 계단하며, 복도 맨 끝에 있는 깔끔한 청소장, 24개의 책상이 줄지어 앉아 있는 20평짜리 교실, 우리 때는 책상 하나에 두 명씩 앉았습니다. 그리고 책상 가운데 금을 그어 놓고 니 땅 내 땅하면서 짝과 함께 싸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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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골든벨을
울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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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앞에서는 선생님이 컴퓨터와 프로젝트를 만지작 거리며 여러 가지 문제들을 내 놓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 계단을 올라올 때 “공개 수업에 오신 학부모님 맞으시죠” 하면서 인사하던 그 분. 모영이 담임 선생님줄도 모르고 건성으로 인사했는데, 이렇게 만났습니다. 약간은 어색했지만 교실 앞과 뒤에 선채로 눈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제 주변엔 학부모가 6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5학년 사회문제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칠판에 비춰진 문제들를 보았는데 모르는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만만한 문제도 나오긴 하더군요. “우리
조상들이 창문과 문에 발라서 방안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습기를 조절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뒤에서 구경하던 저는 마음으로 소리쳤습니다. “저것은
보나마나 창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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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문제가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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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한지’였습니다. 황토흙이라고 쓴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애들은 일어나서 학부모들이 있는 뒤로 나와 섯습니다. 그런데 창호지와
한지가 전혀 다른 건가요? 저는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때는 <한지>란 말을 잘 안쓴 것으로 기억이 됨니다. 이런 것도 세대차이라고 해야 할런지.
문제가 나올 때마다 뒤로 걸어 나오는 아이들이 늘어 났습니다. 그러나 패자 부활전이 있었지요. 무식한(?) 부모들도 풀 수 있는 아주 쉬운 문제가 나와서 아이들을 다시 살려 주었습니다.
죽음과 부활이 교차하는 4월의 초등학교 교실, 이제는 구경할
시간들도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5분만 더, 한 문제만 더 하다가는 약속 시간을 넘길 것 같았습니다. 20문제를 넘기면서 틀린 답을 쓴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쫒겨 났습니다. 그런데 이 놈들이 밖에서 난동을 피웠습니다. 복도에서 골든벨 답을 쓰던 카드를 들고서 시위를 했습니다. 치사하게
열심히 공부한 배신자들을 향한 야유는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복도를 지나 학교를 빠져 나오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1976년도 부개초등학교 5학년 교실로 들어 온 것같다. 저들의 눈에 내가 보이지 않고, 나는 5학년짜리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아저씨 우리들 사진찍어 주세요”
하면서 시위 피켓을 들고 폼 잡는 녀석들, 그들의 평안한 웃음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언젠가는 그 아이들도 저와 똑 같은 기분으로 복도를
걸어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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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지금
데모하는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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